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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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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진영
  • 출판사 : 한겨레출판
  • 발행 : 2021년 02월 17일
  • 쪽수 : 75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60404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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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우리가 가진 게 상처밖에 없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숨을 쉬어야 해요”
불행하고 부자유한 인생을 관통하는 열여덟 번의 철학 강의

아도르노의 철학 에세이 《미니마 모랄리아》로 바라본
철학자 김진영의 삶과 철학, 그리고 문학 이야기

《아침의 피아노》, 《이별의 푸가》, 《낯선 기억들》에 이은 김진영 컬렉션 네 번째 책


나의 삶이 얼마나 고귀한 것이고, 근본적으로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아주 자유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은 얼마나 부자유한가 하는 문제에 민감하시다면 이 강의가 도움이 되실 거예요. _본문 중에서

《상처로 숨 쉬는 법》은 죽음 앞에서 바라본 삶의 단상을 기록한 《아침의 피아노》와 이별에 대해 미학적으로 접근했던 《이별의 푸가》, 사회에 대한 통찰과 시선을 담은 《낯선 기억들》에 이은 철학자 김진영 컬렉션의 네 번째 책이다. 인문학 교육 사이트인 ‘아트앤스터디’에서 진행되었던 김진영 선생의 아도르노 강의를 녹취하고 풀어 정리했다.
《상처로 숨 쉬는 법》에서 선생은 아도르노의 철학을 매개로 하여 한국 사회의 여러 모습을 고찰하며 삶과 철학, 그리고 문학 이야기를 통해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사유해낸다. ‘왜 선행이, 부드러움이, 착한 삶이 상처가 되어야 하느냐’는 선생의 물음은 ‘상처는 어떻게 삶의 허파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며, 상처를 봉합하려 애쓰기보다는 허파로 만들어 그 상처를 통해 숨을 쉬어야 한다는 성찰에까지 다다른다.
선생은 1학기와 2학기에 걸친 열여덟 번의 강의를 통해 우리 모두 냉정하고 냉철한 비판적 성찰의 주체가 되어 은폐된 채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객관적 권력을 통찰해내자고 말한다. 자기 성찰을 통해서만이 상처 안에 머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이다.

객관적 권력의 세계 속에서 내가 되어간다는 것은, 태생적인 나의 살을 깎아먹어서 사회가 요구하는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에요. 그렇게 해서 겉보기엔 그럴듯한 나가 됐을지 모르지만, 태생적으로 주어졌던 나는 그 안에 하나도 없어요. _본문 중에서

매 강의 끝에서 선생은 강의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것처럼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우리를 격려하면서, 우리에게 가장 귀했고, 우리가 반드시 보존해야 했었지만 그만 박탈당하고만 아름다움과 자유, 사랑과 행복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일을 그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강의가 끝날 때까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일의 어려움과 슬픔을 우리 곁에서 함께 견딘다.
《상처로 숨 쉬는 법》은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겹겹이 상처 입은 우리에게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법, 즉 새로운 사유의 단초를 건네며 불행하고 부자유한 인생을 이겨내는 법을 제시해준다.

왜 선행이, 부드러움이, 착한 삶이 상처가 되어야 하는가,
상처는 어떻게 삶의 허파가 될 수 있는가?


아도르노는 ‘살아 있다’와 ‘산다’는 다른 것이라 얘기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냥 목숨이 붙어 있는 거예요. 산다는 것은 꿈을 실현하는 것이죠. 삶은 그냥 목숨을 부지하는 거라고 얘기하면 아무 문제 없어요. 그냥 그렇게 살면 돼요. _본문 중에서

《미니마 모랄리아(Minima Moralia)》는 미국 망명 시절 아도르노가 집필한 철학 에세이로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153개의 아포리즘을 통해 아도르노는 냉철한 시선으로 당대 미국 소시민 사회와 독일 파시즘 사회의 곳곳을 응시한다. 사랑, 욕망, 정치, 미디어, 교양, 예술, 언어에 이르기까지 아도르노의 시선으로 포착된 후기 자본주의 사회는 비판적 지성에 의해 가차 없이 해부되어 허구와 환멸의 맨 얼굴을 드러낸다. 아도르노의 비판철학적 사유는 구체적 생의 현장들과 맞부딪치며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기만성과 그 안에서 상처받아야만 했던 삶의 속살들을 용서 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상처로 숨 쉬는 법》을 통해 선생이 들여다보려고 하는 건 아도르노가 포착했던 1940년대, 1950년대 미국 사회가 아닌 지금의 한국 사회이다. 선생은 《미니마 모랄리아》 안에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진단할 수 있는 키워드가 상당 부분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은폐시키고 있습니까? 자체적으로도 도저히 인식해낼 수 없을 정도로 깊이, 교묘하게, 현혹적으로 은폐되어 있는 사회죠. 이 은폐성의 무게를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아도르노는 필요할 수도 있고 전혀 필요 없을 수도 있어요. 아직 살 만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우리 사회에 잘못된 점도 있지만 또 하루하루 살다 보면 나름대로 편안한 것도 있어, 나는 나름대로 나를 실현하고 있어, 다 좋은 세상이 어디 있겠어,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면 아도르노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어요. 진짜 못 살겠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냐,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냐, 그야말로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이냐, 이런 문제에 아주 민감해지면 그 반대 항에 있는 온전한 삶, 즉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갈구할 수밖에 없어요. _본문 중에서

지금의 한국 사회는 불안과 두려움, 욕정과 광기로 가득하다. 선생은 지금 우리의 사회란 무엇이고, 문화는 무엇이며, 정치는 무엇이고, 경제란 무엇인가라는 모든 물음이 수렴되는 장소가 바로 ‘나의 삶’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더욱 엄중한 시선으로 삶 그 자체를 들여다본다. 열여덟 번의 강의에는 주체, 사랑, 욕망, 정치, 미디어, 예술, 언어, 집, 세대 등의 문제가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각 문제를 선생은 아도르노를 빌려 냉정하고 냉철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소비 문제(쇼핑중독) 안에서 올바른 삶을 사유하려는 희미한 가능성을 포착해내고, 한국 사회 안에서 세대를 통해 폭력이 전승되는 과정을 관찰하며, 이 시대의 사랑과 결혼, 이혼과 불륜에 대해 이야기하며,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문제도 놓치지 않는다. 조폭 영화나 영재와 둔재, 주거의 문제(아파트)와 불면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선생은 이 모든 이야기를 철학적 사유에 기반한 채 카프카와 프루스트 등 선생이 사랑했던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더하며 더욱 진솔하고 풍성하게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상처로 숨 쉬는 법》에서 선생은 끊임없이 말한다. 비판적 성찰 주체라는 차가운 거울을 통해서 우리들 자신의 맨 얼굴을 응시하고 독해하고 통찰해야 한다고.

세상에 필요 없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은 그 이유가 있기 때문에 만든 거예요. 우리가 아직까지 그 이유를 모를 뿐이죠. 그래서 그걸 읽어내는 방법론을 우리가 아도르노를 통해서 함께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제 식으로 얘기하면 상처로 숨 쉬는 법입니다. 상처를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허파로 만드는 것이죠. 우리가 가진 건 상처밖에 없습니다. 가진 게 상처밖에 없다면 그것으로 숨을 쉬어야 해요. _본문 중에서

엄중하게 자기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려는 독자에게 이 책은 살아온 삶과 남겨진 삶의 관계를 성찰해보는 좋은 시간이 됨과 함께 가능성을 위해서 스스로의 불가능성을 껴안는 용기를 선사해줄 것이다.

추천사

문학에 감수성이 있듯이 철학에도 감수성이 있다. 어떤 철학은 세상을 속속들이 괴로워하는 이들의 손으로만 지어진다. 아도르노의 철학이 그랬고, 김진영의 글이 그렇다. 아도르노의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은 이 책을 통해 숨 쉬는 통로가 된다. 숨 쉴 때마다 상처가 벌어져 고통스럽지만 언젠가 이 상처가 과거의 지표로 남으리라는 믿음. 존재의 어디 하나 파인 곳 없이 온전한 인간으로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 김진영의 세심하고 굳은 강의는 이 희미해 보이는 믿음을 차근히 불러내고 또 불러낸다. 혼곤한 세상을 사느라 우리 안에 깊숙이 은폐된 결핍을 마주 보게 한다.
아도르노는 끈질기고 안타깝게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 우리는 잔인할 만큼 눈을 크게 떠야 한다. 김진영이 길을 안내해줄 것이다.
- 김겨울 / 작가, 유튜브 ‘겨울서점’ 운영자

목차

1학기
1강 아도르노를 만나며
2강 사유의 첫걸음
3강 상처 안에 머물기
4강 사랑이라는 영역
5강 슬픈 선행
6강 자본주의 시대의 결혼
7강 선물 주기의 기쁨과 슬픔
8강 타자에 대한 꿈
9강 유보 없는 행복의 삶

2학기
1강 슬픈 조폭
2강 언어와 육체 그리고 남성성
3강 여자의 고고학
4강 미인
5강 사랑의 도덕
6강 두려움과 매혹 그리고 불면
7강 죽은 자와 산 자에 대하여
8강 우둔함과 사치
9강 상처와 허파

본문중에서

나의 삶이 얼마나 고귀한 것이고, 근본적으로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아주 자유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은 얼마나 부자유한가 하는 문제에 민감하시다면 이 강의가 도움이 되실 거예요.
(/ p.16)

실제 우리 삶의 풍경은 어떨까요? 상처투성이라는 거죠. 상처의 정의가 무엇이죠? 패어 있음이에요.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그것이 상처가 되는 거예요. 자유와 행복이 있어야 할 장소가 움푹 패어 있다는 거죠. 《미니마 모랄리아》의 부제가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입니다. 이 말은 쉽게 생각하실 게 아니고요, 엄청난 고통의 발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웅덩이처럼 파인, 사실 겉껍질에 지나지 않는 이러한 나의 삶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겠다는 거예요. 이 생각이 얼마나 아프고 슬프고 두려운 것인지를요. 우리가 자신의 상처를 가감 없이 들여다보는 일은 굉장히 두려운 거예요. 다들 안 보려고 하잖아요? 무의식은 도망가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돌려버려요. 그래도 살 만하지 뭐, 나는 남보다는 낫잖아, 이런 )으로 슬쩍 건너가는데 이 상처를 마치 지진계처럼 들여다보면서 그 안의 풍경을 꼼꼼하게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이 아도르노에게는 합리성이라는 것이죠. (…) 사유란 굉장한 거예요. 생각한다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에요. 우리의 생각이 도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우리의 사유가 방해받지 않고 가고 싶은 지점까지 간다면 어디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정말 모르는 겁니다. 사유는 그렇게 무섭고 강력한 거예요. 그런데 정치가, 경제가, 문화가 끊임없이 중간에서 사유를 차단시켜버리죠. 아도르노가 《미니마 모랄리아》를 쓰면서 유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 사유에 대한 믿음입니다. 오로지 그 믿음만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거죠. 그것을 통해 우리 삶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읽어보겠다는 것이 이 책입니다.
(/ p.42~44)

그런데 많은 지식인들이 이런 사유를 한다는 거예요. 자기 희망을 투사해놓고 그 희망이 존재한다고 주장해요. ‘아직 살 만한 세상이야, 이렇게 착한 사람도 있어’라며 희망에 가득 찬 얘기를 하죠. 여러분들은 그런 소리 들으면 위안을 받으시잖아요? 우리를 위안해주고 상처가 아무는 것 같은 느낌, 내일 또 살아야지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실제로 무엇인가요? 상처들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고 상처들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객관적 권력을 더 공고히 할 뿐이라는 거죠.
(/ p.74)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더 쉽게 얘기하면 우리가 반드시 가질 수 있고 가져야만 했는데 그만 빼앗겨버렸기 때문에 텅 비어 있는 장소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자유와 행복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들은 전부 어디론가 가버리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곳. 오로지 환상만이 들어 있는 곳. 이데올로기에 의해 주입당하고 주문당하고 도취당하고 자시 환각만을 일으키도록 되어 있는, 알고 보면 텅 비어 있는 장소. 이것이 아도르노가 말하는 상처입니다.
(/ p.117)

19세기 사람들이 꿈꾸었던 시민사회에서 개인이 누려야 하는 자유와 행복의 함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사회 조직의 개체가, 부품이 아니라 주인이 될 수 있는 개인을 꿈꾸었죠. 그것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너무나 왜소해졌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 더 뭘 바라겠느냐, 체념해버렸어요. 그러나 역사가 주체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 그 주체에게 주어져야 된다고 생각
했던 자유와 행복은 엄청난 것이었어요. 그걸 기억해야 된다는 거죠. 우리가 왜 그걸 기억 못 할까요? 다른 게 아니고 객관적 권력 때문이에요. 객관적 권력은 우리에게 기억을 불러들일 수 있는 성찰의 계기를 봉쇄해버렸어요.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 안에 박탈당하고 말았던, 꿈이 실종되어버린 텅 빈 자리가 가득한데도 자신을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아도르노의 사유가 머물기의 사유라면 바로 여기, 빈자리에 머무는 거예요. 제가 아도르노의 사유는 힐링 사유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상처를 치유하거나 위안하자는 것이 아니라 상처 안에 머물자는 것이죠. 일단 머물러야 되는 거예요. 나아가서는 상처를 관통해야 돼요.
(/ p.118~119)

여러분 유미리라는 재일교포 작가 아세요?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그 사람의 소설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여자아이가 엄마를 따라서 엄마 친구 집에 갔더니 자기 또래 남자아이가 있어요. 이 남자아이는 사람들이 바보라고 부르는 아이예요. 그런데 주인공은 말하죠. “나는 그 아이를 보니까 어쩐지 내 친구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남자아이도 다정한 시선으로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근본적으로 그렇습니다. 오래 응시하면 서로를 알아봐요. (…) 여러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친구나 애인, 모르는 사람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뭔가 보이는 게 있어요. 연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다 알아요. 그런 건 사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구원이 없는 게 아닙니다. 있는데 우리가 항상 놓치죠. 아니면 우리가 항상 배반해요. 그러나 우리는 내가 배반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몰라요. 얼마든지 천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 사회가 완전히 객관적 권력에게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 p.629~630)

막스 브로트에게 카프카가 이런 말을 했어요. 막스 브로트가 물었다고 하죠. “우리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거야?” 카프카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니, 세상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지. 그렇지만 우리들 것은 아니야.”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세상에 희망은 가득할 수 있어요. 끊임없는 시선 교환, 인간관계로 짜여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 희망은 이 관계 속에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 것은 아니에요. 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죠.
(/ p.631)

사람이 어느 정도 살고 나면 자신이 살아온 길을 돌아보죠. 현실이 불만스러우니까요. 헤겔식으로 얘기하면 불행의 의식이 생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저를 돌아보면 한심해요.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여러분도 돌아보면 ‘참 잘 살았다’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한심하기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좀 잘못된 것 같다, 내가 원래 가고자 했던 곳과 지금 와 있는 곳의 차이가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 서글픈 뒤돌아보기는 어느 정도 살고 나면 누구나 겪게 되는 경험이죠. 왜 그럴까요? 그 서글픔이 얘기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 p.633)

점쟁이들은 손금은 타고나는 것이며 그걸 보면 운명이 읽힌다고 얘기해요. 제 생각엔 아기 손이라면 그럴지 몰라도 어른 손은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살아오는 동안 손금이 변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왜 변합니까? 사는 일은 주먹을 쥐는 일입니다. 이기려고, 어떻게 해서든지 돌파하려고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먹을 쥐게 돼요. 저는 손금을 가만히 보다 보면 되게 불쌍해요. 뭘 하려고 그렇게 주먹을 많이 쥐었기에 이렇게 잔손금들이 많나. 그리고 손의 잔손금들을 그렇게 많이 만들면서 지금 내가 와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 한심해요. 열패감만 들어요. 잘못 살았구나 하는 생각만 들어요. 하지만 열패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엇갈린 손금들을 읽어내는 일이 중요하죠.
(/ p.638~639)

삶을 돌아보면 늘 내가 놓쳤던 빈틈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빈틈들을 연결하면 무엇이 됩니까? 내가 살아야만 했으나 살지 못했던 어떤 삶의 궤적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러면 남은 생은 이 궤적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랬을 때는 손바닥 읽기가 열패감이나 우울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깨어나게 만들어요. 그런데 이 손바닥이 무엇이냐? 불면의 영역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면의 시간은 우리를 잠으로 부르는 시간이 아니에요. 불면의 시간은 우리를 성찰로 부르는 시간이에요. 불면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불면의 목소리는 자라 자라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나라 깨어나라는 것이죠. 그런데 다들 깨어나지 않고 자려고만 해요. 불면증을
겪어본 사람은 다 알아요. 자려고 하기 때문에 잠이 안 와요. 자야 된다는 강박만 없으면 잠이 올 것도 같은데 잠을 자야 된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죠. 이 집요한 생각 때문에 잠이 오고 싶어도 문지방을 건너올 수가 없어요.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내가 막아서 그래요. 그럴 때는 자려고 하면 안 됩니다. 깨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이불을 걷고 앉아서 램프를 켜고 손바닥을 읽으세요. 그러면 그 손바닥이 돌연한 기쁨의 사건으로도 올 수 있다는 겁니다. 내일 할 일이 생깁니다. 깨어나서 할 일이 생겨요. 그 일은 뭡니까? 내가 원하는 일이에요. 더 이상 강요된 일이 아닙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기쁨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쁨을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잠이 와요. 자지 말라고
해도 행복해서 자요. 큰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죠. 모든 게 기쁨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 p.642~643)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2~2018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과 그중에서도 아도르노와 베냐민의 철학과 미학을 전공으로 공부했으며 그 교양의 바탕 위에서 롤랑 바르트를 비롯한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를 함께 공부했다. 특히 소설과 사진, 음악 등 여러 영역의 미적 현상들을 다양한 이론의 도움을 빌려 읽으면서 자본주의 문화와 삶이 갇혀 있는 신화성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일에 오랜 지적 관심을 두었다. 시민적 비판정신의 부재가 이 시대의 모든 부당한 권력들을 횡행케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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