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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물어뜯은 시집 : 조경선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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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외딴집 마당에 눈이 내렸다.
지워진 발자국…….
다시 그 위를 걸었다.

2021년 4월
조경선
(시인의 말' 중에서)

출판사 서평

나무를 위한, 나무에 의한, 나무의 시
― 조경선 시집 『개가 물어뜯은 시집』

201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서 시조로 등단한 조경선 시인은 목수이고 또 각자장인(刻字匠人)이다. 경기도 안성의 외딴 산골에 터를 잡고 “칠현산방(七賢山房)”이란 작은 집을 지어 그곳에서 목수일도 하고 시도 쓰고 있다. 2017년에 첫 시집 『목력木歷』(책만드는집)을 내고 4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자르기 전 쓰다듬으며 나무를 달랜다
생의 방향 살핀 후 누울 자리 마련한다
첫 날刀은 이파리마저 놀라지 않게 한다

나이테 한 줄 슬금슬금 잘려 나가니
뱉어낸 밥 색깔이 뼛가루처럼 선명하다
백 년의 단단한 숨소리 한순간에 무너지고

한없이 차오르던 숨길은 물길이었을까
안쪽으로 파고들면 내력은 촘촘해지고
울음을 간직한 옹이가 더욱 단단해진다

벌목은 베는 게 아니라 만나는 거다
커다란 눈동자 되어 밑동이 살아 있는 건
최초의 뿌리가 사람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 「목력」(첫 시집 『목력』) 전문

그의 첫 시집 표제시 「목력」을 굳이 전문을 인용한 것은 이번 두 번째 시집 『개가 물어뜯은 시집』의 기저에 깔린 정서를 담아내고 있는 까닭이다. 나무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의 삶이 이번 시집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 까닭이다.

조경선 시인의 시적 멘토이기도 한 장석주 시인은 이번 시집을 해설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무와 관련한 부분만 인용한다.

“조경선의 시적 상상력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주로 나무를 다루는 그의 노동과 깊이 관련된다. 시인은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고, 표면을 매끄럽게 문질러 다른 무엇으로 변형한다. 시인은 나무의 속 깊은 울음소리를 듣고, 그는 나무를 어루만지고, 자르고, 다른 무엇으로 변형하는 일에 몰두한다. 이번 시집의 많은 시편들이 나무들을 내세우는데, 아마도 시인이 나무의 쓸모와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그것에 마음을 빼앗긴 탓으로 짐작된다. 그의 시적 상상력이 생기와 약동을 얻는 것은 나무와 상관될 때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인이 나무를 가까이할 때 놀라움과 기쁨은 커진다. 나무는 노동의 재료이자 생의 경전일 뿐만 아니라 충분히 자족적인 세계의 표상이다.”

“나무에게서 시적 상징을 끌어내는 조경선의 시는 나무와 오랜 교감이 낳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테다. 그의 시에 유독 나무와 관련된 옹이, 나이테, 그루터기, 우듬지, 진액, 솟대, 서까래, 쐐기… 같은 어휘가 등장하는 빈도가 높은 게 그 증거다. 그에게 나무는 단순한 작업의 재료가 아니다. 그는 나무를 다루되 나무와의 교감을 중요시한다.”

“조경선의 상상 세계에서 나무는 ‘자라서 사랑하고 이별하고 흔들리’는 존재다. 나무를 하나의 생령으로 바라본 것이다. 물론 나무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의인화한 예는 조경선이 처음은 아니다. 시인은 나무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왜일까? 나무의 전언을 듣기 위해서다. 시인은 ‘(나무의) 줄기를 잘라내면 그곳의 전언이 나에게 스밀 것’이라고 쓴다. 더 나아가 ‘자연의 위대한 연결망인 나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관계 속에, 근원과 재료와 아름다움을 생명에 부여하는 관계 속에 깃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무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생명 공동체의 위대한 연결망이다. 인간은 나무의 신화와 역사 속에서, 나무가 빚어내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그 연결망의 일부에 속한다. 솟대는 나무가 새로 변신한 경우다. 물론 나무를 깎고 다듬어 만든 새는 날지 못한 채 허공에 붙박이로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새를 흉내 내던 내 생각이 먼 곳을 탐할 때 / 나무를 잘라 새의 형상을 꺼낸다’라는 구절에 따르면 솟대는 나무에 숨은 새의 형상을 꺼내준 것이다. 나무를 깎아 솟대를 만들어 세우고,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솟대의 울음은 제 본향을 잃은 나무의 울음이다. 아마도 ‘뿌리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새가 나뭇가지 위에 와서 운다’(「솟대」)라는 구절은 그런 생각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리라.”

“조경선의 시는 나무의 생태적 가치보다는 나무라는 향일성 현존의 형상과 그 내적 본성에 더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시적 질료로 삼는다. 그는 제 시각과 촉각을 매개로 나무를 깎고 다듬은 사이 나무의 비밀스럽고 내면적인 세계와의 접속을 이루고 범속한 트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나무의 삶은 거의 내적 침묵으로 이루어진다. 나무의 삶이 도달한 장엄함은 곧 깊은 침묵의 장엄함이다. 그런 까닭에 나무의 수사학은 침묵의 수사학이다. 조경선의 시가 낳은 나무의 수사학은 생태시가 아니라 범속한 트임의 시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는 왜 나무를 노래했을까? 그에게 나무가 가장 친숙한 대상이다. 나무와 인간은 생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다. 활엽의 나무는 가지에 매달린 나뭇잎을 언제 떨구고 겨울을 맞아야 할지를 안다. 나무는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의 기억은 세대를 이어 계승’되고, ‘뿌리와 잔가지는 빛, 중력, 열, 무기물을 기억한다.’ 나무는 살아 있는 제 기억을 말 없는 말로 시인에게 건넨다. 조경선은 상상력으로 그 나무의 전언을, 나무의 노래를 인류 종족의 기억인 듯 받아 적는다.”

장석주 시인의 평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조경선의 시는 나무를 위한, 나무에 의한, 나무의 시다”라는 얘기일 것이다.

이번 시집의 맨 앞에 배치된 시 「각刻」은 따라서 이번 시집 전체를 함축하고 있다 하겠다.

꽃은 피는데 내가 살지 않은 봄이 온다
나는 지상에서 나무 깎는 노인
나무들은 우뚝 나무로만 서서 한 생을 탕진하는데
우듬지만이 까마득하다
둥지 잃은 새들이 잘린 그루터기에 맴돌아도
나무가 나에게 걸어오는 시간 따윈 묻지 않는다
저 깊숙한 울음까지 새길 수 있을까
환지통을 참으며 나무가 말라갈 때
바람이 무딘 손금을 부추긴다

나무가 모르는 방향에서 칼을 고른다
첫 날刀은 표피만 살짝 건드려야 한다
작은 숨소리만 들려도 칼을 뱉어내니
이겨내선 안 된다
무중력 상태까지 나를 놓치며 결을 따라 흘러야 한다
깎아내면 깎아낼수록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나무의 본색本色
그때 나무가 칼을 선택한다
살을 내주며 나무가 나를 길들인다
모르는 형상形象 안에 칼은 갇히고
끝내 어떤 대답도 듣지 못한다
나무의 얼굴을 꺼내며 없는 봄을 탕진한다
― 「각刻」 부분

첫 시집의 표제시 「목력木歷」에서 두 번째 시집의 시 「각刻」에 이르기까지 그는 여전히 나무-그에게 나무는 자연과 다름 아닐 것이다-와 함께하고 있다. 그는 시집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하고 있고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의 이런 성찰과 질문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때로는 얼룩을 살피느라 하늘도 무겁다
각刻


솟대
개가 물어뜯은 시집
칠 일째 칼날
붉은 열매
상량上樑
나무의 블랙홀
통증
나이테에게
풀의 날을 보다
종이의 나이
겨울 숲
해빙기
신발의 관계학
습濕

2부. 살아 있는 슬픔은 살기 위해 침묵을 하고
간격
간격 2
겨울 이불
무명의 돌탑
두더지
바람의 족적
쐐기를 박다
속수무책
뒷모습
방석
변죽
고립
호모에렉투스의 그늘
처서로 가는 길
비 오는 날의 무의식


3부. 새들은 새벽별로 뛴다
인형공장 X파일
추억의 볼펜
라디오 에세이
바겐세일
소나기
호명呼名
종이 분쇄기

책 랩버전
친애하는 우체부
서리는 햇볕과 무슨 이야기를 할까
땅콩, 나를 깨무는 일
반갑소
글피
목장갑
샐러리맨 ― 비누

4부. 마른 나뭇가지, 너는 나무로 마지막 꽃이니
미륵
대나무
간벌
부식腐蝕

씨앗의 재발견
이중문

타일이 깨지는 방향

아궁이 앞에 모인 풍문
오만 앞에 비틀거리는 변명들
살얼음 앞에
줄자
종이의 나이 2
휘파람새 울 때면
세상에서 가장 긴 시

해설 _ 나무의 시 ․ 장석주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경기 고양에서 태어났다. 2012년 『포엠포엠』으로 시, 201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시조 등단. 시집으로 『목력』이 있다. 제6회 천강문학상, 제15회 시흥문학상, 제10회 김만중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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