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사랑이 채우다 

출판사 : 문학동네발행일 : 2013년 09월16일 | 종이책 발행일 : 2013년 07월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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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처럼 나타나 마침내 사랑이 된 남자,
그를 위해 코끼리라도 되고 싶은 여자의 무한 사랑 변주곡!


여기, 흔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잘생기든 못생기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결국 기쁘게 만나고 슬프게 헤어지는 무수한 사랑들 사이에, 우리와 똑같이 평범하게 화내고 기뻐하고 거짓과 진심을 반복하며 치열하게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모든 걸 집어던지고서라도 사랑에 빠지고 싶은 상대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 단정하고 적확한 문체로 끊임없이 사랑을 탐색해온 심윤경의 신작 장편소설 [사랑이 채우다]는 이런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달의 제단]으로 무영문학상을 수상하며 많은 이들의 애정과 관심을 받아온 그는, 최근작 [사랑이 달리다](2012년 7월)에서 들려준 '혜나'와 '욱연'의 사랑 이야기를 고스란히 이어담아 일 년 만에 새로운 연작 장편소설을 펴냈다.
어린 여자와 바람나 황혼이혼을 한 아빠, 이화여대를 나왔지만 낭만적 기질 덕분에 아무것도 없는 아빠와 결혼해 빈손으로 이혼당한 엄마, 돈만 밝히는 이기적인 큰오빠, 제정신 못 차리고 대책 없이 대형사고만 터뜨리는 작은 오빠. 이 자타공인 콩가루 집안의 사고뭉치 가족들은 여전히 엉뚱하고 뻔뻔하게, 철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서른아홉의 나이에 처음으로 돈이란 걸 벌기 위해 산부인과의 보육실에 취직했다가 원장 선생님과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 그녀, 김혜나. 평범해 보이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가 지금 여기, 아름답게 펼쳐진다.

행복이 아니라 재난이었다.
나이 마흔에 찾아온 사랑이란 건, 알고 보니 그런 거였다.


정 산부인과의 원장 욱연과 꿈만 같던 나날도 잠시, 혜나가 그전에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은 소꿉친구이자 남편인 성민과 헤어지는 일이었다. 뒤늦게 찾아온 운명 같은 사랑에 뒤돌아보지 않고 달리기만 했던 그녀는 얻게 된 행복만큼이나 커다란 불행도 겪어야만 한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고, 그녀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저녁햇살이 비쳐서 눈을 감은 눈꺼풀 안이 빨갛게 보였다. 빨갛게 불타오르는 언덕 위를 기린들이 끄덕끄덕 걷고 있었다. 발끝마다 세상에서 제일 긴 그림자가 돋아 있었다. 믿을 수 없도록 기나긴 그림자가 산 아래 들판까지 펼쳐져 있었다. 성민의 들판에도 예쁜 기린들이 걷고 있기를 나는 눈을 감고 소망했다. 어차피 산성에서는 사랑인지 아닌지, 그런 것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성민에게 기린을 주고 싶었다.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다. (31쪽)

욱연과의 관계 역시 쉽게 풀리지만은 않는다. 캐나다로 간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슬픔을 잊기 위해 워커홀릭이 되어버린 그는, 혜나와 만난 이후로도 일을 놓지 못한다. 결국 혜나는 욱연에게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헤어지겠다는 엄포를 놓고,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하게 식어간다. 게다가 욱연의 아내인 혜원이 그녀를 찾아오기까지 한다. 아름다운 운명이 냉혹한 현실로 화하는 순간이다.

그는 뭐든지 죽도록 열심히 하는 남자였다. 그는 나를 사랑했다. 육 년간 지속해왔던 기다림을 끝내기로 결심할 만큼, 그의 굴곡진 인생 내내 묵묵한 지팡이였던 일까지 버리겠다고 약속할 만큼 그는 나를 사랑했다. 죽도록 사랑했다. 하지만 그가 나를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의 가슴의 어느 일부분은 영원히 이 여자의 것이었다. 지금 그가 미니 다큐멘터리 촬영이라는 어이없는 이유로 나에게 연락을 끊은 것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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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서 삶은 역설이라는 형식은 옷을 입는다. 혜나의 사랑이 위태로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이 항상 모든 것을 잃어야만 하는 마이너스 게임은 아닐 터. 인생 막바지에 우리에게 도착할 삶의 대차대조표에 사랑의 항목이 어떻게 기재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것이 혜나의 사랑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고봉준(문학평론가)

독서라는 것은 엄연히 간접체험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굉장히 직접적인 체험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심정을 바로 옆에서 같이 듣고 있다가 돌아온 것 같은. 그래서 내가 이 이야기에 가지고 있는 애정은 순전히 타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호감 정도가 아니라 좀더 막무가내적이고, 무조건적인 데가 있다. 따라서 막무가내로 이 추천사의 마무리를 해보자면,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다 좋은 사람들이다. 내가 안다.
- 요조(뮤지션)

본문중에서 TOP

삶에는 '사랑한다'와 '사랑하지 않는다' 사이에 아무런 경계가 없어지는 그런 지점이 있었다. 그에게 그곳이 나무가 쓰러진 고속도로였다면, 나에게는 산꼭대기에 붉은빛이 번져가는 이 산성이었다. 그날그가 전혜원에게 죽도록 사랑한다고 말했어도 인생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흘러갔을 것이다. 내가 오늘 성민에게 죽도록 사랑한다고 말했어도, 인생은 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흘러갔을 것이다. 시간과 방향의 감각이 없어지는 그런 공간에서는, 인간이 무엇에 부딪쳐 어디로 가든 아무 차이가 없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고속도로를, 또 산성을 지나쳤다. 한번 지나치고 나면, 또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살게 된다.
(/ p.153)

혜나는 내 의견을 무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내 계획 따위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멋대로 내달렸다. 그녀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는 걸 알았지만, 나는 그녀를 불러세울 수도 없었다. 그녀는 내 목소리보다 빨리 달렸으니까. 혜나가 욱연을 사랑하는 방식, 그것이 바로 [사랑이 채우다]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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