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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메일러 실종사건

원제 : La Disparition de Stephanie Ma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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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수사오류를 지적하며 의혹을 추적하던 스테파니 메일러 기자가 실종된다.
    20여 년 동안 뉴욕 주 경찰본부 강력반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해 ‘100퍼센트 반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강력반의 제스 로젠버그 반장이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퇴임을 일주일 앞두고 열린 환송식에 낯선 여성이 찾아온다. 《오르피아크로니클》지의 스테파니 메일러 기자이다. 그녀는 제스 로젠버그 반장에게 20년 전 오르피아에서 발생한 ‘4인 살인사건’을 이야기하며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로젠버그 반장이 수사오류를 주장하는 근거가 뭐냐고 묻자 스테파니 메일러 기자는 말한다.
    “반장님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본 게 아니라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 겁니다.”
    수수께끼 같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간 스테파니 메일러 기자가 실종된다. 제스 로젠버그 반장은 20년 전 한 팀을 이루어 4인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동료 수사관 데렉 스콧을 설득해 재수사에 착수한다.
    20년 전 벌어진 4인 살인사건은 무엇인가? 뉴욕 인근의 자그마한 해변 휴양지 오르피아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날은 오르피아 시장과 주민들이 야심차게 계획하고 준비한 제1회 오르피아 연극제의 개막일이기도 하다. 개막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개막공연을 보기로 되어 있던 조셉 고든 시장과 부인, 어린 아들이 자택에서 무자비한 총격을 받고 살해된다. 시장 자택 인근 공원에서 조깅을 하던 여성 메간 패들린은 시장 일가족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도망치다가 범인에게 들켜 추가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4인 살인사건에 투입된 제스 로젠버그와 데렉 스콧 형사는 끈질긴 수사 끝에 오르피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테드 테넨바움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검거에 나선다. 테드와 고든 시장은 식당 건물 지목 변경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빚었고, 몇 번인가 심하게 다투다가 사람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제스와 데렉은 수사망이 좁혀들자 몸을 숨긴 테드를 찾아 나선다. 테드의 행방을 알아내고 추격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테드의 차와 제스와 데렉, 제스의 약혼녀인 나타샤가 타고 있던 차가 다리 아래로 추락한다. 그 사고로 테드가 현장에서 사망하고, 나타샤도 숨을 거둔다.
    20년 만에 4인 살인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되고, 제스와 데렉 콤비, 오르피아경찰서의 여자경찰 애나로 구성된 삼인조가 사건해결을 위해 나선다. 이 삼인조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뒤섞인다. 언론인, 연극배우, 서점주인, 지방정치인, 술집주인 등 20년 전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 다시 소환된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에 사로잡혀있다. 그들의 과거는 회한, 분노, 상실, 사랑 없는 결혼,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생활 등으로 점철되어 있어 견딜 수 없이 무겁다. 4인 살인사건의 수사가 재개되면서 오랜 시간 봉인되어 있던 비밀의 문이 열리는데…….

    출판사 서평

    1. 20년 전 종결된 4인 살인사건, 진범은 따로 있다!
    -살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를 주목하라!
    -아마존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 전 세계 25개국 출간!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의 작가 조엘 디케르 신작소설!

    2010년 첫 장편소설 《우리 아버지들의 마지막 날들》을 발표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조엘 디케르는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과 《볼티모어의 서》로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부상했다. 그의 조국인 스위스와 책을 출간하는 프랑스에서는 ‘조엘 디케르 현상’이라 불릴 만큼 독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2018년 《르 피가로》지가 발표한 프랑스 서점연합 판매부수 조사에서 쟁쟁한 작가들을 뒤로 하고 3위에 오를 만큼 조엘 디케르에 대한 독자들의 지지는 뜨겁다.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고교생들이 뽑은 콩쿠르 상, 블뢰스타인 블랑셰 재단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3백만 부를 판매했고, 10부작 드라마로 제작되어 프랑스 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볼티모어의 서》 역시 전 세계 40여 개국에 판권이 팔려나갔고, 아마존을 비롯한 각종 온오프라인 서점 집계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스테파니 메일러 실종사건》은 출간 이후 7주 동안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37주 연속으로 10위권 이내에 오르며 70만 부를 판매했고, 이후 문고판으로 24만 부가 더 팔리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뉴욕 인근의 작은 휴양도시 오르피아이다. 소설의 제목으로도 쓰인 ‘실종사건’은 이 소설의 출발점이자 20년 전 잘못된 결론을 내린 수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의 소설 속에서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1994년, 휴양도시 오르피아가 야심차게 준비해온 연극제 개막일, 시장과 부인, 어린 아들이 무자비한 총격을 받고 살해된다. 시장의 집 앞 공원에서 조깅을 하다가 범행을 목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인도 총격을 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뉴욕 주 경찰본부의 제스 로젠버그와 데렉 스콧 형사가 끈질긴 수사 끝에 4인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혀내고 수사를 종결한다.
    20년이 흐른 2014년, 스테파니 메일러 기자가 제스를 찾아온다. 그녀는 제스에게 20년 전 잘못된 수사결론을 내렸고, 진범은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4인 살인사건을 조사해왔고, 곧 진실을 밝혀내게 될 거라 장담한다. 그 당시 담당 형사들은 물론 관련자들 모두가 눈앞에 있는 진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스를 찾아와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수사오류를 지적했던 스테파니 메일러 기자가 실종되면서 20년 전 4인 살인사건은 다시 관심의 초점이 된다.
    스테파니 메일러의 주장이 옳고, 20년 전 수사결론이 잘못되었다면?
    스테파니 메일러의 실종은 4인 살인사건의 재수사를 촉발한다. 20년 전 발생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재수사는 사건 관련 인물들의 상처받은 삶을 구원하는 회복의 여정이기도 하다. 재수사가 시작되면서 이미 20년 전 조사받은 용의자들이 다시 소환된다. 연극연출가가 꿈이었던 전직 경찰서장, 과거 한때 《뉴욕타임스》지에서 명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떨쳤지만 이제는 한물 간 비평가, 젊은 여직원과의 외도로 궁지에 몰린 문학지 편집장 등은 모두 4인 살인사건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고,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들의 과거는 회한, 분노, 상실, 애정 없는 결혼,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일상 등으로 얽혀 있고 그들의 생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을 지운다. 그들은 하나같이 치유가 어려운 상처가 있고, 회복하기 쉽지 않은 고뇌와 슬픔을 갖고 있다. 20년 전 잘못 결론이 내려진 수사의 재개는 그들에게 닫힌 문을 열어젖히고 속죄의 길을 열어주는 과정이자 덧난 상처를 치유하는 회복의 기회로 작용한다. 전작 《볼티모어의 서》에서 글쓰기가 주인공 마커스 골드먼에게 잃어버린 명예와 실패로 점철된 삶을 전복하는 수단이었다면 《스테파니 메일러 실종사건》에서는 제스와 데렉, 애나의 과거사건 재수사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스테파니 메일러의 실종은 수사 재개의 시발점이 되고, 20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비밀의 문을 열어젖히는 촉매 역할을 하며 지난 날 벌어진 불행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용서하고, 회복하는 길로 나아가게 한다.

    2. 20년 만에 다시 소환된 용의자들, 누가 가면을 쓰고 있는가?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대개 사람들의 시각은 자기중심적이어서 늘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이 소설은 우리가 생에서 놓치기 쉬운 문제들을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바라보게 한다. 20년 전 벌어졌던 4인 살인사건은 그 자체로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오르피아 주민들, 혹은 매년 휴가철에 가족들과 함께 오르피아를 방문해 쌓인 피로감을 풀고, 누적된 갈등을 해소했던 사람들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산과 바다, 호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며 갈등과 상처를 극복하게 만들어주었던 오르피아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더 이상 아픔을 위무하는 위안의 장소가 되어주지 못한다. 오르피아에서 삶의 의미나 다름없던 여인을 잃은 제스 로젠버그 반장, 연극 연출가로 성공을 거두고 싶었지만 참담한 실패를 맛본 커크 하비, 평생 단 한번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을 잃은 메타 오스트롭스키, 가족들과 허름한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며 믿음과 사랑을 쌓았던 스티븐 버그도프, 친구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던 다코타 에덴 등의 인생 이야기 2막이 수사 재개와 더불어 다시 펼쳐진다.
    《스테파니 메일러 실종사건》이 작가의 전작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점이란 바로 이런 복합적인 것의 통합이다. 살아있는 자들에게 불행의 씨앗이 되었던 살인사건과 죽은 자들의 진실을 밝혀내면서 모든 등장인물이 단절된 관계를 다시 이어가고 뜻밖의 화해를 이룬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살인사건이나 연쇄살인범을 중심으로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기보다는 사람들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 이면에서 작용하는 이기심과 욕망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은 어떤 순간에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도덕과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하는가?
    이 소설은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살인자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인물들이 도덕과 양심을 허물고 살인행위에 나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삶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궤도를 벗어나 낭떠러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나친 이기심, 한순간의 탐욕, 질투, 뒤틀린 욕망 등이 평화롭고 순탄하던 삶을 헤어날 수 없는 덫에 빠뜨리는 주범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조엘 디케르는 《르 피가로》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한다.
    “나는 살인 자체보다 살인에 대해 사회가 세워놓은 도덕적 장벽에 눈길이 갑니다. 작가로서 흥미가 생기는 지점은 누군가가 이 장벽을 뛰어넘을 때입니다. 사이코패스나 연쇄살인마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의심하기 쉽지 않은 보통사람이 살인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인간은 어떤 순간에 도덕과 양심의 저지선을 넘어갈 수 있을까요? 나는 그 부분이 궁금했고, 이 소설에서 주요하게 다룬 주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소설의 배경인 오르피아는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도시이자 상징적 공간이다. 작은 도시 오르피아에서 4인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폴리스라인이 쳐진다. 폴리스라인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에 집중하게 만들며 독자들을 연극관객처럼 만드는 장치이다. 뉴욕에서 가깝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휴양도시 오르피아는 CEO와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들이 티셔츠와 운동화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곳으로 신분에 따른 외관의 차이가 사라지는 장소이기도 해서 인물들의 가면을 벗기기에 용이한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오르피아’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에서 따왔다. 오르페우스는 뱀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다시 살리기 위해 저승에 다녀오는 인물이다. 오르페우스는 ‘귀환’을 상징하며, 오르피아는 ‘실종’을 통해 ‘귀환’을 실현하는 장소,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태어나는 삶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릴러 소설은 사건에 대한 집중을 통해 긴장감을 유지해나가는 반면 이 소설은 수많은 인물과 여러 갈래 에피소드들이 계속 가지를 쳐나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의 시간 속으로 과거가 끊임없이 플래시백으로 끼어든다. 현재를 푸는 열쇠는 과거 이야기 속에 들어 있다. 수많은 등장인물, 쉼 없이 방향을 트는 전개, 복잡한 줄거리를 따라가는 일이 쉽지 않지만 작가는 인물과 에피소드가 하염없이 얽히는 소설의 끈을 놓치는 법이 없다. 조엘 디케르는 독자와의 긴장관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글이 읽히기를 열망하며 읽히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한다. 그런 만큼 글쓰기 자체에 대해, 글쓰기가 지니는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와글거리고 사건은 쉼 없이 꼬이고 뒤틀리지만 결국 이 소설이 보여주는 건 무너졌던 삶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모습이다. 시간의 심연 속에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진실의 귀환이다.

    추천사

    20년 전 사건의 재수사가 시작되면서 봉인된 과거의 문이 열린다.
    - 르 마탱 디망슈

    20년 만에 다시 소환된 용의자들, 누가 가면을 쓰고 있는가?
    - 르 피가로

    조엘 디케르에게는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레시피가 있다.
    - 르 파리지앵

    이 소설에서 ‘스테파니 메일러의 실종’은 과거 한 사건과 결부된 인물들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회복하게 만드는 촉매로 작용한다.
    - 엘르

    범죄사건 자체보다 살인사건의 사회학적 측면을 파고드는 소설!
    - 파리 마치

    본문중에서

    스테파니는 어깨를 추어올리고 나서 가보겠다는 뜻으로 돌아섰다. 몇 걸음 옮겨놓던 그녀가 다시 몸을 돌려 다가왔다.
    “해답은 눈앞에 있었어요. 단지 반장님이 보지 못했을 뿐이죠.”
    나는 이제 당혹스러운 한편 짜증이 났다.
    “무슨 뜻이죠?”
    스테파니가 내 눈높이까지 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가락을 펼쳤다.
    “뭐가 보이세요?”
    “손이 보이네요.”
    “저는 손가락을 보여드렸는데요. 반장님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본 게 아니라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 겁니다. 그 결과 중대한 오류를 범하게 되었죠.”
    스테파니는 수수께끼 같은 말과 함께 명함 한 장, 신문기사 사본만 남겨두고 떠났다.
    음식을 차려놓은 테이블 근처에 있는 데렉 스콧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나와 함께 현장을 누비던 형사였는데 지금은 행정직으로 옮겨 내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데렉에게 다가가 신문기사를 내밀었다. 데렉은 기사를 통해 20년 전 우리가 맡아 해결했던 사건을 다시 접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자네 옆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가 가져온 기사야?”
    “신문기자인데, 우리가 그 당시 잘못된 수사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하더군.”
    “말도 안 돼.”
    데렉이 사레들린 소리를 냈다.
    “그 여자가 말하길 해답이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우리가 보지 못했다는 거야.”
    스테파니가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또 만나요, 로젠버그 반장님.”
    하지만 우리가 ‘또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그날 스테파니 메일러는 실종되었으니까.
    (/ pp.20~21)

    나는 현관 계단에 신발을 문질러 흙을 털어내고 나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출입문을 발로 세게 걷어찬 듯 부서져있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복도에 한 여자가 총에 난사당해 쓰러져 있었다. 여자의 시신 옆에 반쯤 짐을 넣은 여행용캐리어가 있었고, 내용물이 다 보이도록 열려 있었다. 복도 오른편 작은 거실에 열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총을 여러 발 맞고 숨져있었다. 아이가 커튼을 움켜쥐고 쓰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범인을 피해 몸을 숨기려다가 변을 당한 듯했다. 주방에는 사십대로 보이는 남자가 피 웅덩이를 이룬 가운데 쓰러져 있었다. 범인을 피해 달아나다가 그 지점에서 쓰러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피비린내와 더불어 집안에 가득 들어찬 시신 냄새를 견디기 어려웠다. 제스와 나는 달음박질치듯 집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방금 목격한 참혹한 장면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고, 둘 다 얼굴이 납빛이 되었다. 차고로 내려가 고든 시장의 차를 점검했다. 차 트렁크에도 여행캐리어와 짐들이 실려 있었다. 고든 시장이 가족들과 어디론가 떠나려다가 살해된 게 분명했다.
    (/ p.66)

    검은색 밴을 목격했던 레나 벨라미 덕분에 수사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4인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열흘이 되던 날 레나는 남편과 함께 시내중심가로 저녁식사를 하러 나왔다. 그녀는 집 주변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진 이후 겁이 나 바깥출입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줄곧 집안에서 지냈다. 아이들을 집 맞은편에 있는 공원 놀이터에 보내기조차 꺼림칙했다.
    테렌스는 몇 번이나 레나의 기분을 바꿔주려고 애쓴 끝에 마침내 함께 외출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들은 연극제 개막에 맞춰 문을 연 <카페아테나>로 향했다. 그 식당은 벌써부터 입소문이 자자한 핫플레이스가 되어 자리를 예약하기 쉽지 않았다.
    테렌스는 마리나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감미로운 저녁 공기를 음미하며 <카페아테나>까지 산책하듯 걸었다. 식당의 멋진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방에 촛불을 밝힌 테라스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식당 전면이 온통 유리로 되어 있었고, 올빼미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식당 전면을 바라보던 레나가 별안간 소스라치며 몸을 떨었다.
    레나가 남편에게 말했다.
    “저 그림이야!”
    “무슨 그림?”
    “검은색 밴 뒤창에 붙어있던 그림이 바로 저 올빼미 형상이었어.”
    벨라미 부부는 곧장 우리에게 연락했고, 제스와 나는 전속력으로 오르피아를 향해 달려갔다. 벨라미 부부가 마리나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의 검은색 밴이 <카페아테나>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식당 유리창 그림과 밴의 뒤창 그림이 의심의 여지없이 일치했다. 벨라미 부부는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가 밴을 세우고 식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고 했다. 차량번호를 조회한 결과 밴의 주인은 <카페아테나>의 주인인 테드 테넨바움이었다.
    (/ pp.142~143)

    부동산 업자가 서류철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에 찍힌 남자는 고든 시장이었다. 그는 파란색 컨버터블 자동차 트렁크에서 종이상자를 내리고 있었다.
    “고든 시장이 이 집을 구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던가요?”
    “아무튼 뭔가 말하긴 했는데 분명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여기까지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을 거야.’ 정도였어요.”
    “언제부터 살기로 예정되어 있었죠?”
    “4월에 집을 임대했는데 언제부터 살려고 하는지는 몰랐어요. 사실 우리 같은 부동산 업자에게 그런 문제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임대료만 내면 나머지는 상관없는 일이죠.”
    고든 시장이 보즈먼 지점에서 계좌를 개설한 시점이 3월이었고, 4월에 집을 임대했다. 이미 그때부터 도주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는 살해된 날 저녁 가족과 함께 오르피아를 떠나려고 했다.
    살인범은 고든 시장이 떠나려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고든 시장이 살해된 원인을 따져보자면 보즈먼 지점 계좌에 입금해둔 돈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보였다. 현금으로 자그마치 5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그 많은 돈이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
    (/ pp.216~217)

    버즈 레너드의 집을 나서면서 데렉이 말했다.
    “샬롯의 신발이 물에 푹 젖어있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어요. 사건이 일어나던 날 고든 시장의 집 앞 스프링클러의 노즐이 부러져 잔디밭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죠.”
    “샬롯이 범행에 연루되었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샬롯이 대극장을 떠나 있었다는 거예요. 샬롯이 자리를 비운 시간이 대략 30분 정도이고, 그 시간이면 대극장에서 펜필드까지 왕복이 가능하죠. 스테파니가 했던 말이 생각나요. 제스와 내가 바로 눈앞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보지 못했다고 했죠. 사건이 벌어진 날 저녁 오르피아 전 지역에서 검문검색이 이루어지고 차량 운행을 통제하는 동안 정작 살인자는 유유히 무대에 올랐을 수도 있습니다. 연극을 보고 있는 수많은 관객들이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테고요.”
    “비디오테이프를 보면 그 당시 상황을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비디오테이프에 객석의 모습이 담겨 있다면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찾아낼 수 있겠죠. 이 사건을 수사하던 당시 제스와 나는 대극장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주의를 집중하지 못했어요. 스테파니 메일러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우리가 놓친 부분들에 대해 눈길이 가기 시작했죠.”
    (/ pp.263~264)

    앨리스는 나를 꼼짝 못하게 옭아맸다. 언제나 마음 내키는 대로였고,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간혹 병 주고 약 주듯 나를 부드럽게 대해주는 날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 성적 욕망을 받아주는 경우가 드물어져 견디기 힘들었다. 앨리스가 나를 좌지우지하는 지배력의 원천은 섹스였다.
    2013년 9월이 지날 무렵 나는 앨리스가 금전적인 동기로 나를 만나온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네 번째 카드를 만들고, 가끔 어쩔 수 없이 법인카드를 쓰고, 아이들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개설해둔 계좌에서 돈을 빼내 쓰면서까지 선물을 사다 바쳤지만 사실 난 그리 돈 많은 남자는 아니었다. 만약 돈 많은 남자가 목표였다면 앨리스는 나를 굳이 타깃으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맨해튼에만 해도 나보다 돈 많은 남자는 부지기수로 널려 있었으니까.
    앨리스는 작가가 되고 싶어 했고, 내가 다리를 놓아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뉴욕의 차세대 인기작가가 되는 게 앨리스의 인생목표였다. 2013년 9월 14일, 토요일 아침에 모처럼 가족들과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을 때 앨리스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그녀와 통화하기 위해 잠시 걸음을 늦추었다.
    (/ pp.309~310)

    1994년에 레나 벨라미는 고든 시장의 집 앞에 있는 테드의 밴을 보았다. 마티 코너스도 밴이 펜필드로드 쪽에서 달려왔다는 점을 확인해주었다.
    커크는 왜 우리에게 그 사실을 숨겼을까?
    우리는 주유소를 나와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데렉이 오르피아의 지도를 펼치고, 마티가 말한 방향을 따라 밴의 행로를 그려보았다. 데렉이 손가락으로 지도에 나온 도로를 따라가며 말했다.
    “밴이 서튼스트리트 방향으로 사라졌다고 했는데 지도에도 나와 있다시피 중심가가 끝나는 지점으로 연결되는 도로야.”
    “그날은 연극제 개막일이라 시내 중심가는 차량 진입이 통제되었어. 다만 중심가 끝 지점 연결도로를 열어두고 대극장으로 가는 실무 차량들을 드나들게 했지.”
    “실무 차량 가운데 통행허가증이나 주차허가증을 부착한 자원봉사대 구조대원의 차도 포함돼 있었겠지.”
    그 당시 우리는 테드가 교통 통제선을 넘어 대극장으로 가는 걸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 탐문한 적이 있었다. 자원봉사자들과 도로에서 차량을 통제했던 경찰관들에게 일일이 확인해보았지만 목격자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대극장 주변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인파가 많아 자유롭게 걷기조차 힘들었고, 주차장에는 빈 곳이 없었다. 사람들은 공간만 있으면 여기저기에 차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테드의 밴이 교통 통제선을 넘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데렉이 말했다.
    “테드는 우리의 짐작대로 서튼스트리트를 통해 대극장으로 돌아왔어.”
    “커크는 그 사실을 왜 감추려고 했을까? 마티의 증언에 주목했다면 좀 더 일찍 테드를 체포해 조사할 수 있었을 거야. 테드가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을까?”
    (/ pp.375~376)

    사건 발생 한 달 후, 제스와 나는 범인이 테드라고 확신했다. 고든 시장이 <카페아테나> 건물공사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구실로 테드에게 돈을 뜯어내려다가 살해당한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두 사람 사이에 금전이 오간 정황을 테드의 계좌에서 인출된 액수와 고든 시장의 계좌에 입금된 액수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확신했다.
    테드는 범행이 발생했던 시각에 대극장에 없었고, 그의 밴이 고든 시장의 집 앞에 세워져 있었다는 증언이 확보되었다. 게다가 테드는 사격에 능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테드의 변호사가 증거불충분을 내세워 무죄판결을 이끌어낼 우려가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서둘러 테드를 체포하지 않은 이유였다. 맥케나 과장이 우리를 밀어주고 있는 만큼 조금 더 수사를 진행해 분명한 증거를 확보할 작정이었다. 시간은 아직 우리 편이었으니까.
    우리는 테드가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이 풀려 빈틈을 노출하게 될 거라 생가했다. 제스와 나는 인내심이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 열쇠라고 믿었다. 아직 입증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었다. 범행에 사용된 무기는 일련번호를 지운 베레타로 뒷골목 범법자들이 눈독을 들일만한 총이었다.
    맨해튼의 부유한 집 출신인 테드가 베레타를 어디서 구했을까?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햄프턴 지역을 구석구석 훑으며 은밀히 탐문수사를 펼쳤다. 특히 리지스포트의 한 술집에 주목했다. 평판이 좋지 않은 술집으로 수년 전 테드가 주차장에서 큰 싸움을 벌였다가 실형을 살았을 만큼 악연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 술집 주변에서 잠복하며 테드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 pp.403~404)

    저자소개

    조엘 디케르(Joel Dicker )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85.6.16~
    출생지 스위스 제네바
    출간도서 6종
    판매수 2,618권

    2012년 최고의 화제작을 낳은 프랑스 문단의 샛별.

    1985년 6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글쓰기에 관심이 높았고, 학창 시절 매년 여름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에 체류하며 미국 문화를 접했다. 제네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2005년 스무 살에 발표한 첫 단편 [호랑이]로 '국제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발을 들였다. 스물네 살에 완성한 첫 장편소설 [우리 아버지들의 마지막 날들]은 제2차세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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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세계의 문학]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미고, 내 거울 속의 지옥]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쥘리아 크리스테바(공저)의 [여성과 성스러움], 스탕달의 [적과 흑], 그웨나엘 오브리의 [페르소나],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포르노그라피아], 르 클레지오의 [열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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