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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의 악수 : 양영수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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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문학상 수상작가의 야심찬 4·3역사소설

  • 저 : 양영수
  • 출판사 : 도화
  • 발행 : 2024년 05월 20일
  • 쪽수 : 228
  • ISBN : 9791192828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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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소설은
4·3평화문학상 수상작가 양영수 소설가가 야심차게 펴내는 4·3역사소설이다. 빨치산과 토벌대 좌·우익 양쪽 인물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가 역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살다가 화해의 악수를 하는 이야기이다.
제주 출신으로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를 갓 졸업한 부정태가 제주지구 국방경비대 소속 소대장으로 부임한 것은 제주도의 4·3사건 한 달가량이 지나서였다. 그는 제주농업중학교를 졸업하고 혼란스러운 지역사회에서 어떤 미래를 택할지 고민하던 중에 몇몇 친구의 부추김으로 제주도 남로당에 가입하려고 하다가 졸업반 담임 선생님의 권고로 경비사관학교로 진로를 바꾼다. 그 후 고향인 제주도가 폭력 세상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만약 남로당에 가입했으면 지금 자신의 미래가 어떨지 긴장이 되면서, 막상 군인으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
소대장에 부임 후 첫 휴일을 이용하여 부정태는 소학교 때 자신을 각별히 아껴주던 강상국 선생을 찾아가 자신의 소속감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막막하다고 내심을 털어놓는다. 강상국 선생은 부정태에게 군인으로서 국가에 충성하는 동시에 고향을 사랑하는 길을 찾으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 부정태의 소학교 단짝 친구 허만호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청 통역관으로 있던 그가 작년 3월 총파업에 가담했다가 잘린 이후 남로당에 가입해 유격대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부정태는 허만호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강 선생에게 부탁하지만 국군 장교가 반란군 쪽 사람을 만난다는 게 안될 말이라며 하고 싶은 말은 자신에게 하라고 한다. 부정태는 메모지에 〈이제는 우리가 세상 한가운데로 나설 때가 아닌가. 때가 되면 우리끼리 힘을 모을 수도 있을 걸세. 그때가 빨리 오기를 바라네〉라는 간단한 글을 써서 강 선생에게 전달한다.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부정태는 머릿속이 어수선하다. 허만호는 공부 잘하는 우등생에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친구였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으로 유학 간 그는 제주도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수제들이 간다는 배제학당에 들어갔다. 기독교 선교학교인 그곳에서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미 군정이 다스리는 제주도청의 영어통역관이 되었던 그가 그 끔찍한 좌파 남로당 집단에 가담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강 선생은 일본 유학생도 아닌 그가 남로당에 들어간 것이 이상하다고 하며 어쩌면 지금 허만호가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고 한다. 부정태는 강 선생의 이 말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그러면서 지역사회의 존경받는 존장으로 해방 직후 혼란기에 제주읍 인민위원회 부위원장까지 맡았으나 좌우 양대 진영으로 갈라진 후, 좌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을 천명한 강상국 선생님의 역할에도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부정태 소위는 군인으로서 직분을 다하면서도 남로당 유격대에 대한 국방경비대의 대응방법이 어떤 것이라야 할지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는다. 차명진 소위는 단호한 분쇄 작전으로 나가는 것을 주장하지만 부정태는 산사람이든 산사람에 동조하는 부락민이든 회유 가능하면 그것이 더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박진경 연대장 피살 사건, 제주 남로당의 5·10 총선거 반대 등을 비롯한 일련의 일들로 제주도 주둔 공비토벌대의 강경 방침이 소문으로 떠돌던 그해 10월 9일 여수순천 반란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육지에서 일어난 점만 달랐지 4·3 사건과 다를 게 없었다. 부정태는 중앙정부가 여순반란사건에 취한 초강경 진입방침을 보고 앞으로 제주에 어떤 단호한 조치가 나올지 짐작되어 온몸이 떨릴 정도로 긴장한다. 그 와중에도 이제나저제나 허만호의 답신을 기다리지만 도통 소식이 없다. 그는 군경 토벌대의 강경 진압 방침에 따르면서도 제주 사람들이 당하는 핍박과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심하던 그가 찾아낸 방안은 유격대-부락민 간 격리작전의 최종목표는 제주섬 주민들이 남로당의 인민혁명 운동에 관심이 없음을 증명함으로써 제주섬 전체 좌익세력을 평화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부정태는 이런 자신의 복안을 적은 글을 남로당 유격대 사령관 부관이 되었다는 허만호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시 강상국 선생님께 부탁하고 하루하루 애타는 세월을 보내면서 마음은 허탈하다. 그가 보낸 메시지를 허만호가 뭉개버린 것이 확실했다. 마침내 11월 중순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유격대 초토화작전이 시작된다. 부정태는 말로만 들었던 초토화작전이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멀쩡하던 마을이 하루아침에 일제히 불타오르는 광경은 지금 자신이 사는 세상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광폭스러웠다.
부대가 오랜만에 맞은 작전 휴일 부정태는 문득 자신이 제1차 초토화작전 지휘를 맡았던 중산간 마을로 가보고 싶었다. 적당한 길벗으로 뽑은 민 하사는 함경도 출신으로 일찍부터 공산당의 실체를 직접 경험하고 실망해서 월남했는데, 일본군 병사로 만주벌판에서 쌓은 전쟁 경험을 살려 하사관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군대 선배였다. 두 사람이 목적지인 보천마을에 이르렀을 때 마을 한 길가의 고목 두 그루 사이에 커다란 광목 현수막이 드높이 걸려있었는데 거기에는 커다란 글씨로 〈반란이 없다면 토벌도 없다. 평화복원 모범부락 보천마을〉이라는 문구가 두 줄로 쓰여 있고 그 아래에 좀 작지만 선명한 글씨로 〈책임장교:육군소위 부정태〉라고 쓰여 있었다. 그걸 본 민 하사가 ‘보십시오, 부정태 소위님은 이제 제주도 영웅이 되신 겁니다. 우리 4중대 5소대의 영광입니다’라며 유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부정태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은 얼굴로 오른손을 치켜들어 현수막을 점찍듯이 가리키며 ‘홍보를 하려면 똑똑히 해야지, 이걸 읽어볼 사람이 누군지 고려해얄 거 아닌가요’ 하면서 왜 이 현수막의 글이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갑자기 총성과 함께 부정태가 허리를 꺾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총을 쏜 범인으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오른쪽 대나무숲에서 뛰쳐나와 저 멀리 한라산 쪽으로 황급히 달아났다.
오른손 손바닥 한가운데에 총상을 입은 부정태는 병원에서 수술하고 회복 중에 간간이 찾아오는 민 하사가 들려준 토벌대의 빨치산 궤멸 작전소식에 퇴원하면 병원 밖으로 나가 사람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울 것 같았다. 지난겨울 제주도 천지를 살육과 공포의 도가니 속에 몰아넣었다는 공비토벌대, 제주도 사람이라면 그런 공비토벌대 출신인 자신을 보고서 어떤 저주의 시선을 던질지 두려웠다. 자꾸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친구 최기팔이 찾아와 허만호가 일본으로 밀항했다는 소식을 들려주면서, 그에게 연애 중인 여자가 있었는데 허만호가 사라진 다음에 딸을 낳고 며칠 만에 죽어버렸다는 불행한 이야기도 덧붙인다. 뿐만아니라 강상국 선생이 고문치사로 돌아가셨다는 말에 부정태는 너무 충격을 받아 입을 다물 수 없다. 남로당 협력 혐의였다고 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 되지 않는다.
부정태는 퇴원을 하지만 손가락뼈 하나가 다친 것 때문에 집총 할 수 없어 ‘현역복무 불가’ 판정을 받아 예비역 육군소위로 퇴역을 한다. 퇴역 후 하루하루 무료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가족들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면서, 특히 두 살짜리 아들은 그에게 전에 없는 즐거움을 준다. 하루는 근처 친척댁에 왔다가 들렀다며 불쑥 나타난 최기팔에게 허만호 딸을 보러 가자고 약속하고 만나기로 한다. 이튿날 부정태는 약속한 시간에 하지리 마을로 가서 최기팔와 함께 허만호의 애인이었던 김선영의 집을 찾아갔으나 아무도 없다. 온 김에 가삿오름에 올라 마을을 구경하던 부정태는 허만호의 딸이 산다는 김선영의 집 근처 주인 없는 빈 밭뙈기에 관심이 간다. 그 밭을 잊지 못하고 있던 부정태는 기어이 하지리의 가삿기오름 기슭에 있는 그 밭에 농사를 짓다가 1년이 지나서 아예 그곳에 집을 짓고 새살림을 시작한다. 이사 와서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부정태는 초록낭밭 고샅길에서 상면한 김선영 집안의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이의 이름이 ‘허미혜’라는 말을 듣는다. 세월이 가면서 부정태 가족들이 허미혜를 보는 일이 잦아졌고, 아랫집 허미혜와 위쪽집 부정태의 아들 부창식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단짝 친구가 된다. 해가 떠서 문밖으로 나가면 눈에 보이는 집은 위아래로 마주한 집 둘밖에 없어 미혜에게는 창식이, 창식이에게는 미혜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둘은 결국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어 농사를 지으며 나름 행복하게 산다. 부정태와 사돈이 된 허만호가 40년 만에 고국을 찾는 날, 4·3 때에 남편이 빨갱이로 몰려 총살을 당해 죽은 후 이름을 바꾼 채 숨어 살면서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이 연좌제 족쇄에 묶여 사람 구실 못한 것을 피울음 삼키면서 지켜본 박술음 후보의 국회의원 유세 현장에서 나란히 연단에 올라 그와 뜨거운 화해의 악수를 하며 손을 굳게 마주 잡는다.
양영수의 작가의 4·3역사소설 『40년 만의 악수』는 제주 출신의 두 인물을 서사의 중심에 놓고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4·3이라는 현실과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으로서의 허구를 짜임새 있게 결합하고 있다. 실화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두 인물은 고통을 체험하고 위로해주는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소설 속 인물 누구 하나도 허투루 볼 수 없도록 문제적이다. 그들은 군인과 남로당 유격대라는 각자 개인들 삶의 편린을 안고 있지만 제주도라는 공동의 운명 앞에 놓인 ‘희생양’이기도 하다. 그들의 운명에는 자율성이 없다. 오직 거역할 수 없는 명령과 강압적인 선택만 강요될 뿐이다.
4·3역사소설 『40년 만의 악수』는 딴 몸이면서도 한몸인 이 둘의 삶을 어떻게 형상화할까? 제주의 크나큰 아픔과 고통이라는 거대서사를 어떻게 감당해낼까? 하는 작가의 고심 흔적이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 작가는 다양하고 상징적인 인물들 사이를 넘나들며 제주 4·3의 역사를 현재화하고 국가와 개인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개인적 자아에의 신념을 가지며 살아가는 이들이 서사의 골격이라면, 허만호 딸 허미혜와 부정태 아들 부창식의 결혼은 서사의 골격을 마무리한다.
제주 4·3이라는 거대서사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자의식은 초토화작전으로 불타는 제주의 중간산 마을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신념에 찬 군인이나 남로당 빨치산의 진솔한 형상과 고백들을 틈입하게 한다. 양영수 작가는 제주 4·3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은 현재의 결과만 보지 말고 화해의 과정으로서 길을 만들어 제주민들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제주민들의 운명이고 숙명이라는 것을 이 소설에서 힘주어 말하고 있다.

추천사


제주도 4·3사건의 역사적인 의의도 이와 유사한 비교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군경토벌대의 잔인무도한 멸공 전선에서 무고한 양민 희생자가 많이 나온 것은 물론 억울하고 통탄할 일이지만, 빨치산 집단의 무장봉기가 토벌대에게 진압되었기 때문에 제주사람들이 더욱 잔인한 공산당 세상이 되는 불행을 면할 수 있었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 사건이 ‘목호의 난’처럼 먼 과거의 일이 아니고, 그 당시에 제주사람들이 당했던 아픈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다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말을 갖다붙일 여유가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할 것이다. 장편소설 「40년 만의 악수」의 스토리 전개는, 좌우익 양쪽의 투사들이 왕성했던 투쟁의지의 결과가 뜻하지 않은 역설적인 방향으로 흘러감을 실감한 끝에 화해의 악수를 나눈다는 골격에서 이루어진다.
-작가의 말 중에서

목차

작가의 말

1절~26절

본문중에서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 기슭의 수많은 오름 봉우리에서 봉홧불이 올라감과 동시에 제주도 남로당 유격대의 무장봉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미군정의 부패와 폭력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며 ‘단독선거 결사반대’‘탄압이면 항거’ 등의 구호를 내걸고 기세등등한 폭력행사에 나섬으로써 섬 전체를 극도의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경찰지서 등 관공서를 닥치는 대로 습격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도처에서 도로와 교량을 파괴하고 전선을 절단하여 교통과 통신수단을 마비시킴으로써 국정의 정상적인 가동을 방해하였다. 5월 21일에는 모슬포 주둔 국방경비대 9연대 병사들 41명이 집단 탈영 후 입산함으로써 국군부대 내부에까지 침투한 좌익 프락치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남로당 프락치들의 탈영사건은 이후에도 그치지 않았고, 이들 탈영병 대부분이 제주지역 출신임은 제주도가 빨갱이섬이라는 풍문이 사실임을 증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열악한 장비의 남로당 인민유격대가 경찰과 대적한 전투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두는 것도 빨갱이섬의 위력을 보여준다는 말이 나돌았다. 좌파 게릴라들은 5·10총선거를 전후하여 선거공무원들을 저격 암살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투표 당일 마을사람들은 공무원들이 동원된 투표 독려에 등을 돌리고, 좌익 청년들이 시키는 대로 야산으로 올라가 불편한 풍찬노숙을 택함으로써 미군정이 강요하는 단독정부 구성에 대해 확실한 거부반응을 보여주었다. 북제주의 5·10총선은 투표자 정족수 미달로 무효처리 되었다.

부정태 소위는 제주지구 국방경비대 11연대 소속 장교로 복무를 시작하면서도 어수선한 마음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병영 내에서 장병들 얼굴을 바라볼 때에도 그의 심정은 착잡하였다. 제주지구 경비대의 존재이유는 공산주의 남로당 집단을 분쇄하는 것이오. 차명진 소위의 단호한 한마디 말이 아직도 그의 귓전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사병이 아닌 장교나 하사관들을 바라볼 때는 그래도 착잡한 마음이 덜한 편이었다. 소수집단인 그들은 모두가 육지사람들이었고, 장교나 하사관 되기 위한 사상검증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주지구 국방경비대의 창설요원으로 선정되어 경비대 본부에서 파견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선은 좌파 혐의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반면에 영내에서 일반 사병들을 바라볼 때에는 어수선한 마음이 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은 체제 확립이 채 안된 미군정의 국방경비대원 모집 과정에서 사상검증이나 경력조사도 없이 입대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빨갱이 혐의가 있는 제주섬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약삭빠른 남로당 지도부에서 경비대를 좌익세력 확장의 거점으로 이용하기 위해 일찌감치 자기네 끄나풀을 심어놓았다는 소문을 부정태도 들은 적이 있었다. 좌경화된 섬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좌경화된 국방경비대의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도둑에게 도둑 잡는 일을 시킨 격이 아니냐고 비양거리는 말도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부 소위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부 소위 자신이 자기 휘하의 4중대 5소대 병사들을 볼 때마다 이 녀석은 좌파인지 우파인지 알 수가 없으니 뭐라고 말 한마디 건네기가 어려웠다. 이들 중에 어떤 녀석이 그가 분쇄해야 할 남로당 프락치인지를 알려줄 확실한 근거가 없었다. 겉으로는 멀쩡한 국군 사병처럼 보이는데, 언제 어떻게 그에게 등을 돌리고 탈영병이 될 것인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정태는 신념에 찬 군복무를 하고 있는 차명진의 경우를 자신과 비교해 보았다. 군경토벌대의 존재 이유는 남로당 빨치산을 분쇄하는 것이라는 차명진의 신념은, 이 나라의 운명을 구하려면 공산주의 집단을 격멸해야 한다고 믿는 데에서 출발하고 있음에 비하여, 부정태 자신은 이 같은 신념을 가질 수 없었다. 부정태가 제주 출신 국군장교로서 어떤 양심적인 신념을 가질 수 있으려면, 군경 토벌대의 강경 진압 방침에 따르면서도 제주사람들이 당하는 핍박과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키울 정도로 인간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따라주지 않는 처지이면서도 반공정부의 정책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공산주의에 대해 찬성하든 반대하든 군경토벌대의 무자비한 진압방침이 필요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였다. 만약에 제주지역 백성들과 빨치산 사이의 연결고리를 단절시켜서 일반 민간인은 유격대 활동과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토벌대의 무고한 양민 학살 방침은 무의미하게 될 것이었다.

민 하사의 대꾸하는 말이 채 나오기 전에 난데없는 총성이 들림과 함께 부정태 소위가 허리를 꺾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민 하사가 들고 있던 엠원소총을 재빨리 치켜들고 총성이 울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범인을 따라잡기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총을 쏜 범인으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오른쪽 대나무숲에서 뛰쳐 나와 저멀리 한라산 쪽으로 황급히 달아나고 있었다. 민 하사는 달아나는 범인을 몇 발자국 따라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누구를 따라가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출혈이 낭자한 부정태 소대장을 신속하게 들쳐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일이었다.

부정태는 한동안 고심한 끝에 가상적인 죄책감에서는 벗어나는 방향으로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손바닥 총상을 입지 않았을 경우에 공비토벌대 소대장으로 범했으리라고 생각되는 잔혹한 학살만행을 놓고 고민하지 말자는 결심이었는데, 그렇게 마음을 다지게 되자 부정태는 어려운 사고의 미로를 겨우 벗어나는 기분이 되었다. 옳은 일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옳지 못한 일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이 상처가 생긴 내력을 따져보면, 그 자신이 공비토벌 작전에 충성을 다해 참여했기 때문에 얻은 것이기는 하지만, 뜻밖에 당한 이 상처가 지난 겨울의 그 잔혹한 초토화작전에 불참하게 만들어 준 것도 사실이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손바닥을 뚫고 나간 총알 하나가 토벌대의 가공할 학살 만행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부정태로 하여금 부끄러운 국군장교의 이력을 쌓는 불행을 다소나마 피하게 해준 셈이었다. 생각할수록 의미심장한 총알 한 방이었다.

그러나, 밀항선을 타는 허만호의 심정으로 말하면, 이런 부분적인 것보다도 4·3난리 전체가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그의 마음을 비통하게 만들었을 것 같았다. 그가 일본으로 도피한 시점은, 초토화작전의 위세가 한창이어서 빨치산의 투쟁 여력이 거의 소진될 때라고 했던 것이다. 목숨 붙은 최후의 순간까지 군경토벌대와 사투를 벌였던 이덕구하고, 마지막 항전의 의미를 부인하고 초지관철의 민주항쟁 투사가 되기를 포기한 허만호는 어떻게 다를까. 이덕구는 그가 생각하는 민주항쟁의 의미를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 항쟁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반독재 투쟁가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을 보람과 영광으로 생각한 것 같지만, 허만호는 4·3 민주항쟁에 대해 부여하던 정당성의 의미를 단념한 것으로 보였다. 4·3 무장봉기가 정의로운 역사와 민족의 양심을 살리는 길이 아니고, 오히려 민족사의 피폐와 국력의 낭비를 초래할 뿐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비겁한 변절자의 오명을 불사한 것이 아닌가. 두 사람 모두 비범한 용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덕구 쪽은 초반의 신념을 지키는 데에 용감했던 반면에, 허만호 쪽은 초반의 신념을 버리는 데에 용감했다고 할까. 남로당이 내세웠던 평등사회나 민족통일 이념에 대해 이제까지 품었던 신념이 무너지든가, 빨치산 운동의 무자비한 폭력성이나 무모한 모험주의에 대해 실망하게 되든가, 이런 이유라면 변절자 낙인이나 일신상의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해외도피의 길을 택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저는 40년 전에 빨갱이 친구 허만호, 이 사람을 잡으러 다니던 제주 출신 토벌대 장교 부정태입니다. 저희들은 제주읍내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니던 단짝친구 사이였습니다. 4·3사태라고 하는 슬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빨치산과 토벌대 양쪽으로 갈라져 싸우던 저희 두 사람은 오늘 이 뜻깊은 4월 총선 선거유세장에서 재회하는 장면을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저희들 두 사람은 이제 다시 옛날의 우정어린 친구로 되돌아갑니다. 대한민국 국민들도 왼쪽 오른쪽 갈라져서 싸우던 분열의 역사를 끝내고 화합과 협력의 역사로 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저희들이 오늘 이 뜻깊은 재회의 악수를 나누는 것을 이 자리에 만장하신 여러분들이 큰 박수로 칭찬해 주실 것을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마이크를 박 후보님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박 후보님 장시간 하시고 싶은 말씀 못하신 거 대단히 미안합니다.

서로 굳은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연단을 내려왔다. 유세장에 가득 모인 청중들이 보내오는 박수 소리가 아주 먼 나라의 일인 듯 은은하게 들려왔다.

저자소개

양영수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제주도 출생. 제주도에서 초중고 수학. 서울대 문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문학박사). 제주대 사범대 교수 역임. 소설집 「마당 넓은 기와집」(2006년)과 「사랑은 꽃입니다」(2020년), 4·3역사를 테마로 하여 2편의 장편소설 「불타는 섬」(2014년 4·3평화문학상 수상작)과 「복면의 세월」(2019년)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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