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어떤 날 8 : 망가진 여행

저 : 강윤정, 위서현, 정성일, 오은, 이현호, 정세랑(鄭世朗), 장연정출판사 : 북노마드발행일 : 2021년 01월20일 | 종이책 발행일 : 2017년 03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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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스터소개글 TOP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망쳐버리고 싶다.
여행을 망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망치려면 일단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때는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여행의 시대다. 모두가 여행을 좋아한다고, 떠나겠다고, 떠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한다. SNS로 여행을 ‘생중계’하는 시대에 여행은 우리 시대의 스토리텔링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여행이 우리를 흡족케 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준비할 때, 출발 직전에, 여행 도중에 여행은 종종 우리를 배신한다. 여행 정보가 넘쳐나서, 일정이 완벽해서 ‘망가질’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믿었던 여행 동반자가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이도 있다. 여기저기 넘쳐나는 여행의 판타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도 적지 않다. 시인, 소설가, 작사가, 영화감독 등 유난히 섬세한 이들의 여행을 담는 여행 무크지 [어떤 날] 8호는 기억에 담고 싶지 않은,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 ‘망가진 여행’을 담았다. 그 망가진 여행을 회복하기 위해 그들은, 그럼에도, 다시 여행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그 어떤 모습이든, 일단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출판사서평 TOP

여행을 망치려면 일단 여행을 떠나야 한다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기회가 닿는 대로 지금-여기를 떠나고 싶어 한다. 여행 계획을 짜놓고 공항에 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이 넘쳐난다. 가히 여행의 시대다. 그러나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이도 있다. 일상의 안정감이 깨어지는 게 싫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여행을 떠나지만, 지금-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일탈의 욕망을 품고 있지만, 여행이 선사하는 설렘과 흥분을 즐기지만 그러한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자극을 일상에 대한 폭력으로 여기는 이도 적지 않다. 어떤 이에게 여행은 보통의 생활에 균열을 일으키고, 몸담고 있는 현실을 파괴하는 평지풍파다.

시인, 소설가, 작사가, 영화감독 등 유난히 섬세한 이들의 여행을 담는 여행산문 무크지 [어떤 날] 8호는 기억에 담고 싶지 않은,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 ‘망가진 여행’을 담았다. 강윤정(편집자), 오은-이현호(시인), 정세랑(소설가), 장연정(작사가), 정성일(영화감독), 위서현(아나운서) 등 7명의 여행자들이 자신의 망가진 여행을 고백했다.

문학 전문 편집자 강윤정은 몇 해 전 토리노행 열차 티켓을 끊었다. 프리모 레비(Primo Levi), 유대계 이탈리아인이며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인 작가. 그가 나고 자란 곳, 끌려갔다가 돌아온 곳,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곳에 꼭 가고 싶었다. 그렇게 레비가 묻힌 묘지 앞에 서는 것을 택했다. 자신에게 인간에 대한 가장 깊은 이해를 보여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토리노 역에 도착했다. 구글맵으로 지도를 확대-축소하며, 대중교통과 도보를 총동원해 묘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문이 닫혀 있었다. 월요일에는 문을 닫는다고 했다. 공동묘지에도 휴무일이 있을 줄이야. 묘지 관리인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건 영화 속에나 나오는 일이었다. 운명 같았던 토리노 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저 멀리 알프스 산봉우리를 덮은 만년설이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웃음이 났다. 신기했다. 완전히 다른 시공간을 살았던 프리모 레비라는 사람을 마음 깊이, 오래도록 그리워하고 애도할 수 있다는 것이. 돌아오는 기차에서 생각해보니 레비의 말, 삶, 그리고 그가 본 세상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만으로도 그 여행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시인 오은의 망가진 여행은 친구와 나눈 맥주 한잔에서 시작되었다. “남들은 좋아하는데 끌리지 않는 게 뭐야?”라는 친구의 물음에 그는 “여행”이라고 말했다. 시인에게 여행은 불편한 경험에 불과하다. 예상할 수 없는 일, 예기치 않은 일이 그냥 싫다. 그래도 이번에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주말을 피해서 2박 3일, 아무 계획 없이 단지 자유롭게! 며칠 후, 두 사람은 서로의 거주지 중간에 위치한 용산에서 만났다. 까만색 SUV 렌터카에서 친구는 전국 지도를 펼쳤다. 속초! 수학여행을 제외하곤 가본 적이 없던 강원도로 정했다. 계획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이나 해도 문제 될 게 없다는 말이다. 그때였다. 우두둑우두둑 소리가 났다. 비였다. 일기예보에서는 강원도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져 있다고 했다. 계획이 어그러지고 변수가 등장했지만, 여행은 ‘나도 몰랐던 나’를 튀어나오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펑크록과 브릿팝을 들으면서 해안도로를 달렸다. 그날 밤, ‘강원도-바다’ 하면 떠오르는 횟집으로 향했다. 회는 살살 녹았고, 술도 달았다. 하지만 여행은 다음 날 끝나고 말았다. 비 오는 날 회를 먹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계획이 없는 여행에 적응해갔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배탈에 두 사람은 고속도로 휴게 ...

목차 TOP

실패하여 지속될 수 있는 마음 / 강윤정
여행을 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 / 오은
그토록 사소한 기적을 바랐던 어느 여행가의 죽음 / 위서현
어떤 싸움의 기록 / 이현호
Last Summer / 장연정
11월의 어느 겨울에 낭트영화제를 가는 것에 대하여 / 정성일
파라다이스에 혼자 남겨지면 / 정세랑

본문중에서 TOP

눈 덮인 알프스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영문 모를 웃음이 났다. 프리모 레비가 뭐라고 데친 시금치처럼 엉망인 몰골로 꼬박 반나절을 헤맸나 싶었다. 신기했다. 만난 적도 없고, 당연히 말 한번 섞어본 적도 없으며 완전히 다른 시공간을 살았던 누군가를 이렇게 마음 깊이, 오래도록 그리워하고 애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그가 남긴 글을 읽었을 뿐인데 말이다. 단지 그뿐이면서 내가 그를 안다고 느끼는 것,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그가 끊임없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 이건 도대체 뭐라 이름 붙이면 적당한 관계이며 감정일까? 돌아오는 기차에서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그동안 레비의 말, 그의 삶과 그가 본 세상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다는 소박한 사실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 머릿속에는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잔뜩 들어 있는 건 대개 연인 사이에 일어나지 않나. 하나, 둘, 셋, 넷…… 흠모하는 작가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며 아이고, 애인 부자다 애인 부자, 그래도 레비가 제일이지, 하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강윤정 ‘실패하여 지속될 수 있는 마음’' 중에서)

비록 바다에 가서 물에 발 한번 ...

저자소개 TOP

강윤정 [저]

문학 편집자이다. 소설 리뷰 웹진 [소설리스트(sosullist.com)]의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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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현 [저]

KBS 아나운서. 1979년에 태어났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심리상담학을 공부했다. KBS 1TV NEWS 7, 2TV 뉴스타임 앵커, 1TV "독립영화관", "세상은 넓다", KBS 클래식FM "노래의 날개 위에", "출발 FM과 함께" 등을 진행했다.
지은 책으로 [뜨거운 위로 한 그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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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저]

영화감독, 영화평론가. "키노"의 편집장을 지냈다. 영화 "카페 느와르"와 "천당의 밤과 안개" 등을 연출했다.
지은 책으로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필사의 탐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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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저]

198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2002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가 있다.

이현호 [저]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가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지낸다. 누가누가 더 오래 누워 있나 내기라도 하는 듯이.

정세랑 [저]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이 있다.

장연정 [저]

1981년생,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고 현재 작사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득 짐 꾸리기와 사진 찍기, 여행 정보 검색하기, 햇볕에 책 말리기를 좋아한다. [소울 트립] [슬로 트립] [눈물 대신 여행] [안녕, 나의 모든 순간들] 등의 에세이를 펴냈고, 샤이니, 러블리즈, 에이핑크, 원더걸스 등 가수들의 앨범에 노랫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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