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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 귀촌한 사람들의 농사일처럼 쓰는 시

‘2024 강 따라 글 따라 시 모임 제5집 『내일은 내 소식도 전해줄게』가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 모음집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 섬진강가 고향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 이곳으로 귀농 · 귀촌한 사람들이 2019년 제1집 『우리 집에 두고 간 봄』을 펴낸 이후 다섯 번째 시 모음집이다.

강 따라 글 따라 시 모임 구성원들은 “서 있는 자리” 섬진강가에서 시 공부한 지 어느덧 7년째, 8년이 되었다. “비가 올 때도” “구름이 나를 덮고 있을 때도” 농사일처럼 시도 계속 되었다. ‘강 따라 글 따라 시 모임’ 사람들은 큰 부침 없이, 별 변화 없이, 평생을 한자리에 품 넓게 사는 느티나무 같다. 그래서 언제나 묵묵히 견뎌내는 농사일처럼 시 쓰는 일을 하면서 또 다가올 ‘봄’을 기다린다.

시 공부 7년째, 8년이 돼갑니다. 시간이 쌓이는 일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아요.
큰 부침 없이, 별 변화 없이, 위대한 일이 없어도 위대해질 수 있는 게 우리의 동인지를 매년 내는 거지요.
2023년 ‘강 따라 글 따라 시 모임’ 제5집 편집회의를 하면서 은수 1편 더 내서 6편 맞추고, 공 여사도 6편 맞게 써야 되고, 양식이도 한 편 더 내고, 유 선생님은 많이 내셨으니 좋은 걸루 추리고, 박희숙 님하고 두 분은 시가 점점 더 좋아지네요.
옥희 씨는 아프니까 어쩔 수 없이 2편으로 가고, 인상 형님은 시가 점점 더 진짜 시인 같네요.
선생님 밥 먹구해요. 밥공기에 올린 손이 이젠 너무 뜨거운데요.

2024년 1월
강 따라 글 따라 시 모임 일동

머리말·05

공후남
철새들이 나를 멀리 데려가 주면 좋겠다·13
어쩔까·14
인자 셋 남았다·16
나는 후남이·18
내일은 내 소식도 전해 줄게·20
그냥, 그런 날도 있어요·22
아픈 소파·24

김옥희
친구·27
안갯속 같은 세상도·28

김용택
새에게 집을 지어 주지 말아요·31
어느 조용한 아침·32
새 풀·33
가을에는 참지 못한 말들이 있어요·34
내 삶을 내다보는 곳·35
산을 밟고 넘다·36
아버지의 사진·37

김인상
고마운 친구야·41
어느 낯선 정류장에서·42
석류·43
잡초를 뽑다가·44
친구여 오늘 한잔 어떤가·45

박양식
가면이 숨은 집·49
내일로 갈 수 없는 강물·50
손을 씻다, 그래도 가을은 지워지질 않는다·52
아침 소묘·54
이별은 날마다 춥다·56
충만·58

박희숙
숲이랑 살다·61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들·62
손녀 이쁨은 감출 수가 없다·64
강진 터미널에서·66
마지막 든 연필·70
맛있다는 의미·72

유갑규
농사는 주인을 잃었다·75
자빠진 김에 쉬어 가기·76
누님 가시던 날·78
우리 집 텃밭·80
아들 장가가던 날·81
토끼굴 닮은 집·82
장마가 사나워졌다·84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86

이은수
강가의 돌을 사랑한다고 하면·89
괜찮은 날들이 모여서·90
마음의 위로·91
반찬 벌어먹어야지·92
시처럼 사는 것·93
다정한 꿈·94

하늘에도 땅에도
가을이 왔네요
하늘이 고와요
구름들이 하늘을
잘 돌아다니네요
가을 하늘에 구름처럼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고 싶어요
사랑해요
나는 당신에게
지금 이 말을 하고
싶어서 못 참았어요
보고 싶어요
우리 내일이나 모레
저 구름이 하는 말을
해석할 수 있을까요
-김용택 「가을에는 참지 못한 말들이 있어요」 전문

오래된 소파에 상처가 났다/어린 손주 눈에 발견된 상처/주사 맞고 온 손주는 자기 몸에 붙어 있던/동그란 밴드를 떼어/소파야 아파?/소파에 조심스레 붙여 놓는다/밴드에 상처가 나고 떨어질 때까지/떼어 내지 않았다
_공후남 「아픈 소파」 전문

이웃 마을에 살았던/벗님네가 이사를 갔다/매일 보아도,/가끔, 우연히 만나도/요란하지 않은 반가움//은퇴하고/도시를 떠나 촌으로 왔건만/더 나이가 들어/병원 가까운 도시로 가니/세월처럼/잡을 수 없네/언제 가 보아도/그 자리에 있던 친구가/보이지 않는구나
_김옥희 「친구」 전문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줄 아버지께서 아신다면/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실까/36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나 때문에 걱정하시는 일이 없도록 하자/마당에 새로 심은 감나무에 대해서도 얼마나 당부하실 말씀이 많으실까/조각달이 마루 끝을 벗어나가고 있다
_김용택 「아버지의 사진」 전문

마당 한 뼘 끝머리에/쑥부쟁이 하얀 꽃이/지 맘대로 피었구나/빌어먹을/지 혼자 세월 속에/헝크러진 하얀 머리/나보고/그리 늙으라고?
_김인상 「잡초를 뽑다가」 전문

집에 있어?/응, 집이야/그래 놀러 갈게//그가 왔다/그리고, 곧 갔다//응, 잘 가//가을은 그렇게 한곳에 오래 머무는 계절이 아니다/방랑하는 자들의 헝클어진 발길이다/그래야, 가을이다
_박양식 「가면이 숨은 집」 전문

숲도 살고/꽃도 살고/나도 살아라//저 산 너머/물안개/꽃 피우면/나도 하늘을 날으리//모든 만물은/초연히/잠들고//어수선한/세상도 덩달아/고요하다
_박희숙 「숲이랑 살다」 전문

어버이날이라더니/모처럼 자식들이/몰려왔다/초라하던/밥상이 푸짐해졌다/저녁부터 비가 온다기에/점심을 대충 하고/밭으로 나왔다/호박 모종 옮겨 심을/준비가 급하다/꼭 우리 어머니 닮았다/내 속에 어머니가 산다/내 자식들은 농사를 모른다/그렇게 한 세대가 가고/또 한 세대가 온다/다음 세대에 농사는/주인을 잃었다
_유갑규 「농사는 주인을 잃었다」 전문

추운 날/주머니에 손을 넣고/하늘을 올려다보다/높이 날아/바람을 타는 새를 보았다/거스르려 하지 말고/바람과 노는 거야/지나간 일은 보내주고/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없어/아침을 먹고/저녁이 오면 집으로 가서/양말을 벗지/괜찮은 날들이 모여서/괜찮은 사람이 되는 거야
_이은수 「괜찮은 날들이 모여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