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그러니 내가 어찌 나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저 : 김연경출판사 : 문학과지성사발행일 : 2013년 06월12일 | 종이책 발행일 : 2003년 02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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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문체와 도발적인 형식 실험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아온 김연경의 첫 전작 소설

작품은 화자의 말인지 작가의 말인지를 구분하기 힘든 프롤로그 격의 첫 장과 에필로그 격의 마지막 장을 칸막이로 하고 있다. 이야기가 풀려나감에 따라, ‘자살 미수’에 성공하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한, 신상이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 등장인물이 전화 또는 직접 진술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신변담과 그가 썼다는 소설이 뒤섞인다.


프롤로그 뒤로 위 사람이 요청한 상담이 시작된다. 상담이 끝나면 에필로그가 기다리고 있다. 상담이 시작되고부터는 딱히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한 사내가 자살 미수를 시도한다. 상담을 요청한 바로 그 사내이다. 그는 제대로 자살을 미수에 그치기 위해 몇 번이나 노력까지 한다. 그의 소설 원고가 펼쳐지면서 보잘 것 없는 연인들의 그렇고 그런 연애와 가난한 동거의 내력이 지극히 한심한 정사 장면과 함께 기술된다. 그런가 하면 어느덧 이야기는 골목길 고무줄놀이와 초경의 기억까지 낀 유년 시절로 넘어간다. 이어 에필로그에 앞서 다시 사내와 카운슬러 간의 상담으로 돌아온다.


문장은 “그들은 모두 몸집이 작았고, 그들은 모두 가난했다. 하여, 그들은 작고 가난한 연인들이었다. 그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사귀었고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처음에 분명 그들은 ‘열애’를 하고 있었다. 모든 ‘열’이 그러하듯 그들은 대책 없이 서로에게 타 들어가고, 빨려 들어갔지만, 육체와 심장의 열이 어느 정도 식고 그들의 머리가 더욱더 차가워져서 그들의 관계가 지닌 ‘한심함’에 눈뜨게 됐을 때 그들은 이미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는 것, 즉 ‘한심함’의 이면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안타까움’을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에서 보거나 “죄의식, 양심, 기만에 대한 혐오, 불가피한 냉담, 뭐 이런 것들. 그러니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있는가, 그러니 내가 어찌 나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테마였죠. 저는 어딘가에서 본 이 문장을 자그마한 얘기, 그러니까 소설로 다시 쓰고 싶었던 게지요. 얼마나 기고만장한 꿈을 꾸었는지. 허허허, 흐흐흐”에서 보듯 다성적인 진술이 주를 이룬다.


전통적인 개념의 기본적인 이야기 구성 요소인 사건도 이러한 문장에 종속되어 있다. 따라서 화자뿐만 아니라 사건의 당사자(주체)도 모호하다. 작가와 화자의 목소리, 작가와 화자의 행위가 분명히 구분되어, 글 읽는 사람이 오히려 안심하고 감정 이입 할 수 있는 여느 소설과는 달리 표면상 그야말로 ‘자그마한 얘기, 그러니까 소설’이 아무런 화장기 없이 드러나기 때문에 작품 전체에 걸쳐 낯선 어법과 생경한 분위기가 환기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그저 두서없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은 곳곳에서 메타 소설과 만나게 된다. 소설사 서술, 또는 소설 개론에나 등장함 직한 용어들도 빈번히 등장해 덫을 놓는다. 아예 「‘위대한 통속’의 소설화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같은 장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장치와 그 장치에 걸려드는 사소설 분위기는 ‘자그마한 얘기, 그러니까 소설’이 도대체 어떤 욕망과 아이러니(‘아이러니’의 본래 뜻은 ‘짐짓 그런 체하기’이다)를 통해, 공표되고 유행될 만한 글로 격상되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우회로이다.


이렇게 긴 우회로를 만들어 도는 행위, 저속함과 한심함을 굳이 기술하고 다시 들여다보는 행위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실존과 욕망 앞에 지레 체념하고 마는 듯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가로지르기 위해 다시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 ...

목차 TOP

서(序)를 대신하여



지루한 말들


늘어지는 말들


「소설초고」


추악한 출현


터뜨려지는 말들: 설사


‘방에 대한 소고’


‘나쁜 피’


‘위대한 통속’의 소설화에서 발생하는 문제


어그러지는 말들


‘사랑을 위하여’


바스러지는 말들


(뭉크의) 사춘기


닳아지는 말들



결(結)을 위하여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TOP

마침내 그다 내(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로써 그는 목소리-말-만으로만 존재하는 환영이 아니라, 오목조목한 형체가 있는, 눈에 보이는 한 피조물로서 내(네) 앞에 선 것이다. 이제, 나(너)는 그를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할 필요를 느낀다. 노크 소리, 그가 들어온다. 나(너)는 점심으로 먹고 있던 순대와 떡볶이, 어묵을 허겁지겁 치운다. 아, 이 음식 냄새. 나(너)의 앞에서 그는 숙면 중에 이부자리에 오줌을 싼 아이처럼 얼굴을 붉히면서, 멋쩍게 웃는다. 그 웃음 속에는 '우리 사이에 부끄러울 게 뭐 있다고?'라는 식의 은밀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그가 자리에 앉는다. 그는 내(네)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 목소리의 경박함과 초조함과는 달리 점잖고 침착한 얼굴과 몸가짐에, 현재 한국인의 평균 신장과 체중을 훨씬 웃도는 건장한 몸을, '멀쩡한 허우대'를 갖추고 있다. 자, 초상화는 이 정도로 간략하게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전화상으로 그와 만난 것이 아니니 모든 말들을 다분히 위압덕이기까지 한 큰 따옴표로 옮긴다.
(/p.40~41)

저자소개 TOP

김연경 [저]

1975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해 소설집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미성년][내 아내의 모든 것], 장편소설[그러니 내가 어찌 나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고양이의 이중 생활]을 펴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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