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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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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고병권
  • 출판사 : 천년의상상
  • 발행 : 2021년 04월 06일
  • 쪽수 : 192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9041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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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 ‘시초축적’, 피와 불의 문자들로 기록된 연대기
― 마침내 만난 『자본』의 프리퀄, 그 핏빛 역사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하는 <북클럽『자본』>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열두 번째 책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가 출간되었다. 2018년 시작한 시리즈의 마지막 책을 3년여의 여정 끝에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 12권에서 저자 고병권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I권의 마지막 부분, 즉 제7편의 제24장 “소위 시초축적”과 제25장 “근대 식민이론”을 독자들과 함께 읽는다.

이 책은 말하자면 시리즈의 이전 책들(1~11권)이 다룬 내용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다. 11권까지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전제하고 내용을 펼친 것이라면, 이번 12권은 그 전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다룬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사’(前史)를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있기 전에, 혹은 그것이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던 것인가.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저자는 자본이란 곧 ‘잉여가치를 낳는 가치’임을 말해왔다. 그런데 ‘잉여가치’가 존재하려면 그것을 낳는 가치가 ‘먼저’ 주어져야 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시작되려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축적된 자본(일정 규모 이상의 가치량)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작하는 자본’이 없다면 자본의 순환 운동은 ‘시작’될 수 없다. ‘자본의 순환’ 이전에 존재하는 ‘시초축적’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제24장의 제목을 보면 마르크스가 ‘시초축적’이라는 말 앞에 ‘소위’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개할 내용이 ‘사람들이 말하는’ 바로 그런 의미의 ‘시초축적’이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겁니다. ‘도대체 자본주의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된 거지?’ 나는 마르크스가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제24장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자본주의)의 ‘역사적 등장’에 대해 말하려고요. - 본문 30쪽, <1장 “수치스러운 기원”>에서

‘처음의 자본과 처음의 자본가’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우리는 시리즈의 이전 책들을 통해 ‘노동력’이라는 특별한 상품이 없다면 자본 역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폐와 상품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저절로 자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화폐와 상품이 자본으로 변신하려면 ‘노동력’이 시장에 ‘상품으로서’ 나와야 한다.

그런데 노동력이 시장에 나오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저자 고병권의 분석에 따르면, 그중 하나는 노동자의 ‘신분 해방’이다. 즉 노동자가 자기 노동력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노동자의 ‘빈곤’이다. 즉 노동자가 생활수단과 생산수단을 상실해버려 더는 노동력을 팔지 않고서는 살길이 없어야만 한다.

이 책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에서 저자 고병권은 이른바 ‘시초축적기’에 자본의 탄생에 필수불가결한 상품인 노동력이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추적한다. 부르주아 역사가들은 이 시기에 관해 말할 때 노동자들이 농노적 예속이나 길드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다는 점만을 강조하지만, 마르크스는 그 자유의 이면, 즉 어떻게 해서 다수의 사람이 노동력 판매 외에는 살길이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참혹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이러한 수탈의 역사는 피와 불의 문자들로 인류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2.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의 탄생
― ‘노동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대다수 인구의 프롤레타리아화”가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 결정적 사건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저자 고병권은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한 용어, ‘포겔프라이’(vogelfreie)에 주목한다.

본래 ‘포겔프라이’라는 말은 새(Vogel)처럼 자유롭다(frei)는 뜻입니다. 어디에도 묶여 있지 않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시초축적기에 즈음하여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아무런 권리도 없는’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생겨났습니다. 사람을 처형한 후 ‘새들의 먹이로 내던지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이 표현에서 포겔프라이의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존재, 법적 권리가 없어 무차별적 폭력에 노출된 존재를 가리킬 때도 이 말을 썼습니다. - 본문 39쪽, <1장 “노동자의 탄생 ①―공유지 약탈과 인간 청소”에서>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용어 ‘포겔프라이’는 이처럼 ‘해방이 상실로 나타난 것’ 혹은 ‘상실의 형태로 해방이 이루어진 것’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다. 즉 ‘포겔프라이’는 기존의 봉건적 예속에서 벗어난 존재(새처럼 자유롭게 나는 존재)이자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새 먹이로 내던져진 존재)라는 의미를 다 갖고 있다. 사실 속박에서 벗어난 인간은 발가벗겨진 인간이기도 한 것이다.

인격을 부인당한 노예나 농노의 처지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온전한 인격을 가진 인간이 출현해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무런 권리도 없이, 아무런 보장도 없이, 오로지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 남은 인간이 ‘시초축적기’에 등장한다. 저자 고병권은 “이때의 인간이 가장 위험한 처지의 인간”이며, 바로 이 시기에 “인간으로서의 생존이 가장 위태로운 순간”을 맞게 된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기초를 만들어낸 변혁의 서막은 1470년경부터 1500년대 초의 수십 년 동안” 일어났다고 말한다. 이 시기에 다수의 농민이 자신들이 보유하던 토지를 잃고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해 ‘대량의 인간대중’이 노동‘시장’으로 내던져졌다. 나라마다 시기와 양상은 다르지만 세계 곳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울타리를 두른다’라는 뜻의 ‘인클로저’인데, 울타리 하나 두르는 것이 무슨 큰일일까 싶지만 이 울타리야말로 중세 농촌의 사회형태가 해체되었다는 징표였다.

사실 중세에는 ‘관습’의 힘이 상당히 강했으며, 제아무리 영주라 해도 관습을 무시하고 농민들의 땅을 제 마음대로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랬던 영주들이 어찌하여 돌변해 농민들의 토지를 앗아간 것일까. 마르크스는 봉건귀족 자체의 구성이 바뀌었음을 지적했다. 영국의 경우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으로 귀족들이 큰 타격을 받아 전쟁의 결과로 다수 귀족이 피살되고 가문들이 몰락했다. 남은 귀족마저 경제적 변화, 특히 물가 상승에 대처하지 못하자 상인 부르주아들이 이 빈틈을 파고들어 돈의 힘을 이용해 신분을 끌어올렸고 땅을 사들였다. 그리하여 ‘땅의 의미’ 자체가 달라졌다. 땅은 이제 영주와 농민의 공동체가 아닌, 상품의 생산수단이자 사유재산이 되었다.

그렇다면 신분 해방을 이룬 농민들은, 그 인간대중은 어디로 향해야 했을까. 저자는 말한다. 해방된 농민이 곧바로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시초축적기는 아직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토대가 구축된 때가 아니며, 봉건제 해체와 더불어 출현한 ‘인간대중’의 운명 또한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신분제에서 풀려난 다수의 인간들이 모두 노동자가 되어야 했던 것은 아니다.

신분 해방 자체에는 노동력 판매라는 뜻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땅의 속박, 영주에 대한 예속에서 풀려난 사람이 노동시장을 향해, 자본가에 대한 예속을 향해 걸어가야 할 내적 이유는 없습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내적 이유가 없다는 것 말입니다. 나는 마르크스가 앞서의 문장에서 언급한 인간의 두 상태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대중인 상태와 노동시장에 던져진 상태, 즉 ‘대중으로서의 인간’과 ‘상품으로서의 인간(노동력 판매자)’ 말입니다. 이것을 두 가지 사건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많은 사람이 땅에서 쫓겨나 인간대중으로서 쏟아져 나온 사건과, 이 인간대중이 노동시장으로 내몰린 사건은 다른 사건입니다. - 본문 43쪽, <1장 “노동자의 탄생 ①―공유지 약탈과 인간 청소”에서>

저자 고병권에 따르면, 마르크스가 ‘토지 수탈’이라는 사건에서 중요하게 본 것은 ‘추방’이다. 농사 짓던 땅에 울타리를 치고 양을 키웠다는 사실보다, 그 땅에서 대규모의 인구가 추방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토지의 수탈’은 ‘사유지 청소’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사유지에서 무엇을 쓸어냈는가. 바로 ‘인간’이었다. 15세기 말에서 18세기 말까지 지속된 인클로저는 한마디로 ‘인간 청소’였다.

결국 ‘노동자’는 두 단계를 거쳐 탄생했다. 하나는 토지의 폭력적 약탈(인클로저) 과정에서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가 대규모로 창출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의 규율’(피의 입법)을 통해 이들 프롤레타리아가 ‘임금노동자’로 전환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은 국가폭력이라는 외적 힘이 없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르크스는 이 시초축적기에 일어난 노동착취와 자본축적이 경제학적 방식이 아니라 ‘경찰적 방식’, 다시 말해 치안(공안)의 방식으로 이룩된 것임을 강조한다. ‘시초축적기’는 경찰학이 곧 경제학인 시대였던 것이다.

시초축적기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토대를 구축하던 시기라고 한다면 이때의 폭력을 일종의 토대 폭력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존의 습속, 본성, 자연을 지우고 새로운 습속, 본성, 자연이 생겨날 기반을 조성한 거죠. 나중에는 새로운 것이 알아서 자라나겠지만 처음에는 기존의 것을 길들여야 합니다.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법률”의 용도, 즉 토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채찍질하고 불에 달군 쇠로 낙인찍으며, 고문을 가하는 폭력의 용도가 여기 있습니다. - 본문 85쪽, <2장 노동자의 탄생 ②―피의 입법>

3. 마침내 자본이 태어났다, 피와 오물을 흘리며
― 자본가의 탄생과 시초축적을 도운 네 가지 시스템


저자 고병권은 시초축적기에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어떻게 ‘노동자’로 전락했는지를 우선 다룬 뒤 곧이어 ‘자본가의 유래’를 다룬다. 이때 그는 마르크스가 ‘자본가들의 유래’를 별도로 물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며 이야기를 펼친다. 즉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유래’와 ‘노동자의 유래’를 별개로 봤다. 고병권은 말한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입자와 반입자처럼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노동자가 정립되면서 그 반정립으로 자본가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화폐의 흐름(화폐대중)은 노동의 흐름(인간대중)과는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생겨났다는 이야기다.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은 한배에서 생겨난 적대적 쌍둥이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배에서 생겨나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적대적인 하나의 관계(자본관계) 속으로 말려들어간 존재다.

또한 자본가들의 유래 또한 단일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농업자본가, 산업자본가, 금융자본가 등은 서로 다른 사건 속에서, 서로 다른 경로로 형성되었으며, 동일한 산업자본가라도 그 유래는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자본 내지 자본가의 ‘탄생’은 다른 면에서는 ‘변신’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새로운 존재의 출현은 ‘무’에서 ‘유’, 즉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배치의 변화로 기존의 어떤 것이 전혀 다른 것으로 변신한 것일 수 있다는 의미다.

마르크스는 그중 산업자본가의 탄생 과정을 더 자세히 기술했는데, 그것이 당시의 생산양식 변동을 매우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산업자본가의 탄생을 가능케 한 ‘시초축적’은 개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변동, 사회적 배치를 뒤흔드는 혁명적 사건들을 필요로 했다. 그 사건들이란 바로 ‘발견, 약탈, 섬멸, 사냥, 생매장, 노예화’다.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자들이 미화하거나 생략하는 이 끔찍한 이야기가 없다면 산업자본의 시초축적은 해명될 수 없다면서, 마르크스는 자본의 시초축적을 돕는 산파 역할을 한 네 가지 시스템, 곧 ‘식민시스템’, ‘국채시스템’, ‘조세시스템’, ‘보호무역시스템’을 언급한다.

이 시초축적의 계기들은 “시간 순으로 에스파냐,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에서 고르게 나타났”습니다. 이 순서는 자본주의 이행 과정에서 패권을 차지한 순서입니다. 대체로 15~16세기는 에스파냐의 세기, 17세기는 네덜란드의 세기, 18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영국의 세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영국이 가장 체계적이었지요. 마르크스에 따르면 17세기 말 영국은 “식민시스템, 국채시스템, 근대적 조세시스템, 보호무역시스템 등을 통해” 시초축적의 “계기들을 체계적으로 통합”했습니다. 이 시스템들을 체계적으로 갖춘 나라는 당시 영국밖에 없었습니다. 그 덕분에 산업자본주의를 주도하는 나라가 되었지요. - 본문 119쪽, <4장 “자본가의 탄생”>

4. 끔찍한 창세기, 즐거운 종말론
― 깨져버린 자본가의 망상과 자본주의의 운명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며” 이 세상에 태어났다. 보통 새로 아이가 태어나면 그 탄생은 마땅히 축복을 받는다. 그러나 학살, 살인, 강도, 약탈을 배경으로 탄생한 괴물의 탄생이라면, 그것을 축복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자본』 제24장 제7절을 괴물로 태어난 자본의 운명에 대한 ‘저주문’으로 쓴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자본의 시초축적 즉 자본의 역사적 탄생은 결국 어디에 이를 것인가?”

자본주의의 운명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을 요약하면 이렇다. 자본주의는 직접생산자의 재산에 대한 수탈로부터 시작되었다(자본의 탄생). “자본주의적 취득양식(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은 자기 노동에 기초한 개인적(개별적)이고 사적인 소유에 대한 첫 번째 부정”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생산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 즉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대한 부정을 낳는다. “부정의 부정”이다.

제7절의 끝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운명을 ‘부정의 부정’이라는 변증법적 도식으로 표현하는데요. 이것을 인류 역사의 경로를 제시하는 역사적 일반 도식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역사라기보다는 원리에 관한 것입니다. 자본 성장의 원리를 운명의 형태로 표현한 것뿐입니다. 물론 이 원리는 멸망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성장하는 원리로 멸망에 이를 테니까요. - 본문 156쪽, <5장 “자본의 운명>

말하자면, 자본이 규모를 키우기 위해 발전시켰던 모든 요소가 어느 순간부터 자본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자본은 생산수단을 집중시키고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생산력의 무제한적 발전은 어느 순간 생산의 제한된 목적, 즉 자본의 증식이라는 목적과 충돌하기 시작한다. 사회적 생산력(사회의 지적·과학적·예술적 능력)의 발전에 자본주의가 방해물로 인식되는 것이다.

또한 생산의 사회성(생산수단의 집중 및 공유와 노동의 사회화)이 강화되는 것과 더불어 소유의 사회성도 강화된다. 즉 신용시스템의 발전은 소유의 새로운 형태를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가는데, 자본주의가 이 시스템을 사회적 부를 소수의 사유재산으로 만드는 방편으로만 이용하는 것이 문제로 부각된다.

게다가 축적의 규모가 커지면서 피수탈자의 규모가 커지는데, 이때 피수탈자는 양적으로만 늘어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 자체의 메커니즘을 통해 훈련되고 결합되며 조직된” 존재들이다. 자본의 착취 메커니즘 속에서 증식하며 더 강력해진 존재들인 것이다. 이때 역사적 복수의 규칙 같은 것이 작동할 수 있다. 역사에서 가해자 즉 수탈자는 자신에게 복수할 존재들을 스스로 키우고 그들이 사용할 무기까지 만들어준다.

자본은 그때로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으리라는 것이 마르크스의 통찰이다. 종말의 때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면 바로 그 순간이 종말의 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축적의 규모가 커질수록 남은 시간은 더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그때가 닥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마르크스는 말한다. “이 시점에 자본주의적 외피는 폭파된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시대는 조종(弔鐘)을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

마르크스는 『자본』 첫 장에서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독특한 사회형태인지 이야기했다. 정치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인간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사회형태이며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오래 지속될 사회형태인 것처럼 말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제 『자본』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 마르크스는 그 점을 재차 강조한다. 자본주의는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는 사회형태가 아니라고 말이다. 자본주의는 매우 인위적인, 더 정확히 말하면 매우 폭력적인 개입을 통해서만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목차

저자의 말 ―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1 수치스러운 기원
○자본의 유치한 ‘창세기’ ○어떤 번역어를 택할 것인가―‘원시적 축적’, ‘본원적 축적’, ‘시초축적’ ○형성의 역사와 현재의 역사는 다르다

2 노동자의 탄생 ①――공유지 약탈과 인간 청소
○포겔프라이―새처럼 자유롭게 ○인간대중에서 인간재료로 ○중세의 장원에는 울타리가 없었다 ○인간을 잡아먹는 양이 나타났다 ○종교개혁 후 인민들은 더 가난해졌다 ○국유지와 공유지의 약탈 ○정치경제학자들의 묵인, ‘신성한 소유권’의 위선 ○‘함께’에 대한 기억 ○땅에서 인간을 쓸어내기―스코틀랜드의 경우

3 노동자의 탄생 ②――피의 입법
○형벌을 통한 비노동의 범죄화 ○경제 외적 폭력의 필요 ○계급입법―임금규제법과 단결금지법

4 자본가의 탄생
○자본가는 어디서 왔는가 ○농업자본가의 탄생 ○시장에 풀려나온 것들―생활수단과 생산수단의 상품화 ○자본주의적 ‘국내시장’의 형성 ○산업자본가의 탄생 ○시초축적을 도운 네 가지 시스템 ○국가, 자본의 탄생을 도운 산파 ○시초축적기의 폭력, 야만 위에 건설된 문명 ○마침내 ‘자본’이 태어났다, 피와 오물을 흘리며

5 자본의 운명
○끔찍한 창세기―자본의 비극적 탄생 ○멈출 수 없는 운명―“수탈자가 수탈당한다” ○즐거운 종말론―자본의 희극적 죽음

6 식민지에서 드러난 진실
○식민화 이론가 웨이크필드가 들려주는 이야기 ○깨져버린 자본가의 망상 ○웨이크필드가 제안한 일석이조의 기술, ‘체계적 식민화’ ○태초에 수탈이 있었다

에필로그

본문중에서

기원을 신성시하는 것은 왕국들의 오래된 책략입니다. 기원을 꾸미는 것이 현재를 꾸미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왕국이 기원에서 유래했다기보다 기원이 왕국에서 유래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겁니다. 왕국의 기원은 대개 왕국의 발명품입니다. 우리는 흔히 현재가 미래를 만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도 만들어갑니다. - 본문 20쪽

대대손손 베짱이인 사람들의 선조가 개미였다는 말을 믿어야 할까요. 대대손손 개미인 사람들이 빈곤과 산재에 시달리는 이유가 그 선조가 베짱이였기 때문이라는 말을 믿어야 할까요. 이런 게 자본가와 노동자가 세상에 출현한 이야기라고요? - 본문 24쪽

마르크스는 당시 영국의 봉건 체제는 ‘인민의 부’는 허용했지만 ‘자본의 부’는 아직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자본의 부’, 스미스의 용어로 말하자면 ‘국민의 부’(Wealth of the Nation)를 허락하지 않았기에 인민의 풍요, 인민의 부가 가능했다는 거죠. - 본문 52쪽

공유지에 대한 기억은 중요합니다. 공유지는 내 땅도 아니고 남의 땅도 아닙니다. 공유지는 누구도 소유하지 않는 땅입니다. 그것은 ‘함께’ 이용하는 땅, ‘함께’ 누리는 땅입니다. 공유지를 경작할 때 경작자는 공유지의 기반이자 공유지를 통해 표현되는 인간적 유대 즉 공동체를 체험하고 누립니다. 말하자면 공유지는 ‘함께’ 누리는 땅이자 ‘함께’를 누리는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본문 69쪽

마르크스에 따르면 영국에서 ‘피의 입법’은 헨리 7세 때부터 나타납니다. 헨리 7세는 한편으로 인클로저를 막는 법을 제정했지만 다른 한편 부랑자에 대한 피의 입법도 제정했습니다. 헨리 8세 치하인 1530년에는 ‘거지면허’가 발급되었습니다. 일종의 부랑자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너무 많거나 몸이 성하지 않아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경우 발급됩니다. - 본문 82쪽

이행의 내적 이유가 없을 때 필요한 것이 폭력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으면 폭력이 이유가 됩니다. 물론 이 시기의 잔인한 형벌이 꼭 노동자의 탄생만을 겨냥하지는 않았겠지요. 이 시기는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근대국가의 형성기이기도 하니까요. 근대적 노동자의 탄생만큼이나 근대적 신민의 탄생이 중요한 때였습니다. 부랑자에 관한 형벌에는 두 측면이 같이 맞물려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 본문 85쪽

예전 농민들은 먹을 것을 직접 기르고 입을 것을 직접 짰습니다. 생활수단을 직접 생산하고 직접 소비했지요. 차지농장의 농업노동자도, 매뉴팩처의 공업노동자도 처음의 노동형태는 예전 농민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예전 농민들처럼 먹을 것을 기르고 입을 것을 짰지요. 하지만 노동의 성격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노동’입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물건을 타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 대가로 임금을 받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임금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합니다. 이 시스템이 돌아가려면 임금으로 생활수단을 구입할 수 있는 시장이 열려야 합니다. 그런 시장이 바로 이 시기에 열린 겁니다. - 본문 105쪽

자본주의의 유년기에는 여기저기서 다양한 유형의 자본가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농촌에 차지농업가가 있었다면 도시에는 소규모 제조업자들이 있었지요. 길드의 장인이나 독립수공업자, 심지어 임금노동자들 중에도 ‘소자본가’가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돈벌이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눈을 뜬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이런 소자본가들의 축적,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달팽이걸음’으로는 “15세기 말 지리상의 대발견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시장의 상업적 요구들에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 본문 115쪽

식민시스템은 단지 부만 늘려준 게 아닙니다. 유럽 내에서 자본축적을 도울 다른 시스템들의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식민시스템 덕분에 유럽의 매뉴팩처들은 거대하고도 확실한 판매 시장을 얻었습니다. 산업이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한 시대에 식민시스템이 산업을 위한 온실이 되어준 셈이지요. 이뿐이 아닙니다. 식민시스템은 상업과 항해를 발전시켰고, 무엇보다 독점 무역회사에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시스템 즉 신용제도의 발전을 가져왔지요. - 본문 123쪽

노예무역은 돈만 벌게 해준 게 아니라 ‘대담한 모험정신’을 키워주었다는 에이킨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예무역은 자본의 시초축적이었을 뿐 아니라 자본가정신의 시초축적이었다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돈이 된다면 어떤 끔찍한 범죄도 용감한 모험으로 간주하는 정신이 탄생했다고요. 그리고 이런 정신이 함양된 자본가라면 다음 세기에 공장에서 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리는 게 이상할 것도 없겠지요. - 본문 140쪽

시초축적기 리버풀은 사람을 상품으로 판매하고 노예로 부리게 한 사업 덕분에 번영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상품으로 판매하고 노예로 부리는 일은 이 시기 리버풀만이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사회의 항구적 기초입니다. 사람을 상품화하고 노예로 부리는 형식이 달라진 것뿐이지요. 이를테면 19세기 영국의 아동노동자는 17세기 네덜란드인들이 비밀 감옥에 가두었다가 팔아넘긴 어린 노예의 문명화된 형태입니다. 19세기 영국 면직 공장에서 일하는 임금노동자는 그 공장에 납품할 면화를 따는 미국 흑인노예의 문명화된 형태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미국의 흑인 노예는 영국 백인 노동자의 노골적 진실, 혹독한 진실, 야만적 진실인 것이지요. - 본문 142쪽

자본주의가 사적 소유를 원칙으로 하는 사회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따르면 똑같이 사적 소유를 원칙으로 삼는다 해도 소유주가 직접생산자(노동하는 자)인가 아닌가에 따라 사회형태는 크게 달라집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사적 소유, 자본의 증식(잉여가치 취득)을 보장하는 사적 소유는 노동하지 않는 자, 직접 생산하지 않는 자의 사적 소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본문 150~151쪽

자본가는 본국에서 무엇을 챙겨 오지 못했던가. 마르크스에 따르면 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자본이란 사물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필은 본국에서 사물과 사람은 챙겨 왔지만 관계는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식민지에는 자본관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본관계가 존재할 수 없다면 자본도 존재할 수 없지요. - 본문 167쪽

노골적 노예제가 불가능한 시대에 타인의 노동을 내 것처럼 쓸 수 있는 것은 노동력이 상품화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과연 사람들이 자기 노동력을 상품으로 내놓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제발 나에게 일을 시켜달라고, 나를 부려달라고, 나는 당신의 지시를 받으며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당신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자연에서 생겨날 수 있을까요. 자기 포기와 자기 수탈에 대한 갈망이 인간의 본성일 수 있을까요. - 본문 180쪽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4종
판매수 644권

서울대에서 화학을 공부했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사회사상과 사회운동에 늘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왔다. 오랫동안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생활했고 지금은 노들장애학궁리소 회원이다. 그동안 [화폐, 마법의 사중주], [언더그라운드 니체], [다이너마이트 니체], [생각한다는 것],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1991년에 처음 우리말 번역본으로 읽었다. 그 시절 한국은 민주주의 열망이 불붙던 시기다. 어느덧 30여 년이 지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아직 달라지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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