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천년의 수도인 경주는 신라가 992년간 존속하면서 수많은 능묘(陵墓)유적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시조 혁거세거서간부터 경애왕까지 55명의 왕과 그 수보다 더 많았을 왕비가 경주에서 장례를 치렀으며, 이 중에서 화장(火葬)하여 산골(散骨)한 몇몇 왕과 왕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왕과 왕비, 그리고 수많은 왕공귀족(王公貴族)들이 경주땅에 무덤을 만들었다.

이러한 신라시대 무덤의 외형과 규모, 내부에서 확인되는 유구와 유물들은 우리역사의 빈 공간을 메워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당시 최고 지배자인 왕(비)릉은 조영당시 신라 왕실이 가진 정치사회적인 위치와 사상이 함축되어 표현된 신성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신라가 쇠망한 이후 일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능묘는 인위적, 자연적인 훼손도 있었지만 전승(傳承) 과정에서 대부분의 능묘가 주인공을 잃어버렸거나 잘못 전승되어 주인공이 바뀌어 버린데 있다. 이처럼 신라시대의 상황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풀고자 하는 연구는 신라 왕릉의 수에 비해서는 미진했다.

이러한 숙제를 풀고자 몇몇 학자들이 연구를 시도했지만 부분적인 검토에 그쳤을 뿐 구체적이고도 치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신라왕릉연구]는 지금까지 학계가 신라사 및 신라고고학 연구과정에서 난제로 여겨왔던 신라 왕릉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라 왕릉의 기원에서 발전, 쇠퇴, 종말의 전 과정을 치밀하게 분석하였으며, 이를 통해 그동안 잘못 알려져 오던 왕릉들의 주인공을 제대로 꿰어 맞추는 성과를 낳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저자가 경주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신라 수도 경주의 산천지리와 이를 두고 일어날 수 있는 공간상의 정황을 꿰뚫고 있었으며, 지난 20여 년간 각종 문헌기록을 뒤지고 현장을 답사하면서 무덤의 입지조건과 규모, 양식의 변천과정을 살핀 결과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고고학, 미술사, 왕릉 조영에 반영된 정치, 사회, 지리, 사상, 예술적인 측면 등 모든 상시의 상황을 신라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통찰력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다.

책을 펴내며

머리말

제1장 서론

제2장 문헌기록 검토

제3장 전칭릉묘 및 왕릉 비정 고분

제4장 상고기 전칭왕릉의 피장자 문제

제5장 형성기의 왕릉 제6장 발전기의 왕릉

제7장 전성기의 왕릉

제8장 쇠퇴기의 왕릉

제9장 입지 및 형식 분류

제10장 결론

부록 1 [화계집] 나릉진안설 역주

부록 2 십이지신상

책을 펴내며 머리말 제1장 서론 제2장 문헌기록 검토 제3장 전칭릉묘 및 왕릉 비정 고분 제4장 상고기 전칭왕릉의 피장자 문제 제5장 형성기의 왕릉 제6장 발전기의 왕릉 제7장 전성기의 왕릉 제8장 쇠퇴기의 왕릉 제9장 입지 및 형식 분류 제10장 결론 참고문헌 출간 후기 부록 1 _ 『화계집』나릉진안설 역주 부록 2 _ 십이지신상 찾아보기

현재 신라의 왕경이었던 경주지역에는 기원전 57년부터 고려에 귀부한 935년까지 조영된 것으로 알려진 무덤들 가운데 봉분의 규모가 크거나 봉분을 화려하게 장식한 왕릉이 다수 전해온다. 그리고 이들 무덤의 피장자는 고대 사회의 권력구조로 미루어 왕·왕족·귀족들로 추정되며, 신분에 따라 왕릉과 묘(墓)로 분류된다. 먼저 왕릉은 고려 수도인 개성 인근 지역에 묻힌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을 제외한 나머지 55왕이 신라 왕경인 경주지역에 조영하였다. 마찬가지로 경순왕을 따라 개경으로 간 신라 말기의 일부를 제외한다면 992년 동안 신라 왕경에 살았던 왕족 및 귀족들도 경주지역에 그들의 무덤을 조성했다.

그런 까닭에 현재 경주지역 무덤 가운데 왕(비)릉은 38기, 왕족·진골 귀족의 이름으로 전해오는 묘는 4기, 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 8기가 전해온다. 이 외에도 왕족 및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입실리고분군·조양동고분군·사라리고분군·구어리고분군·경주시내 고분군·동천동고분군·금척리고분군·황성동고분군·선도산고분군·장산고분군·충효동고분군·명활산고분군·방내리고분군 등 수많은 무덤군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처럼 고구려·백제·가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왕릉과 묘가 전승되고 있는 이유는 전쟁을 통해 왕족과 귀족의 몰락을 초래하면서 망한 고구려와 백제와 달리 신라는 『삼국유사』 왕력의 표현처럼 경순왕에 의해 납토(納土)의 형식을 빌림으로써 그 후손들이 온전하게 살아남아 거족(巨族)을 이루게 된 점과 조선 전기에 이르러 등장한 족보에 따른 조선 후기의 상황 변화에 원인이 있다.

그러나 사실 신라 왕릉과 묘는 고구려·백제·가야와 마찬가지로 그곳에 묻힌 피장자뿐만 아니라 그 존재조차 고려에 귀부한 935년 이후가 되면 해당 왕족 및 세인으로부터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고대에는 국가가 망하면 왕족 및 귀족들은 포로로 사로잡혀 사민정책(徙民政策)에 의하여 강제 이주 당하거나 경향 각지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다음은 조선시대의 종중宗中과 같은 구심점이 없어 지속적으로 부계(父系)의 조상묘를 중심으로 후손들이 묘를 수호하거나 묘제(墓祭)를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러한 행위를 후손들이 대규모로 모여 지속적으로 행하였다면 ‘부흥운동(復興運動)’으로 잘못 받아들여져 새로운 왕조로부터 탄압 및 견제를 받았을 것이다. 또한 이 점은 고려시대에 경주를 중심으로 부흥운동에 대한 염려를 중앙정부가 지속적으로 가졌던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능묘의 피장자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리를 통한 전승 과정이 유지되지 못하였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대부분 실전되었다. 다만 신라 천년사직의 영화를 회고하고자 하는 시인묵객들에 의해 글의 소재가 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신라 멸망 후 800여 년 동안 일반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던 신라 능묘의 피장자 문제는 조선 후기인 17∼18세기에 이르러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신라 왕족의 후손들인 경주박씨 및 김씨 일족이 실전된 능묘를 경주분지 주변의 평지 및 산록에서 찾아 피장자를 새롭게 비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신라 능묘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결정적 계기는 15세기 양반사회에 처음 선보였던 족보문화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보편화되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시기 조선은 전기 사회의 균분상속제가 무너지고 장자상속제가 뿌리내리게 되는데, 그 결과 17세기라는 과도기를 거치면서 적장자로 승계되는 종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형태의 동족부락이 탄생한다. 나아가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은 적장자를 중심으로 계승되어 온 부계조상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조선 후기의 사회적 현상은 족보 간행의 보편화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종중이라는 거대한 동족집단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고고학과 문헌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부족은 실전된 능묘의 비정 과정에서 많은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로 인해 경주지역 신라 능묘의 피장자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더욱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혼란을 가중시킨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그 결과 오늘날 전승되는 각 능묘의 절대연대와 피장자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으며, 나아가 해당 능묘를 통해 당시의 정치 및 사회상에 대한 복원을 사실상 어렵게 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은 고고학 및 미술사 분야의 연구자들이 신라 문화의 성격을 파악하고 역사상을 복원하는 데 능묘문화를 활용하기보다는 연구의 출발점인 피장자를 규명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직접적인 이유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본 연구의 선행조건 가운데 하나는 경주지역 전칭왕릉(傳稱王陵)의 피장자 진위 문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점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면, 뒤따라 이어지는 왕릉의 기원과 발전 과정 그리고 소멸에 관한 전반적인 흐름에 관한 부차적인 설명은 모두 무위(無爲)로 돌아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은 피장자 규명이 우선이고, 그 결과를 두고 신라 왕릉의 시대별 역사적 성격 및 의의를 설명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능묘의 피장자를 추정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어서 문헌기록과 고고학 자료의 각 시기별 특징에 대한 균형있는 감각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피장자 규명에 필요한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는 문헌기록과 왕릉의 각 시기별 고고학적 특징은 상호보완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대립되는 측면도 강하기 때문이다. 즉 문헌기록의 도움을 받아 왕릉의 피장자를 비정할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해당 왕릉의 고고학적 특징으로 인해 문헌기록의 오류가 증명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바와 같이 본 연구는 고고학적 증거인 봉분의 규모 및 호석 구조 등 능묘 전반의 변화 과정과 함께 문헌기록에 대한 사료 비판을 통해 전칭왕릉의 피장자를 새롭게 추정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할 것이다. 또한 새롭게 피장자가 추정된 왕릉의 절대연대를 중심으로 신라 왕릉의 기원과 변천 과정, 즉 신라 능묘제도의 전반적인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하지만 신라 왕릉의 변천과정을 밝히는 작업과 그에 따른 피장자 추정결과는 기초적인 연구 성과에 불과하다. 이를 바탕으로 신라 능묘제도와 관련된 신라의 정치·사회·경제·사상·예술을 망라하는 역사적 의의를 총체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신라사의 중요한 부분이 한 차원 높게 복원되어야 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