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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토크 VOSTOK 매거진 27호 : 다른 세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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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른 세계로 향한 시선과 의지

보스토크 매거진 이번호의 키워드는 ‘다른 세계’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사진에 찍히는 대상도 언제나 현실 안에 존재하지만, 사진의 시선은 때로 현실 너머를 향하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태어난 사진이 가장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다가올 때, 그 이미지는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이번호에서는 우리의 시선과 감각을 다른 세계로 안내해주는 사진 작업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슬아, 김보영, 정용준, 황인찬, 김일란, 곽재식, 김원영 등의 필자들이 ‘다른 세계’를 키워드로 쓴 픽션과 에세이를 수록했습니다.

출판사 서평

현실 너머의 가능성과 불안한 예감

촬영자는 현실 속에 있지만, 피사체도 현실에 보이는 대상이지만, 그의 눈길은 때로 현실 너머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향합니다. 가령, 익숙했던 사물의 의미가 거듭나는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뒤엉켜 있는 기억, 사물과 세상의 윤곽을 읽어내는 나의 감각, 나와 타인과 사회를 둘러싼 복잡한 체계, 우주와 자연의 경이로운 신비…. 이 모든 것을 이번호에서 편의상 ‘다른 세계’로 부르기로 합니다. 이번호는 그 다른 세계로 향하는 눈길과 의지에 관해서 다룹니다.

그 눈길과 의지가 담긴 사진 작업들은 대개 ‘비현실/초현실’적인 장면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다른 세계의 환상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눈길과 의지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내가 속한 현실이, 내게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는 지점일 것입니다. 여기가 현실이라고, 지금 눈앞의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그런 시야에서 벗어날 때 저기에도 또 하나의 현실이,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세상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세계를 향한 눈길과 의지는 단지 환상을 위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에 가닿으려는 적극적인 탐색일 것입니다. 그 가능성을 향하는 눈길과 의지에는 장미빛 전망뿐만 아니라, 현실 너머 저 가려진 것에 대한 불안한 예감도 공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잡지를 펼치면, 에리크 외스텐손, 구스타보 사고르스키, 이수지의 사진 작업을 연이어 만나게 됩니다. 신비롭고도 불안한 분위기가 공존하는 세 작업 모두 현실의 일상과 풍경에 잠재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이를 가시화합니다. 이어지는 홍지윤, 마크 도프, 윤태준의 작업은 사진을 활용해 보다 적극적으로 이미지 안에 비현실적인 ‘다른 세계’를 구현합니다. 각각 색으로 전해지는 감정, 디지털과 인터넷의 연결성, 사물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각을 탐구하는 세 작업 모두 비물질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재현하기 다양한 방식으로 사진을 가공하고 편집합니다.

이제, 픽션과 에세이를 통해 ‘다른 세계’를 만날 차례입니다. SF 작가 김보영과 곽재식, 소설가 정용준, 시인 황인찬,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김일란, 그리고 김원영과 이슬아까지 일곱 명의 필자에게는 ‘다른 세계로 가닿으려는 의지’에 관해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의 픽션과 에세이에서 자신이 만드는 작품을 통해 도달하고 싶은 세계는 어떤 모습인지, 또 창작 과정에서 무엇을 중요시하고 또 무엇을 경계하는지 고민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시, 이어지는 사진 작업들은 다채로운 이미지를 통해 우리의 사유를 자극합니다. 루카 마리아나초, 에치오 다고스티노, 요스 얀센, 야나 하르트만, 베네딕트 레드그로브, 권도연까지 여섯 명의 사진 작업은 각자 다른 관점에서 우주탐험과 무동력 비행술 그리고 과학기술과 연관된 영역을 시각적으로 탐색합니다. 인류에게 또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우주탐험, 비행술, 과학기술에 관해서 다루는 사진 작업에서 새로운 세계에 가닿으려는 인간의 욕망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목차

특집 | 다른 세계로부터
001 The circle and the line _ Erik Ostensson
012 Apparitions _ Gustavo Sagorsky
024 평평한 우주 _ 이수지
034 원더랜드 _ 홍지윤
044 //_PATH _ Mark Dorf
054 낮고, 빠르게 쏘기 / 미들턴 _ 윤태준
066 이슬아의 가상 현실 _ 이슬아
074 봄으로 가는 문 _ 김보영
080 테이크 미 썸웨어 _ 최재훈
090 생각하는 자는 멀고 깊은 곳으로 _ 정용준
095 다름없는 세계가 가능할 때까지 _ 황인찬
101 진실을 향한 불확실성 :〈두 개의 문〉을 제작하며 _ 김일란
106 BL_NK SP_CE _ Sophie Gabrielle
118 한 명의 사람과 그 사람을 위한 하나의 새로운 세계 _ 곽재식
124 경험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박물관 _ 김원영
130 404 Not Found _ Luca Marianaccio
140 NEOs _ Ezio D’Agostino
150 UNIVERSE : Facts in the post-truth era _ Jos Jansen
162 Mastering the Elements _ Jana Hartmann

172 NASA // Past & Present Dreams of the Future _ Benedict Redgrove
190 에스에프 _ 권도연
208 [영화의 장소들] 플랫폼에서 _ 유운성
214 [docking! 2020] 컨트롤 스크롤 _ 이나현
225 [사진-픽션] 죽은 자는 되돌아온다 _ 장혜령
240 [에디터스 레터] 기껏 하필, 오로지 오롯이 _ 박지수

본문중에서

작업을 하겠다고 의식한 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무거운 대형 카메라를 챙겨 호수 쪽으로 더 가까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어두운 표면에는 나를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땅처럼 평평해 보이는 호수가 하늘의 별을 반영할 때에는 헤아릴 수 없이 깊어 보이기도 했다. 마치 땅과 하늘의 두 세계 사이의 경계선 같았다. 더 나아가 그 표면은 현재의 나와 내가 갈망하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에리크 외스텐손, 작가 노트 중에서/ p.11)

그 와중에 나는 중년이 되고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기술이 발전하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시공간을 초월하고 지구는 뜨거워지고 해수면은 상승하고 생명다양성이 감소되고 어떤 기술로도 만회가 안 되고 누구는 고글 안에서 싸우고 누구는 고글 밖에서 싸우며 같은 실수를 반복할 테지만, 사랑하는 만큼 괴로울 테지만, 어쨌거나 흥미진진한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별수 없이 그 시대에 바치게 될 것이다.
('이슬아 - 이슬아의 가상 현실' 중에서/ p.73)

내가 그 문에 들어섰을 때 기억이 다 났다. 어린 날 내가 너와 함께 이 세상으로 건너왔다. 내게 딱 맞는 세상을 뒤로하고, 내가 원래 끼워져 있었던 곳을 박차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도 부대끼거나 거스르지 않는 세상을 내버리고. 그저 낯선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익숙지 않은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기심과 흥분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새처럼 뛰어 이곳에 왔다. 그러니 나는 여기 머물고자 한다. 이곳이 내 세상이니. 이 낯설음이 내가 원한 것이니. 이 삐걱거림이 내 갈망이었으니. 저 너머의 내가 바란 것이 바로 내 이 삶이니.
('김보영 - 봄으로 가는 문' 중에서/ p.79)

소설을 쓸 때마다 생각한다. ‘생각하는 거 힘들다. 쓰는 것도 힘들다. 아, 귀찮아. 번거로워. 왜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나. 현실의 삶을 살아내는 것도 잘 못하면서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새로운 인물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투덜거리고 후회하며 종종 나 자신을 비웃는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한다.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얼마나 심심했을까. 이 마음을 쏟아 부을 곳이 없었겠지. 수다를 떨 곳이 없어 구덩이를 파고 외치고 또 외쳤겠지.’ 소설이 아니었다면 나는 ‘나’라는 세계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용준 - 생각하는 자는 멀고 깊은 곳으로' 중에서/ p.94)

이미 알고 있는 현실을 잘 모사함으로써 현실을 공고히 하는 것 말고, 그저 아름답고 쓸모없기만 한 것을 제시함으로써 우회적으로 현실에 동의하는 방식 말고, 더 나은 표현 방식을 나는 찾고 싶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 우리의 현실을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도 있는 사실보다 더 정확한 거짓말이라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아직 적절한 표현 방식을 찾아내지는 못했으므로, 이 또한 그저 실천 가능성 없는 헛된 꿈으로 그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일단 조금은 더 거짓말을 궁리해보고 싶다.
('황인찬 - 다름없는 세계가 가능할 때까지' 중에서/ p.100)

‘두 개의 문’은 화재 장면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에 다시 같은 장면으로 돌아온다. “화재 발생 2분 전”이라는 자막과 함께 관객들은 그대로 2분간의 지속시간을 버틴다. 처음 마주한 현장과는 달라진 강도로 참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대개 영화의 시간은 미래를 향하지만, 진실을 찾는 영화의 ‘서사-시간’은 과거를 향하며 시간을 되돌린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이미 벌어진 참사를 막을 방법은 없다. 게다가 우리의 무력함은 아무리 수십 대의 카메라가 끔찍함을 촬영을 하고 있어도 진실에 다가가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망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목격자로서 우리는 진실을 알기 위해서 이 끔찍한 시간 ‘2분’을 견디지만, 우리는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
('김일란 - 진실을 향한 불확실성: ‘두 개의 문’을 제작하며' 중에서/ p.105)

그러나 나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잡아채어 허구를 현실과 비슷하게 연결하는 것은 그만큼 해 볼수록 더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 같은 가장 별 볼 일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할수록, 그만큼 생생하게 그 지어낸 가짜 세상의 이야기가 현실에 가까워진다. 이것은 한 개인의 삶과 세상의 관계를 상징하는 느낌이다. 그 상징은 만원 지하철 안에 꽉꽉 눌러 담듯이 차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한 명 한 명이 다들 사연을 가진 사람이고, 각자의 삶이 있고, 인생의 고난과 역경이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장 실감 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곽재식 - 한 명의 사람과 그 사람을 위한 하나의 새로운 세계' 중에서/ p.123)

우리 시대 창작자들은 ‘다른 세계’에 대해 관용적이고, 호기심이 넘치고,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과 사건들에 주목하려는 의지가 높다. 우리 시대의 창작자들 자신이 어느 때와 비교해 다양한 세계를 배경으로 자랐다. 유럽-백인- 남성-이성애자-비장애인이 아닌 존재들이 그려내는 ‘다른 세계’는 흥미진진하고, 나를 위로해주고, 정치적으로 내 삶을 조금은 해방시키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을 ‘수집’한 결과가 (이 수집품들로 내 방을 꾸민 채) 더 거대한 진열장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다른 세계’에 살고 ‘다른 세계’를 수집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수집되고 진열되는 것이 아닌 방식으로, 내가 다른 세계와 만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서로를 거대한 박물관 속 진열장을 사이에 두고 응시하는 것 외에, 어떤 만남이 가능한 걸까.
('김원영 - 경험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박물관' 중에서/ p.128)

세상의 윤곽을 종이로 접던 아이의 손에서 출발해,
거센 바람 앞에서 욕망의 밧줄을 푸는 그들의 손을 거쳐, 지나간 시간을 향해 카메라를 세우는 작가의 손까지, 기나긴 ‘애송이의 여행’에 관해 다시 생각해본다. 종이를 접으며 세상의 형상에 다가서거나, 밧줄을 풀어 하늘로 향해 가거나, 카메라를 세워 기억을 더듬거나, 그때마다 겪어야 했을 실패를 상상해본다. 크고 작든, 단단하고 연약하든, 어리고 늙었든 간에 모두 불가능성에 자신을 걸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실패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불가능성을 향해 달려가야 열리는 ‘가능한 세계’를 위해서 말이다.
('박지수 - 불가능성에 자신을 건다' 중에서/ p.197)

플랫폼이란 낱말은 본디 프랑스어로 대포를 쏘기 위해 깔아둔 평평한 형태의 판을 뜻하는 것이었다. 영화의 기원적 풍경을 장식하는 두 개의 상징적 이미지가 역에 도착하는 기차와 달에 우주선을 발사하는 대포라는 것은 정말이지 흥미로운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 우선 그 생김새부터가 플랫폼은 오래도록 영화적 재현의 물적 조건이 되어왔던 스크린과 썩 잘 어울린다. 플랫폼이 지면으로부터 위로 솟아 있는 평평한 노대라면 스크린은 벽으로부터 옆으로 돌출해 있는 평평한 가림판이다. 플랫폼과 유사하게, 스크린 또한 어떤 이미지든 그 위를 오고갈 수 있지만 어떤 이미지도 그 위에 머물지 않는 곳이다.
('유운성 - 영화의 장소들 : 플랫폼에서' 중에서/ p.209)

죽은 사람은 되돌아온다. 돌아가시기 전날, 할머니는 분명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겨우 아홉 살이었는데, 할머니는 내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던 걸까. 아니면 평소처럼 그저 혼잣말을 하셨던 걸까. 할머니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나셨고, 나는 할머니에게 그 일을 다시는 물을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날 할머니는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말을 건네셨던지도 모른다고. 언제고 기억은 되돌아온다. 아직도 할머니를 떠올리면 혼자서는 결코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기억 속에, 나는 있다.
('장혜령 - 죽은 자는 되돌아온다' 중에서/ p.234)

저자소개

보스토크 프레스 편집부 [편저]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구병모, 곽재식, 배명훈, 정세랑, 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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