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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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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신정일
  • 출판사 : 쌤앤파커스
  • 발행 : 2021년 01월 04일
  • 쪽수 : 51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6534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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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조선 최초의 왕릉 정릉부터 정조의 건릉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례길, 600킬로미터 조선 왕릉 길을 걷다


“어느 왕릉을 가건 실크로드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길이 있고 소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를 비롯한 온갖 나무들이 울울창창했다. (…) 서울 근교 엎드리면 코 닿을 만한 거리에 있는 30여 개에 이르는 조선 왕릉 길은 조선 최초의 왕릉 정릉에서부터 정조의 건릉까지 600킬로미터로 이어져 있다. 조선왕조 500년과 그 뒤로 이어진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찾아 천천히 그 길을 따라서 걸어 보자.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산천을 사랑하고 알리는 진정한 홍보대사가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조선 왕릉은 수십 년에 걸친 연구와 복원, 관리사업의 노력으로,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후 10년 동안 능제 복원, 역사‧문화 환경 복원 등의 노력이 있었고, 그 결과 2020년 가을 ‘조선 왕릉 순례길’이 개방되었다. 조선 왕릉 순례길은 총 6개 코스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일본 시코쿠 순례길에 버금가는 역사적, 환경적 가치를 가졌다. 이 책은 서울 선릉부터 영월 장릉까지, 서울, 경기, 강원도 일대의 여러 조선 왕릉을 잇는 600km 왕릉길을 소개하며 각 왕릉에 대한 설명과 그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풀어간다.

저마다의 아름다운 역사와 이야기를 지닌 518년 시간의 길,
뜻깊은 풍경과 정취가 가득한 조선 왕릉 길이 그대를 부른다!


지은이는 조선 팔도 안 가본 곳이 없는 명불허전 답사 전문가이자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불러온 주역 신정일 작가다. 조선 왕릉은 27명의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 왕을 합쳐 42기의 능이 있고, 14기의 원과 64기의 묘가 현존하고 있다. 이 책은 서울 도심 속 선정릉, 태릉부터 파주 동구릉, 영월 장릉까지, 능, 원, 묘를 아우르며 조선 왕릉 49곳을 담았다. 신정일 작가는 왕릉을 한 곳 한 곳 직접 답사하며, 130여 컷의 사진과 함께 왕실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과연 한반도 최고의 명당은 어떻게 선정되고, 거기에 잠든 수많은 왕과 왕비, 세자와 세손들에게는 어떤 가슴 찡하고도 슬픈 사연들이 있을까? 조선 왕릉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518년 조선왕조의 명장면과 하이라이트를 모두 감상한 것과 같다. 신정일 작가는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산천을 사랑하고 알리는 진정한 홍보대사가 될 것이다.”라며 조선 왕릉을 아는 것은 인문, 역사적 지식은 물론이고 우리 땅에 대한 이해, 풍수 관점의 상식도 풍부하게 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출판사 서평

조선 최초의 왕릉 정릉부터 정조의 건릉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례길, 600킬로미터 조선 왕릉 길을 걷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은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한반도에서도 명당 중의 명당에 위치한 것이 왕릉인데, 가까이에 살면서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중 문화재청은 10여 년의 복원 노력의 결실로 2020년 가을 ‘조선 왕릉 순례길’을 개방했다. 서울 정릉부터 영월 장릉까지 조선 왕릉을 잇는 600km의 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시코쿠 순례길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조선 왕릉 순례길과 각각의 왕릉 내부 숲길을 걸어볼 수 있다. 이 책은 도보답사 전문가 신정일 작가가 조선 왕릉 49곳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130여 컷의 사진과 함께 왕실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땅과 역사, 문화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된다.

목차

시작하며_ 세상에서 아름다운 숲길, 조선 왕릉 길이 그대를 부른다
책을 읽기 전에_ 조선의 왕릉은 어떻게 조성되었는가?

1. 사을한 산기슭에 버려져 잊힌 조선 최초의 왕릉 : 신덕왕후_정릉
2. 비운의 왕 크고 아름다운 무덤에 들다 : 경종‧선의왕후_의릉
3. 지아비 곁에 묻히고 싶었으나 : 문정왕후_태릉
4. 눈물의 왕 끝내 선정의 뜻을 펴지 못하고 : 명종‧인순왕후_강릉
5. 동구릉의 시작이자 중심 : 태조_건원릉
6. 세종의 아들, 단종의 아버지 : 문종‧현덕왕후_현릉
7. 실패한 왕은 능도 초라했으니 : 선조‧의인왕후‧인목왕후_목릉
8. 예송으로 시작해 예송으로 마치다 : 현종‧명성왕후_숭릉
9. 역모와 반란의 시대를 잠재우다 : 영조‧정순왕후_원릉
10. 성군을 꿈꿨으나 스물세 살에 쓰러지다 : 헌종‧효현왕후‧효정왕후_경릉
11. 못다 이룬 왕업을 이루고 함께 눕다 : 문조‧신정왕후_수릉
12. 구중궁궐 층층시하에서 : 단의왕후_혜릉
13. 예송 논쟁의 중심에 서서 : 장렬왕후_휘릉
14. 유연하고 강한 성군의 다스림 : 성종‧정현왕후_선릉
15. 다스려진 때는 적고 혼란한 때가 많았으니 : 중종_정릉
16. 성군이 낳은 폭군 : 연산군‧거창군부인 신씨_ 연산군묘
17. 왕실 원묘 이야기 1 : 순헌황귀비_영휘원 / 원손 이진_ 숭인원
18. 명과 암이 너무 뚜렷한 왕 : 태종‧원경왕후_헌릉
19. 세도 정치의 희생양 : 순조‧순원왕후_인릉
20. 만고의 외로운 혼이 누운 곳 : 단종_장릉
21. 조선 왕릉의 모범 : 세종‧소헌왕후_영릉
22. 설욕의 그날을 꿈꾸며 : 효종•인선왕후_영릉
23. 망국의 황제 : 고종‧명성황후_홍릉
24. 조선의 마지막 왕릉 : 순종‧순명효황후‧순정효황후_유릉
25. 왕실 원묘 이야기 2 : 의민황태자‧의민황태자비 _영원 / 덕혜옹주_덕혜옹주묘 / 회은황세손_회인원 / 의친왕‧의친왕비_의친왕묘
26. 비운의 왕비의 자비로운 능 : 정순왕후_사릉
27. 성군인가, 폭군인가? : 광해군‧문성군부인 유씨_광해군묘
28. 왕위 찬탈의 굴레 : 세조‧정희왕후_광릉
29. 역사가 슬픈 것인가, 사람의 생이 슬픈 것인가? : 단경왕후_온릉
30. 파주 삼릉에 잠든 사람들 : 장순왕후_공릉 / 공혜왕후_순릉 / 진종‧효순왕후_영릉
31. 사람은 가도 역사는 남는다 : 인조‧인열왕후_파주 장릉
32. 아들의 지극한 사모곡 : 숙빈 최씨_소령원
33. 아들 덕에 왕이 되다 : 원종‧인헌왕후_김포 장릉
34. 서삼릉의 슬픈 내력 : 장경왕후_희릉 / 인종‧인성왕후_효릉 / 철종‧철인왕후_예릉
35. 서오릉이 품은 이야기 : 덕종‧소혜왕후_경릉/예종‧안순왕후_창릉 / 정성왕후_홍릉
36. 죽어서도 여러 여인과 함께 있으니 : 숙종‧인현왕후‧인원왕후_ 명릉/인경왕후_익릉
37. 효심이 만든 왕릉 : 장조‧헌경왕후_융릉
38. 그리운 아버지 곁에 잠들다 : 정조‧효의왕후_건릉

본문중에서

경종이 잠든 의릉은 묘명 그대로 크고 아름다운[懿] 무덤[陵]이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어딘가 어색하다. 일반적으로 왕과 비의 쌍릉은 봉분이 좌우로 나란히 솟아 있는데 이 능은 앞뒤로 배치되어 있다. 앞쪽이 왕비 선의왕후의 묘이고, 뒤편에 경종의 묘가 터를 잡았다.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가 묻힌 여주의 영릉도 이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데, 왕의 능을 상봉, 왕비의 능을 하봉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동원상하릉의 배치 양식은 유교적 인습을 따른 것이지만, 이곳에 안치한 시신이 왕성한 생기가 흐르는 정혈正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풍수지리적인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왕릉과는 다르지만 파주시 파평면에 있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가족묘도 풍수지리상 역장逆葬이다. 율곡 내외의 묘가 제일 위에 있고 그 아래에 아버지 이원수와 신사임당 내외가 합장되어 있다.
(/ p.41)

조선시대 왕릉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정했는데, 왕이 친히 현장에 나가 지세를 관망하기도 했다. 대체로 길지에 자리를 잡았다. 풍수지리설에 명당이란 배산임수背山臨水한 지형에 영험한 맥이 흐르다가 멈추는 곳을 말한다. 북쪽의 높은 산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그 좌우에 청룡과 백호가 둘러싼 듯한 지세를 택했다.
남쪽에 안산案山이 있으며, 묘역 안에 냇가[川]가 있어서 물이 동쪽으로 흘러 모이는 곳을 좋은 묏자리로 보았다. 그렇게 형성된 묘역 안의 명당에 지맥이 닿아서 생기가 집중되는 곳을 혈穴이라 부르고, 그 혈에 관을 묻고 봉분을 조성했다. 봉분은 대부분 산의 중간쯤에 자리 잡았는데, 능은 반드시 좌향을 중요시했다. 좌坐는 혈의 중심이 되는 곳이며, 좌의 정면이 되는 방향을 향向이라 보기 때문이다. 왕릉의 좌향은 대부분 북에서 남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 산세에 따라서 서향 내지는 북향을 취한 곳도 있다.
건원릉의 봉분에는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를 심었는데, 고향을 그리워한 아버지를 위해 태종이 태조의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p.86)

경기도 안산에는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신벌神罰’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자마자 곧 세상을 뜨고 말아 안산의 목내동에 묻혔고 능 이름을 소릉이라고 했다. 얼마 후 세조가 단종을 없애자 꿈속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를 꾸짖으며 나도 너의 자식을 살려 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밤 세조는 동궁을 잃었는데 동궁의 나이 겨우 스무 살이었다. 다음 세자인 예종 또한 즉위한 지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격노한 세조는 소릉을 파헤치고자 사람을 보내었지만 능에서 여인의 곡성이 들려오는 바람에 모두가 가까이 가기를 꺼렸다. 세조가 개의치 말고 관을 꺼내라고 엄명을 내려 관을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고약한 냄새가 풍겨 나오고 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할 수 없이 도끼를 들고 관을 쪼개려 하자 관이 벌떡 일어서서 나오는 것이었다.
세조는 관을 불살라 버리려고 했으나 별안간 소나기가 퍼부어 결국 바닷물에 집어 던지고 말았다. 던져진 관은 소릉 옆 바닷가에 떠밀려 닿았는데, 그 뒤 그곳에 우물이 생겨 ‘관우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관은 다시 물에 밀려 며칠을 표류하다가 양화 나루에 닿았고, 한 농부가 이를 발견하여 밤중에 몰래 건져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그날 밤 농부의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앞일을 일러 주었고 농부의 가세는 점점 번창하게 되었다.
(/ p.96)

정조의 장례가 끝난 뒤 곧바로 사도세자에게 동정적이었던 시파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고, 이때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과 정조의 친모 혜경궁 홍씨의 동생인 홍낙임洪樂任 등이 처형되었다. 다음 해인 1801년에 천주교 탄압을 일으켜 정약용 등의 남인들을 축출했고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희생당했다.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정조 대의 정치와 문화를 부정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단성 있는 정치를 펼쳐서 질서를 바로잡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정순왕후는 1804년 수렴청정을 끝내고 순조에게 직접 정사를 보게 했으며, 1805년(순조 5) 창덕궁 경복전에서 세상을 뜬 뒤, 그해 6월 20일 영조 옆에 묻혔다.
영조는 죽기 전에 원비인 정성왕후가 잠든 서오릉의 홍릉 자리에 묻히기를 원했다. 그래서 홍릉에 왕의 자리를 비워 놓고 쌍릉으로 자신의 장지를 만들어 놓았었다. 그러나 사후 일은 자신의 뜻과는 무관해서 그런지 정조가 지금의 자리에 능지를 정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조가 묻힌 원릉 자리는 본래 효종의 능인 영릉이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1673년(현종 14) 영릉의 석물에 틈이나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는 의론이 나왔다.
그래서 효종의 영릉을 여주에 있는 세종의 영릉 옆으로 옮겼다. 그러나 능을 옮기기 위해 봉분을 열었을 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한다.
(/ p.139)

성종은 충성스럽고 소박하며 정직하기로 이름난 찬성 손순효孫舜孝를 몹시 아꼈다. 어느 날 성종이 늦은 오후에 두 내시와 함께 경회루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남산 기슭 수풀 사이에 두어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손순효가 맞을 것이라고 짐작한 성종이 사람을 시켜 가 보라고 했다. 과연 손 찬성이 두 손님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쟁반 위에 누런 오이 한 개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 말을 들은 성종이 바로 말 한 필에다가 술과 고기를 잔뜩 실어다 주게 하고 이어 경계시키기를 “내일 고맙다고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다른 신하가 알면 반드시 내가 공을 편애한다고 싫어할 것이다” 했다. 손순효와 손님들이 머리를 숙이고 감사하게 여긴 후 넘치도록 배불리 먹고 취했다. 그다음 날 이른 아침에 감사를 표하러 들어갔다. 성종이 불러 어제 당부한 그 경계를 지키지 않은 것을 나무라자 손순효가 울면서 “신은 다만 은덕에 감사하려는 것뿐이옵니다”라고 대답했다 한다.
성종에 대한 또 하나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 온다. 한번은 옥당玉堂에서 숙직을 하던 성희안成希顔을 임금이 불러 술과 과일을 내렸다. 이에 성희안이 귤 여남은 개를 소매 속에 넣었다. 그 뒤 술에 취하여 엎드려 인사불성이 되어 그만 소매 속 귤이 땅에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다음 날 임금이 귤을 다시 한번 내리며 이르기를 “어제저녁 희안의 소매 속에 귤은 어버이에게 드리려고 한 것이니, 그 때문에 다시 주는 것이다” 했다. 이 말을 뼈에 새신 성희안은 임금을 위하여 죽을 것을 맹세했다고 한다.
(/ p.180)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북성산 기슭에 있는 세종대왕의 영릉英陵을 두고 풍수가들은 이름 그대로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땅에 피는 아름다운 꽃, 즉 명당 중의 명당이라 부른다. 풍수지리가들은 영릉의 형국을 모란꽃이 절반 정도 피어 있는 목단반개형牧丹半開形, 봉황이 날개를 펴서 알을 품고 있는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 용이 조산祖山을 돌아본다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이라고도 한다. 그런 연유로 지관들은 “이 능의 덕으로 조선 왕조의 국운이 100년 더 연장되었다” 말하기도 한다. (…)
조선 최초의 합장릉인 영릉은 본래 경기도 광주시 대모산(현 서초구 내곡동과 개포동 뒷산)에 있었다. 세종은 1446년 소헌왕후가 죽자 태종의 헌릉 서쪽 기슭에 영릉을 조성했다. 그때 오른쪽을 세종의 수릉壽陵(생전에 미리 만들어 두는 임금의 능)으로 삼고, 왼쪽에 소헌왕후 심씨를 모셨다. 세종이 아버지 태종의 헌릉이 있는 대모산 중턱에 자신의 능침을 정한 것은 죽은 뒤에도 아버지의 곁에 있고자 하는 효심에서였다. 소헌왕후가 죽은 뒤 지관들은 아무래도 좋은 자리가 아니므로 다른 곳에 장사 지내자고 여러 차례 권했다. 하지만 세종의 생각은 확고했다. 결국 세종은 세상을 하직한 뒤 아내와 합장해서 그 자리에 잠들었다.
(/ p.272)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8종
판매수 435권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으로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온 도보답사의 선구자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하여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고,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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