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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 명상록 [개정판]

원제 : Marcus Aurelius Medi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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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상처 많은 영혼을 위로해주는 인생지침서!

크나 큰 난관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짤막한 경구로 된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적 비망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깨우쳐 올바른 삶의 자세를 일깨워주는 자기 성찰의 기록.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지혜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인생지침서의 고전!


[명상록(暝想錄)]은 로마 황제이며 스토아 철학자인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생애 후반의 철학적 일기이며, 자기의 사상과 묵상을 비망록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그가 로마를 통치하던 시대는 전쟁과 질병, 기근의 연속으로 그의 영혼은 오랜 동안 온갖 수난과 전쟁에 지쳐 있었다. 그는 전장에 있는 동안 [명상록]을 쓰면서 고독과 유랑의 시간을 달랬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이성적 영혼은 우주적 자연의 일부이며, 인생의 목적은 우주적 자연의 신성한 목적을 이해하고 그 목적에 따르는 것이었다. [명상록]은 ‘자연에 일치하여’, ‘자연에 따라’ 살아가는 아우렐리우스 자기 성찰의 기록이다.

목차

序文
일러두기

아우렐리우스의 생애와 사상
스토아 철학에 대하여

명상록 제1권
명상록 제2권
명상록 제3권
명상록 제4권
명상록 제5권
명상록 제6권
명상록 제7권
명상록 제8권
명상록 제9권
명상록 제10권
명상록 제11권
명상록 제12권

아우렐리우스 연보

본문중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 121~180)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스페인 출신의 집정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Annius Verus)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Domitia Lucilla)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 교양 있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그의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으며, 그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자랐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정신적 자질을 보였으며 학문에 대한 열성은 대단했다. 그는 당시의 로마 황제인 하드리아누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아우렐리우스의 고모부인 안토니우스 피우스를 양자로 삼고, 아우렐리우스를 그의 양자로 맞이하게 했다. 그는 섹스투스(Sextus), 루스티쿠스(Rusticus), 프론토(Fronto) 등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서 미래의 황제로서의 통치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 등을 배웠다. 그 후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 피우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그는 황제에 오른 해인 161년부터 죽을 때까지 게르만족, 스키타이족 등 외부의 침략과 로마 전역을 휩쓴 페스트, 티베리스 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등 끊임없는 시련을 겪게 되었다. 그의 영혼은 계속되는 온갖 수난과 전쟁으로 인해 지쳐 있었다. 당시 전장에서 자신의 철학적 사상과 묵상을 비망록 형식으로 기록했다. 그것이 바로 [명상록(暝想錄)]이다. [명상록]은 로마 황제이며 스토아 철학자인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생애 후반의 철학적 일기이며, 자기의 사상과 묵상을 비망록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그가 로마를 통치하던 시대는 전쟁과 질병, 기근의 연속이었다. 48세 때인 169년, 그는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다뉴브 지방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오랜 동안의 온갖 수난과 전쟁에 지쳐 있었다. 그는 그곳에 있는 동안 [명상록]을 쓰면서 고독과 유랑의 시간을 달랬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이성적 영혼은 우주적 자연의 일부이며, 따라서 인생의 목적은 우주적 자연의 신성한 목적을 이해하고 그 목적에 따르는 것이었다. 즉 ‘자연에 일치하여’, ‘자연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었다. 실로 그는 우주의 신성한 목적과 그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어떤 것도 자기가 최선을 다해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 책은 아우렐리우스가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자성록(自省錄), 즉 자기 성찰의 기록이다. 이 책에서 “당신”이라고 부르며 꾸짖고 위로하는 것은 독자들이 아니라 아우렐리우스 자신인 것이다.
('서문' 중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Annius Verus)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Domitia Lucilla)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Verus)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마르쿠스의 원래 이름은 Marcus Annius Verus였다─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Antonius Verus)는 총독·집정관·원로원 의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마르쿠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소년시절은 행복했다.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진실하고 성실했다. 당시 로마 황제는 하드리아누스(Hadrianus)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소년 마르쿠스를 사랑했으며 그의 이름인 Verus를 Verissus(진실한 자)로 불렀다.
마르쿠스의 숙모 파우스티나(Faustina)와 그녀의 남편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피우스(Aurelius Antoninus Pius)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르쿠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라고 이름 붙여 주고 그들의 후계자로 삼았다.
마르쿠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마르쿠스의 양부(養父)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마르쿠스는 26세 때 양부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딸 파우스티나(Faustina)와 결혼했다. 당시의 기록에 파우스티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품행이 단정치 못한 여인이었으나 마르쿠스는 그녀에게 관대하게 대해 주었다고 한다. 마르쿠스와 파우스티나 사이에는 13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는 자식들을 무척 사랑했다. 그러나 죽음의 신은 가장 변변치 못한 아들인 코모두스(Commodus)와 4명의 딸을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을 마르쿠스로부터 모두 앗아갔다.
마르쿠스는 17세 때부터 미래의 황제로서 통치하는 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들을 배웠다. 그를 위해 많은 스승들이 초빙되었는데 모두 최고의 인물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플루타르크(Plutarch)의 조카이며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섹스투스(Sextus), 그에게 에픽테토스(Epictetos)를 가르쳐 준 루스티쿠스(Rusticus), 수사학자(修辭學者) 프론토(Fronto)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마르쿠스는 특히 프론토(Marcus Cornelius Fronto)를 존경했다. 프론토는 유명한 웅변가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확한 학설을 갖고 있었다. 마르쿠스와 프론토는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그 중 많은 편지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편지들은 거의 모두 라틴어로 쓰여 있으며 대부분이 139년부터 165년 사이에 주고받은 것들이다. 그 기간은 마르쿠스가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양자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는 18세 때부터 그가 로마의 단일 황제이던 때까지다. 초반에 프론토가 마르쿠스에게 보낸 편지들 속에는 수사학 원리와 젊은이로서 읽어야 할 책들에 대한 조언이 담겨 있으나 후반의 편지들에는 당당한 맛이 없다. 특히 145년 마르쿠스가 수사학을 버리고 철학(Stoic philosophy)을 선택한 이후부터 그러했다. 그 편지들은 마르쿠스의 성품을 잘 말해 주고 있으며 스승과 가족들에 대한 애정 깊은 태도와 학문에 대한 열성, 황제이면서도 스승에 대한 지극히 겸손한 태도 등이 잘 나타나 있다. 후반의 편지들에는 피곤한 기색이 보이는데 이는 책 읽기를 원했던 시간들을 공무(公務)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심해갔다. 그가 22세 때인 143년에 프론토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내가 쓴 시(詩)들을 보내 달라하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그 시들을 갖고 있었다면 즉시 보내 드려야 했겠지요. 그러나 비서 아니케투스(Anicetus)는 내가 떠나올 때 그 시들을 하나도 챙겨 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몸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 시들을 불에 던져 넣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시들은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 시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밤에 공부합니다. 낮에는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날 때도 피곤합니다.

다음의 편지도 143년에 쓰인 것으로 여기서도 피곤함이 잘 드러나 있다.

내가 스승님과 함께 있지 않을 때 스승님은 카토(Cato)를 읽으십니다. 그러나 스승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을 때 나는 오후 여섯 시까지 탄원자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밤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깨어 있는 시간이 그만큼 짧아지고, 스승님을 만나는 시간도 그만큼 빨리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거의 숨조차 쉴 수가 없습니다. 그토록 지쳐 있습니다.

145년경 마르쿠스는 수사학을 버리고 철학을 택했다. 그것은 프론토의 슬픔이며 괴로움이었다. 그러나 사적인 관계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그는 이미 수사학보다는 철학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스토아학파 철학자 주니우스 루스티쿠스(Junius Rusticus)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가 수사학을 버리고 철학을 택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수사학의 위치와 스토아 철학의 호소력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시는 강연자들의 시대였다. 그들은 공적인 행사에서 강연을 하고 중요 인사들 심지어 황제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들은 소피스트(Sophist)들이었으며 직업적인 수사학자로서 커다란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들은 온 로마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다. 로마의 황제들은 그들을 지방의 통치자와 로마의 집정관으로 삼았다. 귀족들은 그들의 오만한 태도를 놀라울 정도로 온순하게 참고 견뎠다. 로디체아(Laodicea)의 소피스트 폴레모(Polemo)가 갑자기 스미르나(Smyrna)로 돌아와 지방 총독이었던 안토니누스(Antoninus)를 한밤중에 집에서 쫓아낸 일도 있었고 심지어 마르쿠스의 스승 중 한 사람이며 백만장자인 아테네의 소피스트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가 마르쿠스의 법정 앞에서 황제를 시험하며 모욕을 준 일도 있었다. 그러한 일들은 온순한 친(親) 그리스 황제들 치하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다.
당시 상위의 교육이란 여전히 수사학 교육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식인들을 위한 철학 학교들도 있었고 2세기 전에는 키케로(Cicero)가 수사학과 스토아 철학을 통합하여 하나의 교육 체계를 세우려 했으나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니 성실한 마음의 소유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수사학에 등을 돌리고 스토아 철학을 택한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161년 마르쿠스의 양부인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죽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에게 제위는 탐탁한 것이 아니었다. 철학이 그에게 위안이며 종교였다. 마르쿠스는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Lucius Verus)─마르쿠스의 양부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마르쿠스를 양자로 맞이한 이후에 루키우스 베루스를 또 양자로 맞이했다─를 자기와 같이 황제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하여 로마는 역사상 처음으로 동시에 두 사람의 황제를 갖게 되었다. 루키우스 베루스는 쾌활하고 태평스런 젊은이였으며 정사를 거의 돌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마르쿠스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평화를 사랑하는 마르쿠스였지만 거의 끊임없이 전쟁을 겪었다. 그 전쟁들은 동부 속국들의 반란과 중부 유럽의 게르만 인들의 이동에 기인한 것이었다. 161년부터 166년까지는 파르티안(Parthian) 전쟁이 있었는데 이때 마르쿠스의 의동생 루키우스 베루스가 군대를 이끌고 가서 승리하고 돌아왔다. 페스트가 로마 전역을 휩쓴 것도 이 원정의 결과였으며 그것은 로마 멸망의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이때 티베리스 강의 범람으로 인해 로마는 엄청난 곡식을 잃었다. 그리하여 마르쿠스는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궁정의 보물들을 팔지 않을 수 없었다.
마르쿠스는 페스트와 기근의 걱정 속에서도 끊임없이 전쟁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동부의 콰디(Quadi)·마르코마니(Marcomanni)·사르마티(Sarmati)의 사나운 종족들이 끊임없이 황제의 방어망을 뚫으려 했기 때문이다. 위험에 직면한 마르쿠스는 167년 찌든 군대를 이끌고 로마를 떠나 다뉴브 강을 따라 원정길에 올랐다. 그는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결국 그곳에서 죽게 된다. 167년 의동생 루키우스 베루스가 병으로 죽자 그는 그 이후 13년 동안 혼자서 로마를 통치했다. 그 후 아시아의 아비디우스 카시우스(Avidius Cassius)라는 자가 마르쿠스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자신을 황제라고 자칭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마르쿠스는 병사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병사 여러분, 내가 이곳으로 온 것은 꾸짖거나 화를 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만능이신 신에 대해 화를 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부당하게 불행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비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도 지금 그러한 경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동족이 서로 다투는 것은 너무도 어이없는 일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아무런 신뢰도 없는 것, 가장 친한 자로부터 배반당하는 것, 부정을 저지른 일도 없고 법을 위반한 일도 없이 나도 모르게 싸움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만큼 두렵고 어이없는 일은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카시우스를 여러분들 앞에 불러 대답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만일 그가 황제가 되는 것이 공익을 위해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나는 싸우지 않고 기꺼이 그에게 통치권을 양도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마르쿠스는 아시아로 향했다. 그러나 카시우스는 부하 두 사람에게 살해되었다. 부하들이 그의 목을 가져 왔을 때 마르쿠스는 그 끔찍스런 모습을 차마 보지 못했으며 반역자들을 관대하게 대해 주었다. 동방 원정 기간에 그와 함께 동행했던 아내 파우스티나(Faustina)가 죽었다. 마르쿠스는 다시 다뉴브 강 지방으로 돌아와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기에 힘썼다. 그는 그곳에 있는 동안 [명상록]을 쓰면서 고독과 유랑의 시간을 달랬다. [명상록]이 그에게는 철학 일기였던 것이다. 그의 영혼은 여러 가지 수난과 전쟁에 시달려 지쳐 있었다. ‘소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인생에 지쳐 버린 것이다. 마침내 페스트가 그를 덮쳤다. 그는 며칠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이 59세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 오히려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하라.”
('아우렐리우스의 생애와 사상' 중에서)

121년
· 하드리아누스 황제 5년 4월 26일, 로마의 카에리우스에서 태어났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카틸리우스 세베루스(Marcus Annius Verus Catillius Severus)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Annius Verus)는 스페인 출신의 이탈리아 귀족이었으며 사망 당시 직책은 집정관이었다.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Domitia Lucilla)도 귀족 집안의 딸로서 그녀의 아버지는 집정관이며 막대한 재산의 상속인이었다. 마르쿠스의 고모 안니아 파우스티나(Annia Faustina)는 부유한 귀족 티토우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Titous Aurelius Antoninus)와 결혼했는데 그가 후에 마르쿠스의 양부가 되었다.
· 마르쿠스는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자질을 나타내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총애를 받아 ‘가장 진실한 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어린 시절 로마 정통의 종교적 분위기로 말미암은 그의 경건한 성품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127년 (6세)
· 기사단에 들어가다. 보통 17세가 되어야 입단이 허락되었으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특별한 배려로 들어갈 수 있었다.

128년 (7세)
·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배려로 당시 유명한 종교학교에 입학했다.

130년 (9세)
· 생부 안니우스 베루스 죽음. 외증조부 루키우스 카틸리우스(Lucius Catillius:집정관 · 총독 등의 요직을 지냄)의 배려로 공립학교에 다니는 대신 집에서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배우기 시작함(제1권 4참조).
여러 가정교사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인물은 수사학자인 코르넬리우스 프론토(Cornelius Fronto)로서 후에 마르쿠스가 스토아 철학에 몰두할 때까지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와 주고받은 많은 편지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131년 (10세)
· 이때부터 10대 전반까지 별장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심신의 단련을 위해 힘쓰다.

132년 (11세)
· 차츰 스토아 철학에 눈을 뜨게 되어 수사학보다는 철학을 중점적으로 공부 하기 시작하다. 그리하여 스토아 철학은 평생 정신의 등불이 되고 양식이 되었다.
· 이때부터 135년까지 동방 유태인의 반란이 계속되다.

136년 (15세)
· 성년식을 거행하다.
·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소개로 루키우스 게이오니우스 코모두스의 딸 게이오 니아 파비아와 약흔하다. 또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집정관 직에 있던 코모 두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정했다.
· 에픽테토스 죽음.

138년 (17세)
· 코모두스가 갑자기 폐병으로 죽자 하드리아누스는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를 양자로 삼아 후계로 정한다. 한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갑자기 폐병으로 죽은 코모두스의 아들 루키우스 게이오 니우스 코모두스(당시 8세)와 함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명에 따라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양자가 됨. 그리하여 루키우스 게이오니우스는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라는 이름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으며 마르쿠스는 장래의 지배자의 위치에 놓인다.
· 7월 9일, 하드리아누스 황제 63세의 나이로 죽음.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그 뒤를 이어 황제에 오름.

139년 (18세)
· 피우스 황제는 일방적으로 마르쿠스와 파비우스의 약혼을 파기하고, 피우스 황제의 딸이며 마르쿠스의 누이동생 격인 안니우스 카렐리아 파우스티나와 약혼시킴. 마르쿠스는 피우스 황제의 후계자로 정해짐.

140년 (19세)
· 재무관이 되다

141년 (20세)
· 집정관이 되다.

145년 (24세)
· 파우스티나와 결혼.

146년 (25세)
· 장녀 안니아 카렐리아 아우렐리아 파우스티나 태어남. 그 이후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명이 요절하고, 1남 4녀만이 남았다.
· 호민관, 지방총독이 되다. 이때부터 피우스 황제의 공동 통치자로서 실제 정치에 참여하게 되어 좋아하지 않는 공직생활, 상류 사교생활에 어쩔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빼앗김. 번잡한 나날 속에서도 스토아 철학에 전념하다.

161년 (40세)
· 3월 7일, 피우스 황제 죽음.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즉위함.
·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음.
· 피우스 황제 시대의 평화는 사라지고 외적의 침략, 변방 야만족의 소란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되다.

162년 (41세)
· 게르마니아의 카디족, 브리타니아의 카레토니아족을 정벌함. 그러나 동방의 파르티아인(스키타이족)이 시리아에 대한 로마 지배를 붕괴시켜 속주(屬州) 카드파드키아와 로마 지배하의 아르메니아도 위협을 받다.
· 아우렐리우스의 명에 의해 이때부터 166년까지 루키우스 베루스가 동방을 원정하다.

165년 (44세)
· 바빌로니아의 세레우게이아와 그 서북쪽의 크테시폰을 정벌함.

166년 (45세)
· 동방 원정으로부터 돌아온 루키우스 베루스의 군대가 페스트를 전국에 퍼뜨려 189년까지 인구의 3분의 1~2분의 1이 죽음.
· 북방 야만족 마르코만니가 북부 이탈리아의 베로나까지 침략해 오다.

168년 (47세)
· 침략해 온 마르코만니에 의해 점령되었던 북부 이탈리아를 탈취함. 로마군은 이 반격으로 3년 후(171년) 오늘날의 스위스 지방까지 탈취함.

169년 (48세)
· 공동 황제인 루키우스 베루스 죽음. 베루스가 죽자 게르마니아가 다시 공격해 옴. 아우렐리우스는 다뉴브 강가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생활함. 이때부터 이 책 [명상록]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임.

170년 (49세)
· 많은 야만족들과의 싸움이 계속되다.

171년 (50세)
· 다뉴브 강을 건너 적진 깊숙이 반격해 들어감.

174년 (53세)
· 시실리의 총독이었던 아비디우스 카시우스(Avidius Cassius)가, 아우렐리우 스가 진중에서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황제를 자칭하며 반란을 일으키다.

176년 (55세)
· 카시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아시아로 떠남. 카시우스는 자기의 부하 두 명에게 살해 당함.
· 이 원정 기간 동안 소아시아에서 아내 파우스티나를 잃음.
· 11월, 로마로 돌아오다.

178년 (57세)
· 다시 마르코만니와 싸우다.

180년 (59세)
· 북방의 싸움으로부터 돌아오는 도중 페스트에 걸려 3월 17일 지금의 빈에서 세상을 떠나다.
· 아우렐리우스의 유일한 아들 코모두스가 19세의 나이로 제위를 이어받다.
('연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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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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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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