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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서 쓴 군인 남재준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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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육군참모총장과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남재준 장군이 한평생 걸어온 이야기를 스스로 써서 정리한 책. 1965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2005년 전역하기까지 40년 동안 군인으로서 살아온 삶의 여정과 그의 애국심, 정의로운 군인 정신이 곳곳에 드러나 있는, 귀한 자료로서도 손색없는 책.
남재준 장군은 지난 정권 때 적폐로 몰려 수감 생활을 하는 중 여든이 넘은 누님을 위로할 목적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형님의 지극한 사랑과 격려에 의지하여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이 내용을 정리하였는데 장장 792쪽에 달하는 그의 일대기는 장편 대서사시를 방불케 한다.

남재준 장군은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에 태어나 일곱 살이 되던 해 6·25전쟁을 겪었고 배재고 재학 중 4ㆍ19와 5·16을 경험하는 등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아왔다. 또 1965년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인의 길에 들어선 이후에도 맹호사단 소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하고 실미도 사건의 현장을 겪는 등 치열한 삶을 보내야 했다. 그는 일선 대대ㆍ연대장 등 실전 부대를 이끈 것은 물론 수도방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제36대 육군참모총장 등 우리나라 육군의 주요 보직을 역임한 대한민국 육군 발전의 산 증인이다.

남재준 장군이 대장으로 진급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국가의 녹을 먹고도 큰 공을 세운 것이 없으면 회고록을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당부했다. 그런 아버지의 뜻을 따라 남 장군은 스스로 나라를 위하여 크게 한 일도 없다는 생각에 회고록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전역한 후 만난 그의 아버지는 “나중에 필요할 때 쓰거라” 하며 남 장군에 관련된 기사 모은 것을 내놓았다.
남 장군은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국정원장과 대선을 거치면서 왜곡되다 못해 비틀려버린 우리의 현대사를 바로잡는 차원에서라도 ‘내가 걸어온 길’만이 아닌 ‘내가 부딪히며 살아온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실의 기록을 남겨놓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시간대별로 정리해보고 그 일정표 위에 중요 사건들을 배열해 놓은 후 각 사안별로 당면했던 상황 및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스스로 하였던 일들을 기술했다. 이로써 단순하게 ‘걸어온 길에 대한 회고’만이 아닌, ‘헤치며 살아왔던 이 시대 역사의 소용돌이와 그 뒤안길’들을 서술한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한 후 국정원장이 된 남재준 장군은 국정원장 재직 중 해온 일들은 남북통일 이후에 쓰겠다고 마음먹고 이 책에서는 국정원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였으며 무엇을 남겨주려고 노력했는지를 부록에 첨부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목차

머리말
1. 이 글을 시작하며
2. 마음 아파하시는 누나를 위로하며
3. 대통령 후보 출마
4. 화랑대를 향하여
5. 사관생도가 되어
6. 제8사단 21연대에서
7. 보병 제25사단장 부관 시절
8. 월남 전선으로
9. 제33전투 준비 태세 사단 작전 장교(현17사단)
10. 고등군사반 제20기 학생 장교가 되어
11. 보병 제15사단 38연대 중대장
12. 제6군단 작전 장교 및 군단장 부관
13. 군수 사령관 부관
14. 육본 참모차장 부관
15. 육군대학 시절
16. 보병 제11사단 작전 보좌관
17. 동해안에서의 대대장 시절
18. 제1야전군 인사처 보임과 보좌관
19. 보병 제36향토사단 작전참모
20. 국방부 동원 계획 장교
21. 보병 제11사단 참모장
22. 보병 제7사단 3연대장
23. 제1야전군 작전처 시절
24. 육본 818사업단 편성1과장 및 단장 직무대리
25. 수도방위사령부 참모장
26. 보병학교 교수부장
27. 보병 제6사단장
28. 육군본부 인사참모 부장
29. 수도방위사령관
30. 합참 작전본부장
31. 한미 연합사령부 부사령관
32. 육군 참모총장
33. 전역사
글을 마치며
부록

본문중에서

제가 겪은, 우리나라의 소위 진보를 표방하고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모화사상에 골수까지 찌든 사대주의자들이었는가 하면 김일성을 숭배하는 주체사상파도 있었습니다. 또 오로지 북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눈치를 보면서 북에 사사건건 동조하며 이들을 뒤쫓는 종북 내지 친북 좌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마오쩌둥과 김일성 그리고 붉은 이념은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야기하는 ‘적폐’는 바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함으로써 그들이 추종하는 공산화 내지는 소위 민중 민주 사회 건설을 방해한 세력들 즉 ‘반동’들의 호칭인 것입니다. - 본문 16쪽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기에 있어야 마땅할 세 가지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 첫째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피 흘려 되찾고 지켜온 이 나라를, 그리고 피 같은 땀과 눈물을 흘려가며 가꾸어 물려주신 이 나라를, 발전시키기는커녕 이토록 혼란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막지 못함으로서 부모님 세대에 죄를 지은 것입니다.
둘째는 이제 저 자신 부모 세대가 되어 우리 자식들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저마다의 벅찬 꿈을 꾸면서 용기로써 꿈에 도전하고, 인내로써 시련에 맞서 이를 극복하면서 마침내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그러한 세상을 물려주기는커녕, 이토록 젊은이들의 모든 희망을 철저히 짓부수어 오직 암울한 미래만이 펼쳐진 예측 불가능의 시대를 물려주게 되어 자식들 세대에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제가 비록 정치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이 나라의 지도적 위치에서 10여 년을 살아온 위치 때문에 오늘을 사는 이 나라의 모든 국민에게 도덕적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 본문 17쪽에서

자질이 부족한 잘못된 장군은 누구보다도 더 나라에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형님께서도 잘 아시듯 임진왜란 당시 23전 23승의 이순신 함대와 단 한 번 싸움에 전멸한 원균 함대의 차이는 오직 지휘관 단 한 사람뿐이며 이것이 바로 장군의 역량과 자질의 중요성입니다. 그런데 일부 정치하는 사람들의 정략적 필요에 따라, 정상적 절차에 의거 선발된 인원을 무효로 하고 재심을 통하여 심사에서 탈락된 장교 4~5명(진급자의 10%에 해당)을 재심하여 진급시킬 경우 군 인사에 대한 신뢰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려, 군의 기초를 제 손으로 허물게 됨으로 저는 이 요구를 일축하였습니다. 만일 제가 이 요구를 한두 명만이라도 들어주었더라면 그들이 말하는 소위 육군 장군 진급 인사 비리 의혹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제가 아무리 우둔하다 하더라도 몰랐겠습니까?
그러나 일국의 운명을 책임지는 장군들을 흥정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며 더욱이 인사권은 저를 위하여 제가 개인적으로 인심을 쓸 수 있는 사유물도 아닙니다. 군의 진급은 오로지 나라를 위하여 헌신 봉사할 수 있는 국가의 간성을 선발하는 공적 관점에서만 공식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제 신념입니다. 다시 태어나 그러한 상황에 다시 처한다 해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저는 이 요구를 거절할 경우 제게 돌아올 엄청난 불이익을 기꺼이 각오하고 있었던 것인데 누구는 제가 정치력이 부족하고 고지식해서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하여 이 사건을 자초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이익을 위하여 군복을 입은 것이 아니라 제 조국을 위하여 군복을 입은 것이며, 제게 부여된 권한은 저를 위하여 사적 목적으로 행사하라고 나라가 제게 준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여 제 직분을 수행함으로써 그 책임을 다하라고 준 것입니다. 물론 저도 인간이므로 잠시 번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올가미를 의식하여 제 곤경을 면하고자 인심 쓰듯 장군의 인사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관의 지시를 일축하였고, 그 결과 수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 본문 27쪽에서
제가 대선 출마를 결심하게 된 그 첫 번째 이유는 남북 관계의 극심한 정신적, 물리적 ‘힘’의 불균형이었습니다. 현재 남북한의 재래식 전력은 우리 육군이 북한에 비하여 열세(우선 병력면에서 북한이 우리의 두 배)인 반면, 해·공군은 질적 면에서 다소 우세하므로 재래식 통합 전력 면에서 비록 열세하기는 하나, 최소 방어는 가능한 수준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군이 북한군보다 과학화, 첨단화되어 있으므로 병력의 열세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전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단견일 뿐입니다. 상대적 전투력이란 단순한 전력의 비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장 환경과 쌍방의 전략 전술에 따라 변화하는 가변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월남에서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 본문 42쪽에서
그 당시 중대전술교범(.FM7-10:Field Manual7-10)은 약 600쪽이 조금 넘는 두꺼운 책(Pocket Book)이었는데 통역 장교들이 미군 교범을 번역해 놓은 한문투성이인 데다가 문장도 어려워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보병을 지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도 3학년 때부터 그 교범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항상 47쪽(차례, 머리말 등 다 빼면 한 10여 쪽 읽은 것에 불과)에서 지루하여 그만두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임관하여 소대장으로 보직된 터에 그 다음 주부터 야외 전술 훈련이라 그 교범을 다시 꺼내 들고 발등에 불 떨어진 기분으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47쪽을 읽고 있을 때 중대 계원이 쫓아와서 대대장님이 급히 찾으신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하면서 대대장실로 뛰어 내려가니 대대장실에 4개 중대장 및 대대 참모, 주임상사와 인사계들이 모두 모여 토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더니 대대장님이 “야! 육사생, 야전에서 임시숙영 시 1인 1일 소요되는 물의 양이 얼마야?”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저 없이 “1과1/2.갤론입니다” 하고 답변하였더니 대대장님께서 “아니 저 녀석도 엉터리 아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 FM 7-10 47쪽 제1장 0절 0-0항에 1과1/2갤런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진 대대장님은 당장 교범을 가져오라 하시어 확인하고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아니, 저 녀석 걸어 다니는 FM 아니야?” 하셨습니다. 누가 쪽수와 장, 절에 항까지를 외우고 다니겠습니까? 이게 제 군 생활을 마칠 때까지 멍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 당시 저는 조금 으쓱한 기분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요? 하하, 제가 생도 3학년 때부터 그날까지 작심삼일로 수십 번 읽기 시작한 FM7-10을 항상 47쪽까지만 보다가 집어던졌기 때문에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잡은 행운이었습니다. - 본문 105쪽에서

그렇게 20분 가량을 비행한 후 어느 산봉우리에 저를 내려놓고 헬기는 급상승하여 사라져버려 헬기가 겨우 내릴 수 있을 만큼 나무가 벗겨진 정글 속의 공터에 저만 홀로 남겨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15~6m 정도 거리에서 터뜨린 연막이 아직 오르고 있어 어딘가에 군인이 있겠지 하였으나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 잠시 있으려니 병사 세 명이 올라와서는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이들을 따라 산을 내려가 보니 지휘용 소형 텐트가 처져있고 사병 몇 명과 대위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곳이 제가 보직된 맹호사단 제1연대 3중대의 지휘소였고, 그분이 중대장이셨는데 저를 보더니 거두절미하고 즉시 소대로 가 지휘권을 인수하고 다음 날 새벽 06:00시 이동을 개시하여 10:00시까지 좌표 OO지점에 도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도가 없느냐고 하니까 소대에 가서 소대장 상황판을 보라고 하므로, 솔직하게 동서남북을 분간 못하겠으니, 현 소대 위치의 좌표를 알려달라고 하여 좌표 방안을 받아 적고, 제 휴대품을 중대 CP에 맡긴 후 안내 나왔던 병사들을 따라 소대로 이동하였습니다. 이 병사들은 제가 신임 소대장인 줄 뻔히 알면서도 닭이 개 보듯 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소대에 도착해서야 전날 작전에서 우리 소대 출동 인원 35명 중 12명이 전사·상하여 후송되었고 현재 인원 2개 분대(+)로 23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임 소대장의 피 묻은 상황판과 지도 백, 신호용 플래시, 나침반, 총과 탄띠 등 장구를 인수한 저는 날이 이미 어둑어둑 어두워가고 있었으므로 취임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소대를 2개분대로 재편성하여 사주 방어 형태로 배치하고 매복 호를 구축토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단 한 명이었던 하사 분대장이 여기서 함부로 호 파는 소리를 잘못 내면 몰살당한다면서 호 구축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말없이 제 총에 실탄을 장전하여 방아쇠에 손을 걸고는 가슴을 찌르면서 “내 손에 죽을래, 베트콩 손에 죽을래?” 하였습니다. 그렇게 전쟁터에서의 소대장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 본문 153쪽에서

제가 월남으로부터 귀국한 지 사흘째 되던 날 24기 선배로부터 몇몇 선배가 모여 귀국 환영을 해주려 하니 반드시 사귀는 여자 친구를 대동하고 어디로 나오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 선배(인품도 좋고 합리적이며 명민하였음)와는 생도 시절 무척 가까이 지내던 관계였으므로 군말 없이 나가겠다고 약속한 후 안 가려고 하는 아내(그 당시는 결혼 전)를 협박 반, 잡아끌기 반, 강제로 끌다시피 하여 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선배를 만나 따라가 보니 어느 집에 21기부터 24기의 선배 아홉 명이 있었고 이들 모두는 생도 시절 후배들에게 신망이 있었던 선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몰랐지만 점점 이야기의 열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제 느낌에 생도 시절의 그 순수함보다는 주로 현실적인 대화들이 오가고 하여 잘못 참석했구나 하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가 자리가 파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 날 저는 전속 부관 때 사단장으로 모시던 김용휴 장군님(육본 군수참모부장, 사전에 약속되어 있었음)을 인사차 방문하여 월남 이야기를 포함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보직 이야기가 나와서 전날 모 선배가 얼핏 제가 수경사로 보직될 것 같다고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한 것이 생각나서 보직 문제와 함께 그 모임의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김 장군님은 느닷없이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화를 내시면서 “그따위 짓 하려고 육사 나왔느냐. 그러려면 당장 옷을 벗어라”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그때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하셨으나 하나회에 대하여 조금 알고 계셨던 것 아닌지?). 저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생도 3학년 때 그 모임에 참가한 것부터 자초지종을 차분하게 설명 드리니 “그러면 보직은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따르겠느냐?” 하시기에 그러겠다고 답변 드렸습니다. - 본문 207쪽에서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참모님이 “이 바쁜데 무슨 장가냐” 하며 안 내보내 주셨습니다. 이에 저는 거의 단식 농성을 하다시피 하여, 결혼식 전날 밤도 꼬박 새우고 결혼식 당일 여덟 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겨우 사정사정 끝에 2박 3일 휴가를 얻어 부대에서 내준 지프차를 전속력으로 달려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열두 시 결혼식에 늦지 않게 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수하자면 결혼식 날 이발과 면도는커녕 세면도 제대로 못한 채로 결혼식에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 잤기 때문에 주례사는 하나도 듣지 못하였고, 사회자 소리에 따라 눈 떠야 할 때 잠깐 잠깐 눈만 떴습니다. 그래서 제 결혼사진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플래시 터질 때 눈을 깜박인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가는 코까지 골면서 잔 것(많이 찢어버렸음)이라 눈 뜨고 찍힌 사진이 별로 없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는 “무슨 신혼여행이냐”라며 예식장 앞에 차를 대기시켜 놓을 테니 식 끝나자마자 부대 복귀하라던 참모님을 졸라서 겨우 며칠 말미를 승낙받았던 터라 가까운 곳으로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저는 호텔에 도착하는 대로 예쁜 여자 아이 인형 하나를 사주고는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밥 먹는 시간 빼놓고 잠만 자다 온 것이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그때 여자 아이 인형을 사주어 딸만 둘인 것 같지만 그래도 제 딸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기만 합니다. 저는 2박 3일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또다시 정신없이 지내다가 약 3개월 후 광주 고등군사반에 입교하였고 이어서 전방 중대장으로 나갔기 때문에 주례 선생님 -장인어른 친지-께 감사 인사도 못 드려 지금까지도 말은 못 하였지만 아내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 본문 222쪽에서

그때 중대장실 안에는 그 병사 앞쪽으로 제 당번병이 미리 들어와 앉아 숫돌에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 병사와 이야기를 시작한 후 약 10여 분쯤 지나서, 당번병이 “중대장님, 이만큼 갈면 되겠습니까?” 하기에, 종이를 쳐보니 잘 베어졌습니다. 당번병에게 이제 되었으니 나가보라고 한 후 나무토막과 종이를 서너 번 베어본 후 그 병사도 내보냈습니다. 그날 저녁 여덟 시 30분쯤 무렵 예의 그 병사가 또 소란을 떨기 시작하자 저는 그 날이 퍼런 칼을 들고 그 병사 앞으로 다가가 “나는 내 손으로 사람을 여럿 죽였는데 너도 사람을 죽여 보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병사가 어리둥절하여 멈칫하는 사이에 “내가 네 신상을 파악하면서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생각해도 네가 죽는 것이 너를 위해서나 너 같은 녀석을 두고 평생 속 썩일 네 부모님들을 위해서나 그리고 우리 중대를 위해서라도 더 나을 것 같다. 내가 중대를 팽개치고 너만 따라다닐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데 보니, 네 그 대검으로는 날이 무디어 무도 못 자를 것 같아서 낮에 너도 보았지만 이 칼을 갈아둔 거야. 너 도와주려고. 자, 이 칼 받아라” 하고 재촉하자 그 병사는 꿈에도 생각지 못해본 엉뚱한 상황 전개에 당황했습니다. 제가 “칼 받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라고 다그치자, 무릎 꿇고 앉아 빌면서 “다시는 안 그럴 테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네가 약속을 지킬지 안 지킬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으면 부모님 속 썩이지 말고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하자 정말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을 하여 알았으니 가서 점호 준비하라고 보냈습니다. 그런 병사들은 조폭의 의리 같은 것이 있어 조폭들이 한 번 형님으로 모시면 끝까지 의리를 지키듯, 마음으로 승복하면 끝까지 진정성 있게 모범적으로 근무합니다. 저는 그 밤의 짧은 행동으로 중대를 완전 장악하였고, 그 병사는 남은 기간 모범적으로 생활하면서 타 병사들을 이끌어, 중대 지휘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본문 245쪽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박정희 대통령님의 부산 지역 순시가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대통령님을 수행하다가 3부두에서 수행 대열로부터 이탈하게 되시는 사령관님을 모시기 위하여 차를 가지고 3부두에서 대기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 경호원이라는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 신분증 제시도 없이 다짜고짜 제가 휴대하고 있는 권총을 낚아채며 압수하려 하여 싸움이 붙어 옥신각신하고 있는 사이 대통령 차량 대열이 갑자기 나타나 멈춰 섰습니다. 대통령님은 창문을 내리고 얼굴을 내밀며 손짓으로 저희를 부르시더니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뒤따르던 국방부 장관, 총장, 사령관님 등은 저를 보시더니 얼굴이 굳어지셨는데, 그때만 해도 어렸던 터라 당당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육군 장교입니다. 그런데 이 경호원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제 권총을 빼앗으려 하였습니다. 대한민국 내에서 대한민국 장교가 강제로 무장 해제를 당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자 아무 말씀도 없이 물끄러미 저를 쳐다보시던 대통령님께서는 그 경호원에게 “이 장교 말이 맞아, 자네가 잘못 했어” 하시고는 출발하셨습니다. 대통령님 말씀을 들은 장관, 총장, 사령관님의 얼굴이 환해지신 것은 물론입니다. - 본문 294쪽에서
그 대위는 자기소개 등 개략적인 인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토의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지식은 학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정훈 교육에서 얻은 정도로 “1차 옥포해전, 2차 당포해전, 3차 당항포해전 하며, 한산대첩에서의 학익진, 명량해전에서 12척(13척)으로 적선 334척 격파” 하는 어린이 위인전 내용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위는 각 해전의 배경과 당시 해류 및 해안의 조건, 상대적 전투력, 피아 군함 및 화포의 장단점과 취약점, 적용된 전쟁의 원칙과 지휘 결심의 적절성 및 전

저자소개

남재준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배재고, 육사 25기 졸업했으며 월남전에 참전(맹호사단 소대장)했으며 제6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수도방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제36대 육군참모총장, 제31대 국가정보원장, 서경대 충남대 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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