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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대상: 문인, 대학생, 일반독자 외
*구성: 자서+목차+동인 시 작품
*특징: 1. 계간 〈자유문학〉으로 문단에 나온 여류시인 일곱명의 연간 동인 시집이다.
2. 각자 다양한 삶의 모습과 정신세계를 지향해온 동인시인들의 순수 서정시들을 모아 펴낸 여성 시문학의 대표적 시집이다.

시향7집은 자유문학 출신 여류시인들의 순수 서정시들로 엮은 현대여성 시문학사의 대표적 공동시집이다. 삶의 다양성만큼이나 문학의 양태들도 각기 다른 점을 읽을 수 있으며, 이들의 시력이 말해주듯 문학적 연륜의 무게만큼 묵직한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일반 독자들은 물론 대학생, 청소년들의 독서 할동에도 상당한 정서적 공감성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 책머리에 _5

11_ 김순
자존심 / 문득 그립다 / 내 고향은 베이비박스 / 욕심 / 죽음, 그 놈 / 요양원에서 / 그런 사람 /
불시착 / 낙화 / 살다보니 / 운명 / 만추 / 느티나무는 / 봄날에 / 그거 아니?

33_ 박정희해남
자화상 / 헌책방 / 길 / 백제의 천년 내력 / 詩의 비밀 / 시인의 방 / 소금꽃 / 섬 집 / 꿈속에서 /
호수가 아름다운 집 / 리어커·2 / 행글라이더 / 맨홀은 왜 둥글까 / 달항아리 / 대숲에서

53_ 안미숙
일 없습니다 / 무당거미 / 봄바람과 할머니 / 민들레 / 여름 해 / 장터 / 접시꽃 / 나팔꽃 세탁소 /
느티나무 / 파도 / 티머니 / 스파이더맨 / DMZ 고라니 / 팥빙수 골목 / 바람 미용실

71_ 오정말
텃밭 기지국 / 남편의 발바닥 / 물웅덩이 / 굴뚝연기가 간판이다 / 청보리밭 / 놓친 기차를 향해 /
여백 / 겨울묵화 / 석류에 대한 생각 / 세발낙지 / 비자림숲 / 담쟁이 손바닥 / 뒤란의 풍경 / 봄꽃 / 지렁이

91_ 유회숙
나비의 비행 / 봄은 소리로부터 온다 / 나팔꽃 랩소디 / 꿈틀 / 나무 이야기 / 계단 / 자화상 /
풀밭에서 글밭에서 / 서해西海를 품고 싶다 / 밥 / 여름 보고서 / 물들다 / 입속에서 새가 운다 /
파랑새 경로당 / 기쁨을 심는다

111_ 이영임
동행 / 풀꽃 / 4월 / 봄이 되어 / 봄을 입히다 / 우리는 결혼한다 / 수선 좀 해주세요 / 동백꽃 / 퇴근길 /
은밀한 오후 / 포식자 / 긴긴밤 / 설날 풍경 / 내 고향 쇠말골 / 충분히 좋은 것

김순

자존심


처음엔
화가 났어요

자고나니
내 허물이 보이더라고요

또 한 밤을
지새우고 나니
내가 잘못했어요

멀리도 돌아 왔네요
‘미안하다’는 말


문득 그립다



우리동네 시장안
이불집 앞에 서면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완행열차를 타고
벌교역에 내리면
치마가 훌러덩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
이불 한 채를 이고
중학생 계집아이가
그 먼 길을 겁도 없이 걸었어

타닥타닥 장작불 앞에서
흰수건을 머리에 두른
외할머니가
조청을 젓고 계셨지

함박눈이 떡가루처럼 내리고
아랫목에 다디단
고구마가 산처럼 쌓여 있었어

뉘시요?
고맙게 무슨 이불이다요
가끔씩 노망이 든다는 외할머니가
인절미와 조청을 내어 놓았어
목구멍에서
인절미 내려가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올 겨울에 나는
희끗한 흰머리를 이고
벌교역 산 너머 외할머니를
만나러
기차역으로 나가볼까

뉘시요. 할머니는?
희디흰 이불을 덮고 여전히
나를 몰라 보시겠지


박정희해남

자화상


심장이 쿵 울렸다 말없음으로 기다리다 꽃씨 하나 숨어들어 싹트고 있다는 걸 흙은 알고 있는 듯, 시심으로 조요히 뿌리내리고 싹 하나 땅속 깊이 평반에 물담은 듯, 단단한 살빛향기로 보탠다 속을 텅 비운 까닭은 더 단단해지기 위함이라며 시의 행간에 마음을 내어준다 어리석은 기교도 다 내려놓곤 숲이 되는 지금, 세찬 바람에도 흔들리지않고 無等 잠들지 않는 낮달을 품으며 비로소 우듬지 드러낸다

바람에 무너져도 선채로 모두를 안아주는
박정희 시인은 모소대나무*야
늘 하시던 정공채 스승님 그말씀…

바람이 귓바퀴를 툭 치고간다


*모소대나무: 땅속에서 뿌리만 내리다가 5년째에야 잎이 나면서 쑥쑥 커가는 죽순대궁이.


헌책방



골목 모퉁이 바람 타고
퇴역한 책들의 시간여행
끄트머리구석으로 나를 밀어넣는다
헌책뭉치가 입구부터
입석까지 만석이다
잊고지냈던 시간을 넘기며
추억들을 꺼내 어눌한 그늘을 나른다
책 틈새로 달빛은 언어의 집을 짓고
하나둘 별들 불러모은다
시간을 고정해놓은 빛바랜
이상, 시집 초판 책더미에 끼여 졸고
오늘도 지식을 먹는다
그 속에 마른 꽃잎 하나 누워 있다
시간을 멈춘 듯한 헌책들의
노후가 폐지로 묶일까
서둘러 몇십 권 머리에 이고
미리내 자박자박
골목을 휙 돌아나올 때
묶인 책들이 바람을 풀고
눈썹달이 헌책방간판에 걸려있다

그첫줄에 걸린 것은 한 줄뿐이다




안미숙

일 없습니다



내 짝꿍은
북한에서 왔다

선생님이 물어도
일 없습니다

내가 물으면
일 없다

반 친구들이 물으니
일 없어

북한에서는 무슨 일이 있길래
일 없지?



무당거미



줄을 타고 내려 온
무당거미

바람 길에다
실을
걸었다

엉덩이 들썩들썩
기둥 만들고
엉덩이 들썩들썩
기둥 단단히 묶고

베를 다 짠
무당거미

바람에 내 걸었다
하얀 손수건



오정말

텃밭 기지국



잠잠하던 텃밭이 시끌벅적하다

까맣고 쬐끄만
씨 한 알
텃밭에 떨어졌을 뿐인데
그 자리에
작은 기지국이 세워졌다

웅웅 웅얼웅얼
나비들 수신소리
벌들의 타전소리
종일 야단법석이다

그리움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
고향 향기를 품은 벌나비가
강낭콩 넝쿨을 타고 사방으로 날아오른다



남편의 발바닥



무너진 논둑의 구멍을 막고
묵은 자갈밭을 파헤쳐 일구고
식구들의 논밭이 됐던 굳은살
쩍쩍 금이 간
황폐한 남편의 발바닥

쇠굽에 박힌 징처럼 굳은살이 박여
지금은 메이커 운동화도
실크 양말도 들어가지 않네
단호히 말할 수 있는 건
젊은날 아이들과 만들어 신었던
후박잎새 신발이 제격인 발

누가 뭐라해도
이건 굳은살이 아니라
굽힐 대로 굽힌 소의 눈물자국
내가 모르는 사이
남편은 발바닥 한구석에
소의 울음을 재우며 살았네


유회숙

나비의 비행




가슴골 보일락 말락 문득 리본이 풀어지는,
봄의 난간에서 나비가 피워 올리는,
환한 곡선으로 도시의 거친 호흡들 꽃잎이 되는,
주위를 살피는가 싶더니 나비의 방 안으로 들어가는,
날개의 반점 점점 넓히며 맘껏 가슴을 부풀리는,
꽃은 꽃대로 나비의 배경이 되는,
푸른 고요도 한 송이 걸음 멈추는,
아직은 사거리 꽃집을 떠날 수 없는,
굉음과 속력이 질주하는,
빌딩숲과 근린공원 접고 그 찬란한 순간을 접는,
저만치 나풀나풀 나비를 좇아가는,
사거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나비와 나와 꽃의 보폭



봄은 소리로부터 온다



봄이 눈을 뜬다 작고 가벼운 소리
잠투정하는 갓난아기 울음소리
탁구공처럼 튀어 오르는 두부장수 방울소리
꽃샘바람 지나간 나이테에서 강물소리

봄이 울렁거리는 날 한 그루 나무가 될까
푸른 물들도록 열흘 붉은 꽃 지치도록 읽을까

새의 부리 같은 손끝으로
톡 톡 토도독 톡 꽃씨 터지듯
개나리 꽃무덤 아래 별이 돋는 소리
산란을 꿈꾸는 봄은 하냥 수다스럽다


이영임

동행



새해 첫 달
하얀 걸음 내딛는 시간
발을 맞추어 함께 걸어가자

때론 고개 숙여
발자국마다 피어나는 꽃
활짝 웃는 그대를 바라보리라
발걸음 깊이 솟아나는 샘물
꿈꾸는 그대에게 입 맞추리라

첫눈 위에
그대와 나의 출발을
선한 우리의 길을 내어보자


풀꽃



작은 꽃
보아도 보이지 않고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언 땅 그곳에서
무얼 하고 살았니

차가운 흙과 하나 되어
캄캄한 밤을 보내는 너는
바람 속
봄이 오고 있는걸
무엇으로 알았니

봄이 온 줄
봄이 온 줄을
웅크린 채 흔들리는
어둠을 밀어내고 풀꽃 너는
어떻게 피어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