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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 내 삶과 세상을 바꾸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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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은 현재 한국 여성들의 일, 삶, 관계를 둘러싼 복합적인 사회 구조적 조건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선택지들을 찾아가는 책이다. 이 책이 말하는 라이프스타일은 각종 미디어에서 흔히 쓰이는 분류처럼 오락, 연예, 음식, 패션 등의 ‘소비’가 아니다. 여성들이 소비나 문화를 통해 자신의 감각, 쾌락, 취향에 맞는 삶의 형태를 확인하고 누리는 것이 곧 여성의 지위와 권력을 향상하는 방법이라 여기는, 소비자본주의의 확장과 함께 등장한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lifestyle feminism)’과도 다르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이란 소비에 의지하지 않고, 삶의 태도와 가치, 지향점을 일관되게 지켜나가는 것을 뜻하는 ‘통합적 라이프스타일’로서의 페미니즘을 고민하고 실험하는 것이다.
이 책은 여성들 간의 관계와 친밀성, 연대의 문제를 깊이 있게 분석하며 새로운 실천들을 제안한다. 이는 현재 많은 20, 30대 여성들이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의 원인을 밝히고, 소비와 디지털 중심으로 구성되는 관계의 특성과 한계를 분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출판사 서평

페미니즘이 삶의 태도가 될 때,
나의 일, 소비, 관계가 바뀐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이 열어주는 지금 여기, 일상의 가능성으로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이 열어주는 지금 여기, 일상의 가능성으로
페미니즘은 양비론이나 이분법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은 평생 가져가야 할 삶의 태도이자 세상을 보는 관점입니다. 다시 말해 누구와 무엇을 모색하며, 어떤 희망과 목적을 갖기 위해서 내 에너지를 생성하고 재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입장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 일, 기쁜 일인지에 대한 ‘참조 체계’를 바꿔내는 과정입니다.
( '본문' 중에서)

재난과 위기, 불안의 시대, 2030 여성 앞에 놓인 삶의 선택지는 무엇인가?

최근 청년 여성들, 특히 20대 여성의 자살률 급등과 젊은 여성들의 고용 위기의 심각성, 그리고 그에 대한 침묵이 ‘조용한 학살’이라 일컬을 만하다는 진단이 크게 주목받았다. 2019년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전년 대비 25퍼센트 이상 증가했고, 2020년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시도자는 전체 자살시도자의 약 32퍼센트로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많았다. 또한 고용 통계를 보면, 지난 1월 실업자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한 가운데 전년 대비 여성 실업자의 증가 폭이 남성의 두 배를 기록했고, 여성 구직단념자 역시 사상 최다치를 찍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재난 앞에서 서비스업, 비정규직·시간제 등 불안정한 일자리에 많이 고용되어 있는 여성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 같은 몇 가지 지표들은 재난의 불평등함뿐 아니라, 심각한 고용 불안정, 돌봄 부담, 사회적 고립감,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20, 30대 젊은 여성들의 현재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변화에 대한 열망은 2015년 이후의 페미니즘의 대중화를 촉발했고, 미투 운동과 혜화역 시위, 낙태죄 폐지, 탈코르셋 운동 등을 이끌었다. 하지만 최근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에 대한 강조와 분리주의, 피해를 증명하고 경쟁하는 문화, 또는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 등의 논란과 과제에 부딪힌 상황이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은 현재 한국 여성들의 일, 삶, 관계를 둘러싼 복합적인 사회 구조적 조건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선택지들을 찾아가는 책이다. 현재 한국 청년 여성들이 처한 문제와 최근 페미니즘 논의의 한계 양쪽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담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다양한 사건과 이슈, 이론과 현장 연구, 개인적 체험, 한국 페미니스트의 역사 등을 아울러 가부장제와 신자유주의 질서가 짜놓은 틀에서 벗어난 생활 방식의 밑그림을 그려 보인다. 페미니스트 문화인류학자인 저자 김현미는 젠더 경제학, 이주, 환경 문제를 중심으로 현지조사, 심층 인터뷰 등의 방법론을 활용해 오랜 기간 여성의 일 경험을 해석해왔다. 이런 이력과 함께 청년들을 만나고 가르쳐온 경험, 시니어 페미니스트로서 관점을 밀도 있게 녹여낸 이 책은, 동시대 여성들의 불안과 고민을 세심하고 현장감 있게 다루고 있다. 동시에 노동과 소비문화, 감정과 경제, 협력과 친밀성, 일과 삶의 재배열 같은 굵직하면서도 일상과 밀접한 주제에 관한 명확하고 유쾌한 통찰을 들려준다.

소비 없이 즐기고, 회복하고, 친밀성을 쌓아가는 라이프스타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라이프스타일을 화두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없이는, 불안정 노동과 과도한 감정노동, 일터와 삶터의 분리 불가능성 속에서 20, 30대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립감을 종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이프스타일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이 책이 말하는 라이프스타일은 각종 미디어에서 흔히 쓰이는 분류처럼 오락, 연예, 음식, 패션 등의 ‘소비’가 아니다. 여성들이 소비나 문화를 통해 자신의 감각, 쾌락, 취향에 맞는 삶의 형태를 확인하고 누리는 것이 곧 여성의 지위와 권력을 향상하는 방법이라 여기는, 소비자본주의의 확장과 함께 등장한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lifestyle feminism)’과도 다르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이란 소비에 의지하지 않고, 삶의 태도와 가치, 지향점을 일관되게 지켜나가는 것을 뜻하는 ‘통합적 라이프스타일’로서의 페미니즘을 고민하고 실험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하 여성들의 일 세계는 대규모의 불안정 노동으로 채워져 있다. 많은 여성들이 종사하고 있는 돌봄노동을 포함한 서비스업이나 문화 콘텐츠 산업 등은 주로 여러 형태의 시간제·기간제 일자리, 저평가된 비숙련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한다. 그 속에서 여성들은 커리어를 쌓고 인정받기 어려운 횡단적 하향 이동을 반복하고, 이동이 잦은 일터에서 홀로 적응하기 위해 가짜 친밀성(fake intimacy)과 ‘애교’ 같은 감정노동을 수행하면서 여전한 성희롱·성폭력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이 청년들은 교육적 성취 등에서 비롯된 믿음에 따라 능력주의 신화에 더 강하게 매달린다. 이는 곧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는 데 집중한다는 의미인데, 그 결과는 불안이라는 감정과 심리 상태의 과잉화, 일상화, 여성화라고 할 만하다.
이런 일터에서 버티고 있는 여성들에게 안전과 회복의 감각을 불어넣는 것은 소비의 영역이다. 신자유주의 소비문화 아래 우리는 소비를 통해 개인성과 개별성을 확인하고, 쾌락과 친밀감을 향유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의 뒷받침 아래 각종 굿즈와 크라우펀딩에 돈을 씀으로써 사회운동과 공동체에 참여한다는 정치적 판타지도 누릴 수 있다. 이 같은 노동과 소비의 폐쇄적 회로에 갇힌 여성들은 ‘치유적 자아’에 호소하며 점(占)부터 명상 프로그램, 심리치료, 상담 등을 순환하며 큰돈을 쓰기도 한다. 심지어 노동을 계속하려면 끊임없이 자기 계발의 소비자가 되어야 하는 심미노동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
이 책은 소비가 부추기는 초감각적인 시장 감각에서 놓여날 수 있도록 덜 소비할 때 생겨나는 기쁨과 즐거움의 감각에 다가가기를 제안한다. 향유도, 정치도, 연대도 소비로 해결하려는 태도에서 멀어져보자는 것이다. 배달 음식, 상품화된 돌봄노동을 구매하기보다, 제 손으로 음식을 하고 직접 생활 공간을 관리해보는 것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가 아닌 내 몸의 속도에 맞는 대화와 만남, 활동을 늘리고, 여성에게 요구되는 ‘꾸밈 노동’에서 벗어나는 ‘탈코’ 운동을 소비를 줄이는 실천으로 이어갈 수도 있다. 1인 가구 여성들이 신혼부부 위주의 주택사업에 항의하며 ‘세금을 내는 만큼의 혜택’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라이프스타일의 사회운동화와 사회운동의 라이프스타일화”의 사례가 된다. 공기, 물, 토양 등 자연이라는 공공재의 건강과 안전, 생태위기까지 고려하는 관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래 내 옆에 있는 여성들을 ‘곁눈질’로 봐왔다.”
고통, 추종, 능력주의에서 벗어난 일상의 여성 연대


이 책은 여성들 간의 관계와 친밀성, 연대의 문제를 깊이 있게 분석하며 새로운 실천들을 제안한다. 이는 현재 많은 20, 30대 여성들이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의 원인을 밝히고, 소비와 디지털 중심으로 구성되는 관계의 특성과 한계를 분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저자는 여성들 간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협력과 연대를 방해하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요인으로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이다)’ 패러다임, 즉 여성 동성사회(female homosocial society)의 불관용을 지적한다. 높은 지위에 오른 여성이 여성 동료나 하급자가 조직 내에서 인정받는 것을 허용치 않는 경향을 일컫는 ‘여왕벌 신드롬’이 대표적 사례다. 여러 ‘여초’ 조직을 들여다보면, 가부장적 위계가 작동하거나, 이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이탈자’ 여성에게는 ‘보복’을 가하는 일이 흔히 벌어지고 있다. 의료계 ‘태움’ 논란이 보여주듯 “직장생활의 팁, 훈련,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전수되는 여초 조직의 생존 매뉴얼”은 집단적 통제로 기능한다. 이러한 현대적 관계 맺음의 특징은 페미니즘 운동과 인식에도 영향을 미쳐, 여성이라는 범주를 동질화해 결속을 드러내려는 본질주의 또는 분리주의 흐름을 낳고 있다.
한편 SNS를 기반으로 한 셀프 브랜딩, ‘마이크로 셀럽’ 문화는 온라인상의 관계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높은 긴장과 불안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구독자들의 즉각적인 열광과 비난에 24시간 연결돼 있는 ‘전시성 자아’를 부추기고, 이런 셀럽들과 자신을 비교해 실제보다 자신을 비루하게 느끼며 냉소와 분노, 피해 정서를 강화하는 ‘미니멀 자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의 틀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것은 먼저 이 동질화의 욕망이 여성 개인의 특성이 아닌 가부장적 사회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하는 일이다. 가부장제는 여성들에게 ‘실존하는 여성 개인들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자원을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가부장적 제도로부터의 인지적, 물리적, 심리적 분리가, 그리고 미니 셀럽과의 동일시, 추종주의, 지침에 복속된 생활로부터의 분리가 필요하다. 나아가 실재하는 여성뿐 아니라 동물 같은 비인간까지 포함하는 모임, 함께 놀고 나누고 대화하며 회복과 자존의 기반을 제공하는 관계, 다름 아닌 ‘능동적 자율 공동체’를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또 다른 단계는 피해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만을, 또는 여성의 능력과 탁월함만을 강조하는 친밀감의 방식, 서로를 감정 배출구로 활용하는 공동체의 형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부장 없는’ 여성들 간 관계의 원리와 윤리를 하나씩 다시 써갈 수 있다.
이 책은 내 주변의 여성들과 이방인들을 더 이상 ‘곁눈’으로 스캔하지 않고, 말 걸고 관계 맺을 용기를 건넨다. 또는 항상 가정과 노동시장, 시민사회에서 무급 가사노동자로, 잉여인력으로, 2등 시민으로 취급받는 불안정한 지위에서, 그 바닥에서부터 여성들이 자기 존재성을 설명하고 연대와 친밀성의 장들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 페미니즘을 통해 일터에서의 고단함과 미래의 불안을 이야기하고, 일상을 구원하고 싶은 여성들에게 다가가는 책이다.

목차

들어가며

1강 신자유주의 경제와 여성의 일터
2강 시간의 재배열을 위한 기획들
3강 위치 이동을 위한 사유들
4강 여성 연대를 위한 실천들

나가며

본문중에서

제가 이 강의를 준비하게 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페미니즘은 양비론이나 이분법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데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은 포털 사이트 분류처럼 오락, 연예, 음식, 패션의 ‘소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가져가야 할 삶의 태도이자 세상을 보는 관점입니다. 또한 다중적 억압에 목소리를 내면서 나의 권리가 모든 사람의 권리로 확장되게끔 하는, 굉장히 중요한 과제와 이어져 있죠. 이것이 곧 ‘라이프스타일로서의 페미니즘’이 다루는 화두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에너지(성적인 에너지, 감정적 에너지, 지적 에너지, 경제적 자원 등)를 누구와 무엇을 모색하며 어떤 희망과 목적을 갖기 위해서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입장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 일, 기쁜 일인지에 대한 ‘참조 체계’를 바꾸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 p.26)

여성들이 운영하는 상호작용형 인터넷 BJ 방송은 ‘성애적’ 요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죠. ‘왜 그렇게 사생활을 전면적으로 보여주고, 익명의 사람들에게 자기를 다 노출할까?’ 인터넷 BJ 같은 여성들의 관점은 다릅니다. 과거에는 한국 사회에서 맨날 모욕받고 치이다가 인터넷 방송이라는 미디어를 쥐게 되면 굉장한 권력을 손에 넣은 느낌을 받습니다. (중략) 여성들은 사회적 무력감과 개인화된 권력감 사이 어딘가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 p.54)

심미노동은 기업이 이윤 확대를 위해 노동자의 신체를 개발하고 동원하며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노동자가 자신의 신체와 인성을 변화시켜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걸맞은 미학적 이미지를 구성해가는 노동을 의미합니다. (중략) 특히 고객들이 여성의 외모, 스타일, 환대가 기업이나 일터의 서비스 수준과 이미지라고 믿기 때문에, 여성은 늘 전시되고, 보이는 퍼포먼스를 수행하여 수익을 창출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그런 기업이나 일터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종종 자신의 임금을 뛰어넘을 만큼 지출해서라도 소위 꾸밈 상품의 소비자가 되어야 합니다.
(/ pp.56~57)

여성들의 횡단적 하향 이동 경향이 높습니다. 이 기업에서 1년, 저 기업에서 1년, 이렇게 일하다 보면 경력이라는 개념이 사라져버리지요.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일수록 전문성을 인정받고 보상 체계 내에서 더 큰 보상과 의사 결정권을 가져야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전에는 여성들이 정규직으로 입사해서 어느 정도 일하다가 모성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갈아타며 경력에서 이탈했다면, 지금은 능력 있는 많은 여성들의 고용 형태 자체가 그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빼내고 폐기 처분하기 용이한 방식입니다.
(/ p.61)

정규직이 아니면 사수가 없고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알아서 기어라, 눈치껏 하라는 메시지에 따라 일하게 됩니다. (중략) 이런 일터 상황에서 여성들은 ‘쇼잉(showing)’을 하게 됩니다. (중략) 또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명랑한 척, 활발한 척, 의욕적인 척, 친밀한 척하고, 팀원들의 식사 취향을 챙기는 등 사적인 관계에서만 기대되는 친밀성을 너무 익숙하게 수행합니다. 이는 젊은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바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고요. 숙련도와 창의력에 더해 활기와 애교로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 말입니다. (중략) 이처럼 낯선 환경에서 빠르게 동료들 안으로 들어가야 일을 할 수 있는 이 여성들은 가짜 친밀성(fake intimacy)을 매우 자주 연기합니다.
(/ p.63)

한국 사회에서의 남성성은 집과 같은 사적 영역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성성의 발휘는 공적 영역에서 남성들과 함께 있을 때, 남성 동성사회의 권력 전시장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입니다.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서 나의 힘을 과시하고, 남성 동성사회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갖고, 남성들에게 인정받아 지위를 획득하려는 것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남성들의 파워 게임이나 사나이 게임에서는 남이 보는 앞에서 대범하게 여성을 희롱하고 추행하는 전시적 성폭력이 매우 흔하게 벌어집니다. 자신이 남성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여성의 신체에 대한 접근도로 과시하는 것입니다.
(/ p.69)

최근 한국에서도 지지를 얻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은 소비나 문화를 통해서 여성들이 자신의 감각, 쾌락, 원하는 삶의 형태를 확인하고, 자신이 택한 패션, 음악, 음식 등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곧 여성의 지위와 권력을 향상하는 방법이라고 믿고 실험하는 페미니즘입니다. (중략) 하지만 이것은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통합적 라이프스타일로서의 페미니즘 인식론’과는 다릅니다. 통합적 라이프스타일이란 ‘소비’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 가치, 지향점을 일관되게 지켜나가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구조를 파악하고, 공동체적 연대를 이뤄서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지향합니다.
(/ pp.84~85)

프로젝트 기반의 시간성이란 특정 시간 안에 일련의 과제들을 ‘완성도’ 있게 해내야 하는 것으로 시간의 밀도를 높여놓은 방식입니다. (중략) 낯선 사람들을 모아 ‘올인’ 해서 특정 시간 안에 완성하면 그 프로젝트는 거기서 끝나고, 금방 성격이 완전히 다른 프로젝트가 또 내 앞에 와 있지요. 그리고 프로젝트마다 사람이 바뀝니다. (중략) 협력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단기간의 목적을 지향하는 선에서 이루어집니다. 특정한 과제 혹은 과업에 우리의 영혼과 능력을 집중 투여하여 ‘그럴싸한’ 것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중략) 여성들은 이런 프로젝트 기반의 일자리에 비정규직, 임시직, 혹은 프리랜서로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기반의 시간성은 몰입과 전면 투여를 요청합니다. 그래서 소위 번아웃 증후군을 쉽게 경험하게 됩니다.
(/ pp.120~121)

직접행동주의 운동은 스스로의 참여와 개입으로 실질적 변화를 이뤄낸다는 점에서 ‘당사자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시위 때 마스크를 쓰고 내부의 다양성을 통제한다는 사실은 굉장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런 자기 보호는 목소리를 내는 여성의 신상을 털어 유포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여성혐오 세력에 대한 공포 때문에 생겨난 장치지만, 동시에 분노, 불안, 안전에 대한 긴장 강도가 아주 높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형태의 직접행동주의 운동이 보여주는 페미니즘의 대중화는 매우 고무적인 동시에, 그 과정에서 불안, 공포, 분노 등의 감정이 곧 페미니스트 되기의 전부인 것처럼 이해되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 우리의 감정’이 이러하다는 것을 근거로 그에 관한 사안이 유일하고 중요한 운동의 어젠다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는 것이지요.
(/ pp.181~182)

페미니즘 운동이나 담론이 ‘디지털’로 옮겨 가면서 응집과 분열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폭력, 임신중절, 우울증과 관련한 개인적 고백, 고통 호소, 증언, 연설, 제안 등의 사적인 발화는 이에 공감하고 지지를 보내며 ‘퍼 나르는’ 사람들에 의해 빠른 시간 안에 공적인 이슈,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변화합니다. 정치가 먼 곳의 엘리트에 의해 장악된 딱딱한 영역이 아니며, 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페미니즘의 명제가 실현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가 이뤄지는 디지털 공간에서는 디지털에 ‘기록된’ 개인의 글, 사진, 취미, 친구 관계, 소비 패턴 등 사생활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데이터로 존재하면서, 폭로, 낙인, 사회적 매장과 같은 폭력적 시도들의 좋은 자료가 됩니다. (중략) 심지어 페미니스트들 간의 논쟁에서도 과거에 올린 사진, 글이나 발언의 어떤 ‘단어’나 ‘태도’를 거론하며,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히고 망신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의 수위가 높아지니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한 경직된 단호함도 증가합니다.
(/ pp.184~185)

경제적 조건이 불안정하고, 가족 구성원이나 친밀한 상대로부터 받은 학대, 안전을 위협하는 성폭력과 불법촬영 등으로 둘러싸여 해결 없는 폐쇄적 회로망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에 많은 여성들이 시달립니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감정이 우울해지면서 나에게는 치료가, 돌봄이,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치유적 자아(therapeutic self)가 집단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략) 힐링 산업은 사람들의 불안을 상품화하여 번창하고 있죠. (중략) 여성들은 작게는 타로 카드로 시작해서 점, 여러 형태의 국내외 치유 명상 프로그램, 심리치료, 상담 등을 순환합니다.
(/ pp.222~223)

모든 여성에게 탈코르셋의 방식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한편 꾸밈은 연출이고 연행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화장하고, 옷을 입고, 장신구를 달고,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그 자체로 ‘탈젠더화’된 정체성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이 재미없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기 통제, 금욕, 조절, 희생을 강요받아온 여성들이 즐거움, 쾌락, 행복, 개인화를 선택하겠다고 할 때, 그것의 표현 방식은 창의적이고 다양할 것입니다.
(/ p.253)

우리는 평생 내 옆에 있는 여성들을 ‘곁눈질’로 너무 많이 봅니다. 엄마도 보고, 딸 옷차림도 살피고, TV나 SNS로 여자 연예인도 보고, 동네 여자들을 보고, 길에서 스치는 여자들의 머리 모양이나 친구들의 화법도 살펴보지요. 그녀들은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때로는 정말 무관한 존재처럼 보이죠. 당장은 옆에 있다 해도, 가족 관계라고 해도, 현재 동료나 친구라고 해도 이 여성과 내가 미래를 함께 할 수 있을지, 우리는 같은 장소에 있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이런 고민들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이런 현실에서 이동해서 곁눈질이 아니라 ‘곁불’로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행위, 최소한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행위, 서로를 위안하고 공감해주는 행위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 pp.271~272)

남성 동성사회가 존재하는 만큼이나 여성 동성사회(female homosocial society)도 존재합니다. 많은 분들이 여학교를 다녔고, 상당수 여성들은 여전히 ‘여초’ 조직에서 일을 합니다. 적어도 이런 일터에서는 가부장적 시선이나 위계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여기게 됩니다만, 여성 동성사회에서도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이탈자’ 여성을 제자리에 데려다놓는 보복의 정치가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간호사, 비서, 사회적 기업 상근자 등 여성이 다수인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략) 옷차림, 눈매나 표정, 화장법, 손짓, 먹는 것, 모든 것에 일일이 간섭을 하고, 끊임없이 가부장적 사회가 규정해둔 자리로 돌려놓는 집단적 통제를 경험하게 되지요. 직장생활의 팁, 훈련,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전수되는 여초 조직의 생존 매뉴얼은 신입 여성을 초장부터 주눅 들게 합니다.
(/ pp.272~273)

최근 일부 페미니즘 운동에서 목격되는 ‘생물학적 여성’에 대한 강조는 결국 여성의 몸이 남성의 욕망, 폭력, 지배력이 관철되는 장이기 때문에, 여성의 몸을 가진 존재들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여성 연대를 구성하자는 호소입니다. 여성들의 삶이 점점 안전하지 않아지고,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우리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동질성의 신화에 기대고자 합니다.
(/ p.275)

공식적인 부계제에서는 멤버십을 갖지 못하는 대신에, 내 배로 낳은 아이들과 심리적으로 결탁된 작은 집단을 형성하는 거죠. 자궁가족이란 부계제 가족에서 여성은 누리지 못하는 지위와 영향력을, 부계제를 계승하는 자기 배로 낳은 아들을 통해 획득해나가는 방식입니다. 여성은, 공식적인 권력은 가졌지만 아이들과의 ‘거리 두기’를 통해 체면과 지위를 유지하는 아버지와는 반대되는 전략을 취합니다. 아이, 특히 앞으로 가부장이 될 아들을 심리적, 정서적으로 완벽히 엄마에게 의존하도록 양육하고 사회화하는 것입니다. 그런 강한 정서적 유대 및 심리적 의존을 형성하는 양육 방식을 취하는 게 자궁가족적인 전통입니다.
(/ pp.286~287)

비슷한 조건과 감정 상태에 있는 여성들이 서로에게 소소한 이야기라도 시작해주고, 일에 대한 태도나 습관 등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주고받을 때, 여성들 간의 긴장은 풀립니다. 여성들은 스스로 예민하고 눈치가 빠르다고 확신하지만, 사실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남성들처럼 계급이나 위치에 따라 알아서 역할 놀이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까 막연한 탐색과 곁눈질의 대마왕들이 되어갈 뿐이죠. 여성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입니다. 이런 능력을 주변 동료들과 함께 발휘하는 것이 협력적 자아를 시작하는 일차적 출발점입니다.
(/ p.317)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기쁨, 우연성, 발견, 먹고 마시는 일, 상호 대화를 통해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삶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고통받는 모든 여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가부장 없는 이방, 미지의 장소에서 유토피아를 구성하는 개척자처럼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버지의 나라인 대한민국을 떠나 다른 곳에서 난민으로 만날 수는 없잖아요? 따라서 ‘바로, 여기에서’라는 시공간적 감각이 필요하겠습니다.
(/ p.326)

돌봄 사회는 돌봄을 여성의 일로 본질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성이나 계급을 초월한 인간 돌봄자의 인격을 구성해내는 사회일 것입니다. 인간 돌봄자는 스스로를 돌보고 타인을 돌보며 비인간종과 생태계를 함께 돌보는 존재로, 누구라도 이런 돌봄을 평생 수행해야만 하고, 좋은 돌봄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훈련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를 주장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가족을 포함한 혹은 가족을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평등, 정의, 소속의 새로운 결속체를 이루어가는 돌봄 사회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급진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재난의 폐허에서 태동하는 공동체 감각으로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여성들은 새로운 활력으로 전진할 것입니다.
(/ p.338)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7종
판매수 501권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문화인류학, 여성학 전공. 주요 저서로 [글로벌 시대의 문화 번역](2005),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2007 공저), [국경을 넘는 아시아 여성들](2009 공저), [친밀한 적: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일상이 됐나](2010 공저),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한국에서 이주자로 살아가기](2014), [젠더와 사회] (2014 공저)가 있다.

기획 줌마네 [기타]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여자들의 자립과 예술적 성장을 돕는 플랫폼이자 커뮤니티이자 학교. 2001년부터 문화예술 강좌와 워크숍을 통해 여성들이 세상에 말 걸고 자기를 이야기하는 방법을 찾아가도록 돕는 한편, 글쓰기, 영화, 사진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로 여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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