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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 평전 : 민족종교 동학의 교조[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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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삼웅
  • 출판사 : 두레
  • 발행 : 2020년 04월 05일
  • 쪽수 : 30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7443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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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한국 근대사의 대표적인 지성인이자 사상가이며,
민족사적 대사건인 동학혁명(1894)과 3·1 혁명(1919)을 주도한
동학(나중에 천도교로 이름이 바뀜)을 세운 ‘수운 최제우’!
가장 객관적 입장에서 가장 공정하게 쓴 최제우 평전


조선 봉건사회의 부정과 부패 척결,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었던 민중항쟁이자, 피지배층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진행된 대규모 농민 대중에 의한 혁명이었던 ‘동학농민혁명’(1894). 그리고 일제 식민통치를 거부한 민족의 자주독립선언이며, 봉건군주체제를 끝내고 민주공화주의를 지향하는 근대의 횃불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던 ‘3·1 혁명’(1919). 이 두 사건은 우리 근현대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민족사의 대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에서 결정적이고 중추적인 역할을 한 민족종교가 ‘동학(훗날 천도교)’이다. 그리고 이렇게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 때 민족종교로 거듭난 동학을 세운 이가 바로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근현대사를 돌이켜볼 때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의 역할은 그야말로 실로 지대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수운 최제우는 민족종교였던 동학을 창도(1860)하고, 그것을 세상에 펴다가 1864년에 성리학 이외의 어지러운 학문으로 세상을 현혹했다(사문난적)는 죄목으로 참수형을 받았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의 근대가 결코 자랑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근대는 동학의 출현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894년의 동학혁명은 왜 일어났을까? 동학군들이 꿈꾸었던 개벽된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이런 질문들의 출발은 수운 최제우이다. 그를 이해하는 것은 곧 19세기 민중의 염원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많은 학자는 수운 최제우를 왜 근대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이자 사상가로 평가하는가? 왜 그는 다른 선비들과 달리 책상물림에서 벗어나 민중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염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해줄 방도를 고민했는가? 왜 조선 말기부터 민족종교라는 새로운 세력이 생겼고, 그들이 모두 시조로 꼽는 인물이 수운 최제우인가? 이 모든 해답은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수운 최제우 평전]은 민족종교로 우뚝 서서 갑오 동학혁명과 3·1 혁명을 주도했던 동학(천도교)이 세워진 지 160주년이 되는 지금, 수운 최제우의 삶을 다시 돌아보는 뜻깊은 책이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자 대한민국 근현대 인물 연구의 권위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서 가장 공정하게 ‘인간 최제우’의 삶과 사상 등 모든 것을 들려준다.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제우
최제우는 ‘동학’을 창도한 교조이기도 하지만, 한국사에서 전근대의 낡은 성벽을 뚫고 근대의 문 ‘사회개혁 사상가’이기도 하다. 동학을 세웠다는 종교사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그는 안으로는 군왕과 양반 위주의 유교적 반상체제를 거부하면서 사민평등사상을 내세웠고, 밖으로는 서세동점으로 밀려오는 서학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사상의 원동력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최제우가 동학을 세운 목적은 병든 사회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정치권력이 없는 위치에서 백성들의 정신을 깨우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기에, 그는 설법할 때도 이해하기 쉬운 말로 하고, 시가도 이해하기 쉬운 한글로 썼다. 동학의 역동적인 평민주의 사상은 백성들의 기대를 모으기에 모자라지 않았고, ‘서학’과 대비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존의 틀에 박힌 사회구조에 얽매이던 조선 사회의 주류 밖에 있던 사람들, 사회적 소외자들에게는 구원과도 같이 들린 수운의 외침에 수많은 사람이 감동하여 그를 찾았다. 그들이 답례품처럼 가지고 왔던 곶감 꽂이만으로도 동네 사람들이 땔감을 했을 정도라고 하니 당시 수운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렇듯 수운 최제우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유학 일변도의 척박한 풍토에서 ‘양반에 대치할 수 있는’ 세력으로 민중을 내세우고 각성시켰다. 차츰 각성된 민중은 주체성과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수운으로 인하여 근대적 민족주의 사상이 움트게 된 것이다. 비록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최제우가 펼치고자 했던 동학사상은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민족주의 의식의 선구적인 자각이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최제우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당대 누구 못지않은 학식과 덕성을 갖추었다. 그러나 입신출세의 길은 애초부터 막혀 있었기에 21살의 나이에 먹고살기 위해 보부상의 길을 선택했다. 1844년부터 1854년까지 10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에서 그는 시국과 세상을 알게 되었다. 그는 10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두 눈으로 확인한 조선 사회가 이대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사를 그만둔 이듬해 한 스님으로부터 기이한 책을 받고, 1856년에 천성산에 있는 통도사 내원암과 적멸굴에서 득도를 위해 노력하지만 실패로 끝난다. 결국 다시 생업을 위해 철점을 차리지만 이 또한 2년 만에 문을 닫고 빚만 남는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다가 빚을 갚기 위해 농지를 팔고 집을 정리하는 바람에 갈 곳이 없어진 최제우는 36살에 고향인 경주의 용담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때 이름을 ‘제선’에서 ‘제우’로 바꾼다. ‘구할 제(濟)’에 ‘어리석을 우(愚)’, 곧 어리석은 세상을 구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최제우는 그렇게 용담에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와 수련하던 1860년 4월 5일 ‘한울님의 계시’로 후천개벽의 새 원리인 동학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1년여의 수도 정진 끝에 무극대도의 길, 즉 새로운 종교인 동학을 창도하고, 사람들에게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격의 존엄성과 근대적 민족의식을 일깨워주는 일에 전념한다.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한 이유 중 하나는 ‘서학(西學)’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름도 ‘동학(東學)’이라고 지었다.

동학혁명과 3·1 혁명을 주도한 동학
최제우는 종교를 창도한 다른 성인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동학의 경전인 [용담유사]를 직접 지은 것이다. 석가, 예수, 마호메트 등 성인들은 종교를 창도할 때 글이 아닌 ‘말씀’을 제자와 신도들에게 남겼지만 최제우는 이들과 달리 경전을 직접 지어 남겼다.
백성이 주인이 되는 후천개벽의 새시대상을 제시하고, 다른 종교 창도자들과 달리 ‘광제창생, 제폭구민, 보국안민’ 등 현세론을 제기한 동학이 점점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고, 이를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음해와 탄압도 심해졌다. 1862년 9월에는 관아에 체포되어 경주 감영에 갇혔다가 6일 만에 풀려난다. 그러다 마침내 1863년 10월부터 조정에서 최제우의 동학을 탄압할 방도를 논의하고, 선전관 정운구를 내려보내 12월 10일에 최제우를 체포한다. 최제우가 도를 깨닫고 포덕을 펼친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조정에서 그에게 씌운 죄목은 유학을 문란시킨 ‘사문난적’과 서학이라는 사술로 백성들을 기망했다는 것이었다. 서학에 대응하기 위해 창도학 동학을 서학으로 치죄하는 얼토당토않은 일이었다.
최제우는 동학을 세운지 4년 만인 1864년 3월 10일, 41살에 대구 감영에서 효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를 이어 해월 최시형(2세)과 의암 손병희(3세)이 교주의 자리를 이어받아 동학 세력을 확장한다.
교조가 혹세무민의 누명을 쓰고 죽자 동학도들은 관으로부터 갖은 탄압과 수탈을 당했다. 그러나 1870년에 들어서면서 동학 세력은 더욱 강화되고, 1892년에 동학도들이 모여 동학 탄압 중지와 교조(최제우)의 신원운동을 벌인다. 교조신원운동은 마침내 1894년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이 이끄는 동학혁명으로 폭발하게 된다. 그리고 동학은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고(1905), 1919년 3·1 혁명을 주도한다.
수운 최제우는 자신의 뜻을 미처 펼치지 못하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산은 우리나라 근현대의 역사를 바꾸는 큰 물줄기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수운 최제우를 알아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운 최제우 연보
1824년 10월 28일(음력), 경상북도 경주군 현곡면 가정리에서 아버지 최옥과 어머니 한 씨 사이에서 태어남. 처음 이름은 제선(濟宣), 자는 도언(道彦).
1842년 울산의 밀양 박씨와 결혼함.
1843년 집이 불타 용담정으로 이사함.
1844년 주유천하에 나섬.
1854년 주유천하를 마치고 울산 유곡동(일명 여시바윗골)에 초가삼간을 짓고 구도의 수행에 들어감.
1855년 3월, 을묘천서를 받음.
1856년 양산 천성산 통도사의 내원암에서 수행하다가 숙부의 사망을 직관하고 47일 만에 하산함.
1857년 천성산 적멸굴에서 다시 49일간의 기도를 마침.
1859년 10월, 경영하던 철점이 파산되어 집과 땅을 채권자에게 넘기고 용담으로 돌아옴.
1860년 2월, 입춘시를 지으며 구도의 결의를 다짐.
이름을 제선에서 제우(濟愚)로, 자를 도언에서 성묵(性黙)으로, 호를 수운(水雲)으로 고침.
4월 5일, 용담에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를 받음.
5월, 「용담가」를 지음.
1861년 6월부터 포덕을 시작하자 어진 선비들과 민중들이 구름처럼 모여듦.
7월에 「포덕문」, 8월에 「안심가」를 지음.
11월에 유생들이 서학으로 몰아 관으로부터 탄압이 있자 제자 최중희를 데리고 남정길에 오름.
12월, 호남지방 남원 교룡산성 은적암에 은거함.
1862년 1월에 「권학가」와 「논학문」을, 6월에 「수덕문」과 「몽중노소문답가」를 지음.
7월에 남원의 은적암을 떠나 경주부 청송으로 돌아와 백사길과 박대여의 집에 머무름.
9월, 최제우가 체포되어 경주 감영에 갇히고, 이 소식을 들은 도인들이 몰려들어 항의하자 6일 만에 최제우를 석방함.
10월 14일, 제자들에게 처신을 신중히 하라는 통문을 띄움.
11월 9일, 포항 흥해읍 매산리 손봉조의 집으로 옮김.
12월 26일, 연원의 효시가 되는 접주(接主)를 최초로 임명함.
1863년 3월 9일, 용담정으로 돌아와 필법을 지음.
4월, 좌잠을 지어 강수에게 줌.
6월, 개접(開接)하여 많은 도인들에게 가르침을 베풂.
7월 23일, 파접(罷接)함. 이날 최경상(최시형)에게 해월(海月)의 도호를 지어주고,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으로 임명함.
7월 하순에 「도덕가」를 지음.
8월 초순에 「흥비가」를 지음.
8월 14일, 최시형에게 도통(道統)을 전수함.
11월, 「팔절」과 「불연기연」을 지음.
12월 10일, 조정에서 파견한 선전관 정운구에게 붙잡힘. 최제우와 이내겸은 서울로 압송되고, 나머지 30명은 경주 관아에 갇힘.
12월 20일, 서울로 압송되던 중 과천에서 철종이 서거하여 대구 감영으로 돌아감.
1864년 1월 6일, 대구 감영에 수감됨.
3월 10일, 좌도난정률의 누명을 쓰고 대구 관덕당에서 참형을 받아 순도함.

목차

추천하는 글: 가장 객관적 입장에서 가장 공정하게 쓴 최제우 평전
1. 동학사상의 현재적 의미와 가치
2. 출생과 성장기
3. 세상을 찾아서 장삿길에 나서다
4. 수행과 득도
5. 사회비판과 동학 선포
6. 동학의 경전 『용담유사』 짓다
7. 포덕에 나서다
8. 남원 은적암에서 6개월
9. 경주에서 본격 포교 나서
10. 수난의 시기에 임하여
11. 최후를 앞두고 대비하다
12. 최후에 남긴 글
13. 포교 3년 만에 다시 체포되다
14. 41살에 ‘좌도난정’ 죄목으로 순교
15. 교조 순도 이후의 동학
16. 후계자 최시형과 손병희
지은이 후기 / 수운 최제우 연보 / 주(註)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3.03.03~
출생지 전남 완도
출간도서 73종
판매수 10,563권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위원회 위원, 3·1운동·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회 위원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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