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단편들 : 박정대 시집

출판사 : 문학동네발행일 : 2021년 02월10일 | 종이책 발행일 : 2020년 11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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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공산주의자’이자 ‘내면적 리얼리스트’ 박정대의 [단편들]이 문학동네포에지로 첫 이야기를, 첫 연주를 다시 시작한다. 1990년 [문학사상]을 통해 “독창적인 신선함” “천(千)의 얼굴 만(萬)의 모습”(유안진)으로 여정을 시작한 시인은 여전히 길 위에, 지금도 걸음중에 있다. 때로는 방랑이고 때로는 여행이기도 할 그 발자국의 첫머리가 이 시집 [단편들]이다.

■ 문학동네포에지를 시작하며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문학동네 복간 시집 시리즈 문학동네포에지를 시작하며

1.
2020년 11월 문학동네 복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포에지를 시작합니다. 1차분 열 권을 우선으로 선보입니다. 문학동네는 일찌감치 이 작업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1996년 11월 ‘포에지 2000’ 시리즈의 펴냄 아래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그 명맥을 이어나가던 바 있습니다. “예민한 감성과 날카로운 직관으로 시대의 혼돈과 상처를 노래했던 젊은 영혼의 생생한 울림이 담긴 추억의 명시들을 독자 앞에 다시금 제시함으로써 빛나는 시의 정수를 확인하고자” 하려 함이라는 취지의 글이 떠오르는데, 그때로부터 근 24년이 흘렀습니다. 그 정신은 온전히 두고 그 매무새를 새로이 다지는 과정 가운데 문학동네포에지의 첫 행보를 내딛기까지 시간이 오래 좀 더디 걸린 것도 사실입니다.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현시되는 장을 여는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선언한 책임과 의무의 말이 실은 얼마나 큰 무게인지 모르지 않은 까닭입니다. 시라는 무한과 시집이라는 열림을 끌어안으려는 데 있어 한껏 오므라들었다 힘껏 펼칠 줄 아는 시리즈라는 줄자, 이를 가능케 하는 힘은 아무려나 사랑에 있음을 이제는 깨닫고 온전히 그 순정에 기대어 용기를 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2.
문학동네의 신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시인선이 어느덧 150번째 시집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출범하게 된 문학동네의 구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포에지는 복간의 기저를 비단 문학동네에 적을 두었던 시집만을 필두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특징으로 합니다. 반드시는 아니더라도 이왕이면 읽어둬도 참 좋으련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랜 시간 서점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집들이 우리에게는 꽤 있었습니다. 문학동네포에지는 시간을 거슬러 찬찬히 행하는 시로의 이 뒤로 걷기를 통해 파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집을 발굴하고, 숨어 있기 좋았던 시집을 골라내며, 책장 밖으로 떨어져 있던 시집을 집어 서가에 다시 꽂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한국 시사를 관통함에 있어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시의 독본들을 여러분들에게 친절히 제공해드릴 참입니다. 출발의 본거지는 제각각 달랐으나 도착의 안식처는 모두 한데로, 문학동네포에지 안에서 유연성 다해 섞이고 개연성 있게 엮인 가운데 한 차에 열 권씩 펼쳐질 시의 병풍은 저마다 다양한 개성으로 저마다 독특한 양식으로 저마다 특별한 사유로 시리즈라는 줄자에서 보다 큼지막한 테두리로 우리를 시라는 리듬 속에 재미 속에 미침 속에 한껏 춤추게 할 것입니다. 특히나 귀하디귀하다 싶은 것이 시인들의 첫 시집임을 알아 그 최전방에 첫 시집들을 앞서 배치한 것인데 김언희, 김사인, 이수명, 성석제, 성미정, 함민복, 진수미, 박정대, 유형진, 박상수 시인에 이어 출간될 2차분 역시 김옥영, 이문재, 염명순, 안도현, 정은숙, 조연호, 김민정, 최갑수, 이영주, 이현승 시인의 첫 시집임에, 복간에 있어 첫 시집을 앞서 염두에 둔다는 원칙 역시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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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름들
바람이 달려가며 호명하고 있었네


시집을 열고 들어선 세계는 ‘워터멜론 슈가’ ‘페루여관’을 지나 ‘태양다방’이 되었다가 다시 “거리에서, 그 거리에서”, 목적지도 정해진 행로도 없이 스쳐간다. 이 “혼몽한 겨울밤”(「단편들」)은 때로는 꿈이고 더러는 기억의 풍경이다. 이 세계를 가득 채우는 것이 바로 그가 읽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의 ‘단편들’, 혹은 시인이 사랑하는 모든 것의 기록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조각들은 <동사서독> <아이다호> <타락천사>와 같은 영화, 또는 『워터멜론 슈가에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문학, 때로는 ‘빅토르 최’ ‘너바나’에 이르는 음악까지 거리낌 없이 경계를 넘나든다.

한 시집 안에서 정지용과 백석, 이성복과 기형도, 앨런 긴즈버그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한데 불러내고 있지만 시인은 이들을 ‘인용’의 방식으로 빌려 쓰지 않는다. 그가 사랑하는 이들을 자신의 자리에 끌어다놓는 대신 저 먼 쪽을 향해 ‘호명’할 뿐이다. 예컨대 이런 주석,

나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시로 쓴다. 무지하다는 것은 때때로 무지하게 자유로운 것이다.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중에서

유배지인 그의 자리에서 이 “호명”은 빌려 쓰기가 아니라 그저 불러보는 이름, 반송 불필요의 편지다. 때때로 주소만이 쓰인 그의 편지를 따라 시는 보다 자유롭게 드넓은 예술과 아름다움의 대륙을 오가며 “빛나는 거미줄”(「장마」)을 잇는다. 이 시집이 빌려온 ‘파편들’의 조각 모음이 아니라 광막한 세계의 『단편들』인 이유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가습기 같은 내 영혼


시인이 기형도를 불러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말하던 고백은 금세 “쓴 것이 몸에는 좋다네” 하는 말놀이로(「아이다호」), “테라스”에서 “뒤라스”를, “저수지”에서 “개같은 인생”을, 영화 <인생>의 배우 공리에서 “공해” “공” “공을 차는 햇살들의 근육”과 “힘” “권력에의 의지”까지(「SADANG 가는 길」) 꼬리를 물며 달려간다. 시인 스스로 ‘자동기술법’이라 일컫기도 한 이 질주, 마침내 날개가 돋아나고 “새들처럼 재빠르게” 통과해가는 그 “물질적 황홀”은 무엇일까(「물질적 황홀 12—둥근 하늘 아래에서의 생」).

혼곤과 혼몽의 공간에서 삶은 ‘바람’에 실려 ‘담배 연기’ ‘안개’ ‘구름’으로 부유한다. 들끓는 생으로부터 피어오르며 흩어지는 “가습기 같은 내 영혼”(「단편들」). 그런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것도” “밀려난 쿠데탄지/밀란 쿤데란지 하는 체코 작가의 책”(「라라를 위하여」)이라 무심히 말할 때, 진지함을 비껴가는 듯 보이는 이 영혼의 흘러감, 과연 ‘가볍다’ 말해도 충분한 것일까.

그대여, 유리창 속을 들여다봐, 뭐가 보이나. 그 속에 와 있는 햇살들의 입김을 들여다봐, 꿈꾸듯이. 음악을 듣듯이 상상해봐, 왜 나뭇잎 속에 호랑이가 들어갔는지. 파란 개나리 새순 속에서 몽고 대초원이 어떻게 깨어나는지. 너를 가로막고 있는 콘크리트 벽 속에서, 두 그루 미루나무가 튼튼하게 걸어갈 때, 그대여, 로클랜드에 나는 너와 함께 있어. 통곡처럼 깊어가는 어둡고 추운 이곳에서 나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읽혀지리라고 기대하지 않아. 희망하지도 않아, 이곳에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선 미쳐야만 해. 그러나 나는 아직 미치지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 미쳐버리고 싶은 그러나 미쳐지지 않는 그런 상태도 아냐. 그래, 나는 아직까지 불행하게도 마약이 필요 없어. 다만 나의 망막에 와 닿는 프레임을 조금 바꾸고 싶을 뿐,

―「SADANG 가는 길」 부분

졸다 그만 내려야 할 사당역을 지나쳐 “남태령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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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개정판 시인의 말

단편들
촛불의 미학 / 단편들 / 금연 구역의 나날들 / 아이다호 / SADANG 가는 길 / 나무들 / 레이지 버드에서 / 거울 속에 빠진 양조위 / 양조위 / <동사서독>에 의한 변주 / 外一篇 / 위시카강의 진흙 강둑으로부터 / 누군가 떠나자 음악소리가 들렸다 / 어떤 죽음에 관한 기록 / 물질적 황홀 2 / 물질적 황홀 4 / 광란의 사랑 그 너머 / 물질적 황홀 6 / 물질적 황홀 8 / 물질적 황홀 12 / 사막 / 자동차 안에서 / 나는 희망에 관해 말하려고 한다 / 그 무엇이 속삭이고 있었다 / 틈 사이로 엿보다 / 너 ...

본문중에서 TOP

촛불을 켠다
바라본다
고요한 혁명을
( '촛불의 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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