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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암스트롱 : 흑인·연예인·예술가·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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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탄생 120주년·타계 50주년 기념 국내 첫 루이 암스트롱 전기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재즈 평론가가 소개하는 새치모
국내 대표 재즈 평론가 황덕호의 번역, 알차고 풍부한 부록


“루이가 연주하지 않았다면 나팔로 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알아? 심지어 현대적인 것도 말이야.” 마일스 데이비스
“나는 루이 암스트롱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부자가 되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다.” 듀크 엘링턴
“나는 암스트롱을 미국의 바흐로 생각한다. 그것은 미국 문화의 발전 속에서 그가 차지하는 유사한 위치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전하는 유사한 환희, 사랑, 그리고 황홀감 때문이다.” 저자

What a Wonderful World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요
루이 암스트롱의 생애와 음악


우스꽝스러운 얼굴 표정과 자갈 굴러가는 것 같은 목소리로 대표되는 가수. 혹은 ‘What a Wonderful World(얼마나 멋진 세상인가요)’의 첫 소절이 흐를 때면 저절로 연상되는 인물. 다름 아닌 루이 암스트롱이다. 1901년에 태어난 암스트롱의 삶은 재즈의 시작과 그 궤를 함께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초창기 인물로서 그는 지금의 재즈를 구성하는 여러 개념(스캣 싱잉, 연주자들의 솔로 연주 등)을 처음으로 시도하고 발전시킨 선구자였다. 한마디로 재즈와 미국 음악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음악인으로, 그의 생애와 음악을 다룬 전기가 이제야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다.
《재즈의 전망Visions of Jazz》이라는 저서로 미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s)을 받은 저자는 특별히 이번 책을 위해 한국 독자들에게 글을 보내왔다. 그의 한국어판 서문은 1963년 4월 8일 월요일 밤, 서울 워커힐 호텔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이자 유일하게 한국을 방문했던 루이 암스트롱과 그의 올스타스의 공연을 상기시키며 시작하여 자신의 열다섯 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음반을 통해 암스트롱을 향한 사랑이 시작된 순간, 대학에 진학하여 학교 축제에 그를 초대했던 영광, 그에게 헌정된 1970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비를 맞으며 얼어붙은 채로 그의 공연을 관람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 책이 자신에게 선사한 특별한 경험을 나눈다. 그것은 바로 자료 조사를 마친 뒤 단 3주 만에 꿈을 꾼 것처럼 원고를 완성한 마술적 경험에 대한 얘기다. 저자가 “물 흐르듯이” 글을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오랜 연구와 철저한 조사가 바탕이 되어서였겠지만 무엇보다 암스트롱에 대한 관심과 존경, 사랑이 가장 큰 동력이었으리라.
기딘스는 암스트롱을 미국의 바흐라고 말한다. 바흐의 곡에 흐르는 광채와 경이로운 힘이 암스트롱의 음악에서도 느껴지며, 그 음악에는 천재들만이 제시할 수 있는 전망과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88년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되었을 때 암스트롱의 업적과 관련해 저자가 제시하는 주장들은 논쟁을 일으켰다. 시대가 바뀌고 시각도 바뀌었다. 그의 주장은 이제 음악계 안팎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진다. 오늘날 한국의 독자와 재즈 팬들은 우스꽝스러운 얼굴 표정과 걸걸한 목소리를 뛰어넘어 암스트롱과 그의 음악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와, 그의 글을 우리말로 옮긴 황덕호 재즈 평론가가 동시에 던지는 질문이다.

연예인이 된 예술가, 예술가가 된 연예인

아마도 암스트롱을 둘러싼 가장 큰 논쟁은 그가 연예인인가 예술가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음색과 선율에 순응하는 순수함을 지지하고 완성했으며, 스윙이라고 알려진 리드미컬한 걸음걸이를 창안했고, 다선율의 민속음악을 독주자들을 위한 예술로 전환했으며, 블루스 조성이 표현할 수 있는 진중함을 만들었고, 화성에 기초한 즉흥 연주의 내구성을 증명해 보였다.” “즉흥 연주는 대가적 기교의 가장 높은 단계가 대단히 엄격하게 훈련된 선율 구조, 그리고 대단히 즉흥적인 감정 표현과 결합하여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에게서 발견된다고 인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드문 일이 아닌가? 버질 톰슨(작곡가·음악 평론가)”
하지만 동시에 “팝 넘버를 연주한다는 이유로, 스윙 밴드의 반주에 연주한다는 이유로, 대중 스타들과 출연한다는 이유로, 스탠더드가 된 레퍼토리를 고수한다는 이유로, 유랑극단의 스타일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너저분한 농담을 한다는 이유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는 이유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이유로 비난을 들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암스트롱의 이런 양면적인 모습이 “예술가로서 정서적 진중함을 지녔으면서도 연예인으로서 공동체의 흥을 돋을 줄 아는 균형 잡힌 능력”이라고 본다. “자부심으로 가득 찬 탁월함”이 “점잖지 못한 위트”와 균형을 이루는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오로지 행복을 위하여” 활동한다는 암스트롱이 “우리가 상상해온 예술의 민주화를 훌륭하게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암스트롱의 전성기로 널리 인정받는 1928년의 녹음 중에서 기딘스는 ‘저것처럼 조이네요Tight Like That’를 예로 들며, 그의 안에 내재한 연예인과 예술가의 모습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과연 어떤 종류의 예술가가 자신의 무대에서 육체의 즐거움에 관한 저속한 농담을 양념처럼 섞겠는가? 과연 어떤 종류의 연예인이 인간 희극의 예리한 슬픔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겠는가?”

흑인으로 태어나 흑인으로 살다 떠나다

저자에 따르면 암스트롱은 지금까지 알려진 재즈 음악가 가운데 다양한 주제로 가장 많은 글을 써온 작가이기도 하다. 회고록과 매체 기고문 외에도 수백 통의 편지글이 있고, 이 책에서 저자는 미발표된 암스트롱의 원고를 통해 음악인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 암스트롱의 삶 역시 들여다본다. 거기에는 검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던 그 당시 뉴올리언스 ‘흑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비록 철자와 문법에 관한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을지언정 암스트롱은 늘 사전을 갖고 다녔고 그의 글에는 음악에서처럼 직접 창조해낸 은어가 곳곳에 스미어 있다. 생계를 위해 “생선을 팔아야만”(매춘) 했을지도 모를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 약자로서 서로 단결하지 못하는 동포에 대한 안타까움, 어릴 적 한 유대인 가족의 도움으로 첫 나팔을 갖게 된 경험 등이 자신만의 언어로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음악으로 유명인이 되고 나서도 암스트롱은 동포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흑인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 앞에서 그는 대통령(아이젠하워)을 향해 “두 얼굴”의 인간이라며 비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정부에 대한 반발로 이미 예정된 투어를 취소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때로는 이와 같은 거친 표현과 방식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그는 FBI의 요주의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음악인이기 이전에 ‘흑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전 세계적인 인기와 부를 거머쥐며 백만장자가 된 그가 생을 마감한 곳은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모여 있는 부자 동네가 아닌, 노동 계급 사람들이 모여 사는 뉴욕의 한 작은 동네였다.

재즈 역사상 가장 창조적이며 혁신적인 인물

뉴올리언스를 출발점으로 미시시피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페이트 매러블의 유람선 밴드, 시카고의 킹 올리버 밴드를 거쳐 뉴욕의 플레처 헨더슨 밴드에 입단해 활동을 이어간 암스트롱의 여정은 말 그대로 재즈의 역사와 함께 흘러간다. 그와 함께 활동한 단원들은 ‘pp’(피아니시모)를 ‘pound plenty’(매우 세게)로 이해한 암스트롱을 우습게 보았지만 그가 구사하는 리듬, 그만의 독창적인 해석과 감성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 쩔쩔 맸다. 심지어 그는 조야한 작품조차 황금으로 변신시킬 줄 알았다. 그것은 타고난 천재의 재능이었다. 그렇게 재즈는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즉흥 연주의 표본을 완성하고, 스윙을 만들어내고, 그 자체로 독주자들의 예술이 되는 길을 마련했다. 흔히 천재들이 그러하듯 루이 역시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루이 암스트롱은 연주자이며 가수이고, 밴드 리더이자 코미디언이며 댄서이자 배우였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사라지는 것은 없어요. 당신이 여전히 재미있고 멋진 일을 하고 있다면 말이죠. 숨을 쉬고 있는 한 계속 일을 하는 거죠. 그럼요.”

“저는 루이 ‘새치모’ 암스트롱입니다”

“별명으로 불리는 수많은 인물이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역사를 만들었다”라고 암스트롱은 소년원 시절 만난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를 통해 이야기한다. 실제로 많은 재즈 음악인이 그들의 애칭으로 불렸고, 불리고 있으며 암스트롱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의 별명은 ‘새치모Satchmo’였다(이 책의 원제 역시 ‘새치모’다). 두터운 입술을 가진 흑인을 부르는 ‘새치Satch’에서 변형된 이름이다. 그는 자신을 “루이 새치모 암스트롱입니다”라고 소개하곤 했다. ‘입이 큰 녀석’이라는 뜻을 가진, 다소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별명을 사랑했다. 큰 입과 까만 피부는 그의 콤플렉스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신체를 활용해 사람들에게 마음껏 웃음을 줄 수 있었다. 흑인이자 연예인, 예술가이자 천재였던 암스트롱이 1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마침내 우리 곁에 생생하게 다가온다.

추천사

한 위대한 인간과 예술가에 대한 가치 있고 기쁨에 찬 시선.
〈뉴욕타임스 북 리뷰〉

우아하면서도 감동을 준다. 루이 암스트롱에 관한 통찰력 있는 전기이자 그의 음악에 대한 섬세한 감상.
〈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

루이 암스트롱의 천재성과 품격 있는 정신은 모두 보석과도 같은 가치를 지닌다.
〈피플〉

사랑스러운 초상화.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지성과 품격을 지닌 글이다. 기딘스는 재즈의 위대한 혁신가 중 한 사람이었던 인물의 음악을 분석하고 그 생애의 중요한 순간을 아름답게 조명한다.
〈USA 투데이〉

게리 기딘스보다 미국 음악에 관하여 더 훌륭한 문체와 권위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피트 해밀(언론인, 작가)

목차

한국 독자들께
개정판에 부치는 글
서문

1부 연예인이 된 예술가

1 부조리주의자
2 변신의 마술
3 신화적인 탄생
4 디퍼마우스
5 사이드맨
6 핫파이브와 핫세븐
7 1928년

2부 예술가가 된 연예인

1 음악의 표정
2 악마와 짙푸른 바다 사이에서
3 글레이저 씨 그리고 루실
4 보금자리와 태풍
5 비난
6 헬로, 돌리
7 “루이 새치모 암스트롱입니다”

부록
뉴올리언스
음반 목록
참고 문헌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 루이 암스트롱 탄생 120주년
재즈 음악인 소개

본문중에서

1963년 4월 8일 월요일 밤, 루이 암스트롱과 그의 올스타스는 서울 한강 주변에 화려하게 자리 잡은 워커힐 호텔의 개관을 축하하기 위한 2주간의 연주를 시작했다. 새치모의 최초이자, 내가 아는 한 유일한 한국 방문이었던 그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제1, 2차 세계대전의 참전 군인이었고 한국 전쟁 때 미8군 사령부를 지휘하다 사망한 월턴 H. 워커 대장의 이름을 딴 워커힐은 현재 건물 20여 개가 늘어선 복합 시설로, 그 가운데 있는 클로버 클럽은 새치모의 개관 연주회를 꾸렸던 곳이다. 〈스타스 앤드 스트라이프스Stars and Stripes〉에 실린 리뷰에 의하면 이날 공연은 한국군과 미군 고위 장교 800명이 모인 가운데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팝스 입술의 내구성에 관한 어떠한 의심도” 날려버린 공연이었다. _ p.9(‘한국 독자들께’)

이 저서는 루이 암스트롱에 관한 대부분의 책이나 기사와 마찬가지로 그의 영향력, 위치, 역사적 위상을 정의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 그 접근법은 음악 자체에 따르는 비평적 평가와 순수한 즐거움에 길을 내주어야 한다. 우리는 바흐의 음악 때문에 바흐를 사랑하는 것이지 서구 문화의 발전 속에서 그가 맡았던 역사적 역할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암스트롱을 미국의 바흐로 생각한다. 그것은 미국 문화의 발전 속에서 그가 차지하는 유사한 위치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전하는 유사한 환희, 사랑, 그리고 황홀감 때문이다. 그것은 천재와 선지자 들의 전망을 통해서만 세상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해진다는 경건한 암시다. 그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멀리 보고 그들 예술의 확실성을 통해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들이다. _ p.14-15(‘개정판에 부치는 글’)

무대 위에서 절제하지 않는 농담을 쏟아내는 암스트롱으로부터 감탄스러운 트럼펫 연주자 암스트롱을 분리하는 것은 전위예술주의자들(Kulchur)에게 그릇되게 어필하기 위해 한 관대한 예술가를 지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의 진지한 측면을 보여주는 부조리주의자의 유머를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예술가로서 정서적 진중함을 지녔으면서도 연예인으로서 공동체의 흥을 돋울 줄 아는 균형 잡힌 그의 능력은 짐 크로Jim Crow, 집 쿤Zip Coon, ‘올드 댄 터커Ol’ Dan Tucker’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지워낼 수 있었다. 이 이미지들의 자리에 암스트롱은 멋지게 차려입고, 상류층의 삶을 살면서, 교황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백인 전용 정문을 열고 들어와 그 문을 닫지도 않은 채로 그곳을 정기적으로 드나들었던 세계적인 예술가이자 대중 스타로서의 해방된 흑인을 세워놓았다. 미국인들은 암스트롱을 사랑했으며 그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만이 마련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신뢰했다. 그것은 새로운 빛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_ p.35-36(1-1. 부조리주의자)

어떤 사람들은 암스트롱에게 어린 시절이 없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암스트롱은 그 무엇도 가진 적이 없다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연주한 것이 그의 인생의 전부였다. 어린 시절의 결핍은 암스트롱에게 그 흔적을 남겼다. 그는 국제적인 명사가 된 이후에도 리무진 혹은 화려한 접대와 같은 편의 제공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해 다른 음악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공개된 모든 글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시궁창으로부터 삶을 바라보고 그 모든 것을 수용하는 법을 배운 한 인간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_ p.63(1-3. 신화적인 탄생)

어머니는 리버티와 퍼디도에 있는 가까운 이웃 동네에서 살기 위해 우리를 떠나셨다(그곳은 싸구려 스토리빌 구역이다. 그러니까 다른 스토리빌의 창녀들처럼 그들이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메이앤이 생선을 파셨는지(매춘) 난 알 수가 없다. 만약 파셨다 하더라도 그녀는 분명히 남모르게 파셨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이건 혹은 저 밑바닥에서 만나는 사람이건 모두 우리 어머니를 존경했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즐겁게 인사를 건넸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어떤 역경이 닥쳐도 그녀는 정신을 놓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을 겪는 동안 어머니는 자존심을 꺾는 법이 없었다. 그 무엇도 어머니를 자극하지 못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어머니는 해나갔다. 내 생각에 나는 메이앤으로부터 삶의 많은 부분을 물려받은 것 같다.(《삶》) _ p.64(1-3. 신화적인 탄생)

매러블 밴드의 연주를 들었던 젊은 백인 음악인 가운데는 빅스 바이더벡과 제스 스테이시를 꼽을 수 있다. 잭 티가든은 뉴올리언스의 부둣가에서 암스트롱의 연주를 처음 들었다. “갑자기 미시시피강의 흙탕물 건너편에서 높은 음을 내는 코넷의 희미하지만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 그 코넷은 내가 들은 것 가운데 가장 화끈하면서도 달콤하고 순수한 재즈로, 그 밤을 채우고 있었다.” _ p.86-87(1-4. 디퍼마우스)

암스트롱이 뉴욕의 최고 연주자들에게 발한 매력은 아무리 과대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재즈 역사에서 비교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꼽자면 1940년대 찰리 파커만이 모든 종류의 음악인에게 그렇게 넓은 그물을 던졌다. 파커와 마찬가지로 암스트롱 역시 우스운 태도를 지닌 촌스럽고 무지한 시골 소년으로 인식되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 한 편은 그가 리허설 중에 나온 기호 pp를 전혀 몰랐다는 점을 들려준다. 헨더슨은 연주를 멈추고 pp(피아니시모pianissimo, 매우 여리게)가 무슨 뜻인지 루이에게 물었다. 루이가 대답했다. “예, 압니다. 매우 세게(pound plenty)란 뜻입니다.” 하지만 단원들의 웃음은 오래 갈 수 없었다. 그들은 이 촌뜨기의 자극적인 리듬, 블루스 감성, 비할 데 없는 균형 감각에 맞추기 위해 자신들의 스타일을 점검하느라 너무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_ p.100-101(1-5. 사이드맨)

그는 여전히 재즈 역사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인물로 언급된다. 한 움큼 되는 진부한 곡들과 보드빌 스타일의 싸구려 노래들이 불쑥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오케이 시절의 녹음들은 더 이상 구시대 음악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 광채와 경이로운 힘은 바흐의 칸타타만큼이나 결코 감소하지 않았다. 암스트롱으로 인해 재즈는 팝 음악이 지어놓은 한계를 넘어서서 음악을 조망하는 대가적 기악 연주자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고, 루이의 천재성은 때때로 조야한 작품, 전혀 자극을 주지 못하는 연주자들과의 녹음이라는 한계에서부터 녹음 기술과 관악기 연주 양식의 시대적 제약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을 극복했다. _ p.112(1-6. 핫파이브와 핫세븐)

새로운 핫파이브 음반 중 하나는 그 어떤 미국 고전 음악의 영향력보다 더 큰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암스트롱 녹음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분석된 ‘웨스트 엔드 블루스’는 군대의 기상나팔로 시작한다. 대가적 기교의 이 맹렬한 트럼펫 카덴차는 군터 슐러의 말을 빌리자면 “재즈가 기존에 알려진 가장 높은 수준의 음악적 표현들과 경쟁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통지서”였다. 표현이 불가능한 이 통렬한 대목은 명확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무엇으로 남아 있다. 바흐의 〈샤콘 D단조〉를 연주할 수 있는 바이올린 주자는 많지만 암스트롱의 이 아홉 마디 전주를 확실하게 대신할 수 있는 트럼펫 주자가 재즈 안에서든 아니면 밖에서든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_ p.130-131(1-7. 1928년)

“사람들은 나와 내 음악을 사랑하고, 알고 있다시피 나도 그들을 사랑한다. 내가 무대에 오르는 순간, 사람들은 멋진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안다. 나는 그게 보인다.”_ p.139(2-1. 음악의 표정)

제3자가 있을 때 암스트롱이 그를 ‘글레이저 씨’라고 부르기를 고집한 것은 일종의 노예근성을 시사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듀크 스나이더가 그의 자서전에서 시종일관 리키 씨라고 호칭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암스트롱은 글레이저와 함께 일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의견이 맞서면 암스트롱은 고집을 부렸고 글레이저는 결국 물러섰다. 그들 사이에 계속되는 논쟁은 대마와 관련된 것이었다. 잭 브래들리에 의하면 “글레이저가 소리를 질렀고 그러면 루이는 한마디 했다. ‘좆 까.’” _ p.173-174(2-3. 글레이저 씨 그리고 루실)

만년에 루실은 이사 가자고 그를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글레이저의 도움으로 루실은 큰 집과 수영장이 딸린 부동산을 알아보고 그곳을 루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차를 몰고 갔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그런 모습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시스타디움 근처에 사는 것이 좋았다. 비록 그가 메츠 경기에서 미국 국가를 부르도록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실망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아울러 그는 이웃들을 좋아했다. 그와 루실은 벽돌로 된 그 집을 지을 때 이웃들의 동의를 얻어 전면의 벽돌 담장을 그 블록의 끝까지 이어지게 했다. 그의 집만 너무 높거나 위압적으로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_ p.193(2-4. 보금자리와 태풍)

9월 19일 암스트롱은 노스다코타주 그랜드포크스에서 공연을 했고 그 무렵 아칸소주 주지사 포버스는 흑인 어린이들의 입학을 막고 있었다. 당시 암스트롱은 미국 국무부의 주관으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 투어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암스트롱은 기자에게 그 투어를 취소하겠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미국 남부에서 그들이 우리 흑인들을 대하는 방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정부는 지옥에나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향해 “두 얼굴”의 인간이며 “배짱이 없어서” “무식한 시골 꼴통”인 포버스가 국정을 운영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인터뷰에서 암스트롱이 한 말을 적어 그에게 보여주자 그는 거기에 서명하고 “완벽”이라고 써놓았다. 그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너무 안 좋게 돌아가고 있어요. 유색인에게는 나라라는 게 없잖아요.” _ p.203-204(2-5. 비난)

그가 바티칸에 갔을 때 있었던 두 가지 이야기는 음악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중 하나는 교황이 반지 낀 손을 루이에게 내밀자 그가 ‘하이파이브’를 하자는 몸짓을 보이며 교황의 손 밑으로 손바닥을 내민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교황 바오로 6세가 루이에게 자녀가 있느냐고 묻자 그가 “아뇨, 교황님. 하지만 우린 여전히 신음 소리를 내고 있긴 합니다”라고 대답한 이야기였다. _ p.221(2-6. 헬로, 돌리)

1969년 12월에 발간된 〈에스콰이어Esquire〉지에서 그는 다음 세대에 조언해주기 위해 초대받은 70세에 가까워진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고 지면에 이렇게 썼다. “어느덧 노년에 접어들면서 난 흥미로운 일들을 했다고 느낍니다. 여러분들의 위대한 작곡가, 연주자 들은 대부분 나이가 든 사람들이거나 이제 하늘나라로 갈 때가 되었죠. 그들은 영원히 살 거예요. 사라지는 것은 없어요. 당신이 여전히 재미있고 멋진 일을 하고 있다면 말이죠. 숨을 쉬고 있는 한 계속 일을 하는 거죠. 그럼요.” _ p.236(2-7. “루이 새치모 암스트롱입니다”)

연예인으로서의 그의 의식은 단지 그의 표정과 농담에만 반영된 것이 아니다. 음악 곳곳에 밴 주체할 수 없는 그의 솔직한 감정은 음악의 혁신적인 내용이 되었다. 그의 스윙, 즉흥 연주를 과연 그의 태도, 감정과 분리할 수 있을까? 19세기적인 근엄함과 추상 이론이 과연 재즈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루이 암스트롱으로부터 예술가적 측면과 연예인적인 측면을 분리하려는 관점으로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기딘스의 지적은 정확하고 예리한 것이었다. _ p.296(‘옮긴이의 말 – 루이 암스트롱 탄생 120주년’)

저자소개

게리 기딘스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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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재즈 평론가, 작가. 1973년부터 30년간 〈빌리지 보이스The Village Voice〉에 글을 썼다. 1986년 피아니스트 존 루이스 등과 함께 아메리칸 재즈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다양한 재즈 레퍼토리를 기획하며 1992년까지 활동했다. 1998년 《재즈의 전망Visions of Jazz》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으며 재즈에 관한 작품으로 미국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그 밖의 저서로 《블루노트에 몸을 싣고Riding on a Blue Note》 《리듬어닝Rhythma-ning》 《버드를 기리며Celebrating Bird》 《군중 속의 얼굴들Faces in the Crowd》 《풍향계Weather Bird》 《재즈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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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에 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음반사의 마케팅 담당자로 일하면서 여러 잡지에 재즈에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 KBS 클래식 FM(93.1MHz)에서 [재즈 수첩] 진행, 경희대학교에서 재즈의 역사 강의, 유튜브 채널 '황덕호의 Jazz Loft' 제작·진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재즈 음반 매장 '애프터아워즈'를 운영하기도 했다. 저서로 [다락방 재즈], [그 남자의 재즈 일기], [당신의 첫 번째 재즈 음반 12장- 악기와 편성], [당신의 두 번째 재즈 음반 12장- 보컬]이 있으며 [당신과 하루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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