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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 거짓 네번째 약속〉은 물에서 나오지 않으면 알수 없는 물 밖 세상을, 수면 가까이 혹은 수면 위로 점프하며 구경하고 상상하는 물고기의 마음을 그린 소설이다. 물 위에서 산다는 건 결국 죽음인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려 한다? 이유를 알고 싶지만 설사 이유를 찾아내도 모든 게 풀리진 않는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세상으로부터의 의지인지 온전한 스스로의 자유인지도 알 수 없다.

사람은 어느 순간 죽음이 있음을 인지하지만,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불면증에 잠을 못 이루는 순간도 끝이 나지 않아 괴로운데, 몇십 년의 시간은 영원이라 여겨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첫 번째 거짓이다. 주인공의 시선에 걸리는 것들. 손가락 끝 촉각으로 태어나는 것들. 작지만 세상의 소리가 모여드는 귀와 작은 내음에 담긴 분자를 잡아내는 코. 그리고 입술이 전달하는 것들 이 영혼과 육체를 대표하는 뇌와 심장을 차갑고 뜨겁게 만드는 과정과 상태를 그리고 싶었다. 사람과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중에 사랑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가슴에 넣고 달리는 남자 사람. 시간을 민들레 홑씨처럼 날리고 또 날리는 한 인간의 보람과 행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바다거북이. 알에서 깬 바다거북이는 다른 새끼거북이들이 깨어나길 기다렸다 거의 동시에 바다를 향해 달린다. 삶과 죽음은 그저 운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백사장과 얕은 바다를 지난 거북이에게는 넓고 깊은 바다에서의 고독이 기다린다. 15년간의 외로움이 쌓인 어느 가을날, 처음 바닷물을 접할 때 기억해 놓은 지구자기장을 따라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5천4백7십5일 만에 처음 만나는 바다 거북들. 처음 보는 암컷, 수컷들. 그리고 짝짓기.

연어. 연어가 알에서 깨어나 죽은 부모의 몸이 남긴 양분을 먹으며 바다로 갈 수 있는 몸을 얻는다. 태어난 민물 향을 살아있는 한 잊을 수 없는 한 가지 기억으로 새기고 바다로 떠나 3년을 보낸다. 목적은 오직 하나,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몸의 형태와 색이 변하고 결국 만신창이가 돼서 도착한다. 그리고 딱 한 번 짝짓기를 마치고 죽는다. 단 한 번만 주어지는 기회와 낮은 확률을 뚫고 목표를 이루면 바로 죽어야 하는 삶. 연어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연어의 마음은 어떨지...?

사람. 죽음을 위해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기 시작하는 연어처럼, 혈혈단신 15년을 보냈던 거북이가 태어난 곳으로 향할 때처럼, 내가 누군지, 내 삶은 무엇인지를 찾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그 때를 찾아 나설 이유가 찾아 오기도 하고 죽음이 선명하게 보이는 병처럼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대개는 그간 삶을 꾸려왔던 방식으로는 설명도 이해도 안 되는 상황에 당황한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가 중요한 세상에서 걸친 옷을 홀딱 벗지 않으면 안 되는 목욕탕으로 들어선다. 커다란 거울에 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바라는 내 모습과는 너무 다른 나다. 그냥 그게 나라는 인정이 쉽지 않다. 왜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를 궁금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인지 찾아내야 한다. 찾아 나선다? 찾아낸다? 이상한 말이다. 내가 나를 언제는 잃어버렸었나? 하지만 찾아내야 할 정도로 가려지고 만들어진 삶인 경우가 많다. 어떻게 찾아야 할까? 갑자기 윤곽도 흐릿한 내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칠하고 입체화할 수 있을까? 유일한 방법은 과거를 회상하는 것. 과거 속에 내 모습과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그러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있다. 사랑을만났던 시간. 내가 가장 잘 보이는 시간이다. 사랑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여러 번 했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랑이었는지는 자신만 알 수 있다. 호르몬에 지배되는 성욕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만난다는 면에서 첫사랑은 강렬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어떤 종류의 사랑을 찾는 사람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고 경험이다. 사랑은 사랑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 얼마나 치열한지에 따라 분류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치열함이 오직 자신에 대한 충실함에서만 발원했다면 그 사랑은 사랑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갖지 못한 사랑이다. 삶에 필요한 돈을 위해 삶을 희생하는 모양새다.

사랑은 결국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빨간약이다. 〈세번의 거짓 네번째선택〉은 누구라도 선택하게 되는 빨간약 이야기다. 너무나 당연했던 선택들. 우리는 그 선택의 시간에 다시 한번 서길 원한다. 설사 같은 결정을 해도 다른 이유를 찾게 돼도 그때의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오늘을 이해하고 미래를 그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다. 첫사랑처럼 불꽃이 활활 타지는 않지만 잠깐만 쏘여도 익어버리는 뜨거운 수증기처럼 지독한 욕망이다. 연어가 되고 거북이가 돼서 그곳으로 향하는 여행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세 번의 거짓에도 용기 내서 네 번째 약속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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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히말라야 계곡. 커다란 돌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박살 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수컷 산양들의 목숨을 건 박치기 소리다. 때가 되면 그들은 첫사랑이 담긴 심장으로 죽음을 뚫고 생명으로 뛰어오른다. 한 발만 잘 못 딛어도 삶의 경계선을 넘는 깎아지른 절벽에선 사랑은 언제나 마지막 첫사랑일 수밖에 없다."

P138. 7번 국도는 동해를 따라 바다와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사랑을 추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 같았다. 양팔을 벌리고 큰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몇 바퀴를 돌던 7번 국도가 바다로 뛰어들 것처럼 온몸을 기울이며 다가섰다. 손을 내밀고 서 있던 동해가 그녀를 받아내려 크고 흰 파도를 하늘로 추켜올렸다. 하지만 파도는 빈손으로 떨어졌고 그녀는 다시 멀어져 갔다. 동해가 돌아선 그녀를 잡기 위해 닿을 수 있는 끝, 넘을 수 없는 경계까지 몰아치다 파도로 부서졌다.

P140. 밤이 되며 빗방울 소리가 커졌다. 텐트 바깥에 한 겹 더 쳐진 방수 천 때문에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빗방울이 커졌는지 커다란 솔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둔탁한 소리를 냈다. 계곡물소리는 전쟁터에서 육박전을 벌이는 수천명의 함성이 뒤엉킨 소리 같았고 빗방울 소리는 전진을 알리는 북소리 같았다. 계곡물에 텐트가 쓸려가는 건 아닐까 두려워졌다. 텐트 밖으로 랜턴을 비
추었다. 팔당 댐의 수문이 열렸을 때처럼 솟구치며 쏟아지듯 흐르는 계곡물이 보였다. 그래도 아직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랜턴 배터리가 떨어질까 오래 켜고 있는 것도 불안했다. 잠을 자면 안 될 것 같았다. 한여름인데도 산이라 그런지 몸이 오슬오슬했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모아 오므리고 앉았지만 가끔씩 갈비뼈가 통째로 부르르 떨렸다. 졸음에 휘청거리는 뇌를 깨우며 일이십 분마다 밖을 비췄다. 잠깐 눈을 감는 걸 느꼈지만 저항은 불가능했다. 잠으로 굴러떨어졌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견디기 힘든 자책이 심방을 움켜쥐고 놔주질 않았다. 심방이 터지며 빈곤에 허덕이던 심실이 갑자기 몰려든 피를 흘려보내느라 난리가 났다. 불규칙하고 강하게 심장이 뛰었다. 부리나케 랜턴을 켜고 밖을 비췄다. 텐트가 쳐진 곳에서 삼십 센티미터도 남지 않은 곳까지 물이 불어나 있었다. 심장이 가슴에서 머리끝까지 부풀어 올라 펌프질을 해 댔다. 다행히 비는 그쳐있었다. 텐트를 접을 마음의 여유도 현실적인 이유도 없었다. 배낭을 둘러메고 랜턴을 움켜쥐었다. 미끄러지지 않고 계곡을 벗어나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주변을 더듬었다. 경사가 적은 언덕을 암벽 등반을 하듯 바닥에 달라붙어 기어올랐다.

P124. 바닥에 피가 묻은 칼이 보였다. 고개를 드니 베어 벌어진 살 사이로 내 가운뎃손가락 끝이 보였다. 분명히 내 손가락이었다. 내 안에 내가 있다고? 아기야? 왜 이렇게 조그맣지? 뻔히 보이는 나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떨어진 칼을 들고 더 깊이 살을 갈랐다. 두세 번 더 칼질해야 했다. 충수돌기처럼 퇴화한 척 웅크린 내가 있었다. 핏물이 흥건한 나를 들어냈다. 측은했다. 보듬어 주고 싶어졌다. 그래도 나, 고마운 나, 사랑하는 나였다.

P158. 1번 열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에 서 있는데 181번가 지하철역이 떠올랐다. 매캐한 냄새와 지린내, 폐소공포증이 생길 것 같은 갑갑함, 화장터에나 있을 것 같은 엘리베이터, 화재라도 나면 도망칠 계단도 보이지 않는 공포가 차례대로 마음을 덮쳤다.

P123. 사냥꾼 냄새를 맡은 짐승이 키 큰 갈대밭 속으로 뛰어들었다. 짐승의 내달림을 따라 바스락 소리를 내며 갈대들이 갈라지며 쓰러졌다. 순간 짐승이 넘어졌다. 풀 마찰 소리도 멈췄다. 벌떡 일어난 짐승이 크게 뛰어오른 후 고꾸라졌다. 다시 일어나 달렸지만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한참이 지나자, 흙냄새에 취한 듯 짐승의 주둥이가 땅에 처박혔다. 오른쪽 뒷다리에서 피가 흘렀다. 살을 파고든 올가미 철사가 보였다.

P288. 정수리 머리카락들이 회오리바람에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 담배를 입에 물고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일 때 라디오에서 직장인들에게 100년 동안 할부로 집값을 갚을 수 있는 주택 융자 상품이 출시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뉴스 때문에 사레가 든 임명진이 연거푸 잔기침을 쏟았다. 가소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100년 할부라니, 아니 그럼 죽고 나서도 갚으란 소리야? 미친놈들 아냐?"

아침부터 온 비가 저녁까지 이어졌다. 밤이 되며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우산이 필요한 비였다. 9시가 넘었다. 마음속 아카시아 잎을 뜯었다. [할 수 있을까? 해도 되는 걸까? 꼭 해야만 하나? 해야 할 것 같아. 해 보자. 해야 해. 하자. 오늘은 비도 오니 택시 잡기가 더 어려울 거야. 일단 나가
자.] 중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후드득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음을 적당히 산란시켰다. 거친 시멘트 계단이 대리석처럼 반질거렸다. 내려서는 걸음마다 실리콘 코팅처럼 얇고 투명하게 고인 빗물이 찰싹였다.

그녀가 국화처럼 웃으며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빨간색 시소를 지나쳐 어둠의 구역으로 스며들어 갔다. 놀이터를 둘러싼 담벼락에 그녀가 등을 기댔고, 나는 그녀를 살며시 안았다. 그녀의 귀와 쇄골 사이, 목 어딘 가에 코끝이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