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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인들의 자아와 타자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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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임병철
  • 출판사 : 푸른역사
  • 발행 : 2012년 12월 31일
  • 쪽수 : 43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94079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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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당신과 나의 사이에서, 스스로를 연기한 르네상스인들

"나는 우리의 자아에 대한 관념이 자신의 자아를 대상화하고 그것을 외부와 관계시켰던 르네상스인들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가끔 회의에 빠진다. ... 이 책의 주인공들은 우리에게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익숙하면서 낯선 관념이 이 시기에 비로소 태동하고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 종장: 가까워지는 시선 중에서

여기를 사는 우리는 사회의 무수한 관계망이 교차하면서 생긴 입체적인 교집합이다. 우리는 눈을 뜬 순간부터 감을 때까지 적당히 물들이고 물드는 척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욕망 사이를 조율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스스로의 다양한 얼굴들을 연기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단수가 아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의 스스로에 대한 인식은 종적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연결선을 거슬러 올라가면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인들에게 닿는다.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인들의 자아와 타자를 찾아서]는 14세기에서 16세기 르네상스기, 단테에서 바르테마에 이르는 이탈리아인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르네상스 인간관의 탄생과 자아재현 방식의 변화상을 추적한 결과이다. 이를 위해 본질주의에 기초한 개인이라는 개념과 사회적 결정론에 경도된 주체에 대한 강조, 이 두 개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자아라는 개념을 통해 르네상스기를 들여다본다. 그럼으로써 외부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수립하고 글쓰기를 통해 자아에 대한 이미지를 창조한 르네상스기 개인의 모습이 각 시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서로를 지양하고 이으면서 변화했는지를 역사적인 시각으로 정리했다.

주체와 개인을 넘어, 자아의 출현

"브루넬리스키는 뚱보의 작업장에 가서 그를 그곳에 오래 머물게 한 후, 일개 심부름꾼에서 간수 그리고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가담시켜 뚱보의 신원을 바꿔버렸다. 그를 그저 얼굴 정도만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수공업자 마테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결국 자신도 모르게 마테오가 되어 버린 뚱보는 예상치 못한 마테오의 빚으로 한나절 동안 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믿을 지경에 이른다. 마테오가 빚을 대신 갚아 준 형제들의 도움으로 유치장 신세를 면한 후 가족의 명예를 지키라는 그들의 책망과 함께, 뚱보라는 더 이상의 허황된 주장을 그만두라는 교구 신부의 훈계마저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뚱보는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의 소용돌이에 지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마테오의 집에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르네상스 개인주의 테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
르네상스의 개인을 신격화한 부르크하르트의 해석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세계와 인간의 발견"이라는 매력적인 명제 아래 믿음, 환상, 유아적 망상이라는 ‘중세적 베일’이 사라지면서 "영적 인간spiritual being"들이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사회에 넘쳐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부르크하르트에게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인들은 외부 환경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또 그것들을 주관적인 시각에서 판단할 수 있는 ‘근대적 개인’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부르크하르트 이래의 전통적 해석을 수정하고, 이를 역사적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이를 위해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에 출현했던 여러 지식인, 상인, 그리고 여행가들의 중요한 저작이나 서간들을 그들이 살았던 사회관계 속에서 꼼꼼히 분석하고, 이를 기초로 르네상스기의 인간들이 자아의식에 충만한 영적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행동 양식과 의미를 찾았던 사회적 존재라는 점을 규명한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인들의 자아와 타자를 찾아서]는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로 에라스무스가 종합했던 인간에 대한 관념이,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사회를 거치면서 어떻게 태동할 수 있었고 또 발전했는지를 규명하는 서양 개인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특히 ‘개인’ 대신에 ‘자아’라는 개념틀을 르네상스 인간을 해석하는 분석도구로 삼아, 공적 인간으로 스스로를 객체화했던 르네상스 군상들의 새로운 이미지와 그 이면에 담긴 다채로운 속살을 그려낸다.

넓어지는 르네상스 해석의 지평선
하나의 역사적 시기로 해석하든 그 시기를 지배했던 문화운동으로 갈음하든, 르네상스는 고대의 부활과 그것에 기초한 유럽적 자기정체성과 관련된 무엇으로 이해된다. 이 책은 이러한 르네상스 관념에 대한 재해석의 여러 가능성을 타진한다. 자아재현과 타자인식이라는 주제에 따라 검토된 이 책의 주인공들 대부분은 고대에 대한 탐닉이라는 르네상스 특유의 세계관에 기초해 정체성을 확립하고 수사적 혹은 관계적 자아로 대변되는 공적인 자아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이 점에서 그들은 고대에서 생의 지표를 찾았던 ‘르네상스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하다.
이와 함께 이 책은 이들의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치리아코, 포지오, 바르테마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서유럽인들만이 고전적 전통을 정체성 수립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르네상스는 서유럽적 정체성의 가늠자라기보다, 고전 전통의 계승자 자리를 놓고 서로 다른 인간 그리고 서로 다른 세계가 각축을 벌인 새로운 시대였다. 또한 이 책은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200여 년간의 시기 동안 출현했던 인간과 타자에 대한 관념의 변화상을 추적하면서, 르네상스기 인간들이 모두 균질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텍스트와 저자, 그들을 둘러싼 콘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읽기 전략
이 책에서 사용된 방법론 역시 주목할 만하다. 텍스트와 저자 그리고 그들이 출현한 사회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연속체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텍스트지상주의나 콘텍스트주의를 통해서는 역사상에 나타난 어떤 저작이나 저자의 의미를 온전히 포착하기 어렵다. 텍스트를 하나의 자율적 실체로 간주하고 그 의미를 내적 언어 시스템과 관련해 이해하면서 그 텍스트와 그것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함의 사이의 관계를 무시하거나, 또는 텍스트의 투명성을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어떤 텍스트를 그것이 생산된 전체 문화의 파편화된 거울로 단순화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텍스트의 의미보다는 저자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취급하는가 하는 문제가 저자와 그를 둘러싼 외부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포착할 수 있는 더욱 중요한 지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텍스트의 재콘텍스트화re-contextualization of text’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읽기 전략을 통해 르네상스기의 여러 저작들에 접근한다. 어떤 저자의 독특한 재현 방식은 그와 텍스트 사이를 매개하고 중재하는 시대의 문화와 세계관에 조응하기 때문이다. 화이트Hayden White의 용어를 빌리자면, 하나의 텍스트는 기록된 사건이나 관념의 "재생산"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구조를 결정하는 "상징들의 복합체"이다. 이 점에 주목한 이 책의 텍스트 읽기 전략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그린블랫 등이 강조한 신역사주의적 텍스트 읽기와 결을 달리하면서, 역사자료를 새롭게 읽고 해석하는 역사방법론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

1부에서는 단테와 페트라르카를 소개한다. 이들은 여행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자아를 인식하고 표현했다. 여행은 공간의 확대라는 물리적 차원을 넘어 한 존재와 그 존재의 경계가 인식론적 차원에서도 새로이 생겨나는 경험이다. 그들에게 여행은 스스로와 외부의 조응관계가 더 복잡하게 섞이고 중첩되는 새로운 인식론적 계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단테와 페트라르카는 상반된 자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2부에서는 르네상스 문화의 전성기인 15세기를 살았던 세 인물들, 15세기 ‘최고最古의 휴머니스트’인 포지오,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르네상스인의 전형으로 평가된 ‘만능인’ 알베르티, 그들과 결이 다르지만 학자연했던 ‘르네상스적’인 상인 치리아코를 다룬다. 포지오와 알베르티의 자아재현에 관한 글에서는 르네상스라는 작은 사회의 권력 관계 속에서 이들이 스스로의 위치를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재현하는지를 살펴본다. 이어서 포지오의 아시아 기행기와 치리아코의 지중해 기행기를 통해서는 넓어지는 세계 속에서 그들이 타자의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자아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추적한다.
3부에서는 카스틸리오네와 바르테마라를 통해 달라진 정치 환경과 확대된 지리적 공간 속에서 15세기의 자아관과 세계인식이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하는지를 규명한다. 한편 바르테마의 여행기를 조금은 낯선 시선으로 해석하면서, 르네상스기의 여행가들에게 여행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였으며 그에 따라 르네상스기를 거치면서 여행기 자체도 자기 탐색을 위한 일종의 자서전적 문학 장르가 되었음을 확인한다.

르네상스의 초입에 선 순례자 단테
"신의 영광이여! 당신의 영광 덕분에 나는 참된 왕국의 고귀한 승리를 보았습니다. 저에게 그곳에서 본 것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단테의 [신곡]은 지옥에서 천국에 이르는 상상의 순례기를 통해 인간성의 고양이라는 세속적 이상으로부터 그리스도교적 도덕성으로의 전환이라는 회심의 과정을 재현한 작품이다. 이 책에서는 단테와 오디세우스와의 만남이 매우 비중 있게 그려진다. 단테에게 오디세우스는 일생을 덕과 지식에 바친 고귀한 인간이었지만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도덕성에 반하는, 팽창된 자아의식에 매몰된 ‘이교도’였다. 이러한 오디세우스와 순례자 단테와의 영적 충돌과 갈등이 어떻게 소화되는지의 과정이 곧 [신곡]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였다. 단테에게 오디세우스는 알레고리적으로 형상화된 시인 단테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따라서 단테는 고대인 오디세우스를 물들이면 물들일수록 오디세우스에 물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적 긴장은 [신곡] 전체를 통해 단테의 마음속에 자리하는 중요한 갈등의 한 축을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패러독스는 단테가 순례를 통해 자신을 반추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신의 은총으로 돌리는 그리스도교적 겸양으로써 해소된다.

르네상스를 연 자아재현의 기록자, 페트라르카
"저는 충분히 이 산을 보았고 이제 시선을 제 내면으로 돌립니다. 이제부터 저희가 하산할 때까지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 제가 그곳에서 읽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저를 향하고 있었다고 확신했습니다."
페트라르카의 ‘개체성’을 표현한 문학적 글쓰기는 휴머니즘이라 불리는 문화운동의 태동이라고 평가된다. 그는 자기표현이나 자기존중에 인색했던 중세적 세계관을 깨고 자신의 작품들에서 에고이즘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예를 들어 [방뚜산 등정기]는 진실성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기의 여행기와는 다르게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고대인과 중세인들이 기존의 세계관을 확인하는 장치로 여행이라는 모티브를 차용한 데 반해 페트라르카는 여행이라는 경험에 개인을 투사하고 이를 통해 세계를 재인식했다. 페트라르카는 중세의 초월적 순례기에서 벗어나 지적인 호기심이라는 동기에서 방뚜산을 여행한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인 객관적 외부 세계를 지극히 주관적으로 해석한 다음 비로소 자신에게 침잠한다. 그에게 방뚜산은 자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배경이었으며 방뚜산 정상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유리한 시각적 지점이었을 뿐이었다.

작고 위험한 세계라는 ‘극장’에서 스스로를 연기한 배우, 포지오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모든 것은 덧없고 다른 이들의 힘에 놓여 있다."
15세기 전반 피렌체는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문화의 격류에 요동쳤으며 사회적 신분도 매우 유동적이었다. 이처럼 돌발적이고 위험한 시기를 살았던 포지오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조응하는 능동적이고 탄력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즉 그는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 촉발된 내적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 개체성에 대해 자각했으며, 자신 밖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로서의 자신을 인식했다. 이를 위해 포지오는 자신의 자아를 고립된 세계에 존재하는 헤겔적 주인으로서의 주체가 아닌 권력 아래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실체이자 하나의 객체로서 재현했다. 그는 사회를 ‘세계의 극장’으로 표현했으며, 그에게 자아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주체-객체와 대화하며 조작되는 가공의 대상이었다.
한편 아시아를 여행한 다음 남긴 그의 기록을 보면 비슷한 시기의 여느 여행기와는 다르게 낯설음에 대한 사실적 묘사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해석이 중요한 주제로 부각된다. 예를 들어 그에게 인도의 브라만은 권력집단이 아니라 자신이 투영된, 그리고 야만과 대비되는 지식인 계층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이국의 땅에 존재하는 아시아인들과 더불어 비지식인 유럽인까지 타자로 설정했다.

만능인 또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한 카멜레온, 알베르티
"너는 너 자신의 판단이나 자유가 아니라 대중들의 가장 신랄한 비판에 맞춰 자신을 보여줘야 한단다."
알베르티 또한 전통적인 신분 질서가 붕괴되는 15세기를 살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이들에게 자신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세상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학문], [고뇌]와 같은 그의 작품들에는 주위에 맞춰 변화하는 가변적이고 다원적인 자아상이 기록된다. 그에게 자아는 한결 같지 않은 개념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배우가 다양한 역할을 재연하듯이 사회적 요구에 따라 수시로 자신을 위장해야 했다.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관찰되고 평가받는 사회에서 자신을 객체화함으로써 보호하는 개인, 이것이 알베르티가 표출한 르네상스 자아성의 핵심 관념이었다.

르네상스의 아이콘, 최초의 고고학자 치리아코
그는 지중해 전역을 수시로 여행하는 상인이라는 자신의 직업을 바탕으로 고대의 유물들을 기록하고 수집함으로써 고대를 ‘부활’시켰다. 대표적으로 치리아코의 파르테논 답사 기록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데, 고전적 유산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파르테논을 답사하며 기록한 사람이 치리아코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여러 기록은 파괴되기 이전의 파르테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가장 르네상스적인 여행이었다.

혼란과 변화의 세계의 주인이자 노예, 카스틸리오네
"만약 어떤 궁정인이 군주와 사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그는 또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궁정은 어떤 사회의 정점에 위치하며 당대 관행과 문화를 배포하는 곳이자 극도로 폐쇄된 공간이다. 카스틸리오네는 16세기 르네상스의 상징적인 궁정인이었다. 그에게 있어 궁정은 드러난 연기라는 글줄 사이에 숨겨진 행간을 좇는 허구게임이었으며 정치 활동의 공간을 넘어 군주를 중심으로 다양한 군상이 경합을 벌이던 문화적 유희의 장이었다. 이 장에서는 그가 인간 삶에 편재한 권력의 작동을 인지하고 그에 맞춰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했음을 그의 작품인 [궁정인]을 통해 해명한다. 여기서 나오는 ‘그라찌아’는 칭송과 비슷하지만 엄격히 구분되는 개념으로 궁정인의 덕목과 목적을 가리킨다. 그라찌아는 ‘스프레짜투라’라는 사회적 관계에서의 겸양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문학적 표현은 15세기 알베르티 등에게서 나타나는 수사적 자아상의 반영이었으며, 동시에 휴머니스트적 관심사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기 수수께끼의 여행가, 바르테마
바르테마는 비-이슬람 교도로서 마케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최초의 유럽인으로 그가 남긴 책은 16세기 초반 인쇄술의 초기 역사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여행기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이 여행기에서 이야기로서의 저자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서전적인 시도를 한다. 그는 고전적 권위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탈피해 오직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경험만을 강조했다. 또한 자신의 선배들과는 다르게 명예욕과 같은 세속적 열망을 글에서 은밀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나아가 자신이 접하는 세계에 대해 자신의 세계를 기준으로 재단했다. 이러한 바르테마의 여행기는 스스로를 관조하는 페트라르카의 자아상을 잇는 동시에 자신의 문화를 통해 타문화를 전유하며 일방적 문화 동화를 꾀하는 근대 유럽인과도 선이 닿아 있다.

낯선 르네상스기를 살았던 그리 낯설지 않은 르네상스기의 인간들에게로의 초대

이 책에서 다룬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인들은 ‘호모 레토리쿠스homo rhetoricus’로 불러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미학자들이었다. 그들에게 글쓰기는 설득의 예술이자, 저자와 독자가 만나고 충돌하는 전략적 공간이었다. 그들은 모두 타자와의 대화를 위한 전략적인 도구로 자신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분석한 그들의 작품에는 텍스트의 표면에 나타난 진술이나 그것의 의미 자체가 아닌 저자에 의해 정교하게 창출된 "텍스트적 수행textual performance" 과정에 따라 표현된 저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즉 예술로서의 글쓰기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그들을 이야기한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하면서, 이 책의 저자는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인들이 이전 세대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고민을 자신들을 둘러싼 문화적?정치적 환경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하면서 수사적 혹은 관계적 자아를 수립했다고 주장한다.
포지오는 "나는 내 생각에 따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평가한다. 나는 왕이 되어야 한다"고 적었고, 또 [파케티아이]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15세기 초 피렌체의 평범한 중산층 시민 지오반니 모렐리는 자신의 세계를 끝없는 반목과 경쟁이 지배하는 정글로 비유하며, 이 세계에서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라. 누구도 험담하지 마라....... [하지만] 누구도 믿지 말라"고 말했다. 행위주체로서의 스스로에 대한 자각과 그것을 통제하는 외부의 힘 사이의 갈등이 포지오와 모렐리의 삶과 사고를 지배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떠나는 르네상스로의 여행은 바로 이러한 갈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르네상스기의 인간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여행은 낯설고 먼 르네상스의 세계의 그리 낯설지 않은 르네상스의 인간들에게로 우리를 초대한다.

목차

책머리에

서장: ‘개인’의 역사에서 ‘자아’의 역사로
이 책의 주인공들

1부: 르네상스의 여명 트레첸토
1장. 두 명의 단테: [신곡]에 등장한 오디세우스에 대한 한 해석
2장. 자아재현의 기록으로서의 기행기: 페트라르카와 그의 [방뚜산 틍정기]

2부: 작고 위험한 세계 콰트로첸토
3장. 개인, 사회, 그리고 권력: 포지오와 조작 대상으로서의 자아
4장. 극장으로서의 사회, 연기자로서의 개인: 알베르티의 다원적 자아재현
5장. 타자의 이미지를 통해 자아 만들기: 포지오의 눈에 비친 동양과 동양인
6장. 치리아코의 지중해 기행과 고전고대의 발굴

3부: 혼란과 변화의 친퀘첸토
7장. 문학과 회화의 만남: 언어적 초상화로 [궁정인] 읽기
8장. 권력관계 속에 봉인된 르네상스의 개인: 카스틸리오네의 이상적 궁정인
9장. 르네상스의 수수께끼 여행기: 바르테마의 기행기에 나타난 저자의식과 세계인식

종장: 가까워지는 시선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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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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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수 0권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근대 초 유럽 지성사 및 문화사 분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지성사 및 사회 문화사, 미술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성이나 아동, 노인, 하급지식인 등 르네상스기의 소외 계층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르네상스 예술작품에 나타난 권력의 이미지를 역사적인 시각에서 해석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역사속의 소수자들](공편), [서양문화사 깊이 읽기](공편), [21세기 역사학 길잡이](공편) 등이 있고, 주디스 브라운의 [수녀원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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