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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을, 그때의 말들을 왜 그토록 오랫동안 기억에 담고 있는지 묻는다면 그럴듯한 답변을 하기가 곤란하다. 그냥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옳은 설명이다. 어느 날 밤하늘의 별자리가 눈에 들어오고, 길에서 보던 꽃의 이름이 갑자기 궁금해지는 이유처럼… 해가 지는 오후, 강가를 거닐다 내가 지닌 슬픔과 우울의 근원을 궁금해하며, 나라는 존재가 강물처럼 흘러 끝내 도달할 궁극의 바다를 생각하게 된 계기를 찾는 것처럼… 그 연유(緣由)의 설명이 참으로 궁색하다. 그래도 끝까지 이유를 묻는다면, 아마도… 당신에게 들려주려는 이 이야기…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하는 것이 나으리라.
본문 중에서

상, 하 각 권으로 구성된 장편소설이다. 스포츠를 소재로 다룬 점에서 보기 드문 내용이며, 작가의 탄탄한 필력이 돋보인다.

작가는 "우리가 왜 오른손만을 사용하는 것을 강요당했는지,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살았는지 깨달으면 (중략) 우리가 왼손과 오른손을 동등하게 사용하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생명체의 참다운 능력을 온전히 활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강요한 자기결박(自己結縛)과 희생의 사슬을 끊고 진정한 이성적 존재로 거듭나는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라는 의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비단, 왼손과 오른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의식과 고정관념 중에는 오류나 비상식, 강요가 아닌 강요도 끼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긴 시간과 다수와 더불어 단단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러한 점에 눈을 떠,, 소설적 내용을 구성하고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 같다.

1부
1. 베테랑, 체육관에 들다 · 9
2. 남자의 세계 · 22
3. 진주 원정기 · 37

2부
1. 또 다른 바다, 동해 · 60
2. 뻥쟁이 신규교사 · 65
3. 갯마을 사람들 · 75
4. 꽃과 바다와 아이들 · 84
5. 우리들의 즐거운 수업 시간 · 91

3부
1. 네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 113
2. 초심이 진심 · 121
3. 바닷가 아이들 · 129
4. 고수의 등장 · 135
5. 시골 선수들의 반란 · 144
6.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154
7. 저수지에 뜨는 달 · 174
8. 무모원정대 · 190
9. 주인된 자와 그들의 적들 · 204
10. 사냥꾼의 후예들 · 213
11. 귀신과 손을 맞잡다 · 229
12.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 236
13. 인생은 만남이다 · 252
14. 변화의 바람 · 257
15. 테니스의 신을 만나다 · 263

4부
1. 우리들의 얕은 식견이여! · 271
2. 다시 주먹을 쥐다 · 279
3. 은성중공업 복싱동호회 · 284
4. 엘리트 복싱 · 297
5. 테니스장을 찾다 · 320

6월이라 체육관은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더워지고 있었다. 관원이 적어서인지 역기 등을 제외하면 별다른 운동기구도 없었다. 도난의 우려가 되는 물건도 없는 모양이었다. 체육관의 문도 항상 개방되어 있었지만, 사무실의 문도 열려 있었다. 나는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 내부를 둘러보았다. 시골의 작은 체육관답게 모든 것이 낡고 휑뎅그렁했다. 태극기와 등록증, 관장과 사범의 사진이 나란히 벽에 걸려 있었다. 또한 지나간 시합을 알리는 낡은 경기 포스트 몇 장이 일렬로 놓인 트로피와 함께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 p.22

“동혁 씨! 복싱은 스텝이야, 스텝이 되지 않으면 복싱이 아니야. 스텝은 말이야. 팔의 길이를 이렇게 앞으로 쭉 늘려주는 거라고… 동혁 씨처럼 그렇게 제자리에서 서서 치는 것은 복싱이 아니야! 그건 그냥 주먹질이라고. 아무나 하는 주먹질.… 움직여 봐… 쭉쭉, 미끄러지듯이…”
그가 가볍게 스텝을 밟았다.
--- p.37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전부 지역민이고, 학부형이거나 학부형이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특정 가게를 찾지 않았다. 순례를 하듯 여러 가게를 돌았다. 우리가 학교의 교사라는 사실을 잘 아는 그들도 주문한 양보다 훨씬 많은 고기를 썰어주곤 했다. 멍게나 해삼까지 덤으로 주며,
“아이고!, 선생님들 고생 많으십니다. 우리 애들한테 선생님들 이야기 많이 듣습니다.”
라며 친근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 p.191

나는 고기를 상추에 두어 점 싸서 소주잔과 함께 그에게 건넸다. 그는 소주를 한 입에 털어 넣고 상추쌈을 맛있게 씹었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테니스라도 잘 치면, 이 고생 안 하고 저 양반들처럼 공이나 치며 희희덕거렸지. 한데 공을 제대로 못 치니… 고기라도 제대로 구워 줘야지. 그래야 테니스 회원으로서 제 몫을 한다는 소릴 들을 것이고? 그런데 신 선생은 왜 테니스 안 치냐?”
그의 질문에 나는 겸연쩍게 웃었다.
--- p.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