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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아름다워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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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 "아주 느리게 써왔다. 꼭 쓰고 싶은, 써야 할 소설이었으므로." | 등단 21년 만의 첫 장편

    1980년 제1회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양순석은 대표적인 과작의 작가다. 1994년에 낸 첫 소설집 <지워지지 않을 그 연둣빛>에서 삶의 비극성에 대한 도저한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과 팽팽히 길항하는 추억의 형식을 강렬하게 보여준 바 있는 작가는 특유의 단아하고 정갈한 문장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등단 21년 만의 첫 장편에 쏟은 작가의 혼신을 ||^작가의 말||^에서 엿볼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내기까지 다시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정작 글을 쓴 시간보다 쓰기를 꿈꾸고, 갈망하고, 괴로워하고, 머뭇거린 시간이 그 몇 갑절은 될 것이다. 그렇듯 아주 느리게 이 소설을 써왔다. 꼭 쓰고 싶은, 써야 할 소설이었으므로 이것말고 다른 계획은 일체 없었다. 이러한 작가의 혼신은 단편 이상의 밀도를 보여주는 문장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김수이씨는 "그녀의 소설은 고독하지만 의미 있는 문학세계를 추구하는 열정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우리 소설이 불과 얼마 전에 지나온 ||^수공업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만들며, 그녀 자신에게는 가장 정직하고 고통스러운 내면의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평한다.

    ▶ 상실과 죽음의 시선으로 탐문하는 사랑과 생의 의미

    <나무가 아름다워지는 시간>은 주인공 ||^정령||^의 내면의 영사기를 통해 상영되는 한 뭉치의 오래된 필름과도 같은 작품이다. 목에 난 끔찍한 상처 때문에 세상을 증오하다 결국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도망친 어머니. 아버지는 아홉 살 정령을 보육원에 맡기고 배를 탄다. 외항선원이라는 신분과 어울리지 않는 피아노에 대한 아버지의 집착은 스스로 상처를 다스리는 안간힘이고 놓칠 수 없는 마지막 출구였겠지만, 어린 정령의 고립감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아버지는 스무 살이나 어린 여자와 재혼해 ||^희령||^이라는 여동생을 낳음으로써 정령에게 또한번의 상실과 소외를 가져다준다. 새엄마의 남동생이었던 대학생 ||^선||^은 그렇게, 좀처럼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던 열아홉 살 정령에게 빛과도 같은 존재로 왔다. <나무가 아름다워지는 시간>은 ||^선||^에 대한 금지된 사랑을 통해 간신히 삶을 지탱해나가는 주인공 정령의 성장 없는 시간, 죽음으로 향하는 시간을 힘들게 인화해나간다. 공장 굴뚝 속으로 떨어져 자살하는 친구 미주, 마약과 알코올에 생을 반납해버리는 태성 등 정령 주변의 인물들 역시 상처 속에서 고통스럽게 시간을 지워나간다. 오랜 이국 생활 후, 암선고를 받고 죽음과 함께 ||^선||^이 살고 있는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온 정령의 추억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그러므로 철저하게 비극적이며 불모의 시간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바로 그만큼 좌절된 사랑의 시간들이 마침내 이르고자 하는 황금빛 구원의 순간은 눈부시게 숨어 있다. 정령에게 생과 맞바꿀 것은 ||^선||^이라는 영원한 빛이었다. 그렇다면, 상처와 고통의 자리가 바로 구원의 빛이 스며드는 자리임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마치 처음 뿌리내린 곳에 평생을 붙박여 사는 나무처럼, 과거에 고착된 채 한결같이 파괴와 고통과 죽음에 점령당해 있다. 그러나 남루한 생을 구원할 생의 빛, 생을 버티어갈 힘, 생의 진정한 비밀은 여전히 그들 앞에, 고통과 죽음 속에 존재한다. 이 작품의 감동적인 전언은 여기에 있다.

    목차

    1. 나무가 아름다워지는 시간

    해설 | 남루한 삶과 황금빛 구원의 마술 - 김수이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의사의 강권에 못 이겨 병원에 거처를 정한 이후에도 나는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했다. 푸른빛 셔츠를 즐겨입는 의사는 두루 검사를 거치는 동안 그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게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을 것이다. 내가 가져온 진료기록 사본과 바다 건너에 있는 내 주치의의 소견서만으로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건만 그는 나를 자신의 새로운 환자로 받아들이고 싶어했다. 그러나 나는 다행히도 그의 직업적인 의욕 앞에서도 냉정을 잃지는 않았다. 지난 사 년간 수없이 반복된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나는 이미 닳을 만큼 닳아 있었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의 증세에 대해 그 어떤 의료인보다도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니다. 죽음의 기미는 이미 처음부터 포착되었다. 결말을 다 알고 시작한 게임이었다. 내가 살던 뉴저지 동네의 한국인 의사가 내 왼쪽 젖가슴을 샅샅이 물러보고 난 뒤 내뱉은 말은 막바로 죽음의 선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캔서가 틀림없어요." 여느 의사와는 다른 조심성 없는 그의 태도는 의사라기보다 마치 인간의 운명을 주무르는 주술사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가 다른 환자들에게도 매양 그런 태도를 취했을지라도 내게는 그가 나를 위해 그 자리를 오래 지켜온 듯 외경스럽기까지 했다. 아무런 화학적 검사도, 시약도 쓰지 않고서 다만 그의 손이 감지해낸 죽음의 징후이건만 내게 그것은 그 어떤 의학적 진단보다도 치명적인 선고였다. 나는 확실한가요, 라고 묻지 않았다.

    그가 죽음에 이르는 병을 다만 손끝으로 찾아냈듯이 나는 내 죽음의 선고를 이성적인 절차가 아닌 다른 통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곳은 삶과 죽음이 내통하는 가장 빠른 길,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순간의 확인이었다. 생각을 가다듬을 겨를도 없이 죽음의 그림자가 내 삶에 전율할 듯 덧씌워지는 순간이었다. 의사는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해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종류의 검사도 내 젖가슴을 더듬어 보고 그 안에서 자라고 잇는 죽음의 싹을 찾아낸 그의 손길을 능가하지는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죽음의 예감이란 그렇게, 일상의 상식을 일시에 무력화시켜놓고 곧장 내게로 날아와 꽂혔다. 고국을 떠나와 낯선 미국 땅에서 살기 시작한 지 팔 년째 되는 가을날이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에 맞이한 그 가을에 내 몸에 죽음이 숨어 있을 줄 어찌 알아쓸까. 죽음, 너는 참 용케도 나를 찾아냈구나. 내 나라도 아닌 이국 땅까지 나를 찾아와주었구나. 서른다섯의 가을에 느닷없이 덫에 치여 황망중인 내게 죽음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너, 내가 데려가기 간편한 너, 아무도 함게 해주지 않는 네 생 따위 가볍게 떨쳐내고 나를 따르렴. 마치 은전처럼. 화가 났다. 몹시. 이것이 죽음을 대면한 나의 첫번째 반응이었다. 아니 그것은 죽음을 향한 반응이 아니었다. 나는 죽음을 불러들인 내 생에 화가 난 것이다.

    (P.50-52)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40000
    출생지 강원도 속초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80년 제1회 「문예중앙」 신인상에 중편 <오위류>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지워지지 않을 그 연둣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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