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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종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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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4번째 책.『서구종말론』은 급진적인 바울 해석으로 현대정치철학에 ‘종교의 귀환’을 촉발한 야콥 타우베스의 박사논문이자 그가 생전에 출간한 유일한 책이다. 이 책은 제목이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서구의 종말론의 역사적 전개를 다룬다. 현존 질서를 부정하는 근대의 혁명의식, 더 나은 세계가 도래하리라는 근대의 역사철학 이면에는 세속화된 묵시적 종말론과 영지주의가 있음을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현대철학으로 돌아온 그리스도교,
야콥 타우베스 사상의 맹아를 만나다


『서구종말론』은 현대정치철학에 ‘종교의 귀환’을 촉발한 급진적인 바울 해석(『바울의 정치신학』)으로 우리에게 한 차례 소개된 적 있는 야콥 타우베스의 박사논문이자 그가 생전에 출간한 유일한 책이다. 말하자면 노년의 완숙한 타우베스의 맹아를 품은 청년기를 증언하는 기록인 동시에 그가 독창적인 바울상에 닿기까지 평생에 걸쳐 변주하고 연주한 테마가 압축된 악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근대는 유대그리스도교 세계로부터 탄생했다
이 책은 제목이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해가 뜨는 동방(Morgenland, ‘아침의 땅’)이 아닌 해가 지는 서쪽의 땅, 즉 서구(Abendland, 고대와 중세에 그리스정교와 이슬람의 해가 뜨는 동방에 대비되는 ‘해가 지는 땅’ 유럽을 가리킨다)의 종말론의 역사적 전개를 다룬다. 보통 서구의 주된 기원을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으로 구분하여 찾을 때 두 사상의 차이를 시간관에서 찾곤 한다. 코스모스(우주)의 끝이 없는 순환 속에 속박되어 있는 그리스의 신화적 세계와 에스카톤(끝end이자 목적end)을 기대하는 유대그리스도교 세계로 ‘양분Entzweiung’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 두 세계가 뒤섞이고 공존하면서 상호영향을 끼치며 발전해왔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를 제쳐두더라도 두 시간관이 서구적 근대성의 성립을 설명하는 ‘세속화 서사’의 반정립Antithese을 각각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유대그리스도교 세계가 세속화되어 서구의 근대성이 탄생했다고 주장하는 쪽과 서구의 근대는 과학혁명 등에 의해 시간이 흐르는 만큼 진보하는 양과 질의 실증적인 관계로 설명된다고 주장하는 쪽으로 말이다.
바로 이 책이 전자의 ‘세속화 서사’를 대표한다. 특히 그리스도교에 깃든 전형적인 유대담론인 묵시론과 종말론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이단인 영지주의를 결합하여 근대의 역사철학과 혁명의식의 기원을 추적하고 그 에너지를 재활성화하려고 시도한다. 메시아가 출현한다는 구약의 예언적 종말론(‘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은 예수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재림)가 지체되면서 이에 대한 반동기제로 인해 두 가지로 분리되었다. 외부세계에 출현하는 징표를 해석하고 완전히 다른 세상을 꿈꾸는 묵시적 종말론과 구약의 조물주(데미우르고스)가 창조한 세계에서 내면의 세계로 도피하여 내적 완전성을 추구하는 영지주의가 그것이다. 고대 이스라엘과 후기 고대, 그리고 로마 지배를 거치며 변치 않고 내재되어 있던 이 묵시적 종말론과 영지주의의 요소가 세속화되어(즉, 실체의 동일성은 유지된 채 그 형태가 바뀌면서) 사회의 급작스러운 변동과 이로 인한 고통의 광경을 무대화하고 현상태와 현존 질서를 부정하는 근대의 혁명의식과, 이미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 대신에 미래에 더 나은 세계가 도래하리라는 진보 이념을 모티프로 삼는 근대의 역사철학으로 변모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주장이다.

서양 철학사에 숨겨진 종말론에 관하여
이 책은 흔히 니체의 ‘신의 죽음’의 선포 이후부터 20세기 내내 ‘포스트형이상학’, ‘근대 니힐리즘’, ‘(포스트)세속’ 등 여러 형태로 출현한 서구적 근대 계몽의 기획의 연장이나 성찰 내지 쇄신의 거대기획에 깃들어 있지만, 공개적인exoteric 표현을 찾을 수 없어 비의적인esoteric 표현으로만 간신히 건드리거나 내밀한 곳 깊숙이 숨겨져 있던 유대-그리스도교 담론의 요소와 그 역사적 계보를 파헤치고 일별하는 데 반드시 협상해야 하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빗겨가고(클리나멘clinamen) 도주하는 숨은 고전’이라 할 수 있는데, 최근 현대철학계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급진적 바울 해석, 칸트의 인간중심의 초월론적 상관주의, 구약성서와 플라톤주의와 가톨릭적 그리스도교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사회주의의 기원을 찾으려는 급진신학(존 밀뱅크)의 시도, 그리고 SF문학과 영상물의 서사를 중심으로 종말론, 묵시문학, 영지주의에서 미적 상상력을 끌어 올리려는 시도가 응당 통과해야 하는 하나의 샘과도 같은 책이다. 특히 영미권을 중심으로 총론으로 강조된 것에 비해 각론으로는 소홀히 다뤄져 온 벤야민의 유대성과 유대-그리스도교 신학과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는 흐름에도 연결할 수 있는데, 이는 서구적 근대에 깃든 가장 근대적인 유대주의의 흔적을 톺아보는 기회이자 17세기 계몽주의부터 전후와 냉전 이후의 각종 종언과 종말담론, (탈)세속화와 세속주의 논쟁, 그리고 고대의 덕론과 역량론의 귀환 등을 유대그리스도교의 측면에서 재구성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박사논문에 인용된 뢰비트의 책을 필두로 ‘슈미트(정치신학) 대 타우베스(묵시적-영지주의적 종말론)’의 도식을 벗어나 60년대부터 독일 지식계를 사로잡았던 ‘블루멘베르크(세속적 탈정치적 자유주의-실증주의) 대 타우베스(메시아적 유토피아주의)’라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도식을 잠시라도 조명할 것이다. 역자 문순표는 『서구종말론』의 한국 출간이 “한국학술출판시장의 주변에 미미하게 자리한 유대그리스도교의 문헌과 자료가 번역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러한 계기를 통해 유대지식인의 서사와 담론은 비로소 서구적 (고대-중세-근대-탈근대의) 정통 담론으로부터 벗어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1권 _ 종말론의 본질에 관하여 9
요소들 9
자유와 혁명 23
가이스트(영/정신)와 역사 26
혁명의 장소로서 이스라엘 35
묵시주의의 세계권 50
묵시주의의 원형어들 60
묵시주의의 역사관 71

2권 _ 묵시주의의 역사 89
다니엘에서 세례 요한까지 89
예수의 생애 99
바울과 고대 세계의 해체 126
원시 그리스도교의 역사 144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요아킴까지 174

3권 _ 유럽의 신학적 종말론 189
근대[새 시대]의 법칙 189
요아킴주의 예언과 헤겔식 철학 201
요아킴의 추종집단으로서 영성주의자들 217
토마스 뮌처, 혁명 신학 234
그리스도교 종말론의 와해 261

4권 _ 유럽의 철학적 종말론 273
철학적 종말론의 구조 273
레싱 286
칸트의 종교철학 300
헤겔의 변증법 328
맑스와 키르케고르 360
에필로그 415

마르틴 트레믈의 후기 _ “바로 순수유대인으로서……” 421
옮긴이 해제 _ 가깝고도 먼 묵시(默示)의 안개 속에서 445

참고문헌 468
찾아보기 483

본문중에서

역사의 의미가 혼동스러운 가운데서 개별 사건들에서는 그 척도가 발견될 수 없고, 오히려 일어난 모든 일을 도외시하고 물어야 한다. 무엇이 일어난 일을 역사로 만드는가? 역사 그 자체는 무엇인가? 역사의 본질에 관한 물음에서 그 척도와 기준은 에스카톤(종말)Eschaton의 관점에서 물을 때에만 얻을 수 있다. 에스카톤(종말)에서 역사가 그 한계를 뛰어넘고 그 자체가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 p.10)

천상과 지상 사이의 공간은 이란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악령의 권력들로 채워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세계는 신과 악마 사이의 전쟁터가 된다. 영지주의 문학에서처럼 바울에게도 악령의 권력들은 ‘현세의 지배자’이고 사탄은 ‘현세의 군주’다. 세계 공간에서 개별 우두머리만 악령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세계가 그 실체에 있어 악령적이다. 삶이 머무르고 있는 세계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악령의 권력이다. 묵시주의의 시간들은 악령화된 시대다.
(/ p.65)

묵시주의에서 역사는 연대기로 보고되지 않으며, 과거와 현재에서 배워 미래를 알려고 시도된다. 그러나 미래는 폭넓게 서술될 뿐 아니라 ‘언제 끝이 도래하는가?’와 같은 물음이 결정적이기도 하다. 묵시주의의 원형이 되는 물음은 언제냐다. 언제에 관한 물음은 구원에 대한 불타는 기대에서 나온 것이며, 이에 대한 자명한 답은 ‘곧’이다. 이 ‘곧’은 묵시적 믿음의 본성에 속한다. 그러나 구속(救贖)이 곧 온다는 보편적 언명으로는 구속의 때와 시간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계산을 근거로 수치상의 특정 대답을 제시하거나 혹은 임박한 종말을 알려주는 전조들에 이름을 붙이려고 시도된다. 언제냐고 끝없이 물을 때 함께 불평을 중얼댄다. 현세의 밤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까요? 종말을 지켜볼 뿐 아니라, 종말이 오고 있다는 것도 안다. 이것이 묵시록의 모든 저자들이 종말의 체험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특징을 가리킨다.
(/ p.72)

현재 상태를 벗어나 신을 실현하는 이 변증법의 법칙은 자연의 영역에만 유효할 뿐 아니라, 신의 구속 사역Heilswerk인 역사에서 특히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리하여 모든 은총과 천상과 천상 너머의 교회의 뿌리는 후밀리타스humilitas(겸허)라는 중심에, 이른바 중심에 있는 무에 그 기초와 생장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도 이르게 된다.” 역사에 대한 신적인 변증법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구현된다. 모든 생명이 죽음을 통해, 낡은 형태를 몰아냄으로써 생긴다는 법칙은 인간의 생명에도 유효하다. “우리는 이 법칙을 우리의 삶과 죽음 전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하게 되는데, 우리의 생명이 의존하고 있는 씨앗들과 과실들이 먼저 죽지 않으면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우리가 어머니의 품 밖으로 첫 외출을 하기도 하여 우리는 그 품 안에서 감옥 같은 종류의 무덤을 얻은 뒤 여기서 나와 마침내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게 아닌가?
(/ pp.224~225)

저자소개

야콥 타우베스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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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 192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스위스 취리히에서 자랐다. 대랍비였던 아버지로부터 정통 랍비 교육을 받았으나, 곧이어 바젤 대학과 취리히 대학에서 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1947년 취리히 대학에서[서구 종말론의 체계와 역사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9년부터 뉴욕 유대신학교에서 종교철학 강사로 일했으며, 이때 레오 스트라우스에게서 개인적으로 사사했다. 또한 이 시기에 한나 아렌트 및 파울 틸리히와 친분을 쌓기도 했다. 게르숌 숄렘의 초청으로 1951년부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종교사회학 강사로 활동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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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포츠담 대학교 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레시안 북스],[연세 대학원 저널] 등에 서평과 비평을 연재했으며 지금은 ‘미국-독일’, ‘내향-외향’, ‘계몽-광신’, ‘전향-전도’ 등의 ‘비대칭적 반대 개념asymmetrische Gegenbegriffe’을 중심으로 서양 철학의 국내 수용사와 영향사를 다룬 책을 구상 중이다. 함께 쓴 책으로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2014), 옮긴 책으로 [푸코, 데리다, 들뢰즈 이후의 프랑스 철학을 읽는다](근간), [서구종말론](근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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