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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숨결 따라 분다

시집 《바람의 결》의 시(詩)들을 한 줄로 말한다면 ‘삶의 무늬에서 바람의 결을 끄집어낸 숨결.’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찌 보면 살아감의 과정과 바람이 생성되고 부는 이유가 유사하다. 까닭은 사연을 만들고 그 사연이 이어져 삶의 이야기가 되듯, 태양과 지형 등은 공기의 압력 차이를 만드는 까닭이 되고, 그로 인하여 바람이 부는 이유가 된다. 바람은 공간 속 모든 것에 스며들고 스치며 흔들어 사연을 만든다.
시인은 유형의 조직(組織)에 나타나는 ‘결’처럼 무형의 ‘바람’에 의해서 생기는 유？무형의 ‘결’을 느끼고 보았다. ‘결’은 이야기의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나아가 바람에 대한 확장된 의식은 ‘자유로움’이다.
이 시집은 네 묶음(#하나-바람의 결, #둘-생각의 겨를, #셋-세상에, 눈, #넷-멈춤)으로 구성했다. 《바람의 결》의 시에는,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서정(抒情), 자연과 바람 사이에서 느끼는 시심, 잔바람처럼 일어나는 일상에서 겪었던 사연이 담겼다. 또한 격한 바람이 부는 듯한 일(사건)들에 대한 서사, 바람 한 점 없는 어느 순간의 장소 또는 추억 등을 소환하며 시적 숨결을 불어넣었다.

바람은 내적 현상의 소중한 변화를 꾀하는 작은 힘

이미라 시인의 시를 보면 바람과 연관된 소재들이 제법 많다. 대략적으로 살펴보아도 40여 작품 혹은 바람을 지칭하는 단어 혹은 관형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는 까닭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바람의 속성은 애써 분석하지 않아도 ‘세기’, ‘흐름’, ‘자유’, ‘카타르시스(정화)’ 등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략)
이미라 시인은 남다르게 바람을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이윽고 바람을 예찬하는 작품 속에 자신의 인생과 사유의 세계를 올인(All in)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뭇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본다. 그 특징이 다른 작품들(〈오늘도 바람이 분다〉, 〈바람길〉, 〈바람은 홀로 울지 않는다〉, 〈바람의 결〉, 〈지나가는 바람〉, 〈바람의 인연〉)을 노래하는 멜로디로서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에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음이 자명하다. 이외에도 각 작품마다 바람을 호명하는 힘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바람은 시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요소인 동시에 지체와도 같이 친분이 돈독한 매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놓칠 수 없다. 그 바람의 힘, 세기가 때로는 온기가 되고, 이동 수단의 동력 역할이 되고, 정화 시킴은 물론, 씻어내고, 멀리 날려 보내는 기능을 여실히 감당한다는 점에서 시인에게 있어서의 바람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내적 현상의 소중한 변화를 꾀하는 작은 힘이 되고 있음을 본다.
- 해설 중에서 / 이충재 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5

#하나_ 바람의 결
바람 예찬 …12
오늘도 바람이 분다 …13
바람길 …14
바람은 홀로 울지 않는다 …15
바람의 결 1 …16
바람의 결 2 -지나가는 바람 …18
바람의 결 3 -인연 …19
바람의 결 4 -바람이라 했다 …20
나목 …21
산 …22
고요한 산울림 …23
강이 말한다 …24
앉은뱅이 꽃 …25
겹 -양파 …26
도화 꽃 그대 …27
메타세콰이어 길 1 …28
메타세콰이어 길 2 …30
푸름의 산아 …31
낯설게 하기 …32
울릉도 그 섬엔 …33
어둠의 눈물 …34
독한 생애 …35
유월 마지막 날 …36
늘 그렇게 …37

#둘_ 생각의 겨를
생각의 겨를 …40
기린을 닮았다 …41
겨울바람의 지문 …42
부추 꽃 …44
청색 고무 슬리퍼 …45
살다가 보면 …46
우리는 서로에게 …47
잃어버린 골목 …48
꿈 …49
불발탄 …50
고삐 풀린 말 …51
삶의 이유 …52
그저 웃지요 …53
시詩, 터 밖으로 …54
밥 짓는 여자 …55
계단 끝에서 …57
여백 …58
붉거나 푸르거나 …59
병 -함께 가는 길 …60
동반자 …61
훔쳐 가지 마 …62
한 숟가락 …64
내가 살던 집 …65

#셋_ 세상에, 눈
세상에, 눈 …68
봄날 …70
봄의 길목 …71
봄날의 반란 2 …72
춘설 -펜데믹 시대 …74
봄, 밤에 …76
억수 …77
늦장 비 …79
비, 너로 하여 …80
오늘 밤에 내리는 비는 …81
구월이었다 …82
구월을 닮다 …84
시월을 담다 …85
비어 있는 길 …86
아픈 늦가을 …87
억새꽃 …88
서리꽃 …89
걷다 보면 생각나는 사람 …90
팔삭둥이 철부지 …91
겨울 사랑 …92
아이야, 세상은 망망대해라지만 …94

#넷_ 멈춤
멈춤 -펜데믹 시대 …98
수족관 앞에서 -펜데믹 시대 …100
망고를 먹다 …101
백마고지 …102
관광특구 문화공원 …103
PCC-772 천안함 …104
골목에 부는 바람 …106
융프라우 …107
폼페이 …108
론다의 거리 …109
같은 길을 향하여 …110
살다가 낯선 길 …111
빨간 우체통 …112
그린 힐 그곳 1 …114
그린 힐 그곳 2 …116
그린 힐 그곳 3 …117
품에 들다 -매초산성 …118
잃어버린 그림자밟기 -문화인의 길 …119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이적의 노래 속으로 …120

*해설
천 개의 바람으로 시의 집에 혼을 불어넣고 깃들게 하는 배려/이충재(시인, 문학평론가) …122

* 서문
인간은 자신만의 영역에 펜스를 치듯/ 나름 정해놓은 규범이 있을 거다/
시를 쓴다는 건 유일한 특권이다/ 나 또한 시를 통해 규범을 넘나들기도 하는/
자유를 누려 온 것 같다/ 자유 속에 마음의 결을 만들어 주던 건/ 바람이었다/ 바람은 유형, 무형의 결로/ 유색, 무색의 결로/ 무의식 속에서 자유로운 유영/
그 자유를 갈망하던 나를 끌어 갔다/ 나는 더는 특권 앞에 오만할 수 없다/ 늘 자책하며 자신조차 만족할 수 없는/ 시 세계에서 오늘은 탈출을 시도해 본다/ 나 밖의 세상에서 나를 들여다보아야 할 것 같다 - 시인의 말

바람 예찬


이른 아침 창을 흔들며
작은 속삭임으로 벽을 기어오르는 바람
저녁나절 땅거미 지는 막다른 골목길
수북한 낙엽을 끌어와
메마른 그림자 드리우던 바람
늘 살아서 회유하는 바람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고
어느 곳에나 머물며
마음 닿는 대로 만날 수 있는 바람
나를 깨우기도
살며시 흔들어 잠재우기도
간간히 불어와 무심한 안부를 들춰내는 바람
손에 잡힐 듯 흔적 없는 자유의 영혼
바람은 숨어 울기도
한껏 머리 제켜 웃어대며
여민 품속을 스며들기도 하는
늘 곁에 맴도는
바람을 좋아한다
나는
-12p



오늘도 바람이 분다


풀이라 해도 좋을
내가 그곳에 앉아
기약 없는 기다림에 푸르게
흔들리던 상념
꽃이라 해도 좋을
내가 그곳에 어우러져
무심히 외면하던 눈빛들에
녹아내리던 빛깔들
태양이 서늘하게 시절은 가고
땅으로 숨어드는 흔적 없는 시간들

태양은 잠들지 않는다
바람은 여전히 분다
-13p


바람의 결 1


생각 없는 날
쨍하니 시린 빛으로
하늘도 생각 없는 듯 구름조차 없는 날
갈대가 눈부시게 바람을 끌어당기며
그림자조차 하얗게 물 위에 퇴색되던 날
몽돌 하나 집어든 생각 없는 손길이
강물을 깨트렸다
청아한 물소리 잠시 바람을 깨우고
생각 없는 날 너를 떠올린다
물소리 때문에
바람 때문에
그도 저도 아무려면
그저 바람이면 좋겠어
-16p


어둠의 눈물


어둠이 어딘가로 제각기 길 찾아 떠난 후
비로소 아침이 찾아와
짙은 밤 밀어내기에 아우성치며
소용돌이 같은 몸짓들이 긴 한숨 내쉴 때
누가 알랴
빛의 줄기들이 이토록
고요히 찾아올 수 있도록
자리 내어준 어둠의 눈물을
괜찮아
눈물방울들, 잠 깨는 잎새마다 매달려
현란한 아침을 맞을 테니까

쉼 없이 다가오는 내일, 또 내일
괜찮아
밤새 초롱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별들의 숱한 이름마다
외로운 마음들 함께하니까
-34p


겨울바람의 지문


땟국물 범벅 된
눈물 콧물 닦아주던 손길
세상에 둘도 없는 손맛으로
피워내던 함박웃음
연금술사처럼 녹여내던
사랑이라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남김없이 쏟아내고
시린 바람 끝에 사위어 가는
실낱같은 온기로
가슴을 덥혀주고 떠나던 날
어머니
한 생의 지문이 오롯이
가슴에 남았다
-4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