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글 좌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주부 논설 가정과 사회는 여성의 힘으로 되살려질 것인가 /조혜정 이 시대에 주부는 할만한 직업인가 / 박혜란 주부의 목소리 살림, 아무나 하는 일 아니다 / 이숭리 졸업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시집살이 / 고영애 삼십대 주부의 빛과 그림자 / 김명신 현대의 '상록수'로서 해야 하는 일들 / 강추옥 24시에 배어 있는 내 삶의 의미 / 박은하 결혼보다 나은 이혼 / 임혜숙 무슨 이야기를 하란 말인가 / 성미순 어머니를 위한 싸움 / 현행자 딸이 들여다본 어머니의 내면 / 한란 악으로 버텨야 하나 / 구희숙 주부가 자유스럽고 당당해지기까지 / 김종미 키우며 싸우며 셋이 함께 자라며 / 김정희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은 결혼 / 오미연 시 여자가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하여 / 고정희 현장 연구 매맞는 아내의 분노 / 조주현 아줌마, 힘 내세요! / 남상희 여성과 종교 / 최영애 주부 운동 / 이숭선 외 가족 이기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는 어머니들 / 홍정연 혼자면 들리지 않는 목소리 / 김미경 서평 우리를 놀라게 하는 주부의 잠재력 / 이숭선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 심리 여성학 / 장필화 창작 촌극 주부 파업 일지 / 김정연 외 자기 역사를 써 보기 '사실은 이렇단다' / 허순희

편집자의 글 [또 하나의 문화] 모임은 4년 전에 동인지 2호를 <<열린 사회 자율적 여성>>이라는 제목으로 펴냈었다. 그때 우리는 편집자의 글에서, 모든 여성에게 자율성 확립은 하나의 당위로 주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었다. "혼자 섬으로써 비로서 진정한 협력자로서 손을 맞잡고 일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율성은 또한 공동체의 운명에 적극 참여하는 필요 조건이 된다…… 현대 사회의 진정한 발전은 근본적으로는 주체적인 시민 세력의 형성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이에 여성의 자율성 확립의 과제는 더욱 그 당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짧은 기간 동안 우리 사회는 격변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큰 변화를 겪었으며 여성의 삶 또한 다양하게 열려가는 듯하나, 찬찬히 따져보면 여전히 여성의 자율성 확립이라는 과제는 그대로 우리 앞에 남아 있다. 그래서 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이 주제를 부각시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2호에서 우리는 가정 주부들의 이야기가 빠진 것을 못내 아쉬워 했는데, 이 책에서는 주로 그들의 목소리로 이 문제가 풀려진다. 그토록이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 왔던 주부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드러내 보이면서 이웃과 나누고 싶어해서 놀랍고 반가웠다. 이 책은 어느새 우리를 동료로 끌어 안은 주부들이 눈물과 희망을 엮어 다듬은 것이다. 낱장을 넘길 때마다 우리는 혼자 서고자 하는 주부들의 노력과 자매애의 씨앗을 보게 될 것이다. 책은 다음 순서로 엮어진다. 먼저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맡겨진 가정 주부화 현상을 분석한, 조금은 까다롭고 긴 논설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어렵게 풀어간 문제드른 곧이어 실린 주부들의 글모음에서 살아 있는 목소리가 되어 다시 펼쳐진다. 홀시어머니 밑에서 십년을 꾸려 온 주부의 슬기, 이 사회가 들씌워준 현모양처의 틀에 맞추려고 자신의 모난 부분을 도려내는 평범한 주부의 아픔, 끝없이 쌓이는 일더미에 치어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쳇바퀴 속의 삶, 남편이라는 울타리를 빼앗기고 추워하는 주부들의 힘겹게 모아내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호흡을 기쁘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제도와 타인의 손에 휘둘리기를 이제 멈추고 홀로서기를 다짐한 주부들의 선언은 비록 조금쯤 위태롭게 들릴지라도 힘의 용솟음을 감지하게 한다. 어렵게 자율성을 확립한 주부들, 그들은 농촌에서, 도시 변두리에서 그리고 아파트 밀림 속에서 자신을 찾아 나서고, 그 길에 자신과 같은 뜻을 가진 이웃들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는 이렇게 주부들의 힘이 뭉쳐 있는 곳을 '현장 연구'라는 이름으로 찾아 나선다. 그곳은 교회나 농성장일 수도 있으며 교육 운동 또는 민주화 운동의 마당이기도 하다. 곳곳에 실린 그림과 시는, 여성을 다른 여성과 서로 갈라 놓으려는 가부장제 문화의 논리를 거부하며, 주부 여성과 주부 아닌 여성의 만남을 통한 화해와 일치의 세계를 노래한다. 그리고 창작극의 형식으로 편 '주부 파업 일지'는 주부업을 천직으로 추겨 세우는 신화의 장막 뒤에서 실제로는 천직을 도맡아 해온 여성들이 일시에 손을 놓으면 세상이 어떻게 될지를 상상케 함으로써 여성들의 잠재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 전편에 흐르는 우리의 뜻은 명확하다. 주부의 자율성 확립과 그를 통한 가정과 일터의 변역, 더 나아가서 사회라는 영역 총체를 바꾸려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현모양처'를 여성의 궁극적 목표로 제시하는 이 사회에 대하여, '주부로서의 삶은 행복한가'라는 진부한 그러나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아니다'라는 대답을 들은 우리는 두 번째로 '취업은 과연 탈출구가 될 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리고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 사회는 여성에게 과연 어떤 사회인가?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여성들의 하나됨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과제는 주부들이 속깊이 감추어 둔 에너지를 큰 힘으로 모아 가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주부가 날마다 꾸려 내는 살림의 테두리 안에서 찾아 낼 수 있다. 주부는 살림의 주체자로서 스스로 설 수 있으며, 가족을 그리고 이웃을 바로 세울 수 있으며, 인류를 건강하게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주부들이 자신 속에 있는 힘을 깨닫게 될 때, 변혁의 물길을 주도하는 대열에서 다른 여성들과 손을 잡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