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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손으로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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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황동규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06년 11월 30일
  • 쪽수 : 288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8982813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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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 소박하고 꾸밈없고 아름다운 산문

    치열하게 언어와 싸워야 하는 시인의 숙명은 산문에서조차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산문은 느슨한 시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바로 그 느슨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는 불필요한 장식이나 어설픈 기교를 다 떨쳐버린 무미(無味)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 번잡스러운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사유의 축제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에는 시인이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사유의 불꽃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세상살이가 속되고 허망할수록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애쓰고, 매순간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달을수록 살아있음의 격렬한 역동성을 확인하려는 시인의 태도가 바로 이 글들을 낳게 한 힘이다. 황동규의 산문은, 시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볍고 떫고 맑은 맛!"이 난다. 그것은 세상의 무거움을 충분히 짊어진 가벼움이며, 세상과 쉽사리 몸 섞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는 떫음이며, 세상의 탁함을 받아들여 오래도록 걸러냄으로써 얻어진 맑음이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관조하되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인생을 향유하되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금욕적인 쾌락주의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 여행과 음악과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며 그려낸 생의 지도

    황동규의 산문에는 ||^사람||^이 있다. 음악을 좋아해서 작곡가가 되고자 했던 한 청년, 오미자 술의 감동적인 빛깔에 취해 친구를 용서하게 된 술 애호가, 라디오 안테나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들을 생각하는 교수, 길섶에 피어 있는 달개비꽃에서 삶의 경이를 깨닫고 시를 짓는 시인, 아직 남은 자연을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길을 떠나는 여행객, IMF의 칼바람 속에서 아들 형제를 보육원에 맡기고 돌아서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서민. 거기서 우리는 "사람 속을 걸어/사람 밖으로 나"가는 시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여행과 일상, 음악과 시, 자연과 사람, 성과 속이 한데 어우러지며 그려낸 생의 지도다.

    본문중에서

    소유와 소유욕이 얽히고 설킨 세상에 살다 보면, 무소유의 세계가 그리워지고, 무소유의 삶을 온몸으로 살다 간 선인들이 그리워지곤 한다. 우리나라에도 원효나 김시습 같은 무소유의 멋쟁이 구걸승이나 방랑자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았던 시기와 장소는 당나라 후기와 송나라 초기의 중국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한산(寒山)이나 방거사(龐居士) 같은 명품은 말할 것도 없고 오가(五家) 칠종(七宗)의 거의 모든 선승들이 소유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선승들의 이야기는 거의 다 개성 있는 빛을 지니고 있다. 그 많은 독특한 빛들 속에 가장 강렬한 것 가운데 하나는 조주(趙州) 스님과 투자(投子) 스님 사이의 첫 만남 장면이다. 당시 조주는 맨몸으로 방랑을 하고 있었고 투자는 기름을 짜다 팔아 근근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조주가 투자의 명성을 듣고 투자가 사는 투자산(山) 가까이 갔을때 길에서 둘이 만났다. 서로 얼굴은 모르지만 조주는 상대가 투자라고 짐작하고 "혹 당신 투자 스님 아니시오?" 하고 물었다. 투자는 대답 대신 "나는 거리로 장 보러 가는데 보시 좀 하지 않겠소?" 하고는 휙 지나가버렸다. 조주는 혼자 먼저 투자산에 올라가 투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투자가 기름 단지를 들고 돌아왔다. "투자, 투자 하고 꽤들 떠들어대는데, 정작 와보니 하찮은 기름 장수로군." 투자가 "당신은 기름 단지에 정신이 팔려 나를 못 보는군," 하고 응수하자, 조주는 "그럼 투자의 실체를 보여주게," 했다. 투자는 느닷없이 조주 앞에 기름 단지를 불숙 내밀며 "기름이오, 기름! 기름 안 사겠소?" 했다. 얼마나 천진무구하고 멋진 장면인가! 그야말로 물질적인 세상일을 벗어난 정신의 임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순간인 것이다.

    이런 중국 선승들의 세계를 엿보다가 어느덧 나는 선이 중국인의 독특한 창조물이라고 생각하게끔 되었다. 그런데 선도 불교와 마찬가지로 인도의 산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것은 금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5월호에 실린 다음 글을 읽고부터이다. 리포터 하비 아든(Harvey Arden)은 캘커타에서 뉴델리를 잇는 수천리에 이르는 인도의 ||^대동맥 도로(The Grand Trunk Road)||^를 취재하다가 허리감개만 감고 걸어오는 수염 기른 젊은이 하나를 만난다. 그의 소지품이라고는 목에 걸친 헝겊 백, 나무 지팡이, 그리고 먹을 것을 비는 알루미늄 그릇뿐이었다. 아든은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 묻고는 사진을 찍었다. 돈을 주려 하자 젊은이는 완강히 거부했다. "난 돈에 손도 대지 않소. 돈은 고통만 주지요.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우기도 해야지요.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이 세상의 평화뿐이오." 아든은 카메라 백을 뒤져서 전지를 꺼내, 밤길 가는 데 도움이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젊은이의 헝겊 백에 넣어주었다. 당혹한 빛을 띠고 젊은이는 자리를 떴다. 좀 가다 그는 백에서 무언가 꺼내 던졌다. 물질의 풍요가 편리는 제공하지만 동시에 스스럼없이 속박도 준다는 것을 논리가 아닌 섬광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이제 문명의 이기 없이는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하기는 물질의 소유 속에서도 빛나는 정신이어야 진정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는, 때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과연 의미 있는 삶인가 물어야 하며, 때로 소유에 속박되어 있는 정신을 풀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주나 투자 그리고 무명(無名)의 인도인 젊은이가, 그리고 수많은 고승과 뜻 높은 수도자들이, 속박을 푸는 기호를 어깨너머로 넌지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990)

    (무소유의 극치 | P.13-15)

    저자소개

    생년월일 1938.04.09~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31종
    판매수 7,326권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영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고, 영국 에딘버러 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이래 [어떤 개인 날] [풍장] [외계인]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꽃의 고요] [사는 기쁨] 등의 시집을 펴냈다.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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