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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 피해자에서 생존자, 그리고 감시자가 된 마녀 D의 사법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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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D
  • 감수 : 김수정
  • 출판사 : 동녘
  • 발행 : 2022년 07월 25일
  • 쪽수 : 556
  • ISBN : 9788972970521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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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성범죄 수사와 재판을 지켜봅니다”
피해자들의 그림자가 된 한 피해자가 법정 안팎에서
써내려간 자세한 분노와 성실한 연대의 기록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 디지털 성범죄에 너그러운 사법부를 비판하는 이 해시태그는 ‘n번방’에만 해당될까? ‘n번방’ 이전에 ‘소라넷’, ‘AV스눕’, ‘웰컴투비디오’로 이어진 ‘선처의 역사’가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사법부는 성범죄 가해자에게 너그럽지 않았던 순간이 드물었다. 이 책은 이러한 사법 시스템을 둘러싼 자세한 관찰과 분노의 기록이다. ‘마녀’로 알려졌고, 지금은 ‘연대자 D’로 불리는 익명의 활동가인 저자는 전국을 누비며 수많은 성폭력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지켜봤다. 그의 눈에 비친 사법 시스템의 생생한 풍경은 우리가 기사로만 접했던 성범죄 재판이 실제 법정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전에 수사와 기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 모든 과정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판결문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법 시스템이 어쩌다 ‘그들만의 성채’가 되었는지,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한 성폭력 피해자의 생존과 연대에 관한 치열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피해 이후 말·시간·자리를 잃고 홀로 4년간 법정 싸움을 견딘 저자는, ‘그때 내 옆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되뇌며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시작했다. 이후 사법 시스템 감시에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다 ‘방청연대’라는 말을 만들었고, 수사·재판 모니터링 교육을 기획하며 피해자부터 판사와 검사, 변호사와 활동가 등 시스템 내외부의 다양한 사람들을 연결해나간다. 경계가 없어 보이는 그의 활동은 ‘잊히기 위한 연대’, ‘대체 가능한 연대자’라는 목표를 향한 ‘계산된’ 발걸음이다. 누구보다 완벽한 ‘그림자’가 되고 싶어 했던 그의 이야기는, ‘좋은 일’, ‘필요한 일’ 정도로 여겨지는 ‘연대’에 어떤 전략과 윤리, 성장과 책임, 진화가 필요한지도 치열하게 묻는다.

출판사 서평

★ 김수정, 임수희, 김혜정, 정현백, 안주연 강력 추천
★ 〈성범죄 형사재판 모니터링 수첩〉 부록 포함

“이 책은 어떤 법조인이 쓴 책보다 전문적인 성범죄 관련 법률 지침서이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로서 스스로를 구하고, 나아가 연대로써 세상까지 구하려는 야망이 꿈틀대는 책이다.”
- 김수정(변호사, 《아주 오래된 유죄》 저자)

그 판결은 대체 뭘 먹고 자랐을까?
비법률가 시민이 들여다본 법정의 풍경

성폭력 피해자들이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사법 시스템의 간극은 이미 알려져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도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거기까지라는 점이다. 언젠가부터 외부의 비판은 ‘솜방망이’라는 단어에 멈춰져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용어부터 논리까지 ‘전문 영역’으로 여겨지는 사법 시스템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서일 것이다.
‘비법조인 시민’의 눈으로 꼼꼼하고 꾸준하게 사법 시스템을 들여다본 저자가 제일 먼저 주목하는 이들은 판사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재판부는 ‘재량’이 많이 보장되어 있으며, 처벌이 ‘솜방망이’가 된 원인도 상당 부분은 여기에 있다. 예컨대 2020년 대법원은 디지털 성범죄에 최대 29년 3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양형기준을 마련했지만, 판사가 재량으로 법정형을 2분의 1까지 깎을 수 있는 ‘정상참작감경’ 제도가 존재하는 한 엄벌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여러 사례로 보여준다. 피해자의 의사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합의’ 또한, 그 과정에서 추가 가해에 빈번하게 일어나는데도 이런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는 재판부가 드물고, 오히려 가해자가 합의에 실패하든 성공하든 실제로는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되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라는 말은 흔히 판사의 독립과 재량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저자는 과연 판사들 스스로는 이 말을 지키고 있는지 되묻는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 사이트의 운영자였던 손정우에 대한 범죄인 인도청구 재판의 불허 사유에서 볼 수 있듯 시민들의 상식과 동떨어진 논리가 담겨 있는가 하면, 가해자를 선처할 때 ‘진지한 반성’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리며 판에 박힌 듯 부실한 판결문을 내놓는 모습도 전국 법원에서 목격된다고 꼬집는다. 피해자가 법원에 나와 말해주길 바란다면서도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할지는 고민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들을 준비는 하고 있는지도 묻는다. 이렇듯 저자가 일반 시민의 ‘상식적인’ 관점으로 들려주는 법정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솜방망이’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 사법 시스템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알고 보면 다르다, 알고 비판하면 달라진다”
‘그 판결’ 뒤의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들

성폭력 사건 재판을 보도하는 기사를 읽다 보면 재판부의 이름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 ‘법대로’는 대개 ‘판결’로 받아들여지므로 기사의 초점 또한 재판 결과에 맞춰지는 경우가 많고, 이때 판사는 마치 모든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책에 따르면 ‘솜방망이 처벌’을 논할 때 이야기되어야 하는 이들은 판사만이 아니다. 부실한 재판 뒤에는 수사와 재판의 여러 단계가 존재하며, 그 과정에 다양한 주체들과 제도들, 관행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사법 시스템의 ‘현실’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저자가 ‘또 다른 톱니바퀴’로 먼저 꼽는 이들은 경찰과 검찰이다. 이들의 수사와 기소가 부실하면 재판에도 영향을 주며, 판사가 “유죄 심증이 있어도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흔히 이런 과정에서 비롯된다. 더욱이 피해자는 형사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서 증인신문에 출석하는 경우가 아니면 방청석에 앉아 있어야 하는 등 수사와 재판 과정의 전반에서 소외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역할과 권한이 커졌음에도 ‘고소장 쪼개기’ 등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더하는 경찰의 사례, 가해자의 범죄를 입증할 책임이 있고 피해자를 대변할 수 있는 ‘당사자’임에도 피해자 보호와 공판 준비를 소홀히 해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기는 검사의 사례 등은 여전히 현실에 넘쳐난다.
이들뿐인가. 열악한 제도의 현실 속에서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지 못하는 피해자 국선변호사들, ‘피해자에게 고통 주기’를 전략화한 성범죄 전담전문 법인을 비롯한 피고인 측 변호인들, 피해자와 연대자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한 보복성 고소 등의 ‘방법’을 인터넷 카페에서 공유·학습하는 가해자들, 부적절한 인용과 묘사 등으로 추가 가해에 동참하는 언론의 성범죄 보도 관행 등은 사법 시스템의 문제가 판사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특히 군의 성범죄 수사·재판에서는 이 모든 톱니바퀴들이 한데 얽혀 피해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갔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군 바깥의 민간 재판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모두가 문제라는 식의 양비론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문제들은 그 자체로 하나하나가 피해자의 회복을 심각하게 방해하며, 일상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갉아먹고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따라서 경중을 따지기 어려우며 반드시 함께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수많은 주체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감시하고, 때로는 직접 목소리도 들으면서 ‘사법 시스템’이라는 거대하고 견고한 실타래를 구성하는 실들을 하나씩 풀어 보여준다.

피해자는 어떻게 생존자, 그리고 연대자가 되었나
“살아남은, 그리고 살아남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2010년,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경찰서 앞에서 망설이며 돌아섰던 저자는 도저히 ‘포기’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고소를 결심한다. 고소 이후 가해자로부터 “여섯 종류의 보복성 고소를 여덟 건 정도” 당했다는 건조한 고백은 그의 싸움이 짐작조차 어려운 고통의 시간이었음을 보여준다. 4년간의 길고 고된 법정 싸움을 거쳐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았지만, 그 끝에 남겨진 것은 “무너진 언어 체계, 악화된 건강 상태, 단절된 경력, 끊어진 인간관계, 추락한 경제 상황, 출소한 가해자의 보복 위협, 그리고 승소했다는 판결문”뿐이었다. 계속되는 후유증 속에서 생각을 완성된 문장으로 표현하고자 시작하게 된 트위터에서, 그는 가해자가 자신을 조롱하며 불렀던 명칭 ‘마녀’를 닉네임으로 정한다. 이 책에는 그 후의 이야기, 즉 고통의 기억을 연료 삼아 사법 시스템이라는 높고 단단한 벽을 일일이 만져보고 두드리며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해나갔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의 활동은 여러 영역을 넘나든다. 그가 연대한 사건은 일반 성폭력 사건부터 디지털 성범죄 사건, 피해자들과 연대자들이 당하는 무고와 명예훼손(한국에서는 사실을 밝혀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등 보복성 고소 사건, 공동체 안에서의 해결을 모색했던 사건, 가해자가 사망한 사건, 우리가 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유명인 가해자들의 사건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점차 연대의 영역을 넓혀 일반 시민들을 위한 재판 모니터링과 판결문 읽기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싸움이 끝난 후에도 웅크린 채로 또 다른 싸움을 이어나가는 피해자들을 밖으로 불러내기 위한 파티를 열기도 하며, 사법 시스템 내외부의 사람들을 잇는 등 다양한 단계와 장소에서 활동해왔다. 홀로 고립되어 싸움을 이어갔던 자신에게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면 덜 고통받았을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연대였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원칙을 만들고, 성찰을 바탕으로 오류를 수정해나가며 진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기준이 되는 것을 경계한다. ‘불필요한 잡음’을 만들고 싶지 않아 본업을 유지한 채 원조 없이 모든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개인의 시간과 비용과 건강을 갈아넣는 방식은 문제가 많다고 여러 차례 지적한다. ‘자신의 회복을 위해’ 기한을 정해놓고 시작했던 그의 여정은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만남들과 이별들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지속 가능한 연대’와 ‘연대자로서의 책임’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면서 각성하게 된 그는, 이윽고 ‘마녀’에서 ‘디(D)’로 활동명을 바꾸며 ‘다리를 놓는 사람’이 되고자 결심한다. “연대는 일방향이 아니며 책임은 공동의 몫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림자’가 되어갔던 저자의 성실한 궤적이 책속에 그려져 있다.

‘잊히기 위한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시스템을 바꾸는 연대, 연대의 시스템화를 향하여

흔히 ‘법대로’는 문제 해결을 위한 마지막 방법을, 판결은 그 ‘끝’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재판의 결과는 중요하다. 그러나 저자는 피해 이후 판결에 이르는 구체적인 과정들, 즉 제대로 된 수사와 재판의 과정이 그 자체로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법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사법 시스템을 향한 촘촘하고 구체적인 비판들로 가득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사실 누구보다 변화를 믿고 시스템을 신뢰하려는 저자가 보여주는 애정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가 당사자로서, 또 연대자로서 겪은바 시스템이 망가지면 누구보다 피해자부터 타격을 입고, 피해자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피해자부터 타격을 입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 이후 홀로 사법 시스템 속에서 싸우는 동안 마주했던 고립감과 고통이 다른 피해자들에게는 결코 되풀이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그는, 그렇기에 비판과 신뢰, 결과와 과정이 모두 중요하다고 믿으며, 구체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감시와 기록과 목격이 필요하다고 본다. 비중이 크진 않지만 그런 이유로 이 책에는 저자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목격한 ‘좋은’ 판사와 검사, 경찰과 변호사의 사례들도 들어 있다.
이 책은 구체적인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감시의 길을 안내한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n번방’과 ‘박사방’ 사건을 포함해 2020년 이후 전국적으로 진행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들의 재판 과정을 따라가며 주의 깊게 써내려간 방청기, 꼼꼼히 축적한 범죄자별 재판 결과, 범죄자들의 형량과 보안처분들에 관한 통계, 수사·재판·연대의 과정을 한데 모아놓은 연대표 등은 그 자체로 방청연대 기록의 모범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독자들도 재판 방청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재판 절차와 기록할 사항 등을 안내하는 ‘재판 모니터링 수첩’도 들어 있다.

추천사

안주연(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저자)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때로 사회는 치부를 축소하고 책임을 회피한다. 가해자, 방관자, 시스템이 무의식적으로 공모한 불의는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배제한다. 이렇게 다시 한번 고립되어 고통과 무력감에 빠진 피해자들에게 다가가 기꺼이 그림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있다. 그는 말한다. 일단 살아만 있으라고, 그리고 원한다면 싸우는 법을 익혀 함께 두려움에 맞서자고. 연대자 D는 자신의 고통을 열어 보여주는 생존자이자 증언자이며, 시간과 행동으로 함께하는 그림자이고 연대자다. 담담히 써내려간 이 책 전체가 그와 그가 연대해온 피해자들의 용감한 회복일지이자 불의와 싸워가는 연대기다.

정현백(전 여성가족부 장관, <연대하는 페미니즘> 저자)
나는 부끄러웠고, 많이 배웠다. 장관 책상에서 만든 법적·제도적 장치가 피해자가 처한 현실에서는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다시) 절절하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귀중함은 현장 곳곳에서 피해자가 겪는 여러 난관을 치밀하게 짚으면서, 필요한 조언을 적확하게 알려주는 데 있다. 나아가 현장의 공백을 메워주는 연대자들의 존재와 활동의 소중함을 깨우친 점도 큰 기여이다. 성희롱·성폭력이라는 시대적 아픔에 공감하는 모든 분께 이 책을 필수 학습서로 추천하고 싶다.

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성폭력 피해자는 형사사법절차상 ‘당사자’가 아니다. 피고인만큼 기록을 열람·복사할 수도, 의견을 개진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래서 ‘연대’가 있다. 이토록 방대하고 정확하게, 분노와 희망 속에서, 따뜻하고 단호한 모습으로. “성폭력은 유죄 나기 쉽고 무고도 많지?” 막말하는 이들 앞에서 우리는 이 책을 편다. ‘피해자’를 삭제하려 할수록 더 많은 연대자들이 감시하고 기록할 것이다.

임수희(판사, <처벌 뒤에 남는 것들> 저자)
너무나 귀한 책이 나왔다! 성범죄 피해자를 넘어서서 연대자의 삶으로 나아간 저자가 고통과 어려움을 다져 누르며 써내려간 한 글자 한 글자가 죽비가 되어 정신이 번쩍 들도록 머리끝을 내리친다. 판사는 물론이고 검사, 경찰, 피해자국선변호사, 그 밖에 사법 절차 관여자라면 누구라도 밑줄 그어가며 읽어야 할 필독서다. 우리는 이 책으로 피해자를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김수정(변호사, <아주 오래된 유죄> 저자)
이 책은 어떤 법조인이 쓴 책보다 전문적인 성범죄 관련 법률 지침서이다. 누구를 위한 지침서인가. 딱히 누구라고 특정하기 어렵다. 읽는 사람 각자의 입장에서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검사, 판사를 향해서는 매서운 질책을 보내면서 제대로 된 변호, 기소, 재판을 위한 길을 보여준다. 피해자들에게는 지난한 법정 다툼의 현실을 날것으로 대면하게 하면서도 누구의 도움을 받을지, 어떤 무기로 싸울지, 어떻게 버틸지, 나아가 법정 다툼이 끝난 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최전방에서 싸운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로,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을 보여준다. 또 이 책은 한 사람의 엄청난 욕심이 담긴 책이다. 성폭력 피해자로서 스스로를 구하고, 나아가 연대로써 세상까지 구하려고 하는 야망이 꿈틀대는 책. 그의 야망을 적극 응원한다.

목차

프롤로그: 일단 살아만 있어요

1장 피해자에서 연대자로
예민하고 끈질긴 미친년 | 마녀, 사냥을 시작하다 | 그림자가 되는 일 | “고통은 현재에 있다” | “왜 하필 당신이어야 했나” | 허위과장의 진술습벽이 있는 여자 |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 고소와 고립 앞에서 | 가해자의 죽음, 피해자의 삶 | 싸움이 끝난 후

2장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보호할지 말지 정하는 사람 | 합의는 어떻게 악용되는가 | ‘최대 29년 3개월’의 진짜 의미 | 성범죄자에게 잊힐 권리란 없다 | 미국으로 갔어야 했다 | 이것을 정말 변화라고 말하려면 | 듣는 일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 어느 판사님께 드리는 편지

3장 또 다른 톱니바퀴들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말 | 경찰이라니, 가해자인 줄 | 판사 뒤에 숨은 검사들 | 국선변호사는 누구를 변호하는가 | “피해자를 불러내 증언의 고통을 안기세요” | 계산된 전략, 보복성 고소 | ‘후기’로 맺어진 유대 | ‘여’가 없으면 기사를 못 쓰나 | 연대의 탈을 쓴 착취자들 | 그럼에도 당신이 싸우기를 선택한다면

* 톱니바퀴들의 상호작용: 군은 무엇을 지키나

4장 잊히기 위한 연대
욕망하는 연대자 | 트위터, 개미지옥에 빠지다 | 공동체적 해결에 필요한 것들 | 파티와 화형식 | 그때의 내게 내가 있었다면 | 방청연대 연대기 | 판결문 읽는 법 | 시스템은 사람이 바꾼다 | ‘-디’가 되기 위해

5장 디지털 성범죄 재판 방청기

서울: ‘박사방’ 재판이 중요한 이유 | 수원: ‘성착취’가 등장하다 | 인천: 연대자들을 향한 위협 | 춘천: 지역 활동가들의 힘 | 창원: 수기를 불허하는 공개재판 | 안동ㆍ김천: ‘갓갓’ 이전과 이후 | 울산: ‘디지털 네이티브’가 적힌 판결문 | 제주: 호통에 가려진 것들 | 부록 1: 한눈에 읽는 지역별 재판 결과 | 부록 2: ‘n번방’, ‘박사방’, ‘프로젝트n번방’ 사건의 평균 형량·보안처분 | 부록 3: 텔레그램 성착취·성폭력 사건의 수사와 재판, 그리고 연대의 기록

에필로그: 길을 잇는 이들에게

더 깊이 읽기를 위한 자료
별책부록: 감시·기록·목격하는 일반인 연대자들을 위한 성범죄 형사재판 모니터링 수첩

본문중에서

거리 유지는 연대자로서의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감정적 과몰입은 상황에 대한 입체적 분석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을 갉는 방식으로 발현된다. 이는 결국 피해자에 대한 통제욕구로 이어지고,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게 하며, 개인으로서 내 삶을 지키지 못하게 만든다. 피해자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연대를 중도에 그만두기도 하며, 원칙에 벗어나는 돌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해 자기 의견이나 감정을 숨기기도 하고, 여과 없이 본인의 감정을 쏟아버릴 때도 있다. 이런 피해자와 적절한 거리를 설정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을 경우, 연대자는 마모되고 연대를 포기하게 된다. 연대자로서의 나를 지키지 못하는데 과연 연대가 지속될 수 있을까.(30쪽)

추가 피해는 양형에 반영하면 된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법정에서 겪은 피해자의 고통이 양형에 적극적으로 반영된 판결을 찾기가 어렵다. 부당함을 인지한 피해자가 증인석에서 항의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오히려 “저 정도로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가능한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소극적으로 대처할 리 없다” 등의 이유로 피해자 에게 불리한 판단을 하기도 한다. 결국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의 고통만으로도 버거운데, 취조에 가까운 신문을 견디며 모멸을 느껴야 한다. 필요한 절차라고 강요만 할 뿐 추가 피해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형사사법 절차에 대한 피해자들의 회피와 불안, 불신은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99쪽)

정상참작감경의 기준은 판사마다 다르며, 판결문에도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는다. 말 그대로 ‘판사 마음’에 달린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의 판결이 이어지는 것은 이 정상참작감경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형기준을 만들었다고 해도, 개별 재판에서 판사의 재량을 내세워 감형하는 관행이 바로 깨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재판 모니터링 교육을 할 때 판결문에 정상참작감경이 포함되어 있는지, 포함되었을 경우 그 이유를 판결문에 구체적으로 적시하는지 검토하도록 권해왔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했으니 그들이 정상참작을 통해 감경한 이유가 판결문에 제대로 쓰여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한결같다. 판사 재량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119쪽)

‘(피해자가) 일관되게만 진술하면 (피고인은) 유죄’라는 인식이 법조인들 사이에도 있던데, 그런 이들을 증인석에 세워보고 싶다. 신문 방식의 질적 향상을 통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려는 노력 없이, 진술 전에 관련 정보를 차단하고, 수사에서 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피해자가 한 진술들이 일치하는지 여부만으로 그 신빙성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게으른 접근이다. 사전에 수사·재판 기록물의 대부분을 확보할 수 있는 피고인조차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진술의 일관성을 제대로 유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증인석에 서면 진술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증인신문이 단순한 기억력 테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165쪽)

실제 연대 과정에서 공판검사와의 소통은 재판 과정이나 그 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피해자와의 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검사는 적극적으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공소사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면서 공판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실한 경찰 수사에서 빠진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과정도 피해자와 함께했다. 양형과 관련해 피해자가 법정에 직접 나와 의견진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선택사항이던 피고인 신문을 신청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간접적·보충적으로 뒷받침하는 등 가해자(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 피해자와 검사의 소통이 주효했다. 피해자 역시 공판 과정에 주체적·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줄였고, 합의 등 추가적인 선택지를 신중히 고민하게 되었으며,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비교적 잘 수용하게 되었다.(206쪽)

보복성 고소는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다. 보복성 고소를 당한 피해자는 피고소인 신분으로 수사기관에 나가 조사를 받아야 한 다. 이 때문에 정작 자신이 입은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데 집중하기가 어려워지며, 고소 취하와 합의를 종용하는 가해자 측에 끌려가게 된 다. 또 가족이나 주변인, 연대자, 조력자가 고소당할 경우 피해자는 죄책감에 빠지며, 지지나 연대 기반이 무너질 위험성이 생긴다. 언론이나 방송, 기자에 대한 보복성 고소로 이어지게 되면 사건에 대한 후속 보도가 어려워지고, 앞선 보도 역시 삭제되는 등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 그럴 경우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만 남거나, 아예 사건 자체가 대중의 눈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이렇듯 제3자 대상의 보복성 고소는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가로막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며, 피해자·약자·소수자에 대한 연대 의지를 꺾어버린다.(237쪽)

연대 초기에는 ‘잊히기 위해’ 연대한다고 했다. 물론 이는 내가 연대한 피해자들이 나와의 연대마저 잊고 일상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연대 활동의 중단을 염두에 둔 발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연대자로서 내가 수행해야 할 공적 활동과 책임을 의미하는 말로 바뀌었다. 피해자가 편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른 피해자들과의 연대를 위해, 그리고 시스템 감시와 변화를 위해 연대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동시에 내가 없어도 이런 활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연대자로서의 나는 잊혀도, 내가 한 활동이 피해자를 위해 남아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대체 가능한 연대자가 되기를 원한다.(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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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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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베일에 싸인 반성폭력 활동가. 과거에는 ‘마녀’로 활동했고, 지금은 ‘D’로 활동 중이다. 자신이 피해자가 되어 사법 시스템 속에서 홀로 분투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피해자들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소외당하지 않도록 연대한다. 2014년 이후 지금까지 혼자 전국의 법원과 수사기관을 방방곡곡 찾아다니며 피해자들의 뒤를, 때로는 옆을 지키면서 수사와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한다. 처음엔 피해자 개인의 곁에서 연대를 시작했다가, 점차 수사부터 재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제는 전국의 수사기관과 법원을 감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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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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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지향 구성원 변호사. 두 딸의 모자란 엄마로 주업은 작은 로펌의 월급쟁이. 호주제 및 낙태죄 위헌 소송의 대리인,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 이주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으로 20여 년간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 이주여성 등에 대한 법률 지원을 꾸준히 해왔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들 곁에서 손잡아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자 했고, 앞으로도 되고 싶은 열혈 변호사다. 지은 책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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