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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 세네갈

아프리카가 낳은 천재적 지성, 레오폴트 세다르 상고르(Lepold Sedar Senghor, 1906~2001)가 “약속의 땅(terre promise)으로 묘사한 세네갈공화국(Republique du Senegal)은 아프리카대륙 최서단에 자리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약 500km의 해안을 끼고 대서양에 접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세네갈강(Le Senegal)을 사이에 두고 모리타니(Mauritanie)와, 동쪽으로는 세네갈강의 지류인 팔레메강(La Faleme)을 사이에 두고 말리(Mali)와, 그리고 남쪽으로는 기네-비소(Guinee-Bissau) 및 기네(Guinee)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세네갈 영토 중앙에는 1965년 영국 자치령으로 독립한 소국 감비(Gambie)가 감비강(La Gambie)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세네갈은 감비와 함께 한때 세네감비연방(Confederation de Senegambie, 1982~89)을 결성하기도 했으나, 본 연방이 해체된 1989년부터 별개의 독립국으로 남아 있다. 세네감비연방의 해체로 세네갈 본토와 지리적으로 구분된 남부 세네갈의 카자망스강(Le Casamance) 유역이 오늘날 분리주의 운동으로 정국이 불안정한 카자망스(La Casamance) 지역에 해당한다.
세네갈은 전국적으로 해발 100m 내외의 평지로 구성되어 있지만, 감비강 상류인 남동부 지역은 기네에 위치한 푸타잘롱(Fouta-Djalon) 고원과 연결되며 해발 400m 내외의 산악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네갈의 북부는 매우 건조한 사헬 지역인데, 오늘날 계속되는 가뭄과 기후변화 등의 여파로 사막화의 위기가 점차 심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감비강과 카자망스강이 흐르는 세네갈 중남부 지역은 건기(12~5월)와 우기(6~11월)가 매우 뚜렷한 사바나 기후대에 해당하며, 연평균 1,500mm에 육박하는 강우량 덕분에 생물다양성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지역이다.
행정적으로 세네갈은 14개 주(Regions)와 45개 도(Departements)로 나뉘어 있다[그림 3]. 행정수도인 다카르(Dakar)는 다카르주(Region de Dakar)의 베르데곶(Presqu’ile du Cap-Vert) 끝에 자리하고 있다. 국토는 약 196,000km²로 한반도의 면적(약 220,000km²)과 비슷하며, 인구는 약 1,773만 명(202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경제적으로는 농업, 어업, 광업, 관광업 등이 발전해 있으나, 대다수의 노동 인구가 땅콩 산업에 종사할 정도로 농업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2022년 기준 GDP 총액은 미화 약 700억 달러, 1인당 GDP는 약 4,100달러로 경제 규모 150위권 내외의 최빈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인종적으로는 월로프인(les Wolofs)이 대략 600~700만 명(40~45%)으로 주류집단을 형성하고 있으나, 펄인(les Peuls, 20~25%), 세레르인(les Sereres, 10~18%), 말링케인(les Malinkes, 4~5%), 디올라인(les Diolas, 5%), 소닝케인(les Soninkes, 4%) 등의 소수 인종도 역사를 공유하는 유력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프랑스의 식민 통치를 경험한 탓에 행정적으로는 프랑스어가 공용어이나, 국민의 대다수(40~93.5% 이상)는 월로프어(le wolof)를 통용어(Lingua franca)로 사용하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무슬림이 압도적이지만, 디올라인의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는 카자망스 지역은 기독교인의 비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22년에 발표된 세계식량기구(World Food Programme)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네갈은 조사 대상 189개국 가운데 인간개발지수 168위(2020년 기준)로 최하위 수준에 위치하며, 전체 인구의 39%가 하루 1.9달러 미만의 절대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특히 생후 6~59개월의 아동들 가운데 약 20%가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으며, 1,000당 유아사망률이 33.6명(한국은 2.9명)에 이를 정도로 매우 심각한 사회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래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15세 이하 청소년의 문맹률이 57%를 웃돌며, 열악한 보건의료로 인해 국민의 기대수명이 평균 68세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카자망스 등 일부 지역에서는 분리주의에 기반을 둔 분쟁과 폭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국가 지도층들의 부정부패, 족벌주의, 정실인사 등의 뉴스가 끊이질 않으면서 국정 운영에 암운이 드리워 있다.

그런데도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많은 국가로 알려져 있다. 사실 세네갈은 상고르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될 때만 하더라도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풍부한 인프라와 인적 자원을 갖춘 나라였으며, 또한 ‘세네갈의 네 코뮌(Les Quatre Communes du Senegal)’의 주민들은 프랑스가 노예제를 폐지한 1848년부터, 특히 프랑스 제3공화국 출범한 1870년 이후부터 자유선거-비록 원주민에게는 제한된 권리이기는 했지만-를 경험하며 민주주의를 몸소 체득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세네갈은 주변의 서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1960년 독립 이후 단 한 차례의 쿠데타도 없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나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프라 덕분에 세네갈 국민은 언젠가는 자국이 상고르가 희망한 “약속의 땅”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 역시 이를 기대하면서 찬란하지만 다사다난했던 세네갈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아쉬운 점은 국내에 세네갈 관련 자료들이 많지 않아 자료수집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는 것이다. 필자는 자료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미국 스캐어크로우 출판사(The Scarecrow Press)가 출간한 『말리 역사 사전(2008)』과 『세네갈 역사 사전(1994)』을 중심으로 관련 연표와 사건을 정리했다.
또한 사료를 통해 접하기 힘든 소중한 구술사적 자료들은 음부와티(L. Mbouity)의 『말리공화국의 역사(2017)』와 『세네갈공화국의 역사(2017)』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존 파지(John D. Fage)와 롤랑드 올리비에(Roland Oliver)가 편찬한 『켐브리지 아프리카 역사(1975)』 -특히 아프리카 고중세사를 서술한 2권과 3권-도 본 저술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필자는 몇 년 전 서아프리카의 인접국 말리공화국의 역사와 관련된 저술을 탈고한 바 있는데, 세네갈과 공유하는 몇 가지 역사와 관련해서는 앞서 출간한 『말리의 역사(2019)』에서 상당수 끌어왔음을 밝혀둔다. 아무쪼록 이 책이 세네갈의 역사를 반추해볼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서문 “약속의 땅”, 세네갈
제1장 선사 및 원사 시대
제2장 서아프리카의 고대 왕국들
제3장 토착 왕국의 성장
제4장 말리 왕국
제5장 졸로프 왕국
제6장 소왕국들의 성장
제7장 이슬람 세력의 서아프리카 진출
제8장 중상주의 이데올로기와 아프리카 노예무역
제9장 식민역사의 시작
제10장 범아프리카 민족주의 운동의 전개
제11장 전후 체제와 독립투쟁
제12장 세네갈공화국의 출범
제13장 정권 교체와 위기

제1장 선사 및 원사 시대

선사 시대(Prehistoire)

세네갈에서 발견된 최초의 고인류 흔적은 세네갈 동남쪽 케두구주(Region de Kedougou)의 팔레메강(La Faleme) 유역에서 확인된다. 이들 흔적은 약 35만 년 전의 것으로 추측되지만, Ndiouga Benga & Mandiome Thiam, “Prehistoire, protohistoire et histoire”, in Atlas du Senegal, Paris: Editions J. A., 2007, p. 75.
아쉽게도 본격적인 발굴이나 고고학적 연구가 진행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을 비롯하여 베르데곶의 일부 지역에서는 전기 구석기 시대-적어도 30만 년 이전의-의 대표적인 유물인 아슐레안(Acheuleen) 방식의 주먹도끼와 손도끼 등이 다수 발견되어 이러한 추측이 불가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중기 구석기 시대(약 30~3.5만 년 전)를 대표하는 르발루아(Levallois) 기법의 긁개와 밀개 등의 유물도 베르데곶과 세네갈강 중하류, 그리고 세네갈 동남부의 니오콜로 코바(Niokolo Koba) 국립공원 등지에서 고르게 출토되고 있다. 티에스주(Region de Thies) 남부의 대서양변에 위치한 음부에(M’bour) 지역에서는 후기 구석기 시대(3.5~1.2만 년 전)의 유물인 주먹도끼, 창두, 화살촉 등이 발견되어 수렵이나 어로 등과 같은 경제활동의 존재를 입증해주고 있다.

수렵이나 어로 등의 채집 경제에서 생산 경제, 요컨대 경작, 가축사육, 정주 활동, 토기 제작 그리고 더욱 정교하게 연마된 석기의 사용을 보여주는 신석기 시대의 출현은 아프리카의 경우 약 1.5만 년 전에서 기원전 1,000년 사이로 확인된다. 세네갈에서는 1940년 다카르주 마뉴엘곶(Cap Manuel)의 사구에서 현무암을 기하학적 모양으로 연마해 만든 섬세한 주먹도끼와 주먹대패 등이 발견되어 신석기 시대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좀 더 정교한 신석기 시대의 유물은 다카르 인근 벨레르(Bel-Air) 지방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는 규석으로 제작된 기하학적 형태의 섬세한 연장과 장신구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유물은 ‘티아로예의 비너스(La Venus de Thiaroye)’라 명명된 여인의 조각상이다. 1966년 다카르주 티아로예(Thiaroye-sur-Mer) 지역의 어느 사구에서 발견된 이 조각상은 길이 80mm, 두께 25mm의 크기이며, 의인화된 여인의 형상을 음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중앙에 패인 부분은 배꼽을, 포물선은 잉태한 배를, 역삼각형은 성기와 다리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윗부분의 곡선으로 머리카락을 표현하고 있지만, 얼굴과 가슴은 과감하게 생략한 것이 인상적이다. 기원전 20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이 조각상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종교적인 예술품으로 서아프리카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석기 예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네갈강 하류의 범람원인 칸트(Khant) 지역에서도 이곳에 정착한 신석기인-주로 남부와 동부에서 이주해온-의 어로 활동을 보여주는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주로 뼈와 나무를 이용해 만든 낚싯바늘과 어업용 도구들이 발굴되었고, 농경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토기류도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매장지에서는 악어나 물소 등과 같은 야생동물의 뼈뿐만이 아니라, 양, 염소, 돼지, 개 등과 같이 사육이나 정주를 입증하는 동물의 뼈들도 잇따라 발견되었다.

세네갈 동남부 팔레메강 유역에 있는 세네데부(Senedebou) 지역에서는 빻거나 찧는데 사용한 생활 도구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빛깔의 암석들, 예컨대 사암, 벽옥, 적철광, 현무암, 편암, 석영, 규석 등을 정교하게 연마해 광택을 낸 도구와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이들 유물의 다수는 학술적인 발굴보다는 팔레메강이 범람하여 형성된 퇴적층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들이 많아 신석기 시대에 대한 고증은 아직 더딘 형편이다.

원사 시대(Protohistoire)

원사 시대(Protohistoire)는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의 중간 시기로 문헌 사료는 존재하지 않지만 패총, 봉분, 거석, 토기 등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 부분적으로 혹은 외적으로 역사를 읽어낼 수 있는 시기를 일컫는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서구에서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인류가 금속을 제련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까지로 이해된다. 그런데 아프리카인은 서구인의 침략 이전까지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학자는 전(前)식민 시기 전체를 모두 ‘원사 시대’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지역에 진출한 이슬람 세력에 의해 고대 문명의 존재가 고증되기 시작하면서 학계 경향은 고대 왕국의 출현 이전까지의 시기, 예컨대 세네갈의 경우에는 4~6세기경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테크루 왕국(Le royaume de Tekrour)의 출현 이전까지를 흔히 ‘원사 시대’로 이해하고 있다.

세네갈에는 크게 두 종류의 원사 시대 유물과 유적이 확인된다. 먼저, 세네갈 중서부의 대서양 연안, 즉 조알(Joal-Fadiouth) 지역에서 살룸강(Le Saloum) 삼각주를 거쳐 카자망스강(Le Casamance) 하류의 퇴적층에 이르는 해안지역에서 발견된 대규모의 패총 유적이 그것이다.
특히 살룸강 삼각주의 경우, 현재까지 관찰된 패총의 수만 해도 무려 200여 개를 웃돌며, 이들의 평균 높이가 약 8~12m, 평균 길이가 약 50~100m-이들 가운데 가장 긴 유적은 약 800m-에 달할 정도로 광대한 규모를 자랑한다[그림 5].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14개 패총은 기원전 약 400년경에 형성되어 적어도 서기 8~16세기까지의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또한, 28개의 패총에서는 장례와 매장 풍습을 확인할 수 있는 봉분도 다수 확인되었는데, 특히 티우판-부막 및 티우판-분도(Tioupane-Boumak & Tioupane-Boundaw) 지역의 패총에서는 하나의 패총에서 무려 222개의 봉분이 확인되어 당대의 지역사회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총 145ha에 달하는 살룸강 삼각주의 패총 유적은 서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정착했던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진정성 있게 보여줄 뿐 아니라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는 측면에서 2011년 “탁월한 보편적 가치(valeur universelle exceptionnelle)”를 지닌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