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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호 시인의 시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느낌과 삶에 대한 의미를 드러내고 있을까? 그의 작품을 설핏 대별해 볼 때 느끼는 점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과거 유년 시절을 소환하고 현재적 삶과 생각을 맞부딪혀 따스한 감성을 풀어내 어떤 낯익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투명한 유리창 같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고 본다.
예술가들이 대상과 만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눈을 통해 바라보는 시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현상학적 감각론을 제시한 메를로 퐁티는 바라봄을 통해 사물과 자아가 하나가 된다고 믿었다. 사물을 보는 것은 사물이 나를 보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주관과 객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현상학적 시론은 보는 방법에 대한 의미있는 고찰이다. 윤명호 시인의 작품에는 바라본다는 시각적 접근이 많다. 바라봄을 통해 사물과 나 사이의 거리를 무화 시키고 내가 사물이 되고 사물이 내가 되는, 보는 것의 나르시즘을 이룬다. 퐁티가 말하는 보는 사물은 엄격한 객관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모든 대상이 주관적이 되어 내면에 형성된 존재와 만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에 들어오는 객관적 사물들은 윤명호 시인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주관적 사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게 된다. 윤명호 시인은 변주와 변용되지 않는 사물을 그대로 노출시켜 보여준다. 자연과 함께 생활하는 이의 생활과 생활에 배어있는 가공되지 않은 대상들이 순수한 모습 그대로 노출된다. 원석이다. 이런 모습은 누구나의 삶이고 누구나의 생활 모습이기에 전달과 이해가 쉽다. 그 원석은 객관이 아니다. 여기에서 순수한 모습은 자연의 원초적 모습과는 다르다. 이미 시인의 주관적 통로를 거친 대상이기에 순수 자연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이다

추천사

내 발끝에 놓인 지상은 보이지 않는다
눈앞 모래언덕을 걸어갈 뿐
사막 한 가운데서 백골로 남느니
굶어도 버틸 수 있는 혹을 세운다
머리를 빼들고 지평선을 향하여
모래 위에서 중심을 잡는다
종일 모래 위에 서 있지만
물이 기다리는 오아시스를 찾아 간다
길 없는 길을 가는 사구 위에서
바람과 별이 친구다
가는 길은 몰라도
지고 있는 등짐이 목적지다
모래 위에 쓰러져
뼈를 묻는 날이 오면
묵묵히 걸어온 길이 끝난다
낙타의 길을 따라가는 그림자

-「낙타를 생각하다」 전문

무미건조한 이 도시는 사막과 같다. 나는 그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다. 낙타가 걸어가고 있는 발끝에 놓인 지상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모래만 쌓여 있는 사막이 놓여 있다. 그 사막에는 목 말라 주은 동물이나 인간의 백골만 있을 뿐, 그래서 죽지 않기 위해 수분과 영양분을 모아 놓은 혹을 높이 세운다. 사막에서도 굳건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빼들고 가야할 목적지인 지평선을 향해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 몸의 중심을 잡는다. 종일을 삭막한 모래 위에 서 있지만 물이 기다리는 오아시스를 찾아간다. 사막에서는 길이 없는 언덕만이 있다. 그 언덕 위에는 친구도 없다. 별과 바람만이 친구가 되어 준다. 가는 길은 몰라도 등 위에 짊어지고 있는 짐이 바로 목적지다. 그렇게 가야 하는 길은 모래 위에 쓰러져 죽는 날이면 길이 끝난다. 낙타 그림자는 낙타의 길을 따라간다. 낙타 그림자가 바로 시적 화자이다. 이 시에서 낙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메마른 현대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인간을 생각해 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윤명호 시인은 현재 주말마다 전원에서 보내고 있으며 그 전원은 어릴 때 뒹굴었던 시골 정취와 상통한다. 그러기에 그때의 정서를 불러들여 현재에도 그 맛을 느끼며 행복해하고 있다. 그런 자연과 등 돌리고 사는 듯한 도시 생활은 그에게는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느껴진다. 사막으로 비유되는 도시를 낙타를 몰고 가는 삶을 통과하기 위해 시인이 택한 방법은 낙타를 몰고 숲으로 가고저 한 것이다. 그곳에서 욕심 없는 언어를 구해 시를 창작해 내는 삶이야말로 지평선 끝에 다 달은 오아시스가 아닐까

윤명호 시인은 2015년《전국공무원 문예대전》시 부문에 동상을 수상하고 2019년《문학도시》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유소년기를 농촌에서 전원과 함께 보냈다. 농사를 짓는 부모 슬하에서 가족과 함께 농촌 생활을 하며 정서를 함양시켰고, 그런 모습들이 작품 속에 잘 반영되어 있다. 자연 속에서 자란 소년이 자연과 어울리는 정서를 표출해내는 시인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윤명호 시인의 작품을 말한다면 자연과의 융화다. 자연 속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자연이 있다. 자연과 하나 되기보다는 자연과 어울리는 형국이다. 물아일여 보다는 물과 아의 일정한 거리를 통하여 객관적 관계를 유지하며 그 시선을 견지한다. 오랜 세월 공무원 생활을 해서 그런지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정직하다. 시인은 왜곡해서 자연을 바라보기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를 못하고 자연이 품은 의미를 자신이 품고 있는 의미와 동일시 하려는 모습이 앞서 보인다. 그것은 바로 자연과는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연을 느끼고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바램 때문이다. 그러기에 작품 속에 유년기의 자연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코뚜레를 꿰어주었다
날뛰던 송아지가
순순히 따라 다닌다
노간주나무를 찾아
산을 헤매던 중학교 시절
울타리로 심고
아버지는 코뚜레를 만들었다
한번 꿰면 평생을 달고
워낭소리를 들어야 하는
코뚜레가 이젠 나를 꿰고 있다
현관문에 걸려
워낭소리를 내고 있다
매끈하게 마른 노간주나무가
나를 꿰고 있다

-「노간주나무」 전문

어린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끼워 주는 것은 소가 성장했을 때 말을 잘 듣지 않는 소를 제압하기 위한 방편이다. 이 시에서도 날뛰던 송아지가 코뚜레를 꿰어주자 순순하게 따라다녔다는 기억을 되살린다. 노간주나무는 코뚜레로 사용하는 나무다. 노간주나무는 부드러워서 쉽게 휘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 마을 집집마다 울타리 부근에 노간주나무를 심어 코뚜레를 손쉽게 만들 수 있게 한다. 코뚜레는 순종이나 종속을 의미한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송아지에게 착용해 주던 코뚜레가 자신의 집 현관에 걸려 있어. 마치 자신을 얽매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한 번 꿰면 워낭소리를 평생 들어야 하는 코뚜레가 자신의 집 현관에 걸려 워낭소리를 낸다. 걸려 있는 코뚜레는 잘 마른 노간주나무 가지다. 그것이 도시 생할을 하고 있는 나를 꿰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몸을 지배한다. 이런 모습은 유년기의 추억에서 가져온 정서다

목차…4
자서…3

제 1 부

꽃의 무게…11
3월, 보름달을 보다…12
11월…13
가로수…14
겨울비…15
빨래집게…16
공생…17
꽃대가 떨어질 때…18
나의 해바라기…19
내 마당 불청객…20
노송…21
동그란 눈을 뜨다…22
지지 못한 낙엽…23
메타세쿼이야…24
라텍스 손…25
마지막 접시…27
모내기…28
모닝 아이스크림…29
문어 빨판보다 억센…30
빗속에서 바다를 보다…31
사흘…32


제 2 부

살구…35
샛길…36
샘물이 솟다…38
수탉의 눈을 보다…39
악착에 붙다…40
어릴적 목단이…41
엄나무와 구렁이…42
엄마는 엿이다…43
웅크린다는 것…44
임계점…45
중심을 뽑다…46
짝짝이…48
쪽파…49
참새와 모과나무…50
촛불…51
그날 한 밤은 혹독했다…52
회양목…54


제 3 부

끝물…57
겨울냄새…58
나무를 옮겨 심는다는 것…60
그 통 하나 때문에…62
노간주 나무…63
눈무더기에 오줌을 눈다…64
떫고 탱탱했다…66
명륜역 1번 출구…68
능선…70
목…71
물소리를 듣다…72
밟히는 순간을 기다리다…73
버드세이버…74
번개…75
고물상 가는 길…76
사라진 연기, 그녀들…78
어둠 속이 따뜻했다…80
손잡이가 흔들리고…82
잡초는 꽃이다…83
초록이 퍼붓다…84
홑잎…86


제 4 부

까마귀와 색안경…89
기차여행…90
껍질을 벗다…92
꽃 울타리…93
낙타를 생각하다…94
노란 노을…95
만약에…96
무당거미의 꿈…98
태국망고…98
물소리에 빠지다…100
못을 뽑다…102
삼랑진역에서…103
새벽 외출…104
수직이 내려다 본다…105
순간이 떨어지다…106
얼음이 운다…107
업데이트…108
용당나룻터…110
질주…112
푸른 멀미…114
핏줄 시계…116
호박을 긁으며…118
혼자 웃다…120
풀밭에 갇힌 의자…122

？ 해설/낙타를 몰고 숲에 가는 언어-강영환…12

꽃의 무게


꽃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이팝나무가 쌀가루를 뒤집어쓰고
반듯이 서 있다
소만의 울타리에 선 장미가
꽃의 무게에 고개 숙인다
꽃은 언제나
가지가 견딜 만큼만 핀다
휘어질망정 부러지는 일은 없다
한겨울 깊은 산속에 피는 눈꽃은
밤새도록 쌓인 무게에
가지가 부러지기도 한다
균형을 아는 꽃의 무게
내 생의 꽃도
견딜 수 있을 만큼만
피워야한다


3월, 보름달을 보다

30년 교편을 잡다가 명퇴한 친구를 만나
어릴 적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 때 배구를 잘해
운동선수가 될 줄 알았는데
수학선생이 되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냐고 물었더니
부인이 원장인 요양원에서
일을 봐 주기로 했단다
월급 180만원
큰 덩치가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빌딩사이로 떠오른 보름달이
가로등 불빛에 묻혀
하얗게 웃고 있다
서울 하늘 아래
3월 봄밤이었다


11월

비가 내린다
금정보건소 돌아가는 모퉁이
아기단풍잎 수북이 내려앉은 길을 따라
우산들이 줄을 서 있다
코로나 선별검사를 받는 행렬이다
연일 확진자가 늘어나고
오미크론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노부모를 부축하며 순서를 기다리는
부부의 뒷모습이 조용하다
췌장암 수술 후 3개월을 살고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나도 정들었던 연산동을 떠나
신도시로 이사를 했다
떠나는 뒷모습들
떠나는 낙엽을 밟고 줄 서 있다
차가운 빗속에서도
살겠다는 희망이 있어
젖은 낙엽처럼 달라붙는다
아직 11월이다


가로수

늦은 밤 나무들은
술에 취해 무단횡단을 하던
나를 기억하고 있다
묵묵히 한자리에 서서
길을 지키고 있다
길게 한 줄로 서 있어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니
같은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매연 속에 은행알이 주렁주렁한
가로수 밑을 사람들이 지나간다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제 멋대로 산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같이 살아가는 멋이 있다


겨울비

어둠속에 비가 내린다
우산도 없이
질척거리는 길을 걸으며 또
한해를 보내고 있다
한겨울 비는
갈림길에서 서성이는 나를
차갑게 때린다
귀때기까지 얼리고
비가 그친다
밤새 내려간 기온에
젖은 땅이 언다
질척이던 길은 빙판길로 변하고
빗물에
발길도 얼어
난 딸깍딸깍
이 겨울을 차갑게 걷고 있다


빨래집게

바람이 문제다
하늘에 걸린 집게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어제는 바지를 잡고
오늘은 와이셔츠를 붙잡고 있다
외줄에 매달려
말라 갈수록 가벼워지는 빨래
바람에 와이셔츠가 줄을 휘감아도
집게는 절대 놓지 않는다
참새 떼처럼 빈 줄에 앉아
쉬고 있는 집게가
나에게 말을 건다
너는 말라 갈수록
너에게 맞는 삶을
꽉 잡고 있냐고


공생

작은 거미가 집을 지었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아파트 에어컨실외기 난간 사이
거미줄 구석에는 껍데기만 남은
날파리 죽음이 널려있다
하필
작은 거미줄에 걸린 날파리도
한 때는 하늘을 날았다
먹이가 사라질 때
거미는 사라질 것이다
제집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거미
하루를 살고 한여름을 살고
한평생을 살아가지만
지금은 한 공간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동거 중이다
우리는
죽음으로 공생한다


꽃대가 떨어질 때

온천천 벚나무 둑길을
꽃대가 뒤덮고 있다
간밤에 내린 비
바람을 만나 창문을 그렇게
뒤흔들어 대더니
그 속에는 간혹
작은 열매도 보인다
그 많던 꽃들이 모두
열매가 된다면
가지가 견뎌낼 수 있을까
비에 젖은 꽃대를
바람이 과감하게 솎아내 버렸다
꽃잎이 떨어지면 끝인 줄 알았다
꽃이 지고나면 열매가 되는 줄 알았다
꽃이 떨어진 자리
꽃대를 털어낸 나뭇가지에
연초록이 짙어간다


나의 해바라기는

아파트 베란다에
고무나무 한그루
큼직한 잎이
햇볕이 있는 쪽으로 굽었다
옆에 있는 칼랑코에와 파키라도
해를 따라 다닌다
나무는 해를 바라보며 사는데
나의 해바라기는 무엇일까
부용화로 시골집 울타리를 만들고
금화규로 앞마당을 꾸몄다
커다란 꽃을 사발에 담아 차를 마시던
지난날을 생각한다
드디어
부용화 꽃이 피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금화규가 푸르다
베란다의
고무나무 한그루
나의 해바라기다


내 마당 불청객

심지도 않았는데
마당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잡초처럼 자랐지만
이제는 깨 밭이 되었다
작년 수확 때
체를 거르고 선풍기로
날려버린 찌꺼기가
들깨 밭을 만든 것이다
내 마당의 불청객
우리는 모두
세상의 불청객인지 모른다
열악한 땅 위에서
향기를 뿜으며
밭을 만들어가는
들깨가 새롭다
불청객의 삶
들깨처럼
나는 기꺼이 나만의
불청객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