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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줏빛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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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개요]
    이 소설집에서 작가는 사물들과 삶의 주변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인간의 고독과 우수를 부감시키며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한층 깊이 있게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은 소설 공간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거나 익명으로, 마치 사물들처럼 표현되는데, 이 같은 표현 기법을 통해 인간 관계의 허상과 존재의 실감 없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한 그의 섬세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삶의 근원적인 문제 속에 들어와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작가의 말]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나서 정선 아우라지로 길을 떠났다. 증산역에서 정선으로 가는 비둘기호를 기다리기 위해 역 근처 다방으로 들어갔다. 실내에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는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불씨를 물고 하늘을 날아가는 한 마리 까만 새의 모습이었다. 하늘을 솟구쳐 날아오른 새는 불씨를 숲이 무성한 산등성이나 볏단을 쌓아놓은 곳에 부려놓았다. 마치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 나르는 맹목적인 어미처럼. 그러자 곧장 무서운 기세로 불길이 솟구쳤다. 새는 하염없이 불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유독 불을 좋아하는 새라고 한다. 그러나 그 새는 모를 것이다. 제가 나른 불씨 때문에 땀에 젖은 볏단과 오래된 나무들이 순식간에 불타버린다는 사실을. 종종 원인 모를 산불은 바로 그 새의 짓이다. 불씨를 물고 하늘을 나르는 새, 그 새의 이름은 갈가마귀다.

    며칠 전에 희곡을 쓰는 친구와 함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러 갔다. 어쩐 일인지 1막에서는 대사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배우들의 움직임만 눈에 들어왔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와 러키와 포조의 대사가 들리기 시작한 건 2막에서였다. 2막이 끝날 때쯤 해서야 비로소 대사와 움직임이 한꺼번에 내 안으로 쏟아져들어오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는 돌연한 열기와 떨림으로 한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연극이 끝나 있었다. 고도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황량한 무대 위 한가운데 서 있던 앙상한 나무 한 그루에 아기 주먹만한 초록 잎이 싹터 있는 것을 봤다. 벽을 짚어가며 어두운 지하 공연장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고도를 기다리다 지친 배우처럼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가자, 그러나 너무 멀리 갈 수는 없지. 어쩌면 다시 돌아와야 할지도 모를 테니까.

    1997년 가을에 첫 창작집을 냈다. 그때 나는 「작가의 말」을 쓰지 못했다. 그랬다. 쓰지 않은 것, 이 아니라 쓰지 못했다. 그랬으니 마땅히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의 이름도 열거하지 못했고 그 후 다른 방법으로도 고마움을 전하지 못했다. 그것이 게으름이었는지 불성실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후로 나는 세 살 더 먹었다. 아직은 나이를 먹는다는 게 나를 둘러싼 겹겹의 딱딱한 옷을 하나씩 떨쳐버리는 것처럼 가볍고 편안하고 친밀하게 느껴진다. 설명할 길 없는 두려움과 조급함에서도 한 발짝씩 멀어지고 있고. 그러면서 그때 내 책을 내면서 고마워하지 못했던 얼굴들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원고를 맡아주신 문학과지성사 여러분들, 책의 제목에서부터 교정까지 애정을 갖고 보아준 염현숙씨, 해설을 써주신 우찬제 선생님, 당신 딸이 해피 엔드로 끝나는 소설을 쓰길 바라시는 부모님,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지켜봐주고 있는 저쪽의 벗들께 진정 마음을 다해 감사드린다.

    삼 년 전의 나는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세상은 그래도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내 내부의 열망과 외부의 어떤 힘이 일치되는 순간, 작지만 오래 타오를 그런 불꽃 하나 피워낼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생을 사는 동안 용서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것들, 나와 함께할 수 없었던 이름들.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어쩌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한 용기도 생긴다. 이 우주에 무의미한 사건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 여기까지 걸렸다.

    그러니 어서 가자. 길 위에선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벌써 또 다른 폭풍이 다가오고 있으니.

    2000년 5월, 조경란

    [해설]
    어둠의 빛, 그 녹색 말무늬·우찬제

    1. 고립과 불통, 혹은 어둠의 실존
    삶은 탐문의 형식으로 구성된다. 개별 존재자들은 각각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주어진 질문에 답하거나, 주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의미있는 새로운 질문을 스스로 던져 그 답을 구하고자 한다. 특히 새로운 질문의 발견과 그 탐문의 과정은 인간 문화와 문명의 역사에서 아주 긴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인간 일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거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응답하기 위한 의식적 노력과 맞물리는 것이기도 했다. 이 같은 탐문의 형식으로서의 삶은 소설이나 영화 등 다양한 서사체에 의해 거듭 다채롭게 되물어진다. 많은 이야기들이 물음과 찾음의 서사 실험을 해왔다는 것은 삶 일반이나 서사의 특성상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이때 우리는 그 물음과 찾음의 진정성을 놓고 서사 가치의 진리치를 판별하곤 한다.

    조경란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인간 관계에 대한 탐문에 서사의 초점을 두고 있는 작가다. 전통적 인간 관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인간 관계의 재구축은 하염없이 유예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 탐문의 정당성은 매우 소중한 것으로 보인다. 그 탐문의 심도를 위해 작가는 존재의 뿌리로 내려가는 서사적 실험을 단행한다. 지상에 고독하게 유폐된 조경란의 인물들은 손쉬운 세속의 양식에 기대지 않는다. 안으로 깊어져 밖으로 열리기, 혹은 내 안의 뿌리로부터 타자와 교감하기 위한 속 깊은 숨결로 들려 있다. 그 숨결을 차분하게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에 의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인간 관계라는 질문은 깊이를 더하게 된다. 아울러 그 시선에 의해 최소 이야기를 통한 최대 서사체의 구현 가능성도 새롭게 열린다. 스토리로 요약될 수 있는 행위와 사건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면서도, 서사체의 의미 공간을 최대한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 말이다. 그것은 시적 광휘와 서사적 긴장이 어우러진 조경란식 묘사의 연금술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런 특성은 등단작인 「불란서 안경원」에서부터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여주인공은 ‘그’가 떠난 이후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된 채 “12자, 8자 통유리”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간다. “내 육신과 정신 모두 파기와처럼 깨어져 산산조각나버렸다고 생각했다. 현실에 대한 차폐감(遮蔽感)이 목울대까지 차버렸으며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는 수천 수만 송이의 코스모스가 흔들거렸다. 삶이 자꾸만 점멸하기 시작했다”는 본문에서 명료하게 보여주듯, 그리고 “목 윗부분까지 단추를 채우게 되어 있”는 블라우스의 환유에서 드러나듯, 고립의 실존을 견딘다. 안경원 통유리 밖에서 성기를 꺼내 흔들어보인 남자나, 스무 살 때 개인 과외를 빙자해 다른 만남을 요구해왔던 학원 영어 선생이나, 그가 떠나자마자 처방전으로 손님을 소개해주겠다며 음험하게 접근했던 궁인덕 안과 원장 등은 그녀의 차폐감을 부추긴 부정적 타자들이다. 그녀와의 소통을 위한 그들의 폭력적 접촉은 접촉 부재나 불통의 상태를 가중시키는 쪽으로 기능한다. 그러니 내면의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것은 차라리 당연하며, 코스모스 저편의 ‘카오스’의 공간 속에서 어둠의 실존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안으로 안으로 뿌리를 찾아 내려간다. 그 깊은 뿌리를 통해 그녀가 이르게 된 지점은 소나무집 할머니라는 타자와의 교감이다. 자신의 고객이었던 소나무집 할머니가 죽자 그녀는 할머니 안경을 맞춰 새 안경집에 넣은 다음 할머니가 말했던 그 소나무 아래를 파고 묻어주며 망인의 영혼을 위무하고자 한다. 소나무 아래를 파면서 그녀는 “말라 비틀어진 뿌리 사이에서 아직도 뜨거운 선혈을 흘리고 있는 뿌리들이 숨쉬고 있”음을 감각한다. 자신의 뿌리로 내려가던 그녀가 할머니라는 타자의 뿌리와 속깊은 교감과 소통을 나누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순간 “갑자기 수천 마리 물고기떼의 비늘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듯”한 빛의 현현을 보게 된다. 여기서 보이듯 단절되고 고립된 자아가 어둠의 실존을 견디며 자신의 뿌리로 내려가면서 안으로 깊어져 밖으로 열리기, 혹은 내 안의 뿌리로부터 타자와 교감하기, 그리고 이를 통한 빛의 탐색은 조경란 소설에서 기본적인 서사 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의 소설에서도 그 구조적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조경란 서사의 근원 상황인 소통 불가능한 고립의 상황을 눈여겨보기로 한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시력이 떨어진 것은 그 무렵부터이다”로 시작되는 「망원경」에서 여주인공은 다시 혼자가 된 이후 “마개가 막힌 두꺼운 유리병 속에 들어앉은 듯 사위가 어둑해지고 시계(視界)가 좁아”(p. 39)지는 곤경에 처하지만 안과 의사로부터는 이해받지 못한다. “내가 어떤 일을 겪었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가 닿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통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에 대해 많이 집중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자아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생각한다.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일종의 질병이었다. 질병은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참고 견뎌야만 하는 것이었다”(p. 40). 「망원경」에 등장하는 열네 살 계집아이나 흑인 잭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계집아이는 서너 살 무렵 부모를 차례로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저능아다. 얼마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이는 무작정 오지 않을 죽은 할머니의 편지를 우체국에서 기다린다. 잭스는 캐나다에 두고 온 부모나 옛 애인에게 전달되지 않을 편지를 계속 부친다. 모두가 소통 불가능한 고립의 상황을 견디는 인물들이다.

    「나의 자줏빛 소파」에서 “잎이 지고 나면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나면 잎이 지고 마는 식물이 있습니다. 잎과 꽃들이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결코 만날 수 없습니다”(p. 34)라고 쓴 ‘당신’이나 그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나’ 역시 “타인과 교통(交通)하고 있다는 느낌”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p. 28) 느낌을 갖기를 소망하지만 소통은 아직 먼 거리에 있다. 「녹색 광선」의 주인공은 이 년 동안 같이 살았던 그녀와 헤어졌고, 직장에서도 해고당했다. 게다가 단수로 인한 고통마저 겪는다. “잠든 사이에 기습적으로 단수가 시작됐듯 전기도 언제 어느 순간 끊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혼자 고립되었다는 의식”(p. 111)은 배가된다. 「잔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커피 찌꺼기의 무늬」의 서술자는 교통 사고로 죽은 영혼이다. 삶의 공간에서 그와의 완벽한 소통을 체험하지 못한 그녀는 그를 죽음의 공간으로 이끌어 새로운 소통을 시도하고자 접근하지만 이내 실패한다. 사랑의 소통을 위한 그녀의 정념은 “한쪽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먼 바닷속으로 추락”(p. 82)하고 만다. 「오늘의 요리」에서도 지정민과 주인공 사이의 소통 불가능성이 줄곧 서사적 긴장을 형성한다. 「아주 뜨거운 차 한 잔」에서는 모든 관계가 차단된 상태에서 애완견과 소통하던 주인공이 죽어가는 애완견을 보면서 고통에 젖어든다. 「식물들」에서 서른세 살의 여주인공은 세번째 연애의 실패를 경험하고 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는 속절없는 체험을 한다. 그런 가운데 회사 업무의 일환으로 돕던 소녀 가장 한상미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된다.

    이렇듯 대부분의 소설에서 조경란의 인물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고립된 채 소통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진다. 고립의 상처는 때때로 심한 몸살을 일으킨다. 「망원경」을 비롯한 여러 소설에서 몸살을 앓는 주인공들은 그로 인해 며칠씩 결근하곤 한다. 또 몸살을 앓는 인물들은 이중의 어둠 속에 갇힌다. 현상적으로 빛이 없는 어둠의 닫힌 공간에서 무의식의 어두운 지대로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중의 어둠 속에서 그들은 “부화되기를 기다리는 둥근 알처럼 온몸을 웅크”(「녹색 광선」, p. 103)린 채 존재의 뿌리를 발본적으로 탐문한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조경란의 질문이 도저한 까닭은 일차적으로 이 같은 서사의 근원 상황과 관련된다.

    2. 어둠을 응시하는 눈, 그 뿌리의 깊이
    그들은 이중의 어둠 속에 갇혀 있되, 그 어둠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눈을 지닌 인물들이다. 몸의 질환을 앓을 때라도 대부분의 인물들은 견고한 의식의 눈을 보여준다. 그 눈은 현상적 상처를 바라보는 눈이 아니다. 보다 깊은 상처의 뿌리를 응시하는 눈이다. 가령 “윤회해서 똑같은 인생을 다시 한 번 사는 사람처럼 나는 이제 무슨 일에고 쉽게 놀라지 않는다. 단순히 감정 감각이 말을 듣지 않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내 심장 속에는 백 년 묵은 구렁이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내 의식의 심층은 이미 선캄브리아 시대 때부터 단단하게 굳어져 있었는지도 몰랐다”(「불란서 안경원」)는 부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의식의 심층을 응시하는 눈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보다’ 계열의 동사가 조경란의 소설에서 흔히 전경화된다. “새벽 세시가 넘은 시간에 저 먼 곳의 그와 나는 서로 망원경 속에 눈을 숨긴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p. 53), “캄캄한 저쪽에서 누군가 너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p. 58), “방 한구석에 떨어져 있는 망원경이 까만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p. 60)는 등의 문장들이 출몰하는 「망원경」에서 그것은 매우 현저하며, 「잔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커피 찌꺼기의 무늬」에서도 “당신은 아까부터 줄곧 내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모른다”(p. 70)라든가 “나는 벌써 저녁 아홉시의 당신을 본다”(p. 77)는 등의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띈다. 「나의 자줏빛 소파」나 「아주 뜨거운 차 한 잔」, 그리고 「잔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커피 찌꺼기의 무늬」 등 2인칭 대상 지향형 소설들에서 ‘보다’ 계열의 시각 동사는 서사의 기본 전제가 될 정도다.

    그런 면에서 ‘보다’의 시각을 담당하는 신체 기관인 ‘눈’을 확장한 ‘망원경’의 이미지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망원경」에는 “거울 속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있고 거울 속에는 낡은 밥상과 오래된 라디오가 있다. 그리고 거울 속에는 때로 내가 없다”(p. 47)는 문장이 나온다. 거울 속에서 나를 볼 수 없는 주인공은 잃어버린 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녹색의 망원경’으로 눈을 확장한다. 그 망원경을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캄캄한 저쪽을 응시한다.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찾아보려는 간절한 심정으로 말이다. 그러던 중 캄캄한 저쪽에서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이쪽을 응시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망원경」으로 타자와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물고기 아파트」에서는 물안경의 이미지로 변주된다. “생을 걸고 궤도를 이탈한 물고기처럼”(p. 305) 수심 30미터 이상의 어두운 심연을 응시한다. 「아주 뜨거운 차 한 잔」에서 주인공은 “점점 너의 관(棺)이 되어가고 있”는 “어두운 우리들의 실내”(p. 223)에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진경을 응시할 수 있는 눈빛을 발한다.
    육체의 눈이든, 망원경이든, 물안경이든 조경란의 눈은 어둠 속에서 작동하는 기제이다. 어둠 속에서 나 없는 나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는 깊은 눈이며, 동시에 타자의 깊은 심연과 소통하고 교감하고자 하는 뿌리깊은 눈이다. 그것은 「녹색 광선」의 경우처럼 “2년 동안 살면서도 끝내 짐작할 수 없었던 그녀 영혼의 현(鉉)까지 재현하고 싶다는 열망”(p. 109)과도 통한다. 그런 까닭에 조경란 소설에서 견자(見者)의 사상은 매우 웅숭깊은 편이다. 범속한 현상의 이면을 성찰하는 그녀의 견자들은 한결같이 영혼의 섬광을 볼 수 있기를 갈구한다. 아름다운 영혼으로 마주할 수 있는 빛을 응시한다. 거기서 존재의 진정한 근원과 실질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빛의 이미지 혹은 빛 찾기 모티프가 그녀의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3. 빛을 찾아서
    그렇다. “부화되기를 기다리는 둥근 알처럼 온몸을 웅크”린 채 존재의 뿌리를 응시하는 견자들의 시선의 끝은 빛에 닿아 있다. 「망원경」에서 어둠에 포박된 주인공으로 하여금 빛을 응시케 하는 조력자는 흑인 잭스다. 그가 주인공에게 해준 이야기가 있다. 해가 비추는 곳을 찾아 떠도는 집시들의 기원과 관련된 이야기다. 옛날에 지구 반대편에 해와 달이 들지 않는 어둠의 나라가 있었다. 왕은 다섯 명의 기사들에게 빛을 가져오면 공주들과 결혼시키겠다고 말한다. 기사들은 빛을 찾아 떠돌던 중 붉은 태양이 놓여 있는 곳을 발견한다. 거기서 집시의 조상인 튀발카인이라는 거인을 만난다. “이 태양은 나의 주인이다”라고 말하는 거인에게 기사들은 자기 나라의 사정을 말하고 간청한다. 이에 거인은 해에게 부탁해 해로 하여금 기사들과 함께 어둠의 나라로 가도록 한다. 그때부터 거인의 나라에는 해가 들지 않게 된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그들은 해를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잭스는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들은 다시 해가 비추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기 시작했고 결국 그때부터 집시들은 세상을 떠돌게 된 거다. 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말이야.”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는 잭스 역시 빛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집시들의 운명을 닮은 인물로 형상화된다. 그와 “길을 잃고 여러 날 혼자 어두운 숲속을 헤매다 홀연히 바위틈에 뿌리내린 겹겹의 풀꽃을 만난 사람처럼”(p. 60) 교감하면서 주인공은 빛줄기에 한층 다가서게 된다.

    새털구름을 휘장처럼 거느린 붉은 해가 저쪽 하늘에 둥그렇게 떠 있었다. 마침내 해를 발견한 기사에게처럼, 생애 처음 해를 보았을 그 순간처럼 내 몸으로 수없이 많은 빛이 한꺼번에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나는 목에 걸고 있던 망원경을 들어 목표물을 겨냥해 시위를 당기듯 신중하고 침착하게 소나기처럼 빛을 퍼붓고 있는 태양을 향해 초점을 맞추었다. 어느 한순간 눈앞으로 흰 빛무리가 쏟아져들어왔다. 금방이라도 눈동자를 태워버릴 것만 같은 굉장한 광력이었다. 나는 부신 눈을 한번 훔쳐내고 다시 망원경을 들었다. 동자가 확대되면서 눈앞이 아뜩해졌다. 꽃잎이 처음 열릴 때의 그 처연한 붉은빛, [……] 겹겹의 띠를 두른 그 빛 속에서 새들이 날아다니고 구름과 별들이 떠 있고 사람들은 집을 짓고 날마다 그 속을 횡단하고, 그 천지를 지나 태양과 별에서부터 오는 빛으로 세상은 온통 반짝거리고 있었다. (「망원경」, p. 64)

    주인공이 본 빛, 혹은 새롭게 찾은 빛줄기는 태초의 빛을 연상케 한다. “꽃잎이 처음 열릴 때의 그 처연한 붉은빛”이란 비유에서 드러나듯, 그 처녀성의 빛은 생명의 근원을 성찰케 하는 핵자다. 혹은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징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열망의 시니피앙처럼 “어디선가 다시 그 흰빛이 쏟아”질 때 주인공이 더 이상 놀라지 않고 “되레 그 빛을 좇아 결연히 시선을 돌”리는 장면은 물론, “나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 벌거숭이 아이들처럼 그 흰빛이 나를 빗나가지 않도록, 나를 지나치지 않도록 산란하는 빛의 파동에 오래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p. 65)는 결구도 그런 면에서 매우 자연스럽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화적 판타지 효과는 극대화된다. 현실에서 좌절한 채 어둠의 실존을 견디고 있는 주인공이 그 좌절을 넘어서 현실적으로 새로운 성취를 거두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망원경」에서 주인공은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나의 자줏빛 소파」에서도 실제로 ‘그 남자’와의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녹색 광선」에서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여자”인 그녀와 재회하지 못하며, 유리로 그녀의 영혼을 완벽하게 재현해내겠다는 욕망도 좌절된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현실의 불우한 형편을 개선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어둠의 실존 정도가 좀처럼 밝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경란의 인물들은 자기 동일성의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거나 실낙원과 복낙원의 둥근 순환의 뮈토스의 영웅들과는 전적으로 구별된다. 신화는 먼 곳에 있다. 육안으로 응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먼 곳에 있으므로, 꿈이나 무의식의 언어로 압축되거나 대치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상상적 진실은 새로운 자리를 알게 되며, 판타지의 눈은 생기를 발하게 된다. 「망원경」에서 주인공이 열망의 빛을 보게 되는 것도 거의 꿈의 언어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만이 현실의 어둠과 고통을 보상해줄 수 있을 따름이다.

    「식물들」의 결구에서 보이는 환상적 리얼리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주인공은 자기가 관리했던 소녀 가장 한상미에게 일말의 부채감을 지니고 있다. 제대로 후원금을 전달하지 않아 고아원으로 가게 했으며, 또한 곶감을 사주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죽은 혼백이 되어 주인공을 찾아오고 옆에 나란히 눕는다. 사십구재 날 밤이었다. 주인공은 “꿈을 꾼 게 틀림없어”라며 벌떡 일어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불을 개려는데 어젯밤 한상미가 누웠던 그 자리에 “토끼풀 한 잎”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 한상미가 주인공에게 보내주었던 것과 같은 토끼풀 말이다. 무서워 꼼짝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방을 뛰쳐나간다. 다시 들어가보아도 “토끼풀은 여전히 한상미가 누워 있던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분명히 꿈을 꾼 게 아니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자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있었다. 나는 토끼풀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두꺼운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가라, 아주 멀리 가버려라.
    그렇게 속삭이면서 토끼풀을 창문 밖으로 휙 던졌다.
    그것은 죽은 한상미의 영혼이었을까, 아니면 반짝거리며 떨어지는 내 눈물이었을까. 나는 설핏 희디흰 작은 새 한 마리가 허공을 향해 푸득거리며 솟구쳐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식물들」, p. 210)

    마치 조신 설화를 연상케 하는 이 대목에서 “토끼풀 한 잎”이나 “희디흰 작은 새 한 마리”는 겹쳐지면서 빛의 이미지와 등가로 치환된다. 이때 빛은 한상미라는 타자를 향한 주인공의 교감이 꿈의 언어를 통해 번역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야기 맥락 자체도 그렇거니와 토끼풀이 저리로 날아가는 모습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꿈과 무의식의 상상적 직조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경란의 빛 찾기 모티프가 꿈의 언어적 환상의 영역에서 수행된다 하더라도, 빛을 찾아 나서는 작가의 열망은 그 얼마나 소중한가.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잃어버렸거나 잃고 있는 그 무엇을 진실하게 응시할 수 있는 눈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그 눈길을 통해 우리가 존재의 뿌리를 새롭게 성찰할 수 있다면, 우리 또한 밝은 빛의 현현을 체험한 셈이 될 터이다.

    4. 녹색 말무늬와 타자성의 숨결
    조경란이 탐문하고 있는 빛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는 검은색과 흰색이지만, 여러 분광으로 나타난다. 그 빛의 스펙트럼 중에서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녹색’ 빛무늬다. 「망원경」에서 ‘녹색의 망원경’에 비치는 녹색의 밤하늘빛이 그렇고, 「녹색 광선」에서 광선의 기본색이 그렇다. 「물고기 아파트」에서 깊은 바닷물빛 역시 녹색이다. 저간의 인류 문화에서 녹색은 여러 상징으로 작용했다. 일차적으로 식물의 색이요 대지적 풍요의 색이면서, 또한 영원성과 사랑을 상징하기도 했다. 또 충실성·젊음·순진성·처녀성을 의미한 경우도 많았으며, 지식·지혜·통찰·기대·희망·자유·평화 등의 메타포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편 녹색은 중립성·미결정성·수동성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다. 매우 다의적인 상징 색채인 셈이다. 조경란의 경우 하늘빛·바닷물빛·대지의 빛 등에서 공통되는 색채 감각으로 녹색이 쓰인다. 그리고 그 빛을 바라보는 기제인 망원경 역시 녹색이다. 더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조경란에게 있어서 녹색은 미결정적이고 불확정적인 중간 지대의 색채가 아닐까 싶다. 충실성과 부박성, 순진과 타락, 처녀성과 그 상실, 통찰과 맹목, 기대/희망과 좌절, 상상적 풍요와 상징적 빈곤 사이 혹은 하늘과 땅, 하늘과 바다, 동일자와 타자 사이에서 일원적 감각의 코스모스가 아닌 양가적 혹은 다원적 감각의 카오스로 출렁이는 비결정 영역, 그 문제적 영역을 녹색 기제로 파악하여 근원적으로 존재 회복을 지향하려는 색채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어둠의 실존과 빛의 현현 사이의 긴장과 고뇌의 상상 색채다. 그렇다면 조경란의 녹색 상상력은 생태학적 사고에 기반한 녹색의 상상력으로 승화되기 이전의 현실적 갈등과 중층적 혼돈의 지형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눈길을 지닌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문제 제기적 색채요 삶의 구체적 진실을 탐문하는 형성적 빛깔이다. 나아가 새로운 가능성의 열린 감각이다.

    녹색의 감각은 녹색의 말무늬를 직조한다. 어둠의 실존을 견디면서 존재의 뿌리로 내려가고 타자와 교감하면서 빛을 응시하는 조경란의 꿈과 무의식의 언어는 아주 독특한 녹색의 말무늬로 아로새겨져 있다. 「아주 뜨거운 차 한 잔」에서 피아노 조율사인 주인공은 이런 말을 한다. “내 손은 숙련된 자동차 정비공이나 전각(篆刻)을 새기는 장인의 손길처럼 섬세하다. 내 귀는 1초에 2만 5천 번 진동하는 주파수에도 반응하는 고양이의 귀처럼 소리에 민감하다. 나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조율사였던 것 같다”(p. 220). 이 대목에서 언어 조율사인 조경란의 섬세한 손길이나 민감한 감각을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타고난 감각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으리라. 그러니 이런 부분에 우리의 눈길이 머무는 것도 자연스럽다. “뜨개질할 때 중요한 건 익숙한 솜씨가 아니라 집중력과 인내심이에요. 잠시만 딴 데 정신을 팔아도 겉코뜨기해야 할 때 안코뜨기가 돼 있고 그러다 보면 무늬는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지요. 사실 뜨개질도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랍니다. 한 코만 놓치면 실수를 해도 금방 표가 나고 틀린 자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말이지요”(「나의 자줏빛 소파」, p. 15). 글결과 말무늬를 직조하기 위한 장인 정신과 타고난 언어 조율사의 감각이 어우러져 ‘잘 빚어진 항아리’ 같은 소설이 탄생될 수 있기를 작가 조경란은 희구하는 것이다.

    앞에서 나는 조경란을 일러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인간 관계에 대한 탐문에 서사의 초점을 두고 있는 작가라고 말했다. 전통적 인간 관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인간 관계의 재구축은 하염없이 유예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 탐문의 정당성은 매우 소중해 보인다고 했다. “가슴 밑바닥에 묻어둔 지옥 하나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아주 뜨거운 차 한 잔」, p. 224)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현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자신의 행동조차 스스로에게 납득시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스럽게 깨달아지는”(「유리 동물원」, p. 164) 상황, 또 “기원은 늘 외면당하는 법”(「식물들」, p. 205)이라는 진술이 빈번한 우리 시대의 정황을 고려해보면 조경란식 서사 탐문의 정당성은 새삼 확인될 수 있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조경란은 존재의 심연으로 내려가 타자와 교감하기를 시도한다. 그렇다고 해서 결정적 교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또 상실한 것을 완벽하게 복원하는 재생 신화를 재현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깊은 뿌리에서의 교감의 시도 그 자체에 있다. 이해보다는 오해가 넘쳐나고, 사랑보다는 싸움이나 경쟁이 우세종인 부박하고 타락한 인간 관계의 현장을 떠올린다면, 깊이있는 교감의 시도 그 자체로 이미 의미있는 타자의 윤리학을 제기하고 있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거기에 동의할 수 있다면, 우리가 조경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검은 절망 속에서 녹색의 희망을 체험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나의 자줏빛 소파
    망원경
    잔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커피 찌꺼기의 무늬
    녹색 광선
    유리 동물원
    식물들
    아주 뜨거운 차 한잔
    오늘의 요리
    물고기 아파트
    <해설> 어둠의 빛, 그 녹색 말무늬·우찬제
    <작가의 말>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9~
    출생지 서울특별시
    출간도서 28종
    판매수 11,055권

    1969년 서울 출생.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일요일의 철학』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중편소설 『움직임』,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혀』 『복어』, 짧은 소설집 『후후후의 숲』,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 『백화점』 『소설가의 사물』 등이 있다. 1996년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2002년 오늘의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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