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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상>을 수상한 저자의 장편소설. 알프레드는 사법고시에 두번이나 떨어진다. 그는 공습이 있었던 전쟁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알프레드는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과정을 밟는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를 모셔오지만 결국 돌아가신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알프레드는 외톨이가 되는데... 독일의 역사를 배경으로 알프레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유년시절의 정체성을 그렸다. (양장본)

주인공 알프레드 도른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는데, 졸업과 동시에 보게 되는 사법고시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 알프레드는 이제 서베를린으로 가 다시 공부하려 한다. 그런 알프레드가 고향인 드레스덴의 노이슈타트 역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배웅을 받는 장면에서 이 작품은 시작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 상태이다. 치과의사인 아버지는 젊은 동료와 같이 살고 있는데, 알프레드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편에 서 있다. 하지만 아들에게 거는 기대에 있어서는 아버지 어머니 둘 다 경쟁적이라 하리만큼 대단하다. 그럴 것이 알프레드는 중, 고등학교에서 계속 수석을 한 영재였기 때문이다.

알프레드가 서베를린으로 가는 이 시기는 2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연합군의 감독 하에 있는 시기이다. 전쟁에 대한 체험, 특히 드레스덴에 공습이 있었던 밤에 대한 기억이 그에게 계속해서 남아있는데, 작품에서 이 밤은 "지옥"이었다고 묘사되며 자주 회상된다.

이 공습으로 인해 대부분의 집들이 불에 타고 드레스덴 전체가 폐허가 됐으며, 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불에 타 죽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소중히 여기는 어린 시절의 기록들, 초등학교 입학식 때 찍은 비디오와 수많은 사진들이 불에 타버렸다. 그는 이전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들을 아주 소중히 여기고 모으는 성격의 소유자다.

소련 점령국지역에서 서베를린에 온 알프레드는 일종의 시골뜨기와 같은 존재이다. 세련되지 못하고 사교성도 부족하여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사법시험 준비코스에 다니면서 그는 선생으로부터도 놀림을 당하는 외톨이인데, 어머니가 친구를 사귀라고 조언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늘 어머니 그리고 전부터 그의 공부와 진로를 상담해주었던 이모할머니 괼츠 박사의 도움을 받아 그는 겨우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아버지도 지금의 아내와 함께 자주 서베를린에 찾아와 그에게 조언을 하지만 알프레드는 젊은 부인과 같이 온 아버지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 알프레드가 시험에 합격하고 연수를 받는 중에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다. 그는 그녀를 서베를린에 데려와 정성을 다해 간호한다.

그리고 또 그는 드레스덴에 남기고 온 모든 가구와 생활용품들을 가져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데, 국경을 통과하여 그것들을 가져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과거의 것들을 복원하여 전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어머니가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올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또 이전의 것들이 소멸되는 것을 원치 않기에 그는 이것을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긴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온 정성을 다하며 또 빚을 지면서까지 아름다운 묘비를 만들어 세상이 자기 어머니를 알아볼 수 있게 하려고 한다. 공무원으로서 직장생활을 하는 알프레드는 여전히 외톨이인데, 동료들로부터 동성애자라는 오해를 받는다. 동독에 의해 둘러싸인 섬과 같은 베를린을 떠나 서쪽으로 가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의해 비스바덴에 간 알프레드는 그곳에서도 같은 동성애자의 오해를 받으며 힘들게 직장생활을 영위한다.

그는 한번 인연을 맺었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그로써 자기의 과거가 잊혀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모든 아는 사람들에게 특히, 구동독의 친지나 지인에게 명절 때마다 카드와 서쪽 물건들이 든 선물소포를 보낸다. 심지어 드레스덴에서 알게 된 택시운전사와도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고 크리스마스 때마다 선물을 보낸다.

또 드레스덴의 역에서 알게 된 파졸트 리하르트라는 젊은 친구의 양아버지가 되어 그의 뒤를 봐주기도 하는데, 그로 인해 수천 마르크의 빚을 지기도 한다. 그는 이 문제를 로테 고모 등 두 명의 남자 전화파트너와 세 명의 여자 전화파트너들과 상의한다. 매일 같이 밤에 그들과 전화하는 것이 독신으로 사는 그의 삶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자기의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어머니의 친구들이 죽는 과정에서 그는 계속해서 집요하게 과거를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것들이 소멸되지 않게 매일 같이 메모를 남기는 그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하여 수면제를 먹는 것이 버릇이 됐는데, 결국 약물남용으로 아무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50대 후반의 나이에 죽게 된다.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에 대한 여러 평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비평가들로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독일에 관한 책", "대작", "시대소설"이라는 평을 받은 [유년시절의 정체성]은 또한 위대한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세상은 위대한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세상에 순응하는 태도와 위대한 사랑이 서로 양립되지 않는다.

특히 이 사랑이 어머니에 대한 한 아들의 사랑일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런데 이 사랑은 어머니가 죽은 뒤에도 멈출 줄을 모른다. 왜냐하면 이제 알프레드 도른은 과거가 소멸되지 않도록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유년시절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유년시절의 정체성]은 이런 의미에서 일상에 대한 역사서술로 이해될 수 있다. 나중에는 시대라고 불리는 것도 우선은 일상이다. 그리고 이 위대한 사랑에 관한 소설은 1929년에서 1987년까지 독일에서 펼쳐지는데, 드레스덴에서 라이프치히를 거쳐 베를린, 비스바덴으로 무대를 옮겨가며 전개되는 현대 독일의 대서사시다.

역자의 말
전후 독일사회의 연대기: 분단 극복을 위한 시도
"독일어로 된 소설 중에서 - 주인공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으면서 - 독일의 역사적,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 이 정도의 폭 넓은 관조를 가능하게 해주고 또 현실성으로 점철된 소설은 오랫동안 없었다. 1945년 2월의,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 법학분야의 복습코스, 독일민주공화국 관청의 자의(恣意)적 처사, 보상 문제, 전후의 독일영화 또는 장벽 건설 등, 이것들은 모두 그냥 독립적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며 또 동시에 단순히 소설의 배경으로 격하되지도 않는다." - "디 차이트" 지(誌)(1991)-

[유년시절의 정체성]은 1988년 초여름부터 집필되기 시작해 1991년 여름에 출판됐다. 그러니까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되는 역사적 전환기에 쓰여진 것인데, 출간되자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전환기의 대표적인 독일 소설, 전환기의 첫 번째 중대한 시대소설이라는 평을 받았다.

발저는 이미 1987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도를레와 볼프]에서 독일의 분단이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그리고 1988년 10월 뮌헨에서 행한 연설 「독일에 관하여 말한다」에서는 어떤 구체적인 전망도 없지만 자신의 역사감정에 근거해 독일의 통일을 예언한 바 있다.

이런 시대적 배경 하에서 쓰여진 [유년시절의 정체성]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40년대, 50년대의 드레스덴과 베를린에서 1987년의 분단된 현실에까지 이른다. 주인공 알프레드 도른(1927-1987)의 일상을 통해, 그가 겪는 고통을 통해 작가는 분단된 독일의 일상을 부정적으로 제시하면서 분단 극복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작품의 줄거리와 구성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드레스덴 출신의 알프레드 도른은 라이프치히에서 법학을 공부했는데 두 번이나 사법고시에서 떨어졌다. 그는 이제 고향을 떠나 서베를린에 가서 자유대학에 등록하려고 한다. 그는 불법적으로 독일민주공화국을 벗어나 서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거기에는 정치적인 동기도 작용하지만 그 보다는 오히려 가족 내의 갈등이 주된 이유다.

치과의사인 아버지는 어머니를 버리고 젊은 여자동료와 살면서 어머니에게 이혼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드레스덴의 노이슈타트 역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쪽으로 가는 알프레드를 배웅하는 장면으로 작품은 시작된다. 알프레드는 아버지를 무뚝뚝하게 대하면서 악수에도 응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배반일 것이기 때문인데, 그만큼 알프레드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편에 서 있다.

알프레드가 서베를린으로 가는 이 시기는 2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연합군의 감독 하에 있는 시기다. 나치의 독일청년단 체험과 유태인 학대 체험 그리고 전쟁에 대한 체험이 그에게는 평생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1945년 2월 13일, 연합군의 드레스덴에 공습이 있었던 밤에 대한 기억이 그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쇼크로 남아 있다.

작품에서 이 밤은 "지옥"이었다고 묘사되며 자주 회상된다. 이 공습으로 인해 드레스덴 전체가 폐허가 됐을 뿐 아니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불에 타 죽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소중히 여기던 유년시절의 기록들, 즉 초등학교 입학식 때 찍은 비디오와 수많은 사진들이 모두 불에 타버렸다.

구성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인공 알프레드 도른의 직업적 진로에 맞추어서 나뉘어져 있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제1부는 알프레드 도른의 베를린 학업시절과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제2부에서는 알프레드의 사법연수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서베를린으로 데려오지만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신다. 제3부에서는 알프레드의 첫 관직생활이 서술되는데,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의 숭배가 끊이지 않아 주위의 염려를 산다. 마지막 제4부는 헤센 주에서 국장으로서 공무원생활을 하는 알프레드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그는 보수적인 정치적 입장 때문만 아니라 독신생활로 인해서도 외톨이가 된다.

그는 동료들로부터 동성애자라는 오해를 받는다. 이 4부의 끝에서 알프레드 도른은 자살인지 약물사고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애매한 죽음을 맞이한다. 발저의 다른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알프레드 도른도 반주인공(Antiheld)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영웅상이 아니라 비활동적이고 부정적이며 수동적인 인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잘 적응해서 사는 것 같은 발저의 주인공들은 -이 작품의 경우 주인공은 고급공무원이다 - 거의 우울증에 가까운 내면을 소유한 자들로, 이런 인물을 통해 작가는 사회에 대한 섬세한 관찰가능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마마보이로서 결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알프레드 도른은 일상의 요구를 피해 극장과 음악 그리고 작센의 역사연구에로 도피한다. 그가 작센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나중에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하려는 계획 때문인데, 그는 현재에서는 자신을 주장할 수 없고 또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현재, - 이것은 그에게 있어 과거를 뒤에 남겨놓고 삶으로 향하라는 강요였다. 삶, - 이것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과제들의 조립이었다. 그에게 있어 미래는 단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승화된 현재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알프레드는 그것이 물건이든, 아버지 어머니의 말이든, 유년시절에서 유래하는 것 일체를 모두 모아 자신의 박물관을 만듦으로써 삶으로부터 자신의 유년시절을 방어하려고 한다. 그는 1945년 2월 13일의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자신의 과거의 기록들 그리고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또 돌아가심으로 인해 잃게 된 것들 중 가능한 것들을 모두 모으려 하는데 동서독의 분단으로 인해 그것은 그리 쉽지 않다.

양 독일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악화되면서 불법이주자인 알프레드에게는 유년시절의 장소인 드레스덴에 가는 것과 그곳의 사람들을 방문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알프레드 도른은 45년 2월의 끔찍한 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유년시절의 낙원으로부터 단절된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자신의 "페르가몬 프로젝트"(탐험대에 의해 발굴된 2000년 전의 이 고대 도시는 박물관으로 복원되었다)에 매달리게 되는 이유인데, 이것은 다름 아닌 그의 정체성 찾기 시도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자는 작품의 제목을 원제와는 약간 다르게 "유년시절의 정체성"으로 결정했다.

작품의 이러한 구도로 인해 양 독일 사이의 정치적 상황이 알프레드 도른의 일상과 관련하여 현실성 있게 작품에 반영되는데,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을 포괄적이고 위대한 독일소설로 만든다. 앞의 "디 차이트" 지(誌) 인용이 말하듯이 이 소설에는 독일의 수많은 현대사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과 그의 가족은 관청의 자의적 처사와 국경의 비인간적인 검색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데, 이것은 "독일적 악습"이라는 말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사람을 절망케 하는 이것은 누구든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독일사회에서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분단이 가져온 산물이다. 바로 이러한 시대사 반영과 그 안에서 고통을 겪는 인물들을 통해 이 소설은 독일의 통일이라는 시대적 주제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통일을 맛보지 않고 바로 그 직전인 1987년에 죽는데,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을 위대한 독일소설로 만든다. 왜냐하면 이로써 나치와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한 분단이라는 시대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작가 발저가 통일 이후에도 이 작품을 계속해서 쓴 이유를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통일 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장벽을 극복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마틴 발저의 이 소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주인공 알프레드 도른이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겪는 고통은 비단 그들의 것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준비하며 시작되어 그 전환기에 쓰여진 발저의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분단의 극복과 관련하여 적어도 개개인이 행해야 하는 정신적 노력이라는 차원과 접하게 된다. 최근 남북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발저의 이 소설이 통일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 하나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독일문학, 세계문학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관심과 이해 또한 증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