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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의 『소가 키우는 풍경』은 크게 4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일반적으로 “봄이 먼저” 오고 “가을이” 나중에 온다고 판단하고, 꽃이 “피어야 지는”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시인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에 따르면 “가을이 먼저”일 수도 있고, 꽃이 “져야 피는” 것일 수도 있다. 정해진 순서나 선후先後가 없음을 담은 “아무도 말할 수 없다”라는 진술은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식물 또는 꽃의 본질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꽃의 “향기”를 높게 평가하지만 “꽃은 향기로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_권 온(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김륭(시인)
온다 그리고 운다

그녀는 젖소를 데리고 온다. “중송아지 때 한우농장에 민며느리로 가/쫓겨온 소박데기” 춘자가 “출렁이며”(「춘자, 다시 봄」) 오고, “송아지 열 마리를 낳고도”(「젖소 앵순이」) 수유를 멈추지 않는 앵순이도 온다. 온다, 라는 이 동사를 ‘운다’로 바꿔 읽고 싶은 것은 표지화된 언어 뒷면에 비치는 그녀의 맑은 심상 때문일 것이다. “춘자가 운다”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잠긴 사랑을 듣는다. 그렇다. “밥 먹기 미안하네”(「내가 젖소」) 그녀는 그녀를 데리고 온다. 그리고 운다. “날마다 두 개의 달이” 뜨는 한빛농장에서 춘자와 앵순이와 함께, 그녀는 젖소와 함께 운다. “산달은 빚쟁이의 빚 독촉처럼 다가오고/어둠 속 산통이 잠든 꼬리별을 흔”드는(「애기똥풀」) 곳에서 그녀가 울 때 “젖소들은 아코디언처럼/하루 두 번/주름상자를 오므렸다 편다”(「양수羊水의 시간 2」) 이쯤에서 누군가는 두 손을 모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그녀가 가진 언어의 힘은 그 어떤 수사로도 대처할 수 없는 진실에 있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젖소농장을 기웃거리는 시원찮은 안주인이 되었다. 갓 태어난 송아지도 내가 먹여주는 초유의 젖꼭지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어설픈 몸짓도 제법 익숙해져 엄마 소들은 정겨운 눈빛을 흘려주곤 한다.
보이는 풍경과 달리 후각으로 느끼는 풍경은 체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이 없는 나의 빈자리에 젖소들이 들어왔을 때 알았다.

박지현

1부 기울어가는 달도 한 입
곡절춘자, 다시 봄
밥 먹자 똥순아
광수 1
광수 2
젖소 앵순이
무전취식
오만 원
내가 젖소
종내용트림
공룡알
소풍

2부 바람에 잡힌 점자처럼
봄담
두런거리는 손
진말
진영역
애기똥풀
울화통
구관이 명관
시례에서
펄럭이는 가문
귀뚜라미가 찌르는 밤
붉은 실로 켜지는 등
꿈장어
사랑무늬

3부 직선의 시간과 화목해지는
나비의 꿈
복이 아재
콩쥐를 잊은 아빠
월파정 주유소
부고
목줄
덤
가야의 정원
순천만
행복유지권
그녀들의 만찬
숲 해설사
선의 선택

4부 쓸모없음의 쓸모
FOR YOU
산모
양수의 시간 1
양수의 시간 2
사룟값은 오르는데
적선 1
적선 2
쓸모없음의 쓸모
지독？犢
그대로 똑똑
일남삼녀
부녀자
배란기

해설 _ 희망, 꿈, 행복을 향한 삶을 노래하다
권 온(문학평론가)

곡절



나를 위해 피는 꽃은 없다
날 위해 지는 잎이 없듯
저마다의 숨겨둔 이야기를 풀어 놓을 뿐

봄이 먼저인지
가을이 먼저인지

피어야 지는지
져야 피는지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꽃은 향기로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젖소 앵순이



담장이 낮은 농장
떨어지는 해도 한 모금
놀다가 먹다가
기울어가는 달도 한 입
새털 같은 일상을 되새김질하는

송아지 열 마리를 낳고도
이른 아침, 이른 저녁
세상을 향한 멈추지 않는 수유授乳


춘자, 다시 봄
-젖소 이야기


1
출렁이며 춘자가 왔다

2
중송아지 때 한우농장에 민며느리로 가
쫓겨온 소박데기
자궁은 비우고 가슴 가득 젖을 채워 왔다
아침저녁 착유장을 미는 춘자
뒷발질에도 농장 주인이 함박웃음을 포갠다
정량을 넘어 그렁대는 젖가슴
끼니때마다
음 매 애
초유도 물리지 못한 송아지 생각

3
춘자가 운다
허벅지를 찌르고 있나 보다
새날, 그녀의 고민을 수정사는 어르고 달랜다
은행과 나뭇잎이 퇴비로 뒤엉켜 싸우다 화해하는 계절

4
한밤
춘자가 새끼를 낳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수송아지
젖을 찾지만 외면하는 춘자
갓 태어난 송아지, 옆의 다른 어미 소의 젖을 빤다
송아지에게 젖꼭지를 물리지 말라는 농장주의 금기
춘자가 우두망찰한 송아지를 맴돈다
우유병 꼭지를 빨지 않겠다는 틈 사이
덜컹거리는 문 넘어 착유 소들을 찾아
싸리문을 열고 젖 마실 가면 모두의 아들이다

새끼는 젖 찾아
춘자는 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