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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교의 『하얀 꽃들의 사연』은 크게 5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인생도 화초도
구십을 바라보면 망구(望九)라고 하는데, 그럼 우리 친구들은 모두 망구란 말인가. 작년까지만 해도 자주 몰려다녔는데 이제 봄이 되었으니 다시 시작이 되겠지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다고 이대로 가라앉을 수는 없지 않나 싶다.
아직은 모두 건강했고 모였다 하면 웃음꽃부터 터트리니 이 친구들이야말로 자가 발전적인 청춘을 끊임없이 가동할 수 있는 능력자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간단한 점심 식사를 끝내고 친구가 그려 온 그림을 전시해 놓고 하프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 몇 해 전 떠난 마나님이 두고 간 하프를 혼자서 다시 연습한 것이다. 그 애틋한 사랑이 아니었으면 Amazing Grace를 찬양할 수 있었겠나 싶다. 아직도 멈출 수가 없는 정열은 가히 위대할 따름이었다.
참 재주꾼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혼자 하프를 연습하는 동안 마나님 생각은 얼마나 했을까 생각하니 누구에게나 이런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강을 그린 풍경화를 걸어 놓고 보니 앞에도 한강이요 뒤에도 아름다운 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언제나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곧 90을 통과할 것이고 100세를 거뜬히 맞을 것이 아니겠는가. 오직 건강하길 바랄 뿐이다.
세상에 위대한 명작은 거의 인생 말년에 이루어졌다는데 이 극명한 사실을 믿어 보고 싶다. 그러고 보면 연륜은 그냥 쌓이는 세월이라고만 할 것인가. 이 친구에게는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을 기대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친구들은 우리 집 화초들을 잘 키웠다고 칭찬을 해 주었지만 잘 키운 것이 아니고 저절로 잘 자라고 있을 뿐이다. 나는 화초에 대해서 경험이나 아는 것도 별로 없는데 또 관심을 갖고 돌볼 형편도 못 되었다. 그저 한 번씩 마르지 않도록 물이나 주는 정도이지 분갈이를 해 준 적도 없고 그냥 속으로 편안한 사랑으로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여간해서 새로운 화초를 욕심내거나 사들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우선 장소가 베란다로 한정된 상태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집 화초의 특징은 다들 30년 내지 40년을 넘게 나이를 먹고 주인처럼 늙어가고 있었다.
그중에 한 2년 전 어느 지방 카페에 들렀다가 하얗게 핀 꽃 기린을 보았다. 꽃기린은 우리집에도 있지만 빨간 꽃이 일 년 내내 피는 좋은 화초였는데 하얀 꽃은 처음이고 흰색의 청초함이 너무도 아름다워 주인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더니 흔쾌히 잘라 주었다. 친구와 나누어 가졌는데 또 한 친구는 살리지도 못 할 텐데 더구나 꽃을 피우고 있는 화초를 자르다니 속으로 원망했다고 오늘에서야 실토를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집 흰색 꽃기린은 키도 많이 자라 건강했고 싱싱한 잎 사이로 희고 깨끗한 꽃이 만발한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때 인연을 생각하니 더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나와 나누어 가지고 갔던 친구는 단독주택이니 꽃기린을 더 좋은 환경인 마당에 심어도 꽃 몇 송이는 피는데 나무 자체는 아직 빈약하다고 했다.
건강하고 튼실한 우리 꽃기린을 보고 놀라면서 비결을 물었지만 3일 정도로 쌀뜨물 한 컵이 고작이라 하니 모두 놀랐다.
윤기 자르르한 고무나무, 잎이 더부룩하고 키가 큰 벤자민, 늘씬한 산세베리아, 죽은 줄 알았던 소철과 문주란이 새봄을 맞아 다시 생명을 찾아 잘 자라고 있었으니 이렇게 잘 키우는 노하우가 무엇이냐고 물어볼 만도 했다.
예부터 집안에 우환이나 근심이 있으면 먼저 그 집 장맛이 변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집안의 운기에 따라 변하는 장맛처럼 화초 역시도 민감해서 영향이 있다는 친구의 주장이었다.
나는 평소 남편의 건강 때문에 여행이나, 같이 행동해야 할 때 망설이면 친구들이 위로하고 걱정을 하면서 양보를 해 주기도 했는데 오늘 이 화초들의 싱싱하고 화려한 성장 모습에서 친구들은 우리 가정의 운기를, 즉 말하자면 이 집 가장(家長)의 의외로 강한 의지력을 보았다면서 그러니 화초들에게서 놀라운 활력을 읽었다고, 조금도 걱정 말라는 격려와 위로에 눈물겨운 감동을 받았다.
그렇다. 나는 화초에 쏟을 만한 시간도 없었지만 아는 것도 없다. 그러나 오늘 새로운 사실로 나는 물론 우리 가족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인생 여정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신비와 자연의 이치가 심오한 뜻이 있다는 것을 오늘 우정 속에서 찾았고 얻은 것이 감사했다. 참으로 신기하기도 했지만 뜨거운 정이 가슴을 훈훈하게 했다.
지난겨울 40년이나 정든 문주란을 잃고 상심했을 때 우리 인생도 같은 길을 가겠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는데 이 봄에 그들이 다시 생명을 추슬러 회생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눈물겨울 만큼 고마웠다.
오늘 친구의 희망찬 격려를 다시 새겨 들으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이나 식물이나 그 생명은 고귀했다. 오묘한 이치가 있었고 가는 길이 있었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김용재((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국제PEN한국본부는 1954년에 창립되고 이듬해인 1955년 6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제27차 국제PEN세계대회에서 회원국으로 가입되었다. 초대 이사장은 변영로 선생이 맡고 창립을 주선했던 모윤숙 시인이 부이사장을 맡았다. 이하윤, 김광섭, 피천득, 이한구 등과 함께 창립의 중심 역할을 했던 주요섭이 사무국장을 맡았다.
6·25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겨우 1년이 되는 시점에 이루어낸 국제PEN한국본부의 창립은 매우 깊은 의미를 담는 거사였다. 그동안 국제PEN한국본부는 세 차례의 국제PEN대회와 8회의 세계한글작가대회를 개최하며 수많은 국내외 행사를 주최해 왔다. 이에 내년 2024년에는 창립 70주년을 맞이하게 되어 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PEN 회원들의 작품 선집을 발간하기로 하였다.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진행하지만 회원들의 주옥같은 작품집을 선집으로 집대성하여 남기는 일은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시와 산문으로 구성되는 선집은 우리 한국문학사의 중요한 족적을 남기는 귀중한 역사 자료로서의 가치를 갖게 되리라고 믿으며 겸허한 마음으로 70주년을 자축하는 주요 사업으로 진행하게 된다.
참여해 주신 회원들께 감사하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꺼이 출판을 맡아 준 기획출판 오름의 김태웅 대표와 도서출판 교음사의 강병욱 대표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오경자((문학평론가,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그의 수필은 그의 회고 자체가 역사요 기록이다. 과거에 대한 자긍심이 충만하고 미래에 때한 꿈이 찬란한 그의 수필세계는 굵직하게 살아온 그의 가족들이 버팀목이 되어준다. 자존을 잃지 않고 칭찬을 아끼지 않지만 그의 수필은 자랑의 흠집을 찾아내기 힘들다. 오로지 작가의 겸손한 성품 덕이다. 기리고 담백한 표현과 간결한 문장이 그런 결과를 이끌어 낸 공신이다.
장영교의 수필은 간결함과 담백함의 결정체이다. 독자가 공감하는 것은 복잡한 내용의 전개가 아니라 간결한 속에서 담담하게 이어지는 작가의 진솔한 고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문장으로 보여주는 것이 장영교의 수필이다.

1. 우정의 계절
우정의 계절 … 18
인생도 화초도 … 24
아름다운 시절 … 28
소중한 추억 … 34
화중왕(花中王) 시절 … 38
자랑스러운 친구 … 41
꽃은 한 번만 피고 마는 게 아니다 … 45
저녁에 찾아온 친구 … 49
세상 소풍을 끝낸 친구 … 52

2. 다시 스물네 살로
그런 제자 그런 스승 … 63
가면극 한 토막 … 71
다시 스물네 살로 … 58
실패한 입양 사건 … 75
주란(珠蘭)이와 함께한 세월 … 79
눈 오는 공원에서 … 83
하나님 살펴 주소서 … 87
올바른 역사를 원할 뿐이다 … 91
헛웃음의 이유 … 97
개나리에 담긴 향기 … 100

3. 허술한 청춘
느려 터진 우편 … 106
빈 둥지 증후군 … 110
내년 단풍은 놓칠 수 없다 … 114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 117
카톡 마당에서 보석 줍기 … 119
출발! 그 시점은 어디서부터일까 … 121
허술한 청춘 … 125
가을강 … 130
안타까운 사랑 … 134
애기똥풀꽃 … 138

4. 영혼이 깃든 인형
바보가 따로 없었다 … 142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춘다는데 … 147
둥근 것에 대한 매력 … 151
새봄에는 다시 만나 교가를 부르세요 … 155
석 달 열흘 장마에 볕 구경이라 … 159
영혼이 깃든 인형 … 163
호사다마 … 167
하얀 꽃들의 사연 … 171
그리운 아버지 … 175
5.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지혜 … 180
눈 깜짝할 사이 … 183
전보감 … 191
엎드려 절 받기 … 195
뒷정리를 하면서 … 199
고맙습니다 … 202
한 가지 부탁 … 207
병사와 한 약속 … 211
전쟁의 상처 … 215
그리운 날들 … 219 … 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