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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개벽(2022년 가을호)(제8호): 이동, 우리 시대의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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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계간지 『다시개벽』 제8호, 2022년 가을호이다. 『다시개벽』은 백 년 전에 창간되었던 우리나라 대표적인 종합잡지 『개벽』을 복간한 계간지이다. 『다시개벽』 제8호는 특집 “이동, 우리 시대의 화두”를 주제로 인간의 이동권은 물론, 철새의 자유로운 이동, 문명의 이동, 의식의 이동에 걸쳐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한다. 이동은 지구와 인류의 역사는 물론이고, 생물의 생존과 욕망, 인류가 처한 작금의 물질적, 사회적 현실을 두루 설명해 주는 열쇳말인 것이다. 이동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기후위기로 현실화된 인류세의 문제점은 바로 가속화된, 범람한 인간 욕망의 이동에 말미암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밖에 풀뿌리 민주주의, 생명운동, 명상과 공부모임 등에 걸친 뿌리에서부터의 되살리기 여러 국면을 담아낸 글들과 『개벽』의 복간에 걸맞은 고전적인 ‘개벽학 담론’의 텍스트들을 담아내고 있다.

출판사 서평

‘이동(移動)’이라는 단어는 ‘변동’이라는 단어보다 좀 더 구체적 이미지와 더불어 환기된다. 그건 이동이라는 용어가 장소성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공간과는 달리 장소는 구체적인 체험의 영역이고, 바로 그 장소를 옮기는, 살(肉)로 체감되는 행동을 우리는 이동이라고 부른다.
46억 년에 이르는 장구한 지구의 역사도 ‘이동’이라는 키워드로 읽고 그림 그려볼 수도 있다. 불기운으로 가득한 거대한 구체(球體)였던 원시 지구에서는 각종 가스들이 지구 밖으로 이동을 시작하지만, 지구 인력이 그 이동을 가로막는다. 그렇게 해서 대기권이 형성되었다. 그 대기를 ‘장소’로 하여 열의 이동과 대륙의 이동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 지구-암석은 점차 층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대도약’이라 칭할 만한 사건이 터져 나왔다. 박테리아가 바다에서 탄생한, 과학자들이 여전히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는 신비한 사건이었다.
이어서 광합성 하는 박테리아가 바다에서 나타나자, 이번에는 산소가 바다에서 대기로 대이동을 시작했다. 대륙의 융기라는 땅의 이동이 발생한 후, 녹조류를 선두로 바다 식물들이 육상으로 이동했는가 하면, 뭍으로 서식지를 옮긴 식물들은 씨를 만들고 키를 키워 더 멀리 퍼져나갔는데, 이들의 행동 역시 서식지 넓혀가기 또는 서식지 이동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동물’이라는 말은 숫제 ‘[이]동하는 [생]물’이라는 뜻이다. 살기 알맞은 장소에 터잡고 살기란 식물만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긴요하다는 간명한 이 진리는, 지금도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사는 여러 철새들이 생생히 입증해 주고 있다.
인류의 여러 민족과 부족에게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의 이동은 지구가 요청한 제일의 명령이었다. 물이 풍족한 곳, 먹이가 넉넉한 곳, 숲이 있는 곳-이런 곳을 찾아 수만 년 전 현생 인류는 걷고 또 걸었다. 나중에는 곡물과 과실수를 기르기 좋은 땅을 찾아 이동했고, 세월이 더 지나자 어디에 자리 잡는 것이 좋은지를 다루는 사상(풍수 사상)이 태동하고 발달했다. 또한 더 큰 부와 권력을 찾아 많은 이들이 도시 중심부로 몰려들었다, 두 발로 걸어서, 수레를 타고, 말을 타고….
한편, 석탄과 석유와 가스를 지층에서 캐내 도시 인근의 공장과 발전소로 이동시키는 대사건이 발생하고, 증기기관과 내연기관과 가스터빈이 발명되고 기차와 증기선과 자동차와 항공기가 지구의 여러 길을 오가게 되면서, 지구 안 물질의 이동 속도가 급증하게 된다.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잘린 마호가니가, 팜유와 설탕이, 소의 살점이, 유색인 노예들이, 화석연료 안의 탄소를 대기권으로 쉼 없이 이동시키는 증기선을 타고 더 신속히 이동했고, 콜레라나 홍역 같은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들이 바로 그 증기 무역선에 몸을 싣고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력으로 이동했다. 시간을[속도를] 통제함으로써 공간을 통제하게 된 근대(지그문트 바우만)의 태동과 발전의 배면에는 이처럼 고속 이동이라는 사건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인류세’를 증기의 힘으로 지구 물질 이동 속도가 가속화된 시대, 물질 이동이 범람하게 된 시대로 규정할 수도 있다. 앞으로 기후재난 사건이 인류사회를 충격하면 할수록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새 거처를 찾아 생존을 위한 이동을 해야 할 것이되, 이 역시 물질 이동의 범람, 그 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조금 결을 달리 말해, 이러한 범람의 다른 이름은 ‘뿌리 뽑힘’이다. 인류세는 지구의 물질이 뿌리 뽑혀 제자리에서 타지로 대거 이동하게 된, 이동하고 있는 시대를 일컫는다.
이와 같이 ‘이동’은 지구와 인류의 역사, 생물의 생존과 욕망, 우리가 처한 작금의 물질적·사회적 현실을 두루 설명해내는 놀라운 열쇳말이다. 이동은 살아감, 번영, 자유와 권리, 착취와 탐욕, 생태적 오염과 교란, 시대 대전환 또는 개벽 같은 여러 주제를 가로지른다. 『다시개벽』 이번 호는 이동이라는 주제가 가 닿는 여러 표면 중 일부를 조명한다.

○ 주용기는 뉴질랜드와 한국, 일본,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땅을 오가며 사는 어떤 이들의 삶과 곤경을 한눈에 보여준다. ○ 서재현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으로의 몇몇 전진을 조목조목 짚어내며 우리 사회가 이 사안을 계속해서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역시 확인해준다. ○ 홍경실은 서구 근대의 인간중심주의 철학을 극복하기 위한 한 철학적 운동으로서 베르그송의 철학 담론을 소개하며 이동이라는 화두를 생명[살아있음], 지속(la dur?e), 개벽, 자유, 몸, 정체성과 연계지어 생각한다. ○ 강주영의 글은 좀 더 스케일이 크다. 강주영은 근대산업문명을 ‘생산문명’이라 통칭하면서 바로 그 생산문명이 이제는 ‘생성문명’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하는 문명이동론을 제출한다. 오늘날 지구가 ‘지구개벽’과 같은 사건[기후변화]으로써 사회개벽을 촉발하고 생성하고 있다는 판단을 밑에 깐 채,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관계가 지구의 생성력 한도에 맞추는 관계, 즉 생성관계로 탈바꿈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가 하면, 복잡계 이론과 양자역학의 여러 결론을 개괄하며 이를 수운의 무위이화, 불연기연, 조화정과 연결 짓는데, 글쓴이에 따르면 이것은 동학을 ‘지구생성살림론’으로 확대하려는 기획의 산물이다. ○ 권이현은 암의 발병이라는 큰 사건에 부딪혀 어떤 삶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는지, 그 걸어감 속에서 심신과 한울의 관계라는 주제에 어떻게 자신의 생각이 가 닿았는지를 차분히 들려준다. ○ 서혜원 역시 자신이 어떤 경로로 새로운 생각으로 이동하게 되었는지 진솔한 고백담을 들려주며, 독자로 하여금 ‘무력한 나’에서 ‘큰 나’로 남는 삶의 길이 무엇일지, 묵상케 한다. 이무열의 글은 문명전환을 위한 한 정치학교의 실험을 담담히 소개한다. ○ 이무열은 “끊임없이 판을 뒤집고 도약할 수 있는 정치 사건을 생성하는 느슨한 네트워크이면서 정치플랫폼의 준비단계인 프리플랫폼”이라는 지리산정치학교를 소개한다. ○ 생명학연구회의 신채원은 연구회에서 도서 『지구인문학의 시선』을 함께 읽고 토론한 바를 공유함으로써 이 책을 미리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 홍박승진은 한국어의 품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의 마음을 채워주고 길러주었던 윤석중 동시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데, 새롭게 찾은 1938년 이전 윤석중의 작품 44편 가운데 동시 11편의 말끔한 얼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이은홍의 글은 최근 발간된 『개벽의 사상사』에 관한 서평으로, 이 책의 성취와 한계를 퍽 잘 드러내 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에서는 ‘개벽’을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을 동시에 해내야 했던 근대 한국사상, 그 역사에 편재하는 하나의 ‘패턴’으로 본다는 것이다. ○ 박길수는 이돈화가 쓴 ‘제사론과 영혼론’(『개벽』 제5호, 1920.11.1)을 새롭게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천도교의 우주관, 인간관을 다시금 밝게 알아보고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글이다. ○ 『사회개조 팔대사상가』 번역 시리즈 이번 편은 상호부조 사상가로 유명한 표트르 크로포트킨을 다루고 있다. 『한 혁명가의 회상』을 “일대 예술품”으로 평하는 저자들은 이 글에서 크로포트킨의 생애를 짧지만 내실 있게 더듬으며, 그 흥미로운 여정의 윤곽을 잡아낸다. 글을 읽으며 독자는 서혜원이 말한 ‘큰 나’로의 이동이 무엇인지를 곱씹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이 이 글이 전하는 가장 강렬한 향기가 아닐는지. 물론, 그것은 결정적으로는 인간 크로포트킨의 향기일 것이다. 상호부조 사상을 깊이 있게 알려주지는 못하지만, 크로포트킨이 남긴 각 저술이 어떤 개인사적 국면에서 생산된 것인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글이기도 하다.

목차

● 권두언 RE: START
○ 우석영, 이동을 다시 생각한다

● 다시쓰다 RE: WRITE
○ 주용기, 위대한 비행을 감행하는 새들과 사람의 평화로운 공생을 바라며
- 무분별한 개발을 중단하고, 공생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 서재현,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다
○ 홍경실, 앙리 베르그송의 지속과 시천주자侍天主者의 거듭 개벽
○ 강주영, 시작된 개벽-생산문명에서 생성문명으로의 이동

● 다시뿌리다 RE: ACT
○ 권이현, 치유_내 안의 한울님을 발견하고 모셔가는 일
○ 서혜연, 사랑을 물려 줄 수 있을까
○ 이무열, 문명전환 하는 지리산정치학교- 연결된 사이에서 생성되는 문명전환의 정치 플랫폼을 지향하며
○ 신채원, 생명학연구회, 무엇을 연구할까 (2) - 〈지구인문학의 시선〉을 함께 읽다

● 다시닦다 RE: CULTIVATE
○ 라명재, 천도교 수도와 수련

● 다시읽다 RE: READ
○ 홍박승진, 새로 찾은 1938년 이전 윤석중 작품 44편
○ 이은홍, 왜 지금도 개벽인가? - 『개벽의 사상사』를 읽고

● 다시잇다 RE: CONNECT
○ 이쿠다 조코·혼다 미사오, 조성환·문준일 번역, 사회개조 팔대사상가 - 2. 크로포트킨
○ 이돈화, 개벽라키비움 현대어역, 제사문제를 기회로 영혼 문제를 일언하노라
○ 이필우, 박길수 현대어역, ‘하늘이 기뻐하는 네 가지’에 관한 이야기天有四喜說

본문중에서

지금부터라도 수많은 새와 지역주민이 스스로 지속가능한 방식대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 및 사회적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무분별한 개발 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다양한 생물들과 공존, 공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생물다양성이 감소하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은 사람들, 특히 권력과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각성과 변화된 행동을 촉구한다. 위대한 비행을 감행하는 새들이 계속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23쪽, 주용기, “위대한 비행을 감행하는 새들과 사람의 평화로운 공생을 바라며”)

2021년 말, 추운 겨울 시작되었던 지하철 선전전은 어느새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낯설게만 느껴졌던 언론의 관심은 낯설지 않았던, 예전의 무관심으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7개월간 매일 아침 이어졌던 지하철 시위는 많은 것을 바꾸기도 하였고, 어떤 것도 바꾸지 못했다.(중략) 싸울 수밖에 없어 싸워야 했다. 7개월간, 아니 지난 20년간 삭발을 하고, 버스를 막고,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며 장애인들은 존재를 드러냈다. 그 덕분인지, 이 사회에서 장애인은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긍정이든 부정이든) 저항하는·싸우는 장애인으로 조금씩 읽히고 있는 듯하다. (25쪽, 서재현,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다”)

모든 것들이 급진적으로 가속 변화하는 것이 개벽이다. 가속 변화는 질적 전환의 연쇄작용이 급진적으로 빠르게 진행된다는 뜻이다. 개벽이 지구와 인류 모두를 모시는 개벽이 될지, 파국의 개벽이 될지는 불확정적이다. 지구 개벽의 현실적 모습은 생물멸종, 홍수, 가뭄, 폭염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인간에게는 파국으로 보이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발적 진화’ 과정이다. 이런 과정에서 바이러스의 인간 대공격인 코로나19 대유행도 출현했다. 기후변화와 코로나는 인간에게 위협이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자기생명의 자기조직화를 진행하는 자기살림이자 자기생성 과정이다. (43쪽, 강주영, “시작된 개벽 - 생산문명에서 생성문명으로의 이동”)

치유는 곧 내 안의 한울님(신)을 발견하고 모셔가는 일이다. 삶을 꾸려가는 일이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이와 다를까? 이제서야 삶과 죽음, 치유가 내 안에서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는 것 같다. (70쪽, 권이현, “치유_내 안의 한울님을 발견하고 모셔가는 일”)

아이들이 태어나도 여성들이 다시 일하던 직장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그 직장에서 엄마라는 이유로 업무 능력이 폄하되거나 배제되지 않기를, 양육자가 모두 육아휴직을 눈치 보고 쓰지 않게 되기를, 독박육아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 되기를, 깨끗한 공기와 물을 모든 생명체가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길, 아이들은 자라며 존중과 평등과 평화를 배우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100년 뒤 세상에 대해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73쪽, 서혜연, “사랑을 물려 줄 수 있을까”)

지리산정치학교는 문명전환을 위해 이중적 정치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모든 정당 안에서 문명전환정치의 의제를 추동하고 정당 밖 현장에서 정당의 정치활동을 추동하는 이 둘이 상호 보합 될 수 있도록 연결하고 둘 사이에서 또 다른 문명전환적 정치사건이 생성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역할입니다. (81쪽, 이무열, “문명전환 하는 지리산정치학교”)

누구나 살면서 삶의 모순을 느낀다. 대부분 그런 세상의 부조리함 속에서도 그럭저럭 적응하며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거기에 의문을 품거나 적극적으로 해답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석가는 ‘생로병사’의 의문을 풀기 위해 출가 수행을 시작했고, 조선조 말 수운 최제우(1824-1864) 선생은 민생과 나라가 모두 망해 가는 상황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해법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수행하였고, 그 답으로 동학을 창시하였다. (107쪽, 라명재, “천도교와 수련”)

올해는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이다. 이를 맞아 7월 22일에 ‘국제방정환학술포럼’이 열렸다. 거기에서 어떠한 발표를 할까 고민하다가 시와 나의 첫 만남이었을 윤석중의 동시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을 밝히는 일은 나의 원천(Ursprung)을, 여러분의 원천을 밝히는 일이 되리라고 예감하였다. 소파 방정환의 이름이 들어간 학술대회와 윤석중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 나의 유년 시절 기억에 윤석중의 「꽃잎」이 박혔듯이, 윤석중의 어릴 적 기억에는 소파가 새겨져 있었다. (117쪽, 홍박승진, “새로 찾은 1938년 이전 윤석중 작품 4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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