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길, 저쪽 : 정찬 장편소설

저 : 정찬출판사 : 창비(창작과비평사)발행일 : 2015년 10월27일 | 종이책 발행일 : 2015년 05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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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스터소개글 TOP

권력과 폭력, 그 안에서의 인간의 선택과 존엄의 문제를 치열하고 진지하게 탐구해온 작가 정찬의 여덟번째 장편소설 [길, 저쪽]이 출간되었다.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을 통해 연재(2014년 9월~12월)했던 이 작품은 유신체제와 군사독재시대의 폭력을 배경으로 이 시대 비극적인 당사자들의 선택과 희생, 그 안에 담긴 슬픔과 애잔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1970~80년대를 거치며 국가권력에 의해 청춘이 입은 깊은 상처, 여러 정권이 바뀐 현재까지도 여전히 보듬어지지 않는 ‘시대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인혁당 사건-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을 중심으로 한 유신정권의 부조리, 광주항쟁-민주화운동 등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희생된 군사독재시대의 폭력, 이명박 정권의 사대강 사업 등 희망이 없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꼬집으면서도 그 상처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사랑’을 통해 개인과 우리 사회의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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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적 희생자’의 존엄과 슬픈 존재들의 아름다운 눈물

국가의 폭력에 희생당한 혹독한 한 생애를 잊기 위해 이 땅을 떠났던 연인이 새로운 사랑을 쓰기 위해 돌아왔다. 어느날 ‘윤성민’은 첫사랑 ‘강희우’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는다. 수배와 도피생활, 수감생활로 80년대를 보내던 성민이 감옥에 있던 1986년 10월, 편지 한장만 남겨놓고 프랑스로 떠난 희우에게서 이십칠년 만에 그를 초대한다는 내용의 편지가 온 것이다. 성민은 희우를 만나기 위해 그녀와의 추억이 어려 있는 ‘정릉 옛집’으로 찾아 가고, 드디어 그녀가 과거 한국을 떠나게 된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이유를 알게 된다.

상처는 깊었다. (...) 그것은 슬픔이기도 했고, 경이이기도 했다. 그 슬픔과 경이가 새로운 사랑을 만들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난 사랑이었다. 현실의 사랑이 아닌 꿈의 사랑이었다.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어도 여전히 나는 목마른 청년이었다. 목마른 청년에게 진실은 현실 속에 있지 않았다. 꿈속에 있었다. 희우는 꿈의 존재였다. 세월이 흘러도 청년의 모습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은 꿈의 존재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p.44)

희우는 편지에서 나를 초대했다. 정릉 옛집으로. 그녀가 사라진 후 정릉 옛집은 꿈의 집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꿈의 공간으로 초대받은 것이었다. 이십칠년 동안 어두컴컴한 복도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 뒤에 어떤 풍경이 있을는지 설레기도 했지만 점점 더 두려워졌다.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큰 것은 그녀가 꿈의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늙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p.45)

희우는 성민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혼자 감내하던 과거의 상흔을 드러냄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과거의 희우’와 화해하게 된다. 하지만 희우의 고백은 성민에게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성민이 도피생활을 하던 시절, 그의 연인이었던 희우는 사복형사에 의해 강제 연행되어 그의 거처를 자백 받기 위해 온갖 고문을 당했고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희우는 그때 딸 영서를 낳았고 프랑스로 떠나 ‘과거의 희우’를 버리고 그곳에서 의사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성민은 이제 암 말기 환자로 돌아온 희우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녀의 상처를 쓰다듬는다. 저자는 희우의 목소리를 통해 전쟁과 내란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정치 폭력으로 자행되어온 ‘성폭력과 그로 인한 출산’이라는 참혹한 역사를 짚어내며, 여전한 폭력의 세상에서 ‘숙명적 희생자’의 존엄을 외로움과 슬픔의 본질에서 찾는다.

그녀의 삶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의 삶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를 수 있었을까.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듣지 않았다고 해서 모른다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느낄 때 비로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어둠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몸은 희게 빛나는 것처럼 고통도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야 마땅하지 않은가.(/ p.141)

야만적 사회는 우리의 몸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고통의 기억을 자극해요. 폭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나치스가 그랬고, 스딸린 체제가 그랬어요. 우리의 청춘이 통과했던 70년대와 80년대 한국 사회도 그랬어요. 수많은 청춘들이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어요. (...)
희생자의 본질은 슬픔이에요. (...)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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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은 진지하면서 치열하다. 그의 문학은 인간과 그 삶, 현실과 그 역사에 대한 집요한 탐구 속에서 그것들의 존재 양상과 그 의미를 천착한다. 세계의 모순들에 대한 치열한 추궁과 진지한 비판을 가해온 그가 이제 정면으로 제기하는 주제는 사랑이다. 여기서 그가 묻는 것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이기보다 ‘사랑이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라는 난해한 문제이다. 그는 그 문제를 유신 이후 그가 살아오면서 아프게 괴로워해야 했던 수배당한 시대 속에서 탐색하며 그 진상과 진의를 추적한다. 이 작업에서 당대의 사회적 억압과 인간 근원의 영원함이 서로 얽힘으로써 재현되면서 작가의 비관적 전망과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는 희망의 아우라를 비춘다. 그의 [길, 저쪽]은 설움에 젖은 오늘의 우리에게 그 슬픔과 믿음을 더불어 안겨준다.
- 김병익 / 문학평론가

정찬의 작품은 언제나 정치와 윤리를 다루는 인문학이었고 연서(戀書)였다. 한국 사회에서 만나기 어려운 이 치열하고 독특한 예술가는 사랑의 패배를 믿지 않는다. 그는 사랑과 헌신의 형식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이 소설은 정찬의 여느 작품들처럼 읽기의 고통과 사유의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독자는 그의 깊이로 추락하게 되고 그 과정은 황홀하다.
독자는 어떻게 작가를 사랑하는가. 나는 정찬의 작품을 통해 성장했고, 그의 작품 덕에 외롭지 않으며, 그 힘으로 버티고 있다. 당대 우리의 삶은 줄 서서 형(刑)의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과 같다. 앞에서 일어난 혹독한 일들을 알고 있으면서 ‘다음’이 자신의 순서가 되는 현실을 견뎌야 한다. 우리는 그 긴 행렬에 서서 그의 작품을 들고 투쟁을 시도한다.
- 정희진 /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목차 TOP

1장 편지
2장 폐사지에서
3장 윤하
4장 정릉 옛집
5장 유랑
6장 초대
7장 시인의 죽음
8장 새의 꿈

작가의 말

저자소개 TOP

정찬 [저]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교육과와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를 졸업했다. 소설집 [기억의 강] [완전한 영혼] [아늑한 길] [베니스에서 죽다] [희고 둥근 달] [두 생애] [정결한 집],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 [황금 사다리] [로뎀나무 아래서] [그림자 영혼] [광야] [빌라도의 예수] [유랑자]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올해의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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