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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 팽창문명에서 내장문명으로[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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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상준
  • 출판사 : 아카넷
  • 발행 : 2021년 04월 16일
  • 쪽수 : 968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7337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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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내장’과 ‘팽창’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관점으로 써내려간
동아시아가 주역이 되는 근대의 세계사이자 문명사

동서와 고금을 가로질러 ‘대전환’을 종합 분석하여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속화한 문명전환의 방향을 제시하다


서양 우위의 ‘동서(東西) 대분기’는 사라지고 동아시아와 서양이 대등한 관계로 만나는 ‘동서 대수렴’의 시간이 왔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는 서양 근대의 팽창문명의 질서로부터 후기 근대의 내장, 공존, 평화 문명 질서를 향한 거대한 전환의 흐름을 제시한다. 짧게는 근대 500년 역사의 대전환을 밖으로 확장하는 서구의 팽창문명과 안으로 성장하는 동아시아의 내장문명의 변증법으로 풀어냈다. 20세기 후반의 동아시아의 부상과 그 마지막 10년 이래 중국의 급속한 굴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미중 관계가 과거 미소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인가? 세계 속에서 동아시아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가 경탄한 한국의 촛불혁명과 K방역의 저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자본주의-사회주의 대립 이후의 체제는 어떠한 것이 될 것인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문명전환의 핵심고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문명전환의 담론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새로운 문명의 상에 대한 선명한 비전을 제시한다. 인류사의 과거와 미래를 통찰하는 상징으로 제시된 『장자(莊子)』 속 ‘붕새’는 시베리아 최한극과 태평양 최열극을 매년 주기적으로 오가는 동아시아 계절풍이자 내장적 문명화의 전환력이다. 수평적 협력을 통한 생활력, 생산력의 확장을 이룩한 동아시아 문명의 특성은 글로벌 기후위기, 불평등의 심화, 신냉전과 냉전과학, 무한생산·소비로 불거지는 ‘대전환’의 양상과 함의를 밝혀 현 인류가 맞은 위기를 극복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또한 동아시아의 후진성과 한반도의 주변성을 걷어내고 냉전의 청산과 남북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높다란 시선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한다.

세계 속에서 크게 높아진 동아시아의 위상과 새롭게 조명된 ‘대분기’의 실체
평화 시기에 강점을 보였던 동아시아 내장체제의 강점이 부각


‘붕새의 날개’가 보여주는 문명전환의 진로는 ‘내장(內張)의 귀환’이다. 근대세계사 500년을 내장과 팽창의 변증법으로 분석한 결과다. 정복과 지배의 팽창성이 우위에 섰던 기존 인류 문명의 근본적 속성이 협력과 우애를 바탕으로 하는 내장의 공존과 평화의 문명으로 수렴된다는 전망이다. 근대사, 문명사, 인류사 3중의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인류의 존망이 걸린 작금의 대전환에서 동아시아 근대 세계가 보여준 내장 문명의 뿌리를 깊이 인식하고 문명의 행동 원리로 삼자는 것이다.

17~18세기 동아시아의 ‘200년의 평화’ 동안 유럽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19세기 들어 ‘유럽의 100년 평화’ 시기에 동아시아는 전란에 빠져드는 역(逆)의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이 시기는 외부의 포식을 바탕으로 팽창적인 문명 원리로 나아간 서양과 동아시아의 내장 문명이 극명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서구의 팽창근대를 여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항해’가 모종의 종교적 적대감을 바탕으로 하는 침탈적 성격을 드러낸 것과 달리 정화의 남해 원정은 식민지화 없이 조공의 망을 넓히는 데서 동아시아의 내장적 문명의 성격을 드러낸 것도 두 문명 간 차이를 나타낸다.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북방 유목민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세운 성벽인 만리장성(萬里長城)도 동아시아 문명의 내장성을 증거하는 예로 풀이된다. 진시황의 통일 이후 축조되어 누대에 걸쳐 완성된 만리장성은 내중국(한족)과 외중국(유목민족)을 가르는 경계였다. 한족의 왕조는 유목 왕조의 터전이 되는 외중국을 문명의 바깥으로 보고 정복할 대상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권을 제한했다. 또 초원제국은 통일제국의 만리장성 너머의 경계 안으로 내습했지만 금나라와 청나라의 경우처럼 그것이 성공적일수록 오히려 중국화되는 역설을 보였다. 이를 내장과 팽창의 관계로 본다면, 팽창이 내장에 포섭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는 19세기에 벌어진 동서양의 우세 역전과 격차 심화를 일컫는 역사학계의 용어다. 문명화를 이끈 서구 세력이 근대 이후를 주도했으며 이러한 ‘서구주도근대’에 대한 인식은 20세기까지 표준적인 세계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들어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동아시아의 부상’이 가져다준 관점의 전환이 대분기의 현상을 새롭게 주목하게끔 했다. 미국의 역사사회학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동아시아가 서구의 ‘문명화의 빛’의 수혜자가 아니라 거꾸로 서구가 번성하던 아시아 교역망에 최후로 탑승한 ‘무임승차자’였고 미국의 중국사학자 케네스 포머란츠가 중국의 강남지역과 영국을 비교한 연구 등 서구 중심의 역사에 대한 반론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세계가 경탄한 한국의 촛불혁명과 K방역의 저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동아시아의 뿌리 깊은 공화·민주의 전통 위에 탄생한 협동과 우애의 공동체


내장 문명의 원리는 유교에 대한 창조적 재해석에 바탕을 두며 철저한 비판적 대면을 통해 그 정수를 걸러내고 재구성된다. 동아시아 내장근대의 가치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이 ‘평화’에 대한 지향이다. 동아시아에서 유교는 문(文)으로 무(武)를 통제했고 성왕론(聖王論)을 통해 세습 군주의 권력을 순치하는 기능을 했다. ‘국가의 기본이 오직 민의 복리와 안녕에 있다’는 민유방본(民唯邦本)의 전통의 바탕에서 비롯한 대중유교로서의 동학(東學)은 ‘생명과 평화의 가르침’의 사상으로 주목된다. 동학혁명 당시 혁명군의 기율로서 전봉준이 제시한 ‘4대명의(四大名義)’는 억압된 농민들의 혁명이 평화주의로 잘 규율된 것임을 예증한다. 지은이는 이러한 평화적 공(公)사상이 3·1운동, 반독재민주화운동, 4·19혁명, 6월항쟁, 광주민주화운동, 촛불혁명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협동과 우애의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이러한 자발성에 기초한 사회적 협력의 강화가 팬데믹 이후 문명전환의 방향이자 행동의 지침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발전해온 공화제와 민주제의 전통은 서구 사회보다도 뿌리 깊어 사회의 단단한 토대가 된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유럽의 프랑스와 영국이 공화제 혁명의 성공 이후에도 여러 차례 ‘왕정복고’가 반복된 것과 달리, 동아시아에서 ‘민(民)의 수평화 현상’이 장기간 지속된, 곧 군현제(중앙집중적 군주제)의 역사가 긴 나라들에서의 공화제 혁명은 ‘역류 현상’ 없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전국(戰國)시대가 조기 종식된 이후 진나라에 들어선 군현제 아래서 봉건적 신분이 해체되는 한편, 유교 문인들의 공화주의적 전통(유교 문인공동체 공화주의)이 자리를 잡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정부와 국민이 보여준 성공적인 방역 대응(K방역)은 전 세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지은이는 K방역의 저력은 한국인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동 정신의 결과이며, 이는 촛불혁명에서 보여준 사회적 협력 의식, 민주적 참여 의식이 바탕이 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전체주의적 감시사회’나 ‘유교적 순응주의’로 낮춰보는 유럽 발 시각은 뿌리 깊은 오리엔탈리즘의 소산이라고 진단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공적 방역으로 주목받는 국가들에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대만 등 유교를 배경으로 내장적 전통을 지닌 동아시아 국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주의 대립 이후의 체제는 어떠한 것이 될 것인가?
평등과 효율을 결합한 혼합체제로 수렴, 수평적·평등적인 북구의 내장형 사회에 주목


동아시아와 서양(유럽)이 만나면서 벌어진 힘의 상호관계는 형(形)-류(流)-세(勢)-형 다시(形′)라는 하나의 순환적 흐름이 교차하는 변화 과정으로 풀이된다.(5개 부의 구획도 이를 따른다.) 내장적 사회의 원형(形)이 되는 초기 근대의 동아시아 소농체제에서 서구 팽창성이 세계를 압도하는 시기를 거쳐(流-勢) 후기근대의 세계는 내장형 사회로 수렴된다는 것이 ‘붕새의 날개’가 전망하는 인류사 전체의 흐름이다.

형 다시(形′)로 설정된 후기근대는 서구 패권의 200년이 저무는 미·소 냉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다. 내장문명이 세계적 차원에서 완성되는, 세계가 근대의 역사를 ‘되감는’ 역사적 이력(hysteresis)의 시간대이자 문명사적으로는 ‘두 번째 축의 시대’이다. 지은이는 팽창근대가 팽창의 극한에 이르는 후기근대에는 팽창근대와 내장근대의 분열선이 사라지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분열선도 함께 사라진다고 전망한다. 자본주의는 순수한 경제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사, 정치, 경제적 권력이 결합된 권력체제인 ‘권력자본주의(power capitalism)’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경제성장 지상주의, 대결적 대외관계 등에서 팽창근대의 성격을 공유하였고 내장적·생태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사조나 운동과 ‘선한’ 자본주의 흐름들도 존재하는 만큼 팽창근대/내장근대로 인류의 문명사에 접근하는 일은 자본주의/사회주의 구분을 넘어서 ‘대수렴’의 인식과 전망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대수렴’의 방향은 내장성의 강화이며 그 형태는 혼합경제이다. 후기근대에는 수평적·개방적이며 평등적·평화적 힘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작용하여 수직적·대립적이며 차등적·대립적인 힘을 약화하는 만큼 내장성이 강화된다. 혼합경제는 시장경제와 재분배경제, 호혜경제가 공존하는 체제이며 주류 경제학 내부에도 이러한 추세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혼합경제로의 경로를 통해 진화 중이며 이러한 내장형 사회의 본보기가 되는 것은 북구 노르딕 국가들이다. 책은 20세기 이후 핀란드와 노르웨이 등 북유럽 사회의 발전 양상을 또 하나의 내장적 패러다임의 사례들로 포착한다.

북구 노르딕 사회는 팽창근대의 노선을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멀리 벗어난 서구의 나라들이다. 시민적 연대가 견고하고 사회적 합의가 강고하며 높은 재분배 정책을 펴는 까닭에 수평적이고 평등적인 경향이 강하며 국가 간 관계는 중립, 자위, 평화 노선을 오랫동안 견지한 내장형 사회였다. 팽창근대의 주도국이 될 만한 인구와 지정학적 위치를 갖추지 못했기에 안으로 꾸준히 내실을 기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여 내장적 체제의 모범 국가가 될 수 있었다. 또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 강국이면서 패권국가는 아니지만 무역강국이라는 점을 공유한다.

미중 관계가 과거 미소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적이 사라진 세계와 팽창근대의 종식, 상호 공존의 길 견인하는 중국


내장형 사회로 ‘대수렴’이 이루어지는 후기근대는 여러 다극적 힘들이 서로 복합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균형을 이루어가는 세계이다. 강대국 간의 ‘힘(power)’의 관계도 분산적이 되고 그 ‘힘’도 더는 과거처럼 ‘팽창적’이지 않고 ‘내장적’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은이는 ‘패권다툼 논리’에 불과한 핼퍼드 매킨더나 앨프리드 머핸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지정학에 근거한 사고도 종식되리라 전망한다. 또 지배적 미디어를 통해 심심찮게 되풀이되는 이른바 미중(G2) 간의 ‘신(新)냉전 시나리오’는 실제 세계의 움직임과도 다르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체제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권과 교류 확대를 원하는 유럽연합뿐만 아니라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 이슬람권, 인도권, 동남아시아 등 비서구권 전반의 국가들이 접면 확장에 훨씬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일례로 중국이 주도하여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경제벨트로 묶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은 유라시아 지역의 ‘중간지대’에 속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합치되어 지금껏 무력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중국의 ‘굴기’가 지금까지 성공적인 까닭은 서양의 제국주의가 장밋빛 ‘문명화’를 약속한 팽창적 패권의 길과 다른 내장적 경로를 택했기 때문이다. 중간지대의 낙후된 지역과 분야에 사업을 집중하고 정보기술과 재생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큰 비중을 할애하여 ‘녹색성장’에 부합한다(제러미 리프킨)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지은이는 중국이 이러한 내장적 공존 노선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여 미중 관계가 안정된다면 세계의 내장화는 큰 걸림돌을 걷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냉전의 종식은 적이 사라진 세계를 뜻한다. 미국에게는 소련이라는, 소련에게는 미국이라는 ‘절대적인 적’이 존재함으로써 냉전체제는 존립 가능했다. 이러한 적대는 16세기 종교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종교전쟁이 유럽내전으로 그리고 세계내전(세계대전)으로 확대해간 500년 팽창근대의 역사를 이어온 심리적 동기는 팽창 대상에 대한 모종의 적대감에서 비롯한다. 이 강력한 힘은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가 서로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던 것에서 ‘최종 심판’이라는 성스러운 과업에 저항하는 세력을 적으로 삼고 비유럽 세계의 식민지화를 수행한 동력으로 이어진 ‘심리적이면서 신학적인 메커니즘’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부역을 이유로 전범재판에서 선 법학자 카를 슈미트가 교묘히 일깨운 것도 유럽공법, 유럽문명이 ‘지구의 입법자(Der Nomos der erde)’이며 팽창근대의 문명을 변호하는 논리였다. 이러한 적대를 바깥 세계로 돌린 ‘근대의 초극’ 사상은 일본의 ‘전후 민주파’의 논리가 되고, 식민지 근대화론은 ‘침략전쟁과 지배가 불가피했다’는 그들의 논리를 베낀 것에 불과하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을 펴나간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문명전환의 핵심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한 자원소비적 성장 방식의 한계 절감, 길항하는 관계 전체를 살피는 기후변화 대응 주문


기후위기는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고 심각하며 여러 문제가 중첩해 나타나는, 대전환과 대파국의 귀결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기후위기는 지구가 보내는 엄중한 경고로 전문가들은 ‘여섯 번째 대멸종’을 예고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IPCC의 보수적 예측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20세기까지 지구온도가 1도 상승한 데 반해 2100년에는 4도 올라 인류의 존망을 위협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이 자기회복과 순환할 틈을 주지 않는 인간의 과도한 약탈에서 비롯한 것으로 인간에 대한 자연의 우위(낙차)가 인정되고 자연은 가장 근원적인 타자로 머물던 팽창근대의 사고법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러한 인식의 변화로 신자유주의 이후 끊긴 반핵, 환경운동의 흐름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그린 뉴딜’에 대한 요구가 전방위로 모이면서 자연과 생명에 대한 공감이 널리 확장되었다. 이는 일부의 뛰어난 스승, 사상가와 철학자들의 특별한 영혼과 사고 속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적 차원에서 수많은 다수의 마음속에서 동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이제 서구와 비서구가 공히 봉착한 문제는 과거의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힘을 어떻게 약화시키고 해체하여 내장화할 것이냐다. 지은이는 기후변화 대응운동 일각에서 “이미 늦었다”고 자포자기하는 비관적인 분위기를 걷어내고 여러 힘이 묶여 길항하는 관계 전체를 살피자고 제안한다. 탄소배출의 실제적 감축도 이런 관계의 전체 구조를 바꿔 갈 때 비로소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30년 연구의 집대성이자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네 화자 간 다성적(polyphonic) 대화로 풀어낸 학술적 탐사보고서


지은이 김상준 교수(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는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뒤늦게 학문을 시작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시민의회론, 중층근대론, 비서구 민주주의론 등 새로운 학술 담론을 제기해 왔으며 동아시아의 유교문명을 인류 문명 재편의 주동적 요소로 그려낸 『맹자의 땀 성왕의 피』는 성균관유교학술원 저술상과 문광부 우수도서를 수상했다. 지은이는 1990년대 초반 소련동구권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변화하는 세계와 수십 년에 걸친 큰 희생 위에 이룬 민주화가 뒷걸음질 치는 한국의 상황 모두에 분명한 전망과 시야를 얻지 못한 것을 두고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책머리에 적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은 ‘열쇠’를 찾기 위해 본질적인 세계 변화의 방향을 30여 년에 걸쳐 탐색한 학문 여정을 1차적으로 종결짓는 ‘탐사보고서’이다. 제사에서 지은이가 밝히고 있듯, 지금 자신의 청년 시절 나이에 도달한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로도 읽을 수 있다. 이 탐사보고서는 한편으로 참신한 글쓰기 실험이기도 하다. 지구의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네 화자 간 다성적(polyphonic) 대화로 글을 전개하여 창조적 사유와 비판적 검토의 폭과 깊이가 확장, 심화된다.

목차

책머리에: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서

서론: 붕새의 날개
〈종합발제〉 역사의 새의 시간 비행

제1론 『장자』 붕새와 형-류-세-형′
거대한 새: 풍파 3천리, 장도 9만리
강수량의 문명사
문명전환의 5단계: 변증법적 순환과 상승
제2론 동아시아의 안과 밖
붕새 지리학
동아시아: 대륙/바다, 건조/습윤, 1몬순/2몬순
붕새와 가루다의 계절풍 운동과 문명의 교류
제3론 서세동점의 내력
대항해, 동아시아로 가자!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서세동점의 밑천이 되다
유럽의 팽창과 거대한 낙차의 창출
시베리아 서세동점

제1부 形
〈발제〉 동아시아 내장근대의 원형

제1론 근대세계사와 동아시아
〈근대화=서구화=문명화〉라는 신성한 공식
세계가 변하다
근대세계사의 3단계론: 초기근대, 서구주도근대, 후기근대
콜럼버스 이전의 글로벌 임팩트
‘근대’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제2론 동아시아 소농체제와 내장근대
『하멜표류기』에는 인종주의가 없다
‘내장’은 안으로(in) 확장한다(pand)는 뜻
동아시아 내장근대의 특성
동아시아 소농농법의 친환경성
제3론 동아시아 평화체제와 유럽 내전체제
동아시아 평화 200년간에는 전쟁이 없었는가
동아시아와 유럽의 전쟁과 평화는 왜 엇갈렸는가
종교전쟁과 유럽내전
리바이어던, 또는 ‘예외를 결정하는 자’
유럽내전의 심리학과 종말론
포스트 전국시대: 계몽철학자들이 바라본 동아시아
유럽 내장근대의 뿌리
제4론 동아시아 유교체제: 문과 무, 군현과 봉건
유교는 어떻게 폭력을 길들였는가
폭력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유교 성왕론
만리장성은 왜 세워졌는가
유교 공화주의
유교 반폭력 사상과 성적 평등주의의 미래
동아시아 유교국가의 4가지 유형

제2부 流
〈발제〉 서세동점과 동아시아의 대응

제1론 ‘두 근대’의 충돌과 동서 대분기
세계는 동아시아의 과거에 왜 다시 주목할까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까닭
동아시아는 스스로 붕괴하지 않았다
세계로 퍼져나간 유럽내전
제2론 내장근대의 미래와 과거
17~18세기 동아시아 번영의 비결
전쟁에 지고서도 안일했던 청나라
제3론 태평천국혁명과 동학혁명의 미래성
태평천국의 강령
동학혁명군의 민관공치, 세계 혁명사상 전대미문의 사건
동학혁명의 미래성
동아시아의 전통에는 민주주의가 없었다?
생명과 평화의 가르침, 협동과 우애의 공동체
제4론 내장근대 체제전환의 유형: 중심-주변, 문-무, 군현-봉건
동아시아는 서세동점에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천하도〉, 중심-주변 세계관의 조선 버전
도쿠가와 막부의 내장성 재평가
봉건제, 군현제, 공화제
신해혁명과 프랑스혁명, 어느 쪽이 더 세계사적 사건일까

제3부 勢1
〈발제〉 동아시아 전쟁체제

제1론 동아시아 팽창근대의 논리와 심리
역사는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가
『문명론의 개략』의 논리와 심리
후쿠자와 유키치, 일본 팽창근대의 전략가
정화의 남해원정과 서구의 대항해의 차이점
제2론 팽창근대와 전쟁체제
세계대전, 팽창근대의 필연적 귀결
총력전 체제와 조숙한 전쟁국가 일본
이시와라 간지의 ‘세계최종전쟁’
제3론 전쟁체제 속의 동아시아
두 번의 조일전쟁과 러시아혁명
2중의 대립선과 비운의 삶: 김산과 김경천
제4론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자본주의는 권력현상이다
파시즘, 후발 팽창근대의 공격적 만회운동
‘지정학’의 계보
팽창적 제국으로 변모해간 소련

제4부 勢2
〈발제〉 동아시아 냉전체제

제1론 동아시아 냉전의 안팎
적대의 내면화
법정에 선 카를 슈미트, 팽창근대의 세계사를 정당화하다
일본 ‘전후 민주파’ 인식의 공백지대
‘근대 국민국가의완성’을 넘어
제2론 중국내전, 베트남전쟁, 코리아전쟁
이 전쟁들은 피할 수 없었나
맥나마라의 베트남전 회고
승자 없는 전쟁
분단체제: 내전적 적대의 지속
제3론 내장근대 완성의 우회로, 냉전 종식과 동아시아의 부상
팽창근대, 한계에 이르다
냉전의 최전선, DMZ
세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는가
동아시아의 평화적 부상과 냉전의 종식
애덤 스미스적 발전노선과 동아시아 내장형 발전노선의 친화성
제4론 미중 관계와 코리아 양국체제
미중 전쟁은 불가피한가
군산복합체는 영원한가: ‘냉전의 설계자’ 조지 케넌의 경고
역주행: ‘기본합의’에서 전쟁위기로
또다시 역주행을 반복할 것인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다
코리아 양국체제와 한조수교
노자 『도덕경』이 가르쳐주는 코리아 양국체제의 지혜

제5부 形′ 문명의 진로
〈발제〉 후기근대와 내장적 문명전환

제1론 후기근대, 근대세계사의 제3단계
대전환
후기근대란 무엇인가
후기근대의 되감기와 상전이
상방(전방)전환력 vs. 하방(후방)전환력
제2론 대파국인가 대전환인가 Ⅰ: 사회경제적, 정치군사적 차원
거대한 변화는 분명한 사실이 되었다
불평등의 심화: 제2의 인클로저
지구 차원의 소득격차 감소: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대분기에서 대수렴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평화적으로 계속될 수 있을까
‘도광양회’는 책략이 아니다
지정학 시대의 종언
제3론 대파국인가 대전환인가 Ⅱ: 기후환경적 차원과 ‘후기근대 신과학’
인류세와 기후위기
과학의 경고
지구는 말할 수 있는가
환경 문제와 중국 문제
기후위기는 대전환의 핵심동력으로 작용한다
후기근대 신과학
500년 유럽내전의 종식과 ‘적이 사라진 세계’
다섯 개의 콘트라스트: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제4론 ‘지구선택’과 인류문명의 내장적 전환
문명이란 무엇인가
인구와 생산의 증가 추세가 꺾이고 있다
‘축의 시대’와 문명의 시선 전환
코로나19 팬데믹은 무엇을 돌아보게 했는가
제도 혁신과 코로나19
‘1 대 99 사회’와 기본소득
그린 뉴딜(Green New Deal)
재난 속에 출현하는 우애와 협동의 공동체
재난의식과 ‘지구선택’
내장사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북구 사회 모델은 먼 나라 이야기인가
내장사회가 돌아가는 전체 모습
‘능력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벽에 부딪힌 팽창 욕망의 기이한 출구: ‘지구탈출’과 ‘인간탈출’
제5론(총결) 붕새의 날개, 거대한 뿌리, 문명의 진로
마지막 고개, 마지막 질문
거대한 전환, 거대한 뿌리
문명과 낙차
내장의 귀환
동아시아와 내장문명
잃어버린 열쇠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들
포스트모더니즘
희망의 신호
희망의 원리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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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이 책은 ‘동아시아 근대사’라는 입구로 들어가 ‘인류사’라는 출구로 나옵니다. 서세동점으로 오랜 시간 곤경에 처했던 동아시아가 오늘날 다시금 당당한 위상을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외부의 포식이 아니라 내적 자기증식에 기초했던 내장적(內張的) 발전양식, 생활양식의 뿌리가 깊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내장적 저력의 재발견과 귀환은 이제 전 지구적 요청과 맞물리고 있습니다. 외부의 포식에 기초한 무한팽창의 신화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존멸을 묻는 기후위기와 ‘지구선택’의 상황은 무한팽창이라는 환상의 종언을 극적으로 예증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류문명은 무한팽창적 지향과 가치를 버리고 내장적 질서로 회귀해야 합니다.
― 「책머리에」, 12~13쪽

얼마 전 이들 ‘뉴라이트’ 운동의 학계 구성원을 이루는 분들이 몇 모여서 자신들의 평소의 소신을 대담하게 펼친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냈더군요. 저는 이 책을 읽고 정말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역사와 특성에 대해서는 몽땅 비하하고 일본과 서구 문명에 대해서는 무조건 찬양하여 숭배하고 있습니다. 미리 역사를 흑백과 우열로 전제해놓고 이야기를 짜 맞추고 있는 것이지요. 어느 역사를 대할 때라도 이러한 태도는 배격되어야 합니다.
― 「形」, 112쪽

동아시아의 내장(內張)근대란 이렇듯 대륙과 바다, 그리고 습윤과 건조의 교류와 공존을 통해 대단히 광대한 범위에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대륙/바다, 습윤/건조의 광대한 상호작용이 바로 붕새를 날게 했던 동력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합니다. 이러한 내장적 질서가 오랜 시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동아시아 전체가 평화공존의 질서 속에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평화공존의 질서 속에는 동아시아 바다에까지 이르러 활발히 활동했던 네덜란드와 영국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形」, 172~173쪽

유교 국가론의 바탕을 이루는 ‘민유방본’의 철학은 당시 유럽의 계몽철학자들에게는 대단히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사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아마 오늘날의 독자들은 과거의 유럽이 동아시아의 유교 체제를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아전인수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역사를 볼 때 과거를 자기 시대의 눈으로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시각으로 먼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形」, 217쪽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야말로 오랜 기간 안정, 평화, 번영을 누리며 존속했던 유교형 내장주권체제의 역사적 경험을 눈을 비비고 새롭게 다시 보고 창조적으로 재해석해야만 하는 때가 아닐까요? 유교 내장주권이 서구 팽창주권의 힘 앞에 패배했던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 패배는 영영 잊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그 패배를 통해 기억 속에 깊이 상처로 남아서 오히려 새롭고 더욱 완성된 형태로 부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말하는 ‘창조적 재해석’은 유교에 대해 진정으로 비판적인 대면을 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 「形」, 258쪽

토지균분은 정전제 이래 유교 이념의 오래된 이상에 해당하고, 조선의 많은 개혁적 유자들이 이러한 이념의 구현을 주장해왔습니다. ‘정전제’란 오늘날 주목받는 ‘기본소득’ 구상의 유교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유학자들이 늘 주장해온 정전제, 균전제, 한전제가 강조점이 조금씩 다를 뿐, 모두가 결국 일반 농민들이 항산(恒産)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념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유교적 이상사회에서 농민들이 불렀다는 〈격양가(擊壤歌)〉는 오늘날 기본소득 주창자들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일반인의 삶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流」, 328쪽

후기근대의 상은 부동하는 경제적 네트워크에 단속적으로 접속하는 새로운 소생산자들이 다수를 이루는 세계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소민의 소멸이 아니라, 정반대로 새롭게 소민이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소민사회’로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복지제도나 기본소득은 후기근대의 환곡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재분배경제), 성장하고 있는 사회적 경제, 다양한 형태의 중간경제는 이 시대의 새로운 두레(호혜경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 「流」, 332~333쪽

“이념이나 이론에만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현실의 권력이 되었던 ‘현존 자본주의’, ‘현존 사회주의’는 모두 팽창근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경제성장 지상주의나 대결적·공격적 대외관계 등 서로 공유하는 점이 많았던 것이죠. 자연 생태를 완전히 외부화시켜서 그 희생 위에 산업화를 추진했다는 점도 완전히 동일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사회주의 구분보다 팽창근대/내장근대의 구분이 더 기본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 「勢1」, 485쪽

글쎄요. 미중 간의 전쟁, 그리고 여기서 시작될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인데요, 그러한 가능성이 100%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현 상황을 ‘패권 교체’로 보는 시각의 결정적 맹점은 오늘날의 상황을 ‘팽창근대 500년 논리의 연장’으로만 읽고 있다는 것이에요. 이제 ‘팽창근대 500년’이 종식되고 있는 만큼, 세계사의 흐름을 과거 500년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과 논리로 보아야만 한다는 것을 놓치고 있어요. 큰 변화를 놓치고 있으니 잘해야 사태의 반쪽밖에 못 보는 것이고, 결국 완전히 엉뚱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 「勢2」, 609쪽

코리아 양국체제 정립은 결코 코리아만의 국지적 사건이 아닙니다. 세계사적 의미가 있어요. 70년간 극단적으로 적대해왔던 두 주권이 평화적 공존의 과정을 통해 통일로 간다는 것은 토머스 홉스나 카를 슈미트가 생각했던 근대 주권관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질적으로 다른 주권관이 여기서 나올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주권이란 홉스적, 슈미트적 의미의 ‘적대적 외부’를 전제하지 않는 ‘내장적 주권’이 되겠지요. 새로운 주권모델을 코리아 남북에서부터 만들어간다는 포부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팽창근대의 주술을 여기서부터 끊고 내장적 문명으로 가는 길을 힘을 모아 같이 열어가자는 것입니다.
― 「勢2」, 649~650쪽

21세기의 다극화는 서구의 전 지구적 패권확장의 지난 역사와 크게 다릅니다. 새로운 단일패권 형성이 아닌, 상대적으로 동등한 다극의 형성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다극관계는 냉전시대처럼 양극이 서로 배척하는 적대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상호의존이 갈수록 증대하는 관계입니다. 각 권역 내부에서도 이제는 어느 한 나라가 절대적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는 것은, 남미에 대한 미국의,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중동에 대한 서유럽의 영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여러 권역 내 각국의 힘의 상대적 증감은 물론 발생하고 있지만, 권역 전체로 보면 그 힘 관계는 분명 다극화·수평화되고 있습니다. ‘팽창근대의 낙차에너지’가 구조적으로 약화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팽창근대가 팽창의 극에 이르러 그 반대물인 ‘내장근대의 세계화’로 나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 「形′」, 690쪽

여기까지만 보면 슈미트는 사상가로서 성공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슈미트의 사상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순간, 그 사상은 정상의 권좌에서 내려와야 하는 운명이니까요. 우리가 보아온 바와 같이, ‘팽창근대와 내장근대의 변증법’에 의해 팽창근대가 지구 끝까지 남김없이 정복한 순간, 팽창근대의 세계사적 역할은 그것으로 종료되어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그의 사상은 결국 실패와 몰락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까지 이 책에서 논의했던 논지 전체가 카를 슈미트의 예외권력론에 대한 반증이자, 그의 사상의 예고된 자기붕괴 앞에 울리는 조종(弔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形′」, 825쪽

뜻밖에도 2020년의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러한 진실을 인류사회에 널리 알려주었습니다. 기존의 무한히 소비지향적인 삶의 양식과 가치를 바꾸지 않는다면 바이러스에 의해서든, 기후위기에 의해서든 인류는 빈번한 재앙에 의해 치명적 곤경에 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아울러 팬데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덜 쓰고, 덜 움직이고, 덜 만들고, 덜 누려도, 살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오히려 더불어 더욱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본소득, 적극적 재정, 고용보험, 돌봄경제, 공공의료 등이 그렇지요. 이런 발상을 확대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내장적 사회이기도 합니다.
― 「形′」, 850쪽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란, 장기간의 유교 문인공동체의 군주권 견제와 민(民)의 수평화 과정을 토대로 하여, 군주제가 공화제로 대체된 이후, 민의 통치 참여가 본격화하는 정치체제이자 사회현상이다, 라고 말이죠. 또한 동아시아에서 ‘민의 수평화’ 그리고 ‘지식인의 공화주의적 비판 전통’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동아시아 민주주의의 미래 발전 가능성도 더욱 큽니다.
― 「形′」, 893쪽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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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교수(2001~). 1980년 서울대학교 사회대 입학 후 학생운동으로 강제 징집되었다 만기 제대하고, 1992년까지 인천, 구로의 공단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1993년 뉴욕으로 유학하여, 뉴스쿨에서 석사학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사회학, 2000)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미지의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이후의 사회를 구상하다』,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 『진화하는 민주주의: 아시아·라틴아메리카·이슬람 민주주의 현장 읽기』, 『코리아 양국체제: 촛불혁명과 체제전환』 등이 있고,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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