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있음으로 : 주원익 시집

저 : 주원익출판사 : 문학동네발행일 : 2017년 11월06일 | 종이책 발행일 : 2014년 11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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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TOP

“당신은 이미 흘러가버린 침묵,
나는 완성되고 온전히 허물어졌다”


끝의 시작
예리한 시선으로 순간의 시학을 포착하는 능력을 인정받으며 2007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한 주원익이 첫번째 시집을 펴낸다. 총 3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언어 너머의 언어를 향해 가며 되돌아오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사이의 시간을 구축한다. 이 시간에서 시인의 언어는 ‘당신’에게 말해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타버리듯 허물어지고, 사라져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온전함의 불가능을 말한다.
주원익의 시에 목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침묵으로 가라앉지도, 온전한 말로 떠오르지도 않는 ‘침묵의 목소리’일 것이다. 58편의 시들은 스스로 미완성이 되기를 자처하며 완전함이 언어의 자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즉각적이고 자체적으로 열리는 무한의 공간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시인은 단지 ‘있음’이라 단정지어 말하지 않고 움직임의 방향을 나타내는 조사 ‘으로’를 붙여 말한다. 시는 ‘있음으로’라고.

재의 언어
주원익의 언어는 보표가 없는 공백의 종이에 그려진 음표들같이 허공을 부유한다. 보표 없이는 음표의 음계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온전치 못한 혹은 온전하지 않으려는 언어는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는 기호로 남으려는 듯 그저 쓰여질 뿐이다. 이 과정에서 ‘사이’가 드러난다. 의미와 무의미의 사이, 열림과 닫힘의 사이, 쌓아짐과 허물어짐의 사이, 있음과 없음의 사이. 발화한다는 것은 언어로 대상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을 뜻하지만, 실제로 언어는 대상과의 간격을 만들어내며 미끄러진다. 이렇게 발화(發話)되지만 제대로 쓰여질 수 없는 언어는 시인의 눈앞에 발화(發火)하는 불의 꽃으로 피어나 언어 그 스스로의 견고함을 불태운다.

침묵이 밝혀질 수 없다 밝혀질수록
침묵을 밀어낼 수 없다
꽃이 멀어질수록 불의
꽃을 밝힐 수
없다

당신은
타오를 수 없다
타오를수록
불꽃에 다가설 수 없다

밝혀진 것이 아닌
침묵의 밝음이 사라지지 않고

밤의 재로 번져가는 꽃 번져가는 불
(/'재의 꽃' 중에서)

꽃불은 언어를 태우며 일렁이기에 언어로 설명하여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다. 꽃불이 더 밝아지고 더 크게 일렁일수록 본래의 언어는 사라지고, 그렇기에 ‘당신’이라는 읽는 이는 설명될 수 없으며 ‘당신’ 또한 이 시에 쓰여진(쓰여졌던) 언어에 다가갈 수 없어진다. 이러한 모순은 침묵에서도 이어져 침묵을 밝히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순간 침묵은 깨지고 “밝혀질수록/ 침묵을 밀어낼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무엇이나 적이나 합일이나
적대의 유구한 타오름으로
먼지, 불꽃, 그것들, 무한의 자식들이
우리를 낳고 언어를 가두고
쇠창살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것, 당신, 저것, 시간에 걸린
꽃송이들의 꽃, 밤의 낮으로 발화한다

시야를 방랑하는
아무것, 모든 없음 또한
시간이 걸린다
(/'너무 가까운 너머의' 중에서)

불에 타면서 부재로 향하는 말들은 재, 먼지, 잔해, 돌가루 등으로 바뀌며 본래의 모습을 지우지만, 타오르며 빛으로 피어나는 “꽃불”은 말들이 태워지는 만큼 밝아진다. 사라지는 것과 태어나는 것이라는, 쓰는 이의 언어와 읽는 이의 언어. 이 두 개의 언어라는 간격에서 닫혀졌다고 생각되던 문장들은 ‘사이의 시간’을 만들어내며 열린다.

사이의 시간
1부의 마지막 시 [발생]은 “그것은 사라진다. 빛. 있음으로 누군가 당신을 겪어내고 있는”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 것은 언어의 열림, 끝이 열리는 어느 틈으로 시인이 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게 주원익은 2부에서 ‘부재하는 글자’의 발자취를 따라 타버린 재로 ...

목차 TOP

시인의 말

1부 재의 꽃

눈물, 항해자들의 별
너무 가까운 너머의
미래의 책
자오선
공백의 악보
재의 꽃
망각된 밤
기다림의 내륙에서
모래의 책
체크메이트
망치
날개 감옥
서명
극광의 재
발생

2부 하얀 돌

공명
돌의 선율
백야
한낮의 성좌에서
메아리 광대
꽃 핀 나무 아래
순례
닫혀가는 달
하얀 돌
사랑

거울 속의 거울
엠블렘의 봉인
구원된 눈동자를 위한 수난곡
유산들
일식
꽃과 구덩이
발화
죽음의 눈
추억의 형식
만종
모래의 경
덫, 돛, 닻
온실효과

3부 겹침

재와 사랑
징조
후생의 바다
육화
불면의 시간이
기계는 기계를 모방한다
침묵의 복화술사에게
이명
하얀 그림자
거울
스테인드글라스
맹점 이후
...

본문중에서 TOP

아무것도 아닌 말과 침묵하는 문장들 사이
공백과 무한의 세찬 갈라짐으로부터
시는 시인을 낳아준다.

아직, 별들의 음악은 회전하고 흩뿌려지며
밤낮없이 흘러가고 있다.

거슬러갈 수 있게,
혼돈의 길목에서, 없는 길을 보여준
친구들에게 감사드린다.

2014년 11월
주원익
(/'시인의 말' 중에서)

메아리 광대

어릿광대의 눈물처럼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무뎌진다 무너진다

말문이 트이면 돌아오지 않는 말

가고 가고 갈수록
오고 오고 돌아온다

왕관에서 떨어진 핏방울
그 빛이 마르면 걸어가리라고,

부서진다 부셔진다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눈부심으로 태어나는 바깥
눈물은 믿음처럼 타오르고

길 없는
길이 없다

목발 없이, 목발도 없이

말문이 사라지면
절뚝거리는
(/본문 중에서)

검은 돌

나는 그것이라고 말해졌다

그것의 처음 잿더미를 삼킨 바람,

빛을 버리지 않는 달의 연인이라고 말해졌다

태양이 식을 때까지 그것의 눈먼 불꽃이라고

말해졌다

달빛 가득 고인 진흙 항아리, 망자들의 언덕에서

나는 그것의 부스러진 이름이라고

말해졌다 그을음을 뒤집어쓴 모음들

검은 얼룩이 말한다

선홍빛 장미의 성채를 휘감 ...

저자소개 TOP

주원익 [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7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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