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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비인간존재에 마음이 쓰이는 당신을 위한 잡지!”
기후위기, 팬데믹, 탄소중립, 에너지전환…. 우리는 산업문명이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시기를 건너가고 있다. 《바람과 물》은 대안사회를 향한 생태적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연구자와 작가들, 소비를 줄이고 자원을 재활용하려는 생활자(수동적 소비자를 대체한 능동적 개념)들, 사회와 환경에 도움이 되려는 스타트업 기업가들, 기후위기 대응에 나선 활동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인문사회 매거진이다. 기후위기와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인류 최대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녹색 가치와 녹색 언어를 전파하며 동시대인들의 특별한 생각과 삶이 주는 감동을 전달한다.

‘무해한 버림’과 무해한 사람들
살아가는 동안 ‘버림’은 불가피하다. 버리는 행위는 우리의 일상(쓰레기)에, 생명의 지속성(배설)에, 생태계의 순환원리(죽음)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필요할 때 버리지 못한다면 집은 엉망이 되고 건강은 나빠지며 세대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들숨과 날숨의 원리처럼, 우리는 버리지 않고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데 이제 버림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져버렸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버리는 일이 됐을 정도로 버림을 강요받고 있다. 좀처럼 버림의 집단행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물었다. ‘무해한 버림’이 가능하냐고.
커버스토리 주제인 ‘무해한 버림’에 대해 김완, 장하나, 홍수열, 구정은, 김지혜, 해도연 등 필자들이 보여준 대체적인 시각은 ‘무해함’은 둘째 치고 ‘버림’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버린 폐기물은 공식적으로 소각, 매립 또는 재활용되지만, 그래서 처리율 100%를 완성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외진 산자락에 버려지거나 수출이란 이름으로 빈곤한 국가에 떠넘겨지거나 해류를 따라 이동하면서 대양 한가운데 쓰레기 섬을 만들거나 심지어 우주궤도를 돌면서 서로 충돌하고 있다. 아무리 버려도 버려지지 않고 반드시 되돌아온다. 폐기물은 어김없이 권력이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과거 원자재와 상품이 오가던 식민지 루트는 쓰레기 루트가 됐으며 선진국에서 배출한 쓰레기는 이제 지구는 물론 우주까지 오염시킨다.
이 같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비를 돌아보면서 불필요한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고 정확히 분리 배출해 재활용 비율을 높이며 나아가 공공의 책임을 촉구하는 쓰레기 연대, 그리고 개인의 실천을 모아서 법과 제도를 구축하는 쓰레기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필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과연 ‘쓰레기’란 무엇이냐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이들을 저장강박증 환자로 몰아붙임으로써 버림의 미덕을 찬양하며, 조금 전까지 삶을 함께하던 모든 물건에 쉽사리 쓰레기라는 명칭을 붙여서 버린다. 냉정한 심성마저 요구하는 버림의 문화는 현대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무해한 버림’이라는 주제와 관련, 이를 실천하려는 무해한 사람들도 만났다. 그린디자이너 윤호섭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사회에 절망하면서도 냉장고, 에어컨, 승용차 없이 살아가며 하루의 많은 시간을 분리수거에 할애하는 생활을 영위한다. 개인의 실천이 반드시 사회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그런 실천 없이는 사회가 변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행한다.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 역시 잘 알려진 ‘환경덕후’로서 자신의 재능과 유명세를 채식, 에너지 절약 등 다양한 환경 캠페인에 활용한다. 그리고 물질적으로 소박하면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유럽 스타일의 삶을 권유한다. 제대로 배출한 재활용품을 제대로 보상해주는 ‘오늘의 분리수거’ 앱 개발자 배태관은 단지 구호가 아닌, 기술과 아이디어로 우리 삶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삶과 이야기
기후위기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요청한다. 우리의 의식주가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극기와 절제를 강요하거나 삶의 즐거움과 예술적 감각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에 맞춰진 가치와 취향을 바꾸면서 생명, 환경, 지구와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라이프스타일 제안은 《바람과 물》이 추구하는 중요한 방향 가운데 하나이다.
기후위기와 비인간존재를 생각하면서 비건의 삶을 선택했지만 매끼 장을 보고 요리할 시간이 없다 보니 프렌차이즈에서 파는 비건 버거나 샌드위치, 온라인에서 주문하는 비건 디저트를 먹는 ‘정크 비건’의 사연과 그에 대한 친절한 고민상담(김다은)을 들어보자. 올바른 먹거리와 편리한 생활, 둘 다 포기할 이유가 없다. 필자는 대체육을 비롯한 비건 식품의 성분과 영양을 꼼꼼히 따져보면서 식품업계가 보다 자연채식에 가깝고 건강한 제품을 생산하도록 견인해내는 비건들의 적극적인 인식과 관심, 참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패션은 지속가능성을 마케팅 요소로 삼으면서 지속가능성이란 그물을 빠져나가는 대표적 영역인지 모른다. 이러이러한 친환경, 재활용 소재로 만들었으니 윤리적 부담감 따위는 내려놓고 계속해서 새 제품을 사라고 부추긴다. (박세진) 그러나 패션산업 역시 기후위기의 파고를 피해갈 수는 없다. 2021년 11월에 열릴 COP 26(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차지하는 패션 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들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새것을 만들어내는 패션산업의 속성상 산업의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오래 입을 옷을 사고 그 옷을 오래 입는 취향과 사회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 같은 취향과 사회인식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고 쓰고 읽고 공유해야 한다. 삶의 지향점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픽션 뿐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삶을 조직하는 철학과 가치 속에도 깃들어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이야기(박혜진)는 지난 7월 세계의 양대 추리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대거상(다른 하나는 미국의 에드거상)을 수상한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에서 이런 가능성을 찾아낸다. 기후위기가 전세계적 이슈로 부상하는 시기에 ‘재난여행상품’이라는 소재로 소비자본주의와 재난의 문제를 연결시켰다.
기후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한 싸움의 전선에 선 기후활동가들의 이야기 속에도 새로운 시대의 비전이 들어있다.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반대농성장을 지켰던 유은강은 탄소중립이 최우선인 시대에도 녹색성장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입법 현장을 지켜보면서 말을 잃어버리는 듯한 허탈감을 느끼지만, 글쓰기를 통해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경험하며 투쟁의 현장에 언제나 사랑과 돌봄이 함께하기를 다짐한다. 베트남에 지어지는 붕앙-2 석탄발전소 저지투쟁을 벌이는 강은빈은 건설사인 두산중공업 사옥에서의 반대 액션을 이유로 기후법정에 서게 되는 심정으로, 기후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무해한 사람이 되는 것을 넘어 무해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계간): 2호(가을호)(2021) 목차]

Cover Story 무해한 버림
김완 믿기지 않아서 계속 둘러보게 되네요
장하나 쓰레기 정치 함께 해보실래요?
홍수열 올바른 버림을 위한 쓰레기 연대
한윤정 폐기물에 대한 간단한 보고서
구정은 쓰고 버리는 문화가 남겨놓은 것들
김지혜 ‘버림’은 가능한가
해도연 우주에서 우리 자신에게 쓰레기를 던지지 않으려면

Interview
윤호섭×박경미 결국 나무를 심는 한 사람이 변화를 만든다
줄리안×최우리 보너스 같은 삶,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배태관×이소연 분리배출하는 시민 영웅들 옆에, 저희가 있습니다!

Lifestyle
김다은 〈기후위기 고민상담소〉 정크비건이 되어버린 나, 괜찮을까요?
김희진 〈전환을 꿈꾸는 로컬맵〉 2050년의 골목을 상상하는 일
박세진 〈기후위기 시대 디자인의 질문〉 베이비부머 패션에서 MZ세대 패션으로
남상문 〈기후위기 시대 건축의 질문〉 검약의 두 가지 얼굴

Story+Image
박혜진 〈기후위기 시대의 이야기〉 딜레마에 반대하는 소설: 『밤의 여행자들』
김지은 〈기후위기 시대의 그림책〉 그들이 사라지는 곳: 『플라스틱 섬』 『그림자의 섬』
이명애 〈갤러리〉
초식마녀 〈만화〉 무해한 바람, 무해한 버림
고호관 〈SF〉 위대한 예술

Issue
제현주 〈기업의 기후솔루션〉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이산화탄소를 위한 ‘카본 테크’
윤신영 〈친환경기술 대차대조표〉 열광과 냉소 사이 수소기술
박시원 〈해외 기후 현장〉 기후는 인권이다
유은강 〈활동가 에세이〉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강은빈 〈붕앙-2 이야기〉 기후운동가들, 법정에 서다

Colloquium
한윤정 기후위기가 요청하는 경제와 기업의 변화
이유진 탄소중립사회, 어떻게 만들 것인가
홍기빈 경제 성장의 신화를 넘어서
나석권 ESG 경영의 과거, 현재, 미래

보지 못한 자는 언뜻 믿지 못하리라.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집도 나름대로 엄격한 질서와 규율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 얼핏 보면 혼돈과 무질서가 서로 우월을 겨루는 곳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그 안에서 정연한 체계와 우주적 하모니를 알아볼 수 있다고, 쓰레기 더미에서 대단한 진리를 발견한 양 현업청소부가 너스레를 떠는 속셈은 우리의 편견에 관해 되묻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김완, ‘믿기지 않아서 계속 둘러보게 되네요’, 14쪽)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천과 더불어 쓰레기 정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쓰레기 문제에 천착하는 정치인이 없어서 큰일이네요. 당장 쓰레기 정치인(쓰레기 같은 정치인 말고)을 배출하긴 어려우니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없는 현역 정치인이 쓰레기 문제를 다루도록 만들거나, 중앙정부나 지자체를 직접 상대해서 쓰레기 정책을 보완하고 관련 예산을 더 쓰도록 만들어야 하는데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정치의 효능감을 한 번 맛보면 정치 참여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장하나, ‘쓰레기 정치 한번 해보실래요?’, 22쪽)

가난과 쓰레기. 그것이 오랫동안 기자로 일하면서 내가 만난 세계의 두 얼굴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몇몇 곳들, 한국보다 덜 개발되고 소득이 적은 지역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난의 역사나 가난의 본질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가난하다는 것은 돈이 없는 것이고, 물건을 원하는 대로 사서 쓰지 못하는 것이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적어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세계화는 가난한 지역이라고 해서 피해가지 않는다. 상품들은 어디로든 쏟아져 들어간다. 값싸고 질 낮은 상품이 넘쳐나고, 그것들이 고스란히 쓰레기가 된다. 그러니까 지금의 세계에서 가난은, 물건이 없는 것이 아니라 ‘쓰고 버린 물건을 처리할 인프라가 없는 것’쪽에 더 가깝다. (구정은, ‘쓰고 버리는 문화가 남겨놓은 것들’, 43쪽)

사실 옷 하나하나는 너무나 작고 그게 만드는 오염도 너무나 작다. 입지 않는 옷이 쌓여 있는 나의 옷장이 발전소, 조선소, 자동차, 토목과 건설 등등 환경오염의 주원인으로 생각되는 거대 산업이 만드는 오염과 비교하자면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느냐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드러나 있는 통계는 분명하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가 패션 산업에서 나온다. 그리고 지구 폐수의 20%가 패션 산업에서 나온다. 패션 산업은 지구온난화에 4~10%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조사되고 있다. (박세진, ‘베이비부머 패션에서 MZ세대 패션으로’, 117쪽)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변화 피해에 비해 정치권과 정부의 대처는 느리기만 하다. 기후변화 소송은 이제 세계적 트렌드가 되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약 37개 국가에서 1500여 개가 넘는 기후소송이 제기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헌법과 국제법이 보장하는 인권의 침해라고 인정하는 기념비적인 판례가 나오고 있어 관심을 끈다. 기후인권 소송의 시작은 2012년 네덜란드의 시민단체인 우르헨다가 네덜란드 정부에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는 사건에서 출발한다. (박시원, ‘기후는 인권이다’, 185쪽)

기후위기는 계속되고 싸움을 멈출 수는 없다. 큰 싸움을 앞두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엔 무엇으로 싸울까, 무엇을 전제로 싸울 것인가, 어디를 보고 가야 할까. 이번엔 부끄러움이나 분노가 아닌 다른 것으로 싸우고 싶다. 말하자면 ‘사랑’ 같은 것. 우리는 싸울 때 ‘사랑’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단식 농성장에서, 국회 앞에서 ‘사랑’을 입에 올리는 것은 한가롭고 낯간지럽다. 기후위기 시대에 사랑이라니. 하지만 싸움에 지친 이들에게 묻고 싶다. 결국 우리가 기후우울에, 수많은 농성에, 직접행동에, 보고서에, 전략에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동료들과의 우정, 사랑, 돌봄 아닌가.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하지 않는가. (유은강,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1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