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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평전 : 1980년 5월, 광주를 지킨 최후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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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상집
  • 출판사 : 동녘
  • 발행 : 2021년 05월 18일
  • 쪽수 : 40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72979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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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5‧18민중항쟁의
핵심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


1980년 5월, 광주. 날짜와 지역 이름을 들으면 우리는 하나의 이름을 떠올린다. 아직 제대로 처벌받지도, 반성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은 가해자. 계엄군, 탱크, 시민군, <임을 위한 행진곡>. 그리고 잘하면 이름 하나가 더 떠오를 수도 있다.
열사, 윤상원. 5‧18 시민군 대변인으로 서른의 나이에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는 순간까지 앞의 이름과 싸운 사람. 광주시에서는 그 행적을 기려 생가를 사적지로 세우려 하고, 그의 민주화운동 한 걸음 한 걸음은 광주시 지정 ‘오월길’ 코스 안에 빠짐없이 담겼다.
윤상원의 짧은 삶은 며칠간의 5‧18민중항쟁 그리고 이 항쟁의 토양이 된 사회현실과 운동 흐름 모두를 아우른다. 이 책 《윤상원 평전》은 그 불꽃같았던 삶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5‧18의 전체 모습과 그 뿌리에 닿게 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5‧18은 무엇인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 지역에서 이루어진 민주화운동이며, 대한민국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이, 그리고 문민정권 수립의 핵심이 된 항쟁이다. 5·18의 핵심은 “광주를 비롯한 전남 전 지역의 무기고를 열어 군부 쿠데타에 항거한 전라 민중 무장봉기”(5쪽)였다는 것, 민중의 항쟁이었다는 것이다. 이 항쟁의 한복판에서 계엄군과 결사항전을 결의하고 이끌었던 민주 인사들은 1970년대에 이미 숱한 옥고를 치르면서 노동·농민·빈민·청년학생 운동을 이끌어온 이들이었다. 그러나 문민정부 들어 진상을 밝히고 재평가하기까지, 이 사건은 오랫동안 ‘불순분자들의 반동’ ‘김대중의 사주를 받은 폭력 시위’로 왜곡되었다.
《윤상원 평전》은 1980년 5월 27일 5‧18민중항쟁의 마지막 날, 즉 결사항전의 날로부터 시작한다. 유신체제가 몰락한 뒤 다시금 몰아닥치는 군부의 폭력에 광주의 시민군은 총을 들고 맞섰지만, 애초 계엄군과의 전투가 승산이 있을 리 없었다. “시민군과 지도부인 민주투쟁위는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자리를 지켰을까?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의연히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11쪽)
이 책은 이 물음에 답하는 여정이다. 그 온전한 답은 5‧18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과 항전의 주역들이 1970년대부터 각 부문에서 어떠한 활동을 해왔는지, 이들의 노력으로 성장한 광주전남 지역의 운동 역량이 “어떻게 죽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결사항전이라는 초인적 결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7쪽) 더듬어보아야만 찾을 수 있다. 저자인 김상집은 윤상원과 끝까지 함께 싸운 동지로서 윤상원을 둘러싼 기존의 논의를 넘어 5‧18을 광주지역의 민주화운동 흐름 속에서 조망하고, 계엄군에 더해 투항파와도 맞서야 했던 결사항전파의 시각에서 항쟁의 긴박한 며칠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형님 어쩌실라요?”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이미 지도부 몇 사람이 도청을 빠져 나간 것 같으니 우리도 나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양현이 말했다.
“아까 궐기대회 때 분수대에 올라가서 ‘최후의 일 인, 최후의 일각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해놓고 어쩌겠는가? 나는 여기 남을라네.”
이양현의 굳은 결심을 확인한 윤강옥은 소파에 드러누우며 “나도 형님 뜻에 따를라요” 하곤 머리에 이불을 뒤집어썼다. (13쪽)

당시 광주전남권의 운동 상황은 아직은 여전히 과도기적인 형태였다. (…) 들불야학을 통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나아가 주민운동까지 발전하면서 학생운동의 폭이 넓어졌고 많은 운동가들이 성장했다. 동시에 1977년 광주앰네스티가 창립되면서 재야인사들이 공개적·합법적으로 시국 강연을 개최하고 양심수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송백회가 결성되고 광주양서협동조합이 조직되자, 그동안 대학가와 개신교·천주교 중심으로 전개되던 민주화운동에 교사 등 일반 시민과 고등학생까지 참여하게 되었다.(114쪽)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윤상원,
그 ‘탄생’부터 결사항전까지


이 책의 전반부가 평범한 외교관 지망생이던 윤상원이 어떻게 투사로 변모하고 김상집‧이양현‧정상용‧김영철‧윤한봉 등 항쟁의 주역들과 만나는지를 그린다면, 후반부는 연이은 군부독재의 야만 속에서 태동하고 폭발한 항쟁을 증언한다.
1975년. 군에서 제대한 윤상원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에 복학해 외무고시 패스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그는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된 상황이었음에도 김상윤이라는 걸출한 운동가를 만나기 전까지 민청학련 사건부터 가까운 광주일고 학생들의 무더기 제적 사태까지 피상적으로만 알았을 뿐 한국사회의 현실에 제대로 눈뜨지 못했다.

의식화 학습을 강조한 사람이 김남주였다면, 이를 체계화한 사람은 김상윤이었다. 김상윤은 체계적인 커리큘럼의 필요성을 느끼고, 분야별로 필요한 책들을 정해서 한 권 한 권 독파해나갔다. 책은 김상윤이 직접 헌책방과 도서관을 뒤져 구해 왔고, 모두 함께 정독하며 공부했다. 아마 ‘의식화 학습 커리큘럼’이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32쪽)

윤상원은 김상윤을 만나 민청학련 선배들과 교류하며 운동가로서 성숙해갔다. 그 과정에서 만난 이들과 인연을 맺은 단체들은 실로 광주전남 지역 사회운동의 산증인 또는 역사 그 자체였다. 특히 그는 청계피복 노조가 운영하는 노동교실에서 활동하다 수배되어 있던 이양현을 통해 노동운동의 꿈을 키웠다. 짧은 은행원 생활을 마치고 노동 현장과 들불야학에 투신하는 동안 윤상원은 이양현과 이태복을 통해 YH투쟁, 호남전기 및 일신방직의 임금투쟁 등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던 투쟁 현장과 연결되었다.

들불야학은 윤상원이 서울에서 은행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한남플라스틱에 입사한 1978년 후반부터 애정을 쏟아 활동한 터전이다. 윤상원은 야학의 한계도 잘 알았지만 가능성도 믿었다. 들불야학에 몸담는 과정에서 새로이 관계를 다지게 된 동지들도 많았다. 언제나 물심양면으로 윤상원의 곁을 지킨 김상윤과 이양현 외에 김영철과 들불야학 교사들, 학생들이 그러했다.(96쪽)

유신의 마지막 해인 1979년 한 해의 인권운동은 이 대회로부터 우렁찬 서막을 올렸다. 전국 어디에서도 양심수인을 위한 행사가 불가능하던 때, 앰네스티 광주지부의 활약으로 개최된 광주 문학의 밤 행사는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기도 했다.(125쪽)

1980년. 위세가 꺾이지 않을 듯했던 유신은 느닷없이 균열해 박정희의 암살로 몰락했지만 군부독재는 얼굴만 바꾸어 계속, 또 새로이 시민들을 위협했다. 박정희의 양자임을 자처한 전두환이 5‧16 군사 쿠데타 즈음하여 간첩단 사건 등을 조작해 핑계를 대며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해 정권을 탈취하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대학가의 시위가 가두시위로 전환되는 와중에, ‘군부에 탄압의 빌미를 주어선 안 된다’는 지도부의 판단으로 투쟁의 열기를 꺼트리고 15만 명을 해산시킨 서울역 회군 사건이 벌어져 도리어 짧았던 서울의 봄을 끝내고 광주 학살의 여건을 조성하고 말았다.
광주가 일촉즉발에서 아비규환으로 이행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룻밤 사이 녹두서점의 김상윤이 예비검속돼 합수부로 잡혀가고, 계엄령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치는 전남대 학생들을 전경들은 최루탄과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시위대는 자동차를 불태워가며 공수와 맞섰다. 윤상원은 이 모든 현장을 지키며 상황을 파악하고 녹두서점에서 상세한 일지를 작성하게 해 시민들에게 알렸으며, 한편으로는 김상집과 화염병을 만들었다.

공수들의 만행에 분노한 윤상원은 녹두서점으로 전화를 걸어 화염병을 만들자고 했다. (…) 윤상원이 김상집에게 화염병을 만들 줄 아느냐고 묻자, 김상집은 정상용·이양현 선배들이 박정희 암살을 계획하고 있을 때 소총으로는 불가능할 테고 폭탄을 터트려야겠다고 해서 화염병부터 만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 곁에서 배웠노라고 했다. (223쪽)

무차별적으로 폭행과 살해를 자행하는 공수들과 맞서 시민들은 무기고를 털어 무장했고, 시민군은 이후 군부만이 아니라 투항파와도 싸워야했다. 민주화운동의 동지들과 연락이 닿지 않던 며칠간 분투하며 시민군을 이끌었던 윤상원은 한순간도 총기를 회수하고 투항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이끌리지 않았다.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해 백주대낮에 시민을 향해 발포하고 드디어 수습위를 민주투쟁위로 세워 결사항전의 결의를 기자회견으로 알리던 순간, 총에 맞아 쓰러진 그 순간까지.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마지막 모습은 외신기자들이 송고한 기사로 남았다.

그 침착함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그가 죽고 말 것이라는 예감을 뚜렷하게 받았다. 그의 눈길은 부드러웠으나 운명에 대한 체념과 결단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거의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 나에게 강한 충격을 준 것은 바로 그의 눈이었다. 바로 코앞에 임박한 죽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그의 눈길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335쪽)

왜 지금 우리는 5‧18 광주와 윤상원을
기억해야 하는가?


윤상원은 죽고, 살아남은 시민군 지도부는 전남도청의 함락으로 잡혀가 고초를 겪고 옥살이를 했다. 그뒤로 한동안 군부독재는 시퍼렇게 살아 있었지만 윤상원을 주인공으로 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모든 시민들의 노래가 되고, 죽음을 이겨낸 많은 시민군을 만들어내 ‘6월 민주항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순간순간 승리했고 벌써 40년도 더 훌쩍 지났지만 5‧18은 우리에게 끝난 일일 수 없고, 끝난 적도 없다. 당시 광주에서 공수와 계엄군을 동원해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던 사건의 책임자들, 특히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하거나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는커녕 발포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마저 여지껏 부인하고 있다. 광주 지역에서 며칠간 벌어진 부정할 수 없는 사건조차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을진대, 더욱이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새롭게 쌓아가고 바라고 추구하지 않으면 희미해질 수 있는 체제라는 것을 우리는 끊임없이 배운다. 정권의 변화에 따라 기본권은 더 많이 침해당했고, 차별과 혐오는 더욱 고삐 풀리고 무자비해졌다. 정부는 때로 주민들의 터전을 빼앗으려 하거나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해고하는 자본가의 편에서 폭력을 행사했다. 이럴 때 약자들은 고립된다. 우리만이 아니다. 2021년 2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하는 미얀마의 시민들도 폭력 속에 고립되어 있다.
어디에서도, 5‧18은 끝나지 않았다. 이것이 지금 윤상원을 읽어야 하는, 5‧18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목차

서문 윤상원 평전을 쓰면서
프롤로그 최후의 항전

1장 한국사회의 현실에 눈뜨다
2장 1970년대 활동가들과의 교류
3장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다
4장 녹두서점
5장 짧은 은행원 생활
6장 노동 현장으로
7장 들불야학
8장 부문운동의 분화와 폭발적인 성장
9장 꿈틀거리는 노동 현장
10장 유신의 몰락
11장 새로운 군부독재의 풍랑 속에서
12장 1980년, 전열을 가다듬다
13장 불타오르는 5월
14장 작전 명령 ‘화려한 휴가’
15장 국민연합의 전국 동시다발 시위
16장 전라 민중, 무기를 들다
17장 총기 회수와 재무장
18장 우리가 광주를 지키겠다
19장 마지막 밤
20장 5월, 그 후

에필로그 임을 위한 행진곡
윤상원 연보
참고문헌, 도판 저작권

본문중에서

취직을 축하한다며 김상윤이 양복을 한 벌 맞춰주었다. 그런 그에게 윤상원은 “곧 내려올 겁니다”라고 답례의 말을 전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철학적 바탕이라고나 할까,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렴풋이 깨달았소.”
인생의 지향점을 전환하게 된 건 김상윤을 만나면서부터 시작한 학습 덕분이었다. 외무고시를 대학 생활의 전부로 여겼던 정외과 학생에서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를 깨야 한다며 낯설기만 한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는 전사로 거듭난 것이다. 그 과정에 번민이야 있었지만 김상윤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외교관을 꿈꾸던 정외과 학생이 인간의 진실한 생각은 노동에서 비롯됨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훌륭한 대학 생활을 보낸 셈이었다. (66쪽)

민족의 대명절 추석 연휴인 9월 9일 아침, 박숙녀는 기숙사 베란다에 500여 명의 동료들을 모이게 한 뒤 〈단결의 노래〉를 부르며 임금 인상, 기숙사 외출의 자유 보장, 공휴일 근무제 폐지, 부서 복귀, 노조 결성 등 7개 사항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돌리고 이를 구호로 외쳤다. (…) 이는 유신 기간 ‘버스안내양’들의 집단 탈출(1964년 1월 16일 새벽 2시, 서울 영등포구 신대방동에 있는 삼양여객 소속의 버스안내양 74명이 합숙소를 집단으로 탈출했다) 이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대통령 긴급조치 9호 등이 엄존한 상태에서 공장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나선 가두시위였다. (90쪽)

학생들의 머리 위로 피가 솟구치고, 공수들은 쓰러져 실신한 학생들의 다리를 잡아 질질 끌고 전남대 정문 안으로 사라졌다. 흩어졌던 학생들이 서너 번 다시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더니 “도청 앞으로!”를 외치면서 대열을 이루어 도청으로 가기 시작했다. 윤상원도 대열에 합류하여 가다, 신역 앞에 이르러 급히 공중전화를 찾아 녹두서점으로 전화를 걸어 지금까지의 상황을 김상집에게 알려주었다. 김상집에게는 계속 상황을 알려줄 테니 상황일지를 써놓으라고 당부했다. (212쪽)

윤상원의 계획은 의로운 무명 용사들을 아르헨티나처럼 실종자로 만들지 않고 역사의 영웅으로 기리기 위해 모든 차량에 시민이 탑승하여 그대로 도청 안으로 밀고 들어가 공수들을 무장해제하고 무명 용사들의 시신을 인수하여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윤상원은 가능한 많은 차량에 연락하여, 오늘 오후 1시에 가톨릭센터 앞에 집결하고 차량마다 시민이 함께 탑승하여 그대로 도청 안으로 행진하자고 알렸다. 김상집은 만나는 차량마다 멈춰 세우고는 “1시에 가톨릭센터 앞으로”를 외쳤다. (248쪽)

두어 번 더 외쳐보았으나 대답이 없자, 김상집은 바닥에 있는 벽돌을 빼내어 운전석 옆 유리창을 깨고 운전석에 앉았다. 김상집은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해 차량 정비에도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에, 운전대 아래에 있는 배선 뭉치를 빼내고 시동모터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일행이 모두 전남대 스쿨버스에 타고 강당 앞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김태진 학생처장과 운전사들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263쪽)

윤상원은 22일 밤 외신기자들이 두 손을 높이 들고 여덟 손가락을 펴 보이면서 했던 말을 녹두서점에 모인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8일간만 버텨주면 미국은 전두환을 지지하지 않고 민주 일정에 따라 민주정부가 수립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광주를 사수하고 있으면 많은 광주시민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미국이 전두환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였다. 다른 지역의 움직임을 알 수도 없고 광주만 고립된 상황에서 외신기자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솔깃했다. 윤상원은 손가락 여덟 개를 펴 보이며 외신기자들이 말한 이 소식을 광주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297쪽)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백주대낮에 맨손으로 평화 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네. 이건 학살이야. 전두환이가 김대중 선생님을 비롯한 민주 인사들을 예비검속하고 통대 선거로 대통령이 되려고 하네. 이건 헌정을 유린한 쿠데타야. 자네들이 소신을 가지고 이 나라를 구해야 하네. 절대 항복해서는 안 되네.”
이에 정상용과 윤상원은 대답했다.
“네, 저희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절대 지지 않을 겁니다.” (310쪽)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2종
판매수 60권

1956년 전남 장성군 필암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수의대를 나와 동물병원을 운영했다. 1980년 5월 민중항쟁 당시 녹두서점에서 윤상원과 함께 화염병을 제작하고 투사 회보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했으며 전남대 스쿨버스를 타고 가두방송을 했다. 5월 23일부터 열린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에서는 대학생과 예비군을 시민군으로 편성·배치하는 일을 했다. 저서로는 《필암서원》(공저, 2018), 《녹두서점의 오월》(공저, 2019) 등이 있다. 현재 (사)광주전남6월항쟁 이사장으로 일하며 (사)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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