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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문학》을 통해 등단한 작가 모임인 ‘에세이문학작가회’가 이번에 《에세이산책》이라는 새로운 제호로 스물네 번째 동인 수필집을 펴낸다.
58명의 작가들이 함께한 이번 동인지에는 수필작가들의 시선을 좀 더 확장해 보자는 의미로 ‘안보문학기행’ 특집을 기획하였다. 전쟁의 참상으로 점점 피폐해져 가는 지구촌 뉴스를 접하면서 73년 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간 ‘DMZ 현장답사 화보’와 11편의 안보문학기행문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이 외에 47편의 주옥같은 수필 또한 이번 동인지를 더욱 빛내주고 있다.

책을 펴내며 4

특집_철원DMZ안보문학기행

화 보 12
김건수 철원DMZ전망대에서 17
신대식 아득한 기억의 저편, 아련한 영상 22
추대식 비무장지대의 추억 31
정해경 세 개의 깃발 37
안춘윤 그리고… 미안하다 42
손재원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49
서용순 안보와 문학이 만났을 때 56
서민웅 내가 만난 인민군 초병 61
김미옥 비무장지대를 찾아 66
송성옥 안보는 평화다 71
함광남 철마는 달리고 싶다 75

1부_그걸 왜 그렇게 해유

서성남 1도 없다에 대한 유감 88
남정인 감나무는 억울하다 92
청 랑 구둣주걱의 외출 97
박효진 국수킬러 102
홍영선 그걸 왜 그렇게 해유 107
이복희 그림자 슬픔 113
박 현 까치야, 미안해 118
김시은 나의 알깨기 123
송은자 내 둘째 동생 128
이윤기 누가 울어줄 사람 있나요 132
박미련 눈의 소리 137
유점남 단풍 깻잎 141

2부_보통의 하루

김덕임 도토리나무의 단말마 148
이래춘 돈봉투와 골곰짠지 153
이오순 돌다리 157

ㅁㆍㅁ
홍경희 먼저 가는 게 이문이여 161
오인순 국 165
최승영 보통의 하루 170
최유나 봉사 179
이원영 빛과 어둠 182
이미정 빨래를 널고 싶다 186
오설자 산책 190
김영애 생명 194
김영수 샹들리에, 그 휘황한 199

3부_자벌레의 비상

방 민 소리 내는 것들 204
이지윤 시아버지와 약탕기 208
서장원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한 것 같아요” 213
김은희 어달리 아침 218
원정란 엄마는 원더우먼 222
김순이 엄마의 여행 227
민정희 오늘 나는 머리하러 간다 232
임덕기 오사바사 235
송옥영 원님 덕에 나발 불다 239
주영희 이별 연습 244
최양자 인디언 썸머 누리기 249
진서우 자벌레의 비상 252

4부_회초리를 맞다

이상규 장맛비가 가져다준 선물 258
한승희 정릉 경국사를 찾아서 263
홍애자 질시루에 핀 사랑 268
김덕기 집사와 잡사 271
이지현 초콜릿 275
최문정 치매 사촌일까 279
김정섭 카카오톡 영상통화 285
김석류 한국의 카프리 소매물도 290
정의정 핸드폰을 찾아라 295
장현심 행복한 ‘꽝’ 300
이미경 회초리를 맞다 306

에세이문학작가회 임원 및 회원 명단 311
에세이문학작가회 가입 안내 312

이번 동인지에 ‘안보문학기행’ 특집을 실었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역설적인 일들이 많습니다. 겉으론 평온해 보이는 DMZ. 수많은 젊은이들의 청춘과 목숨을 바친 땅이건만 어찌 그리 푸르고 고요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생태계의 보고(寶庫)라는 말 이면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라는 아픈 현실이 존재하니 말입니다.
동인지 제호를 어느 한 분의 글 제목으로 정하는 것에 대해 재고(再考) 요청이 많았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숙고 끝에 ‘에세이산책’으로 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훌륭한 원고로 동인지 제24집을 출간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신 회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 보답으로 출판기념회 때 참석하시는 분들에게 소정의 원고료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 또한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지만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용순 회장, 〈책을 펴내며〉 중에서

전망대 아래 비무장지대는 오랫동안 인적이 없자 동식물의 생태계가 살아났다. 이곳 일대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식물로는 참나무, 싸리나무, 잡목 등이 빽빽이 들어섰고, 그 속에는 수달, 노루, 사슴, 멧돼지 등의 희귀 동물들이 마음껏 서식하고 있다. 생태계를 방문한 그날도 백로가 철책선을 넘어 북쪽으로 유유히 날아가고 있었다. 겨울이면 북쪽에서 날아온 두루미가 이 일대에서 월동을 한다. 동식물의 생태계가 활기를 띠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그들에게는 여기가 천국이리라.
전망대 앞 DMZ는 말이 없다. 분단의 아픔을 혼자 지키려 하는 것인가, 아니면 또 한 번의 격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문제는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북한은 6ㆍ25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없고 지금도 호시탐탐 남녘을 넘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기를 기원해 본다.
-김건수, 〈철원DMZ전망대에서〉 중에서

다시금 비무장지대 풍경과 소대장 시절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곳은 남북이 다투는 인간사와는 아랑곳없이, 눈 아래로 펼쳐진 평원에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 갈대숲, 물고기 떼가 무리지어 헤엄치는 맑은 시냇물이 굽이져 흐르고, 울창한 숲 사이로 방치된 논자리가 물웅덩이를 이루어 계절 따라 몰려드는 온갖 철새들, 여름날 더위를 식히려는 노루 떼가 웅덩이에서 텀벙대며 물장난치는 곳. 가끔씩 비무장지대로 진입해 수색이나 야간 매복을 하다가 부스럭거리는 고라니 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리던 곳이었다.
거친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이면 산과 들은 무거운 침묵에 잠겨버리고 잠자리를 잃은 고라니의 목쉰 울음소리만 밤하늘을 헤맸다. 희뿌옇게 내려 덮인 눈구름 속에 설원은 백야처럼 밤낮의 경계도 사라지는 곳이었다.
그곳의 대자연은 나의 첫 근무지일 뿐 아니라 내 가슴에 아늑함과 막막함, 충만함과 공허함, 그 모두를 안겨준 잊을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이다. 그리움이 솟아오를 때면 그 시절이 한 편의 영상처럼 아련하게 떠오른다.
-신대식, 〈아득한 기억의 전편, 아련한 영상〉 중에서

언젠가 ‘1도 없다’라는 말도 표준어가 될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와는 달리 혼란도 있을 것 같다. 숫자에 대한 우리말은 복잡한 편이다. 같은 글자라도 다르게 읽기도 한다. 이름이나 값, 횟수 뒤에 고유어와 한자가 오느냐에 따라 달리 읽기도 한다. 얼마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흘 논쟁’이 있었다.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자 언론은 8월 15~17일 ‘사흘 연휴’가 생겼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3일을 왜 사흘이라고 쓰느냐.’ ‘사흘은 4일이다.’ ‘수준 낮은 기자들이 한국어도 모른다.’고 했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사흘’이 오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도 없다’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한마디는 그 파급력이 크다. 말의 무게만큼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 표준어가 되기 전까지는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말에도 품격이 있다.
-서성남, 〈1도 없다에 대한 유감〉 중에서

나의 산책은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씨만큼이나 가볍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기며 걷습니다. 그렇더라도 날마다 달라지는 오솔길, 그곳의 나무들, 시시때때로 변하는 주변의 모습을 미세하게 느낍니다. 눈은 강과 나무와 하늘로 향하고 있으되 마음은 글밭을 누비고 다닙니다. 강물 위에 나뭇잎 사이에 혹은 풀숲에 숨어 있던 생각들을 건드립니다. 덜어놓고 오려고 나선 길에 생각지도 못한 문구를 데리고 옵니다. 쓰다 만 글의 마무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산책은 글의 시작이 되기도 하고 종착지가 되기도 합니다. 나를 비우고 새로운 기운을 담은 나를 가져옵니다. 그렇게 산책은 나의 기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설자, 〈산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