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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그 생태와 문화의 역사 : The P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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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동물학
저자 리처드 루트위치 ( 역자 : 윤철희 )
출판사/발행일 연암서가 / 2020.05.25
페이지 수 228 page
ISBN 9791160870633
상품코드 333027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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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샤일록: 그래요, 돼지 냄새를 맡겠지요. 당신들의 선지자 나사렛 사람이 악마들에게 들어가라고 명령했던 짐승을 먹으면서요. 저는 당신과 함께 사고, 당신과 함께 팔고, 당신과 얘기하고, 당신과 함께 걷는 등의 일을 할 겁니다. 그렇지만 당신과 함께는 식사를 하지도, 기도를 올리지도 않을 겁니다. -『베니스의 상인』 1막 3장

리치먼드: 잔인무도한 왕위의 찬탈자 수퇘지가, 여러분의 여름철의 밭과 무성한 포도밭을 마구 짓밟은 그 놈이… 이 역겨운 돼지가 지금 이 섬나라의 중앙인 레스터 근처에 진을 치고 있다고 하오. -『리처드 3세』 5막 2장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류의 가장 오랜 동반자인
돼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어느 시점에서건 세계에는 돼지가 10억 마리 안팎 있다. 인간 일곱 명당 한 마리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돼지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번식력 좋고, 세상 어디에나 있으며, 영리하고, 적응력 좋고, 쓰레기를 먹어 고품질 단백질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돼지는 야생에서 나와 인간의 쓰레기더미 주위를 돌아다니다 스스로 가축이 된 신석기시대 이후로 우리의 동반자가 됐다. 돼지의 쓰임새는 베이컨을 만드는 게 다가 아니다. 오늘날 몸집이 소형화된 돼지는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애완동물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커리어를 개척했다. 그리고 최근의 유전체 지도 작성 덕에, 현재 우리는 돼지의 생리가 우리 인간의 그것과 두드러질 정도로 비슷하다는 걸 안다. 이 책은 선사시대의 “지옥에서 온 돼지”부터 “얌전한 육돈”까지 이어지는 진화과정을, 해부구조와 생리를, 습성을, 돼지가 우리의 삶에 하는 기여를, 대중문화에 등장한 이 놀라운 동물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 우리가 먹을거리로 기르는 제일 영리한 동물에 대한 매력적이고 전문적인 연구
• 전문가와 아마추어 모두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엄선한 품종들의 이미지와 데이터 프로필이 딸린 품종 리스트
• 집에서 소규모로 돼지를 기르는 독자들을 위한 현실적 조언들이 포함된 돼지에 대한 생태와 문화의 역사 가이드

돼지의 생태와 해부학적 구조, 생리활동, 생명활동, 인지, 행동, 성격, 그리고 인간과 맺은 관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들을 매력적으로 소개한 돼지에 관한 거의 모든 것!
목차
돼지를 소개합니다

제1장 진화와 길들이기

돼지의 조상 | 계보 | 돼지는 어떻게 길들여졌나 | 세계 정복

제2장 해부학적 구조와 생명활동

돼지의 해부학적 구조 | 인간과 사뭇 비슷한 | 라이프사이클 | 번식 | 특화된 주둥이 | 엄니와 이빨 | 다른 감각들 | 돼지처럼 사고하기 | 돼지처럼 먹기 | 발과 꼬리 | 피부와 털

제3장 습성
식사와 수면 | 루팅과 굴 파기 | 무척 즐거운 진흙탕 뒹굴기 | 구애와 짝짓기 | 보금자리 마련과 분만 | 새끼돼지의 성장과 새끼돼지 보살피기 | 커뮤니케이션과 발성 | 공격과 방어 | 인지Cognition | 못된 짓을 하는 돼지들

제4장 돼지와 인간
돼지가 인류에게 준 미묘한 영향 | 문학과 영화에 등장하는 돼지들 | 미술 작품에 등장하는 돼지 | 친숙한 표현들 | 트러플 헌팅 | 양 치는 돼지 | 사냥을 돕는 돼지 | 굴레를 쓴 돼지 | 설교단의 돼지 | 종교에서 논란의 대상인 돼지 | 애완동물로서 돼지 | 산업적인 양돈 | 방목 시스템 | 멱따는 소리만 뺀 모든 것 | 미식가의 기쁨

제5장 품종
중세시대의 돼지 | 품종의 출현 | 품종 | 돼지의 두수 | 돼지의 미래

부록
돼지의 이름을 확인하세요 | 용어 설명 | 참고문헌 | 찾아보기 | 감사의 말
본문중에서
우리가 현재 아는 건, 돼지는 인류와 맺은 관계의 측면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해 온 무척이나 복잡하고 대단히 매력적인 동물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돼지는 식용食用으로 길들여졌다. 돼지는 방목돼 풀을 뜯는 동물이 아니라, 먹을거리를 찾아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동물이다. 돼지는 일반적으로 새끼를 한 번에 여러 마리 낳는다. 암퇘지가 평생 낳는 새끼는 100마리가 넘을 수도 있다. 돼지는 일 년 내내 번식하고 급격한 속도로 자란다. 돼지는 인류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1급 생산자이기도 하다. 더불어, 우리는 이 동물의 여러 부위를 의술에 활용한다. 돼지는 생체조직 이식산업 분야에서 혁명을 일으킬 잠재력이 크다. 우리의 지식이 발전함에 따라 돼지가 인류의 보건 향상을 도와줄 방법이 더욱더 많아질 거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제일 가까운 반려동물—생김새가 각양각색인 개—을 내팽개칠 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개가 하는 다음과 같은 일들을 돼지도 똑같이 수행할 수 있다는 걸, 또 지금껏 그렇게 해왔다는 걸 뒤에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보게 될 것이다.: 양치기, 트러플 찾아내기, 사냥감의 위치를 찾아내 가리키고 회수해 오기, 경비서기, 수레 끌기, 마약 탐지, 그리고 물론 주인에게 헌신하는 애완동물 되기. 가끔씩은 돼지가 이 모든 역할을 사냥개보다 더 잘 해내기도 한다. 그런데 당신이 무게가 3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암퇘지와 함께 산책을 나갈 경우, 그 돼지를 프라이팬에서 지글거리는 베이컨으로 만 보는 사람들은 항상 당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할 것이다.
(/ p.6)

1만 년 전, 인류는 야생돼지를 잡아 우리의 욕구에 맞게 변화시켰다. 인류는 야생돼지의 공격적인 본성을 대부분 없애고는 우리의 많은 다양한 목적에 적합하게 놈을 길들였다. 오늘날, 돼지는 인류에게 어마어마한 식량을 제공할뿐더러 우리가 아는 중에 제일 다양 하고 맛있으며 호화로운 음식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돼지의 살점을 취해 그걸 무척이나 강렬하고 놀라운 요리로 탈바꿈시키는, 그러면서 우리에게 위를 채운다는 단순한 만족감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행복감을 안겨줄 수 있는 요리사들이 있다. 돼지고기의 진미는 유명 레스토랑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에서, 갓 구운 빵과 버터 약간, 고급 베이컨—가급적이면 분홍색 살코기에 고품질 비계가 붙어 있는 것으로, 당신의 취향에 따라 소금에 절여 건조시켰거나 훈제했거나 보존처리를 전혀 하지 않은 것 중에서 선택한 것—몇 조각을 마련하라. 프라이팬이나 그릴을 챙긴 후, 베이컨 조각들을 선호하는 상태—은은한 색깔이 될 때까지, 또는 바삭바삭해질 때까지—로 적절히 조리하라. 껍질이 딱딱한 빵을 두툼하게 두 조각 썰어 버터를 바른 후, 한 조각 위에 뜨거운 베이컨을 올리고는 프라이팬에 남은 기름 몇 방울을, 그 다음에는 좋아하는 소스—내 경우에는 스파이시 머스터드인데, 케첩이나 다른 향긋한 소스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를 가미하라.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빵 조각을 얹고는 꾹 눌러라. 이제 당신에게는 자택에서 적당한 비용과 얼마 안 되는 시간을 투자해 얻어낸 순수하고 완전한 먹을거리가 생겼다.
(/ p.8)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돼지의 팬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돼지를 나와 같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 4장에서, 돼지를 먹는 걸 금지하는 종교들을, 그리고 그런 믿음들이 왜 생겨났는지를 살필 것이다. 돼지에 대한 우리 각자의 믿음이 어떻건, 우리는 그런 믿음을 진지하게 간직하는 한편으로 서로의 믿음을 존중해야 한다. 서커스에서 묘기를 부리거나 쟁기를 끄는 조련을 받은 특출한 돼지들을 열외로 치면, 우리가 돼지를 길들여서 기르는 주된 이유는, 의문의 여지없이, 먹을거리를 제공받기 위함이다. 온 세상 사람들은 동물성 단백질을 공급하는 제일 중요한 공급자인 돼지를 존중하면서 고마워해야 마땅하다.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해마다 돼지 수백만 마리가 목숨을 잃는 게 사실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그리 큰 문제로 보지는 않지만, 대규모 시장에 돼지고기를 공급하는 방식은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산업적인 규모로 운영되는 양돈업은 품위 있는 삶을 살아야 마땅한 동물의 기본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더 나은 길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돼지가 얼마나 놀라운 동물인지를, 그리고 현재 시행되는 공장식 축산intensive production 방식을 돼지의 온당한 생활방식에 부응하도록 바꿀 수 있다는 걸 더 뚜렷하게 이해하기를 희망한다. 나는 인류를 먹여 살리는 데 도움을 줄, 1년에 10억 마리의 돼지를 방목해서 키울 정도의 공간과 시설이 있다는 식의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공장식 축산은 엄연한 현실이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곁에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양돈업의 운영방식을 더 철저히 점검하면서 돼지가 우리에게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p.10)

야생돼지가 길들여지는 과정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야 생돼지는 인간의 곁에 오는 걸 꺼려하지만, 호기심이 많은 동물인 놈들은 쉽게 얻을 수 있는 먹이를 찾아 인간의 거주지에 접근할 것이다. 신석기시대 정 착지에는 우리의 조상들이 쓰레기를 모아놓은 두엄더미가 있었다. 요즘 고고학자들은 정착지 거주자들의 생활방식—그들이 먹은 음식과 살았던 방식—을 밝혀내기 위해 이런 쓰레기더미에 많이 의존한다. 두엄더미에 버려진 남은 음식, 뼈, 썩은 과일, 곡물은 후각을 활용해 먹이를 찾는 동물인 야생돼지를 엄청나게 끌어모았다. 야생돼지는 맹수다. 그래서 성체 대신 어린 야생돼지를 집에 끌어들였다는 것이 제일 가능성 이 높은 시나리오다. 어린 야생돼지는 길들이기가 상대적으로 쉬웠고, 심지어는 반려동물로 키우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호주의 애버리진Aborigine은 오늘날에도 많은 야생동물의 새끼를 반려동물로 키우지만 그것들을 철저히 가축으로 삼지는 않는다. 따라서 야생돼지가 처음에 이런 식으로 인간의 거주지에 들어오게 됐다고 하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소, 그리고 양과 염소의 가축화는 돼지의 가축화보다 먼저 이뤄졌다. 그 동물들이 훗날에 농부로 변신한 초기의 사냥꾼(/ p.채집자의 유목민 라이프스타일에 훨씬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농업이 발달하고 그 결과로 영구 정착지가 생겨나자, 돼지도 중요한—제일 중요한—단백질의 출처가 됐다.
(/ p.18)

당신은 돼지의 골격을 보자마자 인간의 골격하고 비슷한 구석은 전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호모 사피엔스의 직립한 자세와 돼지의 네 발로 걷는 습관을 무시하면서—더 꼼꼼하게 관찰해 보면 공통점이 몇 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돼지의 몸통을 머리가 위쪽을 향하도록 돌려놓고는 유사점들을 주시해 보라. 확연하게 눈에 띄는 허리와 궁둥이, 흉곽으로 부드럽게 퍼지면서 이어지는 몸통, 제모를 한 후 살갗의 색깔을 말이다. 사지와 머리가 없는 상태로 매달려 있는 인간의 형체로 보이지 않나? 돼지와 인간의 유사점은 시각적인 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두 종은 육체적인 특징들도 공유한다. 두 종은 혈관계도 비슷하고, 심장과 이빨, 소화계와 위도 비슷하다. 돼지의 피부도 우리의 피부와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걸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돼지의 피부는 때때로 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에게 사용된다. 손상된 부위를 덮거나 심지어는 이식할 피부로 활용되는 것이다. 피부과 외과의들은 돼지의 발을 놓고 적출하고 봉합하는 연습을 하는 수련을 받는다. 돼지는 심장판막의 출처로도 활용되면서 많은 환자의 목숨을 구해왔다. 그런데 이런 유사점에는 돼지와 인간 사이에 질병이 전염될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2009년의 돼지독감swine flu 발발을 기억하나?
(/ p.30)

돼지는 인간과 유사한 까닭에 과학수사forensic science 영역에서도 유용해졌다. 하와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리 고프Lee Goff 같은 과학수사 전문가들은 사망시간을 밝혀내기 위해 곤충—대체로는 파리유충과 애벌레이지만 딱정벌레와 말벌을 비롯한 다른 종들도 포함된다—이 시신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해서 경찰의 범죄 해결을 돕는다. 법곤충학forensic entomology이라고 불리는 이 과학수사 분과는 지난 80년간 중요성이 커져 왔는데, 고프는 지식 획득을 위해 돼지를 이용해 왔다. 이 과학수사 전문가는 경찰이 나무에 목을 맨 신장 1.8미터로 보이는 남자의 시신을 발견한 사건에서 돼지를 처음 활용했다. 시신은 약간 부패해 있었다. 고프는 인간의 시신이 있던 위치에 돼지 시체를 매달아 현장을 재연하고는 시신이 매달려 있던 까닭에 부패속도가 느려졌다는 걸 보여 줬다.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체외로 나온 구더기들이 시신에서 떨어졌다가 복귀하지 못하면서 작업에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는 뜻이다. 그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 시신은 19일간 매달려 있었고, 남자의 키는 1.6미터밖에 안 되지만 매달려 있는 동안 몸이 늘어났다는 거였다. 경찰은 이 결론을 바탕으로 얼마 안 가 남자의 신원을 밝히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 p.36)

돼지의 라이프스타일을 묘사해달라고 부탁하면 “돼지는 먹기 위해 살고 그런 야심을 채우면서 평생을 보내는 동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오랜 세월 인류에게 퍼지면서 고착된 오해다. 사실, 돼지가 구유에서 보내는 시간은 다른 가축보다 길지 않다. 돼지는 방목장에서 보내는 시간도 소나 양, 말보다 훨씬 적다. 우리는 성장률과 번식력 측면에서 돼지에게 기적을 기대하는데, 이 두 가지를 상당히 많이 결정하는 요인이 식사다. 상업적 규모의 양돈장에서, 1킬로그램 안팎의 무게로 태어난 돼지는 생후 서너 달 후에 75킬로그램으로 자란다. 건강한 인간이 20년이 걸려야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돼지가 욕심꾸러기로 보인다면, 사실 그건 이 영리한 동물이 달리 할 일이 없어서 위를 채우는 데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들으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른 동물이 있나? 2장에서 봤듯, 실외에서 자라는 집돼지는 야생돼지의 습성을 드러내며 땅을 뒤집어놓을 것이다. 이건 먹을 게 필요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뭔가를 하고픈 욕망을 충족시킬 활동을 하느라 그러는 것이다. 그리고 돼지는 그런 활동에 따른 보너스로 소량의 흡족한 먹이를 얻는다. 니퍼라 불리는 앞니는 이 활동을 용이하게 해주려고 작은 나무뿌리들을 씹을 수 있는 형태로 진화했다.
(/ p.74)

인류는 여러 세대 동안 돼지를 “말도 못하게 더럽고 지저분한 동물”이라고 비난해왔다. 이건 맞는 말일까? 글쎄, 다음을 고려해보라. 새끼돼지는 태어날 때부터 눈을 뜨고 출산 몇 초 안에 걸어 다니는 식으로 성장과정을 어느 정도 마친 상태다(놈의 다음 동기同氣가 곧바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건 바람직한 행태다). 새끼돼지가 맨 처음에 하는 행동은 어미의 젖꼭지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의 첫 끼니를 즐기고 나면 방광을 비워야 한다. 갓 태어난—우리 인간을 비롯한—다른 포유동물들과 달리, 생후 1시간도 안 된 자그마한 새끼돼지는 변을 보기 위해 돼지우리 구석으로, 어미돼지와 한배에서 태어난 동기들에게서 멀리로, 지푸라기 잠자리에서 멀리로 이동할 것이다. 그 돼지는 그 시점부터 평생토록 항상 낮 시간에 그 잠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특정한 구역에 변을 볼 것이다. 이런 청결한 버릇이 망가지는 유일한 때는 단위 면적당 사육 두수가 엄청난 탓에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동물이 선호하는 습성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지는 산업식 양돈시설에서 사육될 때다. 따라서 “돼지는 지저분한 동물이냐?”는 물음에 대답하자면, 그런 상황을 빚어내는 건 사육자의 관리—또는 그런 관리의 부재—탓이다.
(/ p.84)

집돼지는 동물의 왕국에서 제일 영리한 동물에 속한다. 지식과 학습능력 판단에 적용하는 기준이 너무 많은 탓에 영리한 순서로 포유동물의 순위를 매기는 건 불가능한 일로 보이지만, 돼지는 과학자들이 그런 일을 시도하면 10위권 안에 드는 동물이다. 돼지를 능가하는 유일한 네발 짐승은 코끼리 딱 한 종뿐이다. 이건 당연히 돼지가—적어도 거기에 사용된 기준을 바탕으로 보면—인간의 제일 친한 친구인 개보다 영리하다는 뜻이다. 확실한 건, 오늘날 개가 수행하는 임무들의 경우에는 돼지도 그런 일을 수행하게끔 조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냥감의 위치를 가리키고 떨어진 사냥감을 회수해오도록 돼지를 조련한 사례에 대한 기록 이 여러 건 있다. 19세기에 잉글랜드 뉴포레스트New Forest에서 태어난 돼지인 슬럿Slut은 포인터보다 더 빠르고 쉽게 조련할 수 있었고, 같이 사냥을 나간 개들보다 실력이 항상 월등했다고 한다. 양을 모는 콜리collie의 행동을 모방해 동일한 능력을 보이도록 돼지를 조련했던 사례들도 있었다. F. V. 다비셔F. V. Darbyshire가 1889년에 잉글랜드 옥스퍼드Oxford의 발리올 칼리지Balliol College에 제출한 보고서는 아펜니노Apennine산맥에 거주하는 소작농 얘기를 들려준다. 목양견牧羊犬을 구할 형편이 안 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들은 지역의 산돼지 품종들을 양을 모는 일을 거들도록 조련했다.
(/ p.106)

성인문학도 시와 산문에 돼지를 많이 등장시킨다. 일찍이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글에 돼지에 대한 언급이 많았고, 기독교의 성경에도 돼지가 많이 언급되지만, 돼지에게 우호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구약은 돼지의 살점을 먹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신약에는 가다라의 돼지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그리스도는 두 남자에게서 몰아낸 악령에게 돼지 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고, 그러자 돼지들은 곧바로 절벽에서 떨어져 익사한다. 돼지치기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된 돌아온 탕아Prodigal Son 이야기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집돼지와 야생돼지를 활용한다.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 돼지와 돼지고기에 대한 언급이 곳곳에 등장하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중세시대에 유대교 신앙의 경멸과 유대인의 돼지고기 혐오는 동의어였기 때문이다.
(/ p.126)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은 돼지를 공산주의 통치에 대한 메타포로 폭넓게 활용한다. 농장의 독재자인 농장주를 축출한 동물들은 각자가 자기 운명의 지배자가 되는 새로운 낙원이 도래할 거라 기대한다. 그런데 철저한 자치에도 문제점들이 있다는 게 명확해진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영리한 돼지들은 잽싸게 지배권을 장악하고, 머지않아 동물들은 새 체제도 옛 체제만큼 억압적이라는 걸 알게 된다.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 1911~1993)은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에서 야생돼지 말고는 다른 포유동물이 없는 섬에 어린 소년 집단이 고립됐을 때 돼지를 상징적으로 활용한다. 문명은 얼마 안 가 붕괴하고, 소년들은 원초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돼지는 비중 있게 등장한다. 소년들 중 한 명이 돼지를 도살하고 돼지머리를 땅에 꽂힌 막대기에 올려놓았을 때 특히 더 그렇다. 살 점이 썩자, 책 제목에 등장하는 상징인 파리가 들끓는다.
(/ p.128)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여전히 돼지를 “구닥다리” 양돈방식으로 키우고 있다. 그런 곳에서 돼지는 훨씬 더 인도적이고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사육된다. 이런 방식으로 돼지를 기르는 곳은 소규모 농장이나 규제받는 유기농 농장일 수 있다. 당신이 대량판매시장mass market을 피해 전문소매업자나 농장에서 직송된 육류를 구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그런 양돈업자들을 지원하는 엄청난 활동을 하는 셈이다. 당신의 그런 활동은 환경을 돕는 것일뿐더러, 더 자연적이고 충족적인 삶을 영위한 동물에게서 얻은 고기를 구입하는 것이고,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키울지도 모르는 위험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삶의 마지막 여정에 오르려고 트럭에 실리기 전까지는 동족인 돼지들을 전혀 접하지 못하면서 감방처럼 비좁은 곳에 갇혀 지내는 암퇘지의 이미지가 떠올라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도 없을 것이다. 방목형으로 키워진 돼지에게서 얻은 고기와 베이컨, 햄, 기타 상품들은 색이 더 짙고 (고기를 육즙으로 적시면서 풍미를 더해줄) 지방이 더 많이 함유됐다는 것도, 그리고 그 고기는 대량 생산된 다른 고기는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할 미식美食의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 p.160)

돼지가 야생돼지에서 서서히 진화해 온 과정은 길었다. 게다가 그 과정은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은 듯하다. 4장에서 언급했듯, 19세기 초에도 미술작품에는 먼 친척인 야생돼지와 닮은 집돼지들이 여전히 묘사되고 있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돼지의 품종을 개량해야 할 인센티브는 거의 없었다. 돼지는 오두막 거주자가 음식물 쓰레기를 먹여 기르는 가축이자, 겨울철을 위해 확보하는 고기로 탈바꿈하는 동물이었다. 개량되지 않은 돼지들은 맡은 바 소임을 해냈고, 게다가 강인하고 건강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놈들을 개량하려 애쓸 이유는 없다. 더불어, 돼지는 인간에게 길들여진 동물들 중에서 제일 인기 없는 종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동물의 품종 개량 문제가 대두됐을 때, 로버트 베이크웰Robert Bakewell과 토머스 코크Thomas Coke 같은 농업전문가들의 특별한 주목을 받은 건 말과 젖소, 양이었다. 돼지는 소작농의 동물로 간주되고 그들만의 가축으로 남았다. 18세기와 19세기 초가 돼서야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1장에서 설명했듯, 선박들은 신선한 육류를 확보하기 위해 긴 항해에 돼지들을 싣고 다니곤 했고, 아시아에서 온 그런 배들은 유럽인에게 친숙한 몸통이 길고 덩치가 큰 돼지들과는 달리 배가 불룩하고 덩치가 작아서 호기심을 끄는 돼지들을 데리고 서양에 도착했다. 아시아산 돼지들은 서양의 토종 돼지들과 생긴 게 다를 뿐 아니라 특정한 장점들도 있었다. 아시아산 돼지는 뼈가 가볍고 빠르게 성장했으며, 암퇘지는 새끼를 더 많이 낳았고, 살코기는 색이 연하고 맛이 달았다. 진취적인 항만노동자들은 오래지 않아 이 아시아산 돼지를 얻으려고 뱃사람들과 흥정을 했다. 그러고는 토종 돼지들과 교배해 성공적인 품종을 얻어냈고, 그 결과로 태어난 후손에게는 장점이 많다는 걸 곧바로 인지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시아에서 수입된 돼지들은 유럽의 토종 돼지들의 개량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
(/ p.172)

저자
리처드 루트위치
태어난 후로 돼지들에 에워싸여 살면서 혈통이 기록된 웨식스 새들백 무리와 함께 농장에서 자랐다. 글로스터셔올드스팟돼지사육자클럽(Gloucestershire Old Spots Pig Breeders Club)을 운영하는 그는 희귀품종보존트러스트(Rare Breeds Survival Trust)를 위해 발행하는 잡지 『방주(The Ark)』의 편집자다. 스리카운티스농업협회(Three Counties Agricultural Society)의 위원회 회원이자 수석 간사이고 영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돼지품평회의 기획자다. 진정한 전문가인 그는 『양돈(Pig Keeping)』과 『뒤죽박죽(Higgledy-Piggledy)』의 저자다. 2010년에 돼지와 관련한 업적과 희귀 돼지 품종의 보존 활동을 인정받아 BBC가 수여하는 푸드 앤 파밍 어워드(BBC Food & Farming Awards)의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역자
윤철희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영화 전문지에 기사 번역과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위대한 영화 1~4』, 『메이플소프』, 『이안: 경계를 넘는 스토리텔러』, 『타란티노: 시네마 아트북』, 『한나 아렌트의 말』, 『캐스린 비글로』, 『스탠리 큐브릭』, 『히치콕』, 『제임스 딘』, 『클린트 이스트우드』, 『로저 에버트』,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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