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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창의 『눈물의 운명』은 크게 5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진정성과 예술성의 미학

시인 강준철

황성창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연륜에서 배어 나오는 세계와 인생에 대한 진정성이 나타난 시가 많다. 그렇다고 예술성을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진정성에 좀 더 기울어져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진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예술성(문학성)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하는 것은 시대ㆍ사회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할 것이다. 다음을 보자.

속마음을 공감과 감동을 얻을 수 있게끔 표현하는 일이 예술이요, 시의 언어가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시란 다름 아닌 남다른 미적 체험의 언어화이다. 척하는 과장이나 왜곡이 아닌 진실한 체험, 미적이고 본질적인 체험이어야 한다. … 과분한 수사와 소재들은 시적 계기, 감동의 단서를 그만큼 감소시킨다.
시의 언어화란 장식과 낭만과 멋 부림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 진실성이 보다 중요하다. - 신진, 『문학도시』 2017. 10월호(통175).

미는 긴장을 지향한다. 총체성은 긴장을 삼켜버리고 이데올르기에 순응하게 한다. 긴장이 없는 예술과 이데올르기에 따르는 예술을 하느니 차라리 예술을 그만둔다는 의식이 있는 예술이 올바른 예술이다.
모든 문학적 의미는 미적 진보라는 텍스트의 구조로부터 나온다. 새로운 예술의 창작은 내용에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그 누구도 아직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형식은 침전된 내용이기에 진리는 재료를 조직하는 새로운 방식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적 진보’에 참여하지 않고 과거의 형식 언어를 고집하는 예술가는 미적으로만 퇴행적일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반동적입니다. - 아도르노.

대체로 전자는 사실주의 후자는 낭만주의나 상징주의, 예술지상주의의 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전자는 사실성(진실성)에, 후자는 미적 쾌감에 무게를 둔다. 전자는 내용, 후자는 형식을 더 중요시한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에 치중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이론상으로는 이 두 가지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해야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서는 시 전체를 이 두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시는 그 시인의 생각과 느낌의 표현이다. 좀 자세히 말하면, 그 시인의 세계관, 인생관, 사회관, 윤리관, 자연관 등과 다양한 정서가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황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어떤 사상과 정서가 배어 있을까? 이것이 감상의 핵심이다. 시를 감상하는 방법에는 내용 중심, 형식 중심, 두 가지의 종합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약간의 형식도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전제할 것은 가치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어느 한쪽만을 가지고 가치의 우열을 논하는 것은 완전한 논리가 아니다.

1. 진정성의 미학

시어詩語는 존재의 〈부름〉, 〈말 건넴〉에 대한 존재자인 시인의 응답이다. 다시 말하면 존재의 부름, 말 건넴과 존재자의 응답이 바로 언어다. 쉽게 말하면 시인의 사물(현상, 존재자)에 대한 본질(존재) 인식(해석)이 시이다. - 김준오, 『詩論』.

그러므로 시는 사물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1) 존재란 무엇인가?

황 시인의 세계관은 불교사상에 연관되어 있다. 불교의 핵심 사상은 연기(공) 사상이다. 공이란 모든 것은 조건(이유, 인연)에 의해 생겨났다가 조건이 변하거나 소멸하면 함께 변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고정불변이 아니라(실체가 없음, 무자성) 순간순간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일체가 비워진 바다의 파도 소리/ …/파도 소리에는/ 어떠한 소식도 담겨 있지 않다//…눈을 감으면/ 쪽빛보다 더 고운 빛깔의 바다가 보이고/…/수많은 사연을 들려주는/ 드넓은 바다/ 그 속에 하늘과 바다의 물방을 이야기// - 「파도 이야기」 부분

시끄러운 파도 소리를 일체가 비워진 것으로 인식하고 눈을 감으면 오히려 바다가 잘 보이는 이러한 경지는 분명 존재 인식 - 공사상의 표현이다. 그리고 바다에는 하늘과 바다가 하나(물방울)가 된 무차별의 불교적 세계관이 표현되어 있다.

… 하지만 당장 한 줄 그은 흔적이 없다 해도/ 그 시간이 영영 무의미하진 않은 거다//…
빈 뜰은/ 휑하게 비어 있는 건 아니다/ 그곳이 햇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 「빈 뜰」 부분.

이 시의 ‘비움은 비움이 아니라 충만’이라는 인식은 공사상을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세계이다.
이러한 불교적 세계관은 다른 시에서도 나타나 있다. 「인각사」에선 “독경 소리에 가슴 설레고/ 미련한 중생 불심에 젖습니다.”고 하여 신앙심을 나타내었고, 「인연」에서는 어린 시절의 인연이 다시 인연이 되어 만날 날이 있기를 빌고 있다.
시집 제목도 공사상을 상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시는 여덟 편이나 있다. 「사노라면」, 「물처럼」, 「산다는 의미」, 「담쟁이」, 「노다지의 꿈」, 「푸른 바다」, 「등대」, 「눈물의 운명」 등

산다는 게/ …/ 다정한 눈빛만 있었겠나/ … 가슴을 치며/ 불을 토한 적/ 어디 한두 번뿐이었겠나// 그럴 때는/ 밤하늘에 뜬 별도 사랑하고/ 외로움도 그리움도 사랑하고/ 슬픈 추억도 사랑하다 보면// 어느새… 다 잊혀진다네// - 「사노라면」 부분.

인생에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가슴이 막히는 일이 있을 때는 모든 걸 사랑하면 어느새 다 잊게 된다는 달관된 인생관을 보여주고 있다.

「산다는 의미」에서는 살다 보면 시련이 닥쳐오게 마련이고 그 시련을 극복하기 어렵지만 “서로가 기대란 꿈에 의지한 채/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보듬고 쓰다듬는 것이/ 인생”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서로 돕고 위로하며 사는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물처럼」에서는 ‘물은 잠자지도 쉬지도 않고 흐른다’는 점과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걸 잊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서 물처럼 낮은 자세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 시에서는 위의 두 가지 성질을 “물소리의/ 예민한 문장들을/ 해 질 녘에 소야곡처럼 듣는다”고 은유법과 직유법을 통한 낯설게 하기로 멋지게 표현하여 독자들에게 감동(쾌감)을 주고 있다.

또한 「푸른 바다」에서는 인생을 바다에 비유하고 있다. 즉 잔잔하면서도 거칠고, 고요하면서도 강하고,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듯이 인생에도 고난과 역경이 있고 환희와 기쁨이 있어 바다와 같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물결치는 바다처럼 끊임없이 물결치며 흐르는 것이 삶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잔잔해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담쟁이」에서도 인생을 읽는다. 즉 담쟁이처럼 “야멸차게 살다 보면 … 만사형통할 날이 있으리라” 하였다.
그리고 「등대」에서는 인생의 등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잘 암시되어 있다.

3)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

연륜 때문인지는 몰라도 황 시인의 시에는 죽음과 관련된 시가 많다. 「추모공원」, 「명복을 빕니다」, 「고사목枯死木」, 「사전 연명의료 동의서」 등이 그것이다.

… 일생을 다 채운/ 늙은 나무의 최후는/ 생명의 단절이며/ 연민의 정마저 끊어버릴 때/ 산하에 아득한 전설만 그득하게 남긴/ 고사목의 거룩한 흔적이다// 비로소, 삶을 완성하는 죽음을 보았다// - 「고사목」 부분

여기서 죽음은 작가에게 거룩한 ‘삶의 흔적이며, 삶의 완성’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므로 미련은 없으며, 죽음의 공포는 초월되어 있다.

「명복을 빕니다」에서는 “죽음은 일상에서 늘 호출되는 말”이며, “너무나도 흔해 빠진 단어다”라고 말하고, “죽음은 끼니마다 먹는 밥처럼 수다의 밥상 위에 오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죽음이 나에게는 맨 나중에 찾아오리라고 착각을 하지만 “어느 날 약방의 감초처럼 찾아온다”고 하였다. 죽음의 일상성과 돌발성, 필연성 등 죽음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다.

또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에서는 죽음을 어느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죽음은 고향으로 가는 것/ 두려울 것도 싫어할 것도 없지 않은가”라고 하며, “불필요한 연명을 끊을 죽음의 권리”를 지키며 “아름다운 작별”을 하고 싶다고 한다. 죽음은 두려워하거나 싫어할 것이 아니므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4) 윤리란 무엇인가?

황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윤리관을 보이고 있다. 효심이 그 핵심이다. 그것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효심을 나타낸 시에는 「아버님전 상서」, 「보고 싶은 어머니」, 「엄마 오리」, 「어미새」가 있다.

「아버님 전 상서」에는 먼 타국에 계실 때와 근 30년 만에 상봉했을 때 자식 노릇을 못한 것을 후회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신 홀로 외로움과 섭섭함을 달랬을/ 당신 마음 두고두고 헤아려 봅니다/ 오늘 밤 별빛 하나 없는/ 밤하늘에 종이처럼 붙어 있는 초승달을 향해/ 엎드려 눈물 속에 후회합니다//”

가슴을 찢는 간절함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시다. “밤하늘에 종이처럼 붙어 있는 초승달”이란 이미지가 우리를 더욱 가슴 저리게 한다.

또한 「보고 싶은 어머니」에선 떠나신지 40여 성상이 지나도 한없이 어머니를 불러본다고 하고,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가슴 시리고/ 명치끝을 찌르는 아픔이 옵니다”고 토로하고, 어머니가 멀리 떠나신 후에야 어머니의 사랑이 “신을 대신할 만큼 위대했던 것을 … 한없이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얼굴이 그리워 어릴 때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싶습니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역시 진정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시이다.
「어미 새」는 먹이를 먹여주는 어미 새를 통해서 모성본능을 알레고리하였고, 「엄마 오리」는 모정을 알레고리한 시로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시이다.
이런 진정성을 드러내는 시에는 그의 애정관을 보이는 시들에도 있다.

5) 사랑이란 무엇인가?

황 시인은 연세가 많지만 아직도 사랑에 대한 불꽃을 피우고 있다.

…아름다웠던 사랑/ 차마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과거/ 꽃처럼 아름답던 날/ 떠난 그 사람 다시 볼 날은 있으려나// 끝내 고백하지 못했던 사랑/ 꽃잎이 떨어지고 난 뒤/ 잎이 돋아나는 상사화처럼/ 삶을 허탕 짚고 비로소 그리워지는 사랑/ 언제 딱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은/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그 사랑// - 「상사화처럼」 부분

떠난 애인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잘 나타나고 있다. 사람만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랑도 그리운 것이다.

- 전략 -
… 금혼식날 친지들 축하를 받았어도/ 당신을 향한 알뜰한 사랑은 여전합니다/ 언제부턴가 당신을 하늘이라고 최면 걸면서/ 백발이 성성해도 오매불망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 「당신을 사랑합니다」 부분

반백년이 지나도 당신을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으며, 당신을 하늘로 섬기며 사랑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대단한 정열이 느껴지며 진정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시다.

「그리운 고향」은 고향이 그리운 것이 아니고, 애인과의 약속을 못 잊어 “두견새처럼 섧게 섧게 울었습니다”, 그녀의 모습을 지울 수 없어 “바보처럼 목 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이름은 잊어도 눈빛만은 잊을 수 없어 “꽃무릇처럼 붉게 울었습니다”고 표현하고 있다.
옛 애인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절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6) 고향이란 무엇인가?

황 시인은 애향심이 대단히 강한 사람이다.

「팔공산 능금」은 능금이 이브가 따 먹은 금단의 열매이고, 산새들도 좋아하는, 빛깔이 아름다운 내 고향의 특산물이어서 자랑스럽다는 시다.
「축복의 땅 군위」는 군위가 대구시에 편입되고 공항 도시로 발전한 것을 마치 하나님이 약속한 복지 - 가나안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것으로 표현하고, “이보다 더 좋은 고향 소식이 또 어디 있으랴나”라며 몹시 즐거워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시다.
「망향」은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산하”를 찾는 것은 “혈연 때문이다.” 대대로 조상들이 묻혀 있는 “적요한 공간”이 있고, “뿌리에서 가지까지 뻗어 본 텃밭”이 있는 고향의 산하를 잊을 수 없다고 하는 시다.
그리고 시집 말미에 「그리운 고향」 세 편이 연속으로 실려 있는데 1은 이별한 옛 애인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잊을 수 없다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고, 2는 고향이 대구시로 편입되고 공항이 들어와서 기쁘다는 것이고, 3은 고향에는 돌멩이 하나에도 추억이 들떠 있으며, 어릴 때의 친구들과의 추억을 잊을 수 없으며, 그 이름을 실컷 불러보고 싶고, 친구들과 추억을 더듬으며 밤을 새우고 싶다는 시다.
이와 같이 고향에 대한 시를 많이 쓴 것은 그가 애향심이 강하다는 증거이며, 그 마음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시들은 자의식을 보이는 시들이다. 그것은 늙음에 대한 허무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신념을 나타내는 시들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시들을 보자.

허구한 세월에 뒷덜미가 잡혀/…긴 한숨만 쉬는 양복 한 벌//한 때는/ …랄랄라 노래 부르며 대명천지 설쳤다//… 젊은 세월 다 지나고 보니/… 인연들이/ 이별의 통고 없이 하나둘 가버렸다// …세월에 짓눌린 헌 양복에는/ 미친 듯 벌거벗은 내 이력서가 헐렁거린다/ 지울 수 없는 내 지난날의 자화상이다// - 「헌 양복 한 벌」 부분

이 시에서 헌 양복은 나의 이력서이며, 자화상이다. 한때는 대명천지를 설쳤지만 지금은 한숨만 쉰다. 친구들도 다 가버렸다. 늙음에 대한 탄식(허무감)이 밴 자의식의 시다.
「용케도 참았구나」는 발톱을 깎다가 “멍들고 이지러져 흔적마저 없다시피 한 새끼발톱”을 발견하고, ‘고생을 용케도 잘 참고 살아온 나’를 발견하는 시다. 이와 같은 자기 발견이나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는 거짓이 있을 수 없으며 진솔하다. 따라서 진정성이 잘 드러나는 시로서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다.
「주름진 손」에도 늙음에 대한 감정이 솔직히 표현되어 있어 진정성이 느껴진다.

다음, 황 시인의 이번 시에는 신념을 나타낸 시들이 몇 편이 있는데 여기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 구둣발에 짓밟혀도/ 자동차의 매연가스를 마실지언정/ 잡초가 살아가는 문법으로/ 틈새를 벌려 살아나갈 것이며/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볼 것이며/ 이름 없는 잡초지만 꿈을 쟁취하기 위해/ 보란 듯이 옹기종기 옹골차게 도전할 것이다// - 「위험한 도전」 부분

글자 그대로 잡초처럼 강인하게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시다.

… 뿌리침을 당하고 밀려나더라도/ 환심을 사려고 애쓰지 않고/ 부당하다 싶으면/ 아쉬운 것 없이 털어버릴 수 있었던 건/ 날뛰지 않아도 배어나는 당당함이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무너뜨릴 수는 없고/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건, 오직 나야 나!// - 「나야 나!」 부분

당당함과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강한 의지는 비유보다 직설법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그것이 진정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감은 「노익장」에도 나타나 있다.

7)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시들

가) 빈자와 약자에 대한 연민

황 시인은 빈자와 약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보낸다.
「빈 수레」는 빈부의 격차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도시 문명을 고발한 시다.
“폐지 한 다발 내놓지 않는/ 저 높다란 콘크리트 벽 안에서/ 빈 수레를 끄는/ 등 굽은 노인의 세상이 보일까나”라는 시구에는 이웃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적인 가진 자들을 비판한 것이다. 2연에서는 “티끌 하나 없는/ 한낮의 땡볕”과 “롤스로이스 외제 차”를 대비하여 청렴한 빈자와 허세를 부리는, 자기밖에 모르는 부자를 대조하고, 3연에서는 호화 고층아파트를 “콘크리트 성”에 비유하여 단절된 우리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존재감이 없는 소외된 빈자(약자)를 “얼굴 없는 노인”으로 비유하고 있다.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시로 리얼리티가 선명하게 잘 살아난 시이다.
「고물상」도 위와 비슷한 주제의 시다. 고물 줍는 노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담은 시다. 여기서 화자는 그 노인을 통하여 미래의 나의 초상화를 보는 듯하여 아찔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저 노인이 저런 힘든 삶을 죽는 날까지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어둡고 슬픈 생각을 하기도 한다.
「틈새 핀 꽃」은 소외된 약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표현한 시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먼지를 덮어쓴 가냘픈 꽃”이 오히려 “바람에 온몸을 떨면서/ 인간들을 위로하는/ 알쏭달쏭한 향기를 띄운다”고 반대로 표현하고 있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이러한 이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시이다. 이것은 작가가 그만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나)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

황시인은 또 사소한 것, 우리가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것, 무가치한 것으로 보는 사물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꽃마리」, 「신발」, 「이름 없는 꽃」 등이 그것인데, 여기서는 「꽃마리」 한 편만 보기로 하자.

이름도 예쁜 꽃마리/ 칼바람에도 버티는 귀한 생명/ 길바닥 틈새를 비집고/ 올망졸망 모여 다소곳이 핀 꽃마리들// 꽃샘추위에도 아랑곳없이/ … 눈곱만한 꽃들이/ 오순도순 웃음꽃을 피우네// … 앙증맞은 미소가/ 영락없는 한 송이 예쁜 꽃마리다// - 「꽃마리」 부분.

여기서 ‘꽃마리’는 예쁘고, 생명력이 강하고, 남을 알고, 겸손하고, 시련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낙천적이고, 귀엽다. 이런 사소한 것들(타자들)을 자신과 동등하게 인정하는 만물 평등사상과 타자들에게서 가치를 발견하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은 오늘날과 같은 각박한 현실에서 우리 모두가 간직해야 할 고귀한 정신이 아닐 수 없다.

다) 사회를 비판한 시들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것은 지식인이나 시인들의 사명일 수도 있다. 이른바 사회나 문명에 대한 비판을 하는 시를 우리는 참여시라고 하여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이런 시들은 지적이고 현실에서 진실을 발견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학성보다 사실성에 더 중점을 둔다. 역시 진정성을 중요시하는 시의 한 경향이다. 황 시인도 이런 의식에 무관심하지 않다. 이런 류類의 시들에 「파수꾼」, 「양계장의 뜰」, 「트로트」, 「건달들처럼」, 「코로나19」, 「눈 뜨고 못 봐」, 「갑론을박」, 「건설현장」 등 여러 편이 있다.

… 권력에 맞서 비판하고 바로잡아줘야 할/ 지식인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권력에 아첨하여/ 나팔수가 되는 게 아니라/ 잘못에 대한 비판이 지식인의 책무다// 존경받던 지식인은/… 매의 눈을 찾기 어렵다// … 앙가주망의 소명을 내려놓은/ …지식인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허공만 응시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나뭇가지에 앉아 세상만 두리번거릴 뿐/ 그 틈에, 온갖 가짜들이 틀어 챙겼다// - 「파수꾼」 부분

사회의 파수꾼이 되어야 할 지식인들이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은유와 상징 등의 수사를 사용함으로써 진정성(사실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살린 좋은 시다.

고고한 소나무들 사이로/ 아카시아와 칡넝쿨 잡목들이/ 건달들처럼/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덮친다// … 넌더리 나는 잡목들이/ 마른 땅 진 땅 가릴 것 없이/ 한여름 내내 후려치는 등살에/ 참다 참다 일그러진 소나무의 속앓이// - 「건달들처럼」 부분.

잡목과 소나무를 소인과 대인, 건달과 군자에 비유하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비정상적인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재미있는 시다.
「양계장」은 물신주의를 신봉하는, 관리되는 조직사회에서 기계와 상품으로 전락한 현대의 도시인을 풍자한 시이고, 「눈 뜨고 못 봐」는 꼴불견인 세상을 비판 시다. 「갑론을박」은 갈등만 부추기는 세상이 싫다는 시이고, 「건설현장」은 현장소장의 솔직하고, 진정성이 담긴 목소리(사투리)를 빌려 현장감을 살린 특이한 시다.

작가는 이와 같은 시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우리가 사는 현실(사회)에 대해서 새로운 눈을 열어줌으로써 교훈과 쾌감을 주고 있다. 작가의 건전한 사회의식을 엿볼 수 있는 시다.

지금까지는 진정성에 바탕을 둔 시들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는데 이제 예술성에 집중한 시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2. 예술성에 집중한 시들

밤이면 쉽게 잠기는 곶/ 이곳에 이르러/ 파도는 급격히 허물어지고/ 비와 구름은/ 제 문법을 수시로 바꾼다// 내 파수막의 친구는/ 어둠뿐이며/ 손바닥 크기의 수신호 하나가/ 흔들리는 항로를/ 어둠의 혼란에서 끌어낸다// 밤바다에 고기를 모으듯/ 빛을 분사하는/ 조용한 창문이 있고/ 갈매기가/ 그 위를 소식처럼 떠다닌다// - 「등대」 전문

이 시는 정서(고독과 적막감)가 아주 잘 표현되어 있고 낯설게 하기가 사용되어 문학성이 매우 높은 시이다. 낯설게 하기는 “파도는 급격히 허물어지고/ 비와 구름은/ 제 문법을 수시로 바꾼다”, “내 파수막의 친구는/ 어둠뿐이며”, “갈매기가/ 그 위를 소식처럼 떠다닌다.”에 나타나 있다.
「눈물의 운명」은 인생이 ‘눈물로 태어나서 눈물로 마치는 것’이지만 “눈물의 운명을 절절하게 사랑할 것이다.”라고 숙명적 슬픔을 도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슬픔을 극복하겠다는 것으로 역설적 표현을 통해서 강한 울림을 주는 시다. 슬픔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인생을 달관한 모습을 보여주는 시다.

늦은 밤에 누가 따라붙는다/ 당신은 누구신가?/ 나는 외로움이란 그림자/ 그런데 하필이면/ 내 곁에 소리 없이 따라오는가?/ 말 못 하는 영혼이 너무너무 외로워서// 사람들은 저마다/ 외로움이란 그림자를/ 하나씩 곁에 두고 산다/ 그림자와,/ 함께 있으면 평생 외롭지 않을 거야/ 우린 떨어질 수 없는 영원한 단짝이니까// - 「그림자」 전문.

이 시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노래한 시다. 그것은 외로움이다. 화자는 이 시에서 그걸 “우린 떨어질 수 없는 영원한 단짝”이라고 절친한 친구에 비유하고 있다. 그렇다. 인간은 언제나 혼자다. 외로움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버릴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이 시에서는 그래서 외로움을 적극 수용한다. 외로움과 함께(동거)하면 외롭지 않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의 특징은 구성상 1연은 ‘나와 내면의 나’와의 문답식이고, 2연은 자기 독백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상징과 역설법을 사용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나타내었다. 이 시의 감동적 요소는 2연의 역설적 표현에 있다.

아침마다 신발장을 열어놓고/ 함께 뛸 파트너 선발에 적잖이 고민한다/…// 옆자리에 앉은 거무튀튀하게 낡은 구두가/ 배시시 웃으며 빤히 쳐다본다/ 그간 마소처럼 혹사해 뒤축이 영 망가져/ 구두병원에도 절대 입원 불가란 통보다//… 버려야 하나 마나를 쉬이 결정짓지 못하고/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알지 못하는 구두는/ 오도카니 홀로 앉아 시무룩한 표정이다// - 「신발」 부분.

이 시는 낡은 구두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을 나타낸 시다. 이 시의 예술성은 2연과 3연의 낯설게 하기에 있다. 그것은 2연의 구두가 나를 선택해 달라는 듯 “배시시 웃으며 (주인을) 빤히 쳐다본다”는 표현에 있다. 의인법을 사용한 새롭고 재미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3연의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는 주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구두가 “오도카니 앉아 시무룩한 표정이다”라는 표현에 있다. 이 또한 의인법에 의한 낯설게 하기이다. 구두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이유는 토사구팽 당하지 않을까 혹은 선택받지 못할까 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쭈그러진 구두의 모양을 묘사한 것이지만 구두를 의인화하여 화자의 심리를 감정 이입한 것이다. 신발이라는 사물을 통하여 화자의 심리를 잘 표현한 시다.
이 외에 「매미야 가거라」, 「풍란」, 「붉은 장미꽃」, 「낙엽」, 「이름 없는 꽃」, 「폭풍」 등도 예술성을 높이는 새로운 시도들이 보이는 시들이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바 황성창 시인의 이번 시집의 시들은 진정성에 토대를 두고 그 위에 예술성을 꽃 피운 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가 대체로 사유의 깊이가 있고 진정성이 있으며, 문학에 대한 열정이 아직도 뜨겁게 불타고 있어 앞으로 더욱 좋은 시를 생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쪼록 더욱 정진하여 부산 문단, 아니 한국 문단을 빛내는 별이 되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1부 _ 파수꾼

1. 파수꾼
2. 등대
3. 넌, 행복한가
4. 그림자
5. 어느 노부부
6. 헌양복 한 벌
7. 눈물의 운명
8. 선혈 낭자한 동백꽃
9. 고사목枯死木
10. 아버님 전상서
11. 팔공산 능금
12. 실버들의 사랑 타령
13. 눈빛
14. 인연

2부 _ 성찰의 시간

1. 빈수레
2. 신발장
3. 양계장
4. 구름진 손
5. 보고 싶은 어머니
6. 위험한 도전
7. 나야 나
8. 미래로 열어가는 축복의 장
9. 노익장
10. 명복을 빕니다
11. 인각사
12. 틈새 핀 꽃
13. 성찰의 시간
14. 트로트

3부 _ 사노라면

1. 사노라면
2. 상사화처럼
3. 담쟁이덩굴
4. 어미새
5. 매미야 가거라
6. 갈매기 꿈
7. 대나무
8. 여름 지나 가을이 오면
9. 빈 뜰
10. 갈대꽃
11. 당신을 사랑합시다
12. 건달들처럼
13. 풍란
14. 노다지의 꿈

4부 _ 이름없는 꽃

1. 붉은 장미꽃
2. 사전연명 의료 외향서
3. 시래기
4. 낙엽
5. 코로나 19
6. 이름없는 꽃
7. 눈 뜨고는 못 봐
8. 물처럼
9. 미움을 아는 나무
10. 폭풍
11. 용케 살았구나
12. 푸른 바다
13. 엄마 오리
14. 택배 화물

5부 _ 가을이 물든 바람

1. 산다는 의미
2. 갑론을박
3. 고물상
4. 꽃마리
5. 파도 이야기
6. 봄을 기다리는 생명
7. 추모공원
8. 가을이 물든 바람
9. 가을 - 1
10. 가을 - 2
11. 망향
12. 그리운 고향 1
13. 그리운 고향 2
14. 그리운 고향 3

1. 파수꾼


자유와 진실을 억압하는
권력에 맞서 비판하고 바로잡아줘야 할
지식인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권력에 아첨하여
나팔수가 되는 게 아니라
잘못에 대한 비판이 지식인의 책무다

존경받던 지식인은
현실 참여에서 하나둘 사라졌고
매섭게 부릅뜬 매의 눈은 찾기 어렵다

앙가주망의 소명을 내려놓은
별빛처럼 빛나던 지식인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허공만 응시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나뭇가지에 앉아 세상만 두리번거릴 뿐
그 틈에, 온갖 가짜들이 틀어 챙겼다


2. 등대


밤이면 쉽게 잠기는 곳
이곳에 이르러
파도는 급격히 허물어지고
비와 구름은
제 문법을 수시로 바꾼다

내 파수막의 친구는
어둠뿐이며
손바닥 크기의 수신호 하나가
흔들리는 항로를
어둠의 혼란에서 끌어낸다

밤바다에 고기를 모으듯
빛을 분사하는
조용한 창문이 있고
갈매기가
그 위를 소식처럼 떠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