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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 신정식 선생은 수십 년 동안 열정적으로 책을 수집해 왔다. 소장하고 있는 책 가운데 특히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면서 식민지 시대와 근대 시기에 발간된 서적을 위주로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님의 침묵」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비롯하여 다양한 초판본과 희귀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책의 외형과 판본 등을 사진 촬영하여 실었으며 책마다 설명을 곁들였다. 책들은 모두 자신만의 가치와 이야기, 색깔을 지니고 그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책을 기획하며]
사람은 저마다 향기가 있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몰두해 온 사람은 더욱 그렇다. 경진 신정식 회장은 수십 년 동안 열정적으로 책들을 수집해 왔다. 조선시대의 고서에서부터 구한말과 식민지 시대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는 귀한 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물론 간다고 해서 모두 다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희귀본 수집가에게 이런 열정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열정만으로 수집가가 되기는 또 어려운 일이다. 열정 못잖게 책의 가치를 판별할 수 있는 감식안, 책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까지 두루 갖추어야 비로소 그 책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된다. 그 책을 읽었을 사람을 상상하고, 바랜 빛에서 책의 향기를 느끼며 간혹 발견하는 흐릿한 메모나 낙서, 서명 등에서도 그 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제대로 된 수집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진 신정식은 책에 생명을 불어놓고 싶어 한다. ‘경진(耕珍)’이라는 호가 진귀한 것을 찾는다는 뜻을 품고 있다. 찾는다는 것, 발견한다는 것은 단순한 소유욕이나 경제적 욕망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 책이 가진 의미를 알아보고 책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경진 신정식의 생각이다. 저 자신의 의미를 지니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때 책은 비로소 생명을 지닌다. 그래야만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향기를 지니며 자기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수집가와 책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서로에게 스며드는 존재라는 사실을 경진 신정식은 잘 알고 있다.
_이재봉(부산대 국문과 교수) 「사람의 향기, 책의 이야기」 중에서

[편저자의 말]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제게는 부산으로 전학한 첫해, 우연히 참여한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일이 바로 그렇습니다. 전혀 예상 못 했었기에 얼떨떨하고 놀랐지만 돌이켜 보면 그 일이 책과 깊은 인연을 맺게 한 사건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서관에 무시로 드나들면서 열심히 무협지 등을 읽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나, 이후 보수동 책방골목을 돌면서 이것저것 아무 책이나 사 모았던 시절의 기억도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갈증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도 틈만 나면 책을 찾아다녔습니다. 그것은 제 삶의 쉼표였고 유일한 취미였습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체계적으로 책을 보는 안목이나 분명한 목적의식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저 눈에 띄는 대로 사 모으기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주 찾던 한 헌책방 주인이 시집을 집중적으로 모으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했고, 그 말대로 하다 보니 책의 맥락을 알게 되고 그 책이 지닌 전후 사정을 이해하게 되면서 보람도 커졌습니다. 그때 처음 샀던 시집이 김지하의 「황토」였습니다. 그 후에는 고서적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때마침 고서적에 해박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 덕으로 많은 희귀본과 고서들을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책도 사람도 모두 소중한 인연이 있어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작은 깨침은 이렇게 제 삶에 스며들었습니다.
-「소중한 인연」 중에서

소중한 인연

01 님의 침묵沈默
02 님의 침묵沈默
03 님의 침묵沈默
04 님의 침묵沈默
05 님의 침묵沈默
06 님의 침묵沈默
07 님의 침묵沈默
08 님의 침묵沈默
09 님의 침묵沈默
10 님의 침묵沈默
11 님의 침묵沈默
12 을지문덕乙支文德
13 몽견제갈량夢見諸葛亮
14 봉선화鳳仙花
15 허부인난설헌집許夫人蘭雪軒集附景蘭集
16 김영일金英一의 사死
17 운명運命
18 무정無情
19 견우화牽牛花
20 흑방비곡黑房秘曲
21 혼魂
22 아름다운 새벽
23 백팔번뇌百八煩惱
24 청춘靑春
25 낙동강洛東江
26 자연송自然頌
27 안서시집岸曙詩集
28 조선朝鮮의 맥박脈搏
29 방가放歌
30 치악산雉岳山
31 애송시집哀誦詩集
32 정지용시집鄭芝溶詩集
33 영랑시집永郞詩集
34 달밤
35 고향故鄕
36 상록수常綠樹
37 동경憧憬
38 현해탄玄海灘
39 산호림珊瑚林
40 장한몽長恨夢
41 동백꽃
42 임거정林巨正 1~4
43 태양太陽의 풍속風俗
44 청마시초靑馬詩抄
45 물새발자옥
46 김동인단편선金東仁短篇選
47 안회남단편집安懷南短篇集
48 가람시조집嘉藍時調集
49 소월시초素月詩抄
50 황혼黃昏
51 천변풍경川邊風景
52 화사집花蛇集
53 재만조선시인집在滿朝鮮詩人集
54 자화상自？像
55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56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57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사람의 향기, 책의 이야기

도서 목록

본문 21쪽
님을 잃어버린 시대에 님을 노래한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의 대표적인 시집이다. 만해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1913), 「불교대전」(1914) 등을 간행하고 잡지 ≪유심≫(1918)을 발간하면서 불교 대중화에 앞장섰다. 「님의 침묵」은 존재론적 역설이라는 기법을 통해 한국 근대시에 철학적 종교적 깊이를 더해주었다. 김소월 역시 당시 님을 노래한 대표적 시인이지만, 김소월의 님이 이미 떠난 님, 다시 만나지 못하는 님이라면, 만해의 님은 떠나갔지만 보내지는 않은 님이고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날 님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님의 침묵」은 창작 동기를 밝히는 ‘군말’, 본문, 탈고 소감을 시 형식으로 적은 ‘독자에게’가 덧붙어 있다. 본문은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알 수 없어요」, 「자유정조(自由貞操)」, 「복종」 등 모두 88편의 시가, ‘이별의 제시’-‘이별 후의 고통과 슬픔’-‘슬픔이 희망으로 전이’-‘만남의 성취’라는 극적 구성을 취한 연작시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님의 침묵」은 1926년 초판이 발매된 이후 계속해서 출판되었다. 여기 판본은 1926년 초판, 1934년 재판, 1950년 해방 후 초판, 1951년 재판, 1952년 3판인데 모두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출판되었다. 이 중 1952년 3판은 공식적으로는 판본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1956년 이후 판본의 출판지에는 3판 출판 기록이 누락되어 있음), 실제로는 출판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본문 23쪽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가 쓴 역사전기소설. 구한말에는 여러 가지 힘들의 각축장이었던 당시 상황을 민족적 위기로 파악하여 구국 영웅을 희구하는 열망들이 서사화된다. 을지문덕, 이순신, 강감찬은 물론 조지 워싱턴, 빌헬름 텔 등 동서양의 여러 영웅을 호출하여 위기 극복 염원을 서사적 형태로 담아냈다. 신채호 역시 국난 극복 영웅에 주목하여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의 「이태리건국삼걸전(伊太利建國三傑傳)」을 번역, 출판하였다. 이후 신채호는 고구려의 위기를 극복한 ‘을지문덕’에 주목하여 국한문체로 우리나라 사천년 역사에서 가장 큰 위인이라는 뜻으로 ‘대동사천재 제일대위인(大東四千載 第一大偉人)’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을지문덕(乙支文德)」을 출판한다. 안창호(安昌浩), 이기찬(李基燦), 변영만의 서문과 저자의 범례, 서론과 본문 15장,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고, 국한문판은 총 79면의 분량을 갖추고 있다.

본문 25쪽
유원표(劉元杓, 생몰연대 불명)가 지은 일종의 정치소설로 국한문체로 되어 있다. 단재 신채호(申采浩)가 서문을 썼고 홍종은(洪鍾？)이 교열하여 발행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금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의자위위비계(議者謂爲非計), 용혹무괴십장(容或無怪十章), 선생역사연의(先生歷史演義), 동토문학허실(東土文學虛實), 황백관계진상(黃白關係眞狀), 지나정략개량(支那政略改良)’ 등 모두 여섯 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전통적 글쓰기인 ‘몽유록(夢遊錄)’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주인공 밀아자(蜜啞子)가 비스마르크 전기를 읽다가 잠이 들어 꿈속에서 제갈량(諸葛亮)을 만나 질문과 토론 비판을 주고받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밀아자가 평소에 품고 있던 의문을 제갈량에게 질문하고 제갈량이 대답하면 그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작품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다. 작가의 우국지정에 기초한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저항적 계몽주의가 주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