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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이후 사회·문화적 안정으로 어린이책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아동문학에 대해 공부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일고 있다. 그러나 아동문학에 관한 연구서를 찾아보자면『책·어린이·어른』(뽈 아자르)『어린이 책의 역사』(존 로우 타운젠트)『용의 아이들』(마리아 니꼴라예바) 정도가 고작이고, 이것들 역시 다 외국 책이어서 외국 아동문학에 관한 전체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정작 우리 아동문학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1977년도에 출간된 이오덕 선생의『시정신과 유희정신』이 가히 황무지라고 할 수 있는 아동문학비평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평론집으로 꼽힌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그의 뒤를 잇는 소장 평론가로 활동중인 원종찬씨의『아동문학과 비평정신』은 지금까지 일반문학의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등한시되던 아동문학의 진지한 연구서로 평가할 만하다. 저자 원종찬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어린이도서연구회, 한국글쓰기회, 겨레아동문학연구회 등 현재 우리 아동문학의 흐름을 주도하는 단체들에서 비평강의와 연구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제대로 계승되지 못한 우리 근대아동문학의 정신과 작품들을 발굴·소개하는 일에 주력해왔는데, 요즘 아이들에게도 널리 사랑받는 현덕 동화집『너하고 안 놀아』, 윤복진 동요집『꽃초롱 별초롱』, 송영·이태준·최병화·노양근·정지용 등 한국근대아동문학작가들의 작품을 선해 엮은『겨레아동문학선집』(총10권) 등이 그것이다.『아동문학과 비평정신』은 창작과비평, 동화읽는어른, 삶·사회 그리고 문학, 어린이문학 등 그동안 여러 잡지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 엮은 책으로 우리 아동문학의 역사와 흐름을 살필 수 있는 통사(通史)라 할 만하다. 제1부에서는 우리 아동문학을 보는 시각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다.「한국 아동문학의 어제와 오늘」에서는 한국 아동문학의 기본성격과 그 흐름, 전망을 역사와 사회 현실과의 관계속에서 규정짓고 있다. 외국 아동문학과 달리 ||^현실주의||^문학으로 시작한 한국 아동문학의 독자성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계승 가운데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 동심주의·교훈주의·속류사회학주의의 폐해를 다루었다. 더 나아가「한일아동문학의 기원과 성격 비교」를 보면 방정환에서 시작된 오늘날의 한국 ||^아동문학||^의 성격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방정환의 아동관이 천도교 사회운동과 개혁사상에서 나왔음을 밝히고, 제국주의와 동심주의의 틀에서 만들어진 일본의 아동관과는 달리 한국근대아동문학의 뿌리가 한국의 역사현실, 즉 ||^근대와의 긴장||^을 본질로 하고 있다는 논지는 한국 아동문학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 훌륭한 성과라 할 만하다.「한국 아동문학이 창조한 주인공」에서는 방정환·마해송·이주홍·현덕·권정생 작품의 주인공들을 시대현실과 연결지어 설명하며 ||^노마||^나 ||^몽실 언니||^ 같은 한국 아동문학의 주인공들은 민중의 고통으로 점철된 20세기 한국역사를 가장 정직하게 반영한 캐릭터임을 설명한다.또한 오늘날의 아이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을 예비하는 철학에 근거한||^ 자유분방한 캐릭터들이 나오길 고대하며 아동문학에 있어서 주인공, 즉 캐릭터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 밝힌다. 제2부에서는 90년대의 아동문학 동향과 신춘문예평, 어린이 문예잡지 및 어린이문학에 실린 작품 평들을 읽을 수 있다. 제3부에서는 발굴작가·작품론을 다뤘는데 일제시대에 두드러지게 활동했던 작가들이지만 기록이나 기억속에 묻혀 이름조차 잊혀져 간 윤복진·정지용·이태준·이원수·최병화·이영철·현덕을 다루었다. 자세한 연대기와 함께 수록된 작품목록은 아동문학 공부와 작품읽기에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또한 6·25동란 이전까지 여러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글들을 찾아 정리한 ||^한국아동문학비평 자료 목록||^은 아동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이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머리말 - 세기의 길목에서

- 제 1 부 -
1. 한국 아동문학의 어제와 오늘
2. 한국 아동문학의 반성과 과제를 둘러싼 논의
3. 한일 아동문학의 기원과 성격 비교
4. 한국 아동문학이 창조한 주인공
5. 이원수 판타지동화와 민족현실
6. 한국 현대아동문학사의 쟁점
7. 아동문학과 비평정신
8. 아동문학과 비평정신 2

- 제 2 부 -
1. 자연산 무공해 동요시
2. 아픈 데를 어루만지는 손
3. 어린이 마음과 시인의 마음
4. 감상주의의 뿌리
5. 다양한 가능성이 숨쉬던 한 해
6. 창작의 풍요, 비평의 빈곤
7. 최근 아동문학 문단의 동향
8. 창작방법의 관점에서
9. 작가의 희망과 현실 사이의 거리
10. 희망과 격려를 전하는 작품

- 제 3 부 -
1. 동요시인 윤복진의 작품세계
2. 정지용과 이태준의 아동문학
3. 이원수와 마산의 소년운동
4. 동화작가 노양근의 삶과 문학
5. 동화작가 최병화의 삶과 문학
6. 동화작가 이영철의 삶과 문학
7. 아동문학과 리얼리즘

* 한국 아동문학비평 자료 목록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처음 내는 책이니만큼 결코 빠르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조차 내게는 분수에 넘치는 일이다. 참으로 많은 이들한테 빚을 지고 사는 것 같다. 책이래야 온전한 저술도 아니고, 그 동안 여기저기 발표한 글들을 모은 것일 뿐이다. 다시 읽어보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유치한 구석이 많은데도 내 안에서 한 시기를 얼른 매듭짓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오래전에 쓴 몇몇 글들은 도저히 그냥 내보일 수가 없어서 논지를 살리고 문장을 조금 고치기도 했다. 그래도 시원하지가 않다. 하기사 중간 매듭이라도 제대로 지었다면 곧바로 앞을 향해 떠날 수 있겠지만, 그럴 만한 형편도 못 되어서 결국 엉거주춤한 모습이다. 훗날을 기약하자고 다시 옷깃을 여미게 되니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1부는 우리 아동문학을 보는 시각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글들이다. 이른바 ||^다시 읽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겠다. 내 나름으로는 한국 아동문학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 예컨대 동심주의·교훈주의·속류사회학주의의 뿌리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2부는 최근의 동향과 신간 서평에 해당하는 글들이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여기에서는 ||^갱신||^에 힘을 실은 것들이 많다. 3부는 ||^발굴 작가작품론||^이다. 일제시대에 누구보다 두드러지게 활동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우리 기억으로부터 멀어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부록으로 ||^아동문학 비평 목록||^을 보탰다. 아동문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은 흔히 자료의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6·25동란 이전의 것들로 한정하여 꽤 오랫동안 조사해온 것인데, 여러 사람의 도움에 힘입어 생각보다 상세한 목록이 만들어졌다.

책 꼴이 다 되고 나서 보니까 아이들이 즐겨 찾는 해외명작을 포함하여 개별 작품을 충실하게 읽어낸 글, 곧 현장비평이 부족함을 느낀다. 이 부분은 이 책에서 건너뛴 195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주요작가·작품론과 함께 보완하도록 하겠다. 이미 발표해놓고도 자리를 따로 마련하고자 여기 싣지 않은 글들도 있다. 이왕 변명을 했으니까 말인데, 내 글이 몹시 딱딱하고 어렵다는 충고에 귀기울여 요새는 탐탁치 못한 글재주나마 좀더 친절해지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긴 해도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절감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이를 통쾌하게 깨뜨리고 나갈 더 젊고 참신한 후학들을 고대하게 된다. 이 책이 그 징검다리라도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이 자리를 빌려 지난 이십년 가까이 배우고 묻는 길을 내게 가르쳐주신 최원식(崔元植)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한국글쓰기연구회||^의 여러 선생님들도 떠오르고, 언제나 질책보다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이오덕(李五德), 권정생(權正生), 윤구병(尹九炳) 선생님께는 송구스러워서 뭐라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공부를 핑계로 시간을 충분히 나누지 못한 집안식구들, 친구들,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또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끝으로 응달진 구석을 마다하지 않고 정성껏 어린이문화운동을 일구어가는 동료들과.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어린이도서연구회, 겨레아동문학연구회 회원들에게 보잘 것 없지만 나의 이 작은 정성을 바친다.
(세기의 길목에서/ 2000년 12월 원종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