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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마지막 33년 :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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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래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 정병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권력과 인간』 저자)

전두환은 왜 단죄받지 않고 여생을 보낼 수 있었는가?
이 땅에서 전두환이라는 존재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어느 문제적 인물에 관한 전기적 르포이자 다큐멘터리적 성찰
전두환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깊고 치밀하게 복원하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 어느 특정한 인물의 기질이 이 땅의 현대사와 만나 어떠한 변화를 잉태할 수 있었는지를 심도 있게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들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파악하는 데 이 책만큼 중요한 작업은 없으리라.”
- 라종일 (전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동국대 석좌교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민주화 이후 전두환에 대한 ‘전환기적 정의(transitional justice) 세우기’가 왜 실패했는가를 전두환의 개인사적 시간과 한국의 집단적 정치 시간의 맥락에서 추적하고 있는 뛰어난 저술이다.”
-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이 책을 읽으면 과거와 오늘의 대통령은 물론 내일의 이상적 대통령까지 보인다. 미래 한국의 민주주의로 가는 도중에 이 책은 꼭 거쳐가야 하는 환승역이다.
- 정병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아은은 이 책에서 전두환이라는 개인과 20세기 한국의 사회적·역사적 조건이 만나 어떻게 현대사의 비극을 만들어냈는지, 그 맞물림이 오늘날 우리 삶과 공동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기록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생하게 보여준다.
- 정인관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대한민국의 제11대, 12대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그의 삶과 죽음은, 그가 끝끝내 단죄받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의 가장 첨예하고도 문제적인 측면을 드러낸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뒤 전대미문의 학살과 인권 탄압을 자행했던 전두환은, 자신의 대통령 임기를 채우고 퇴임한 뒤 33년간 풍족하게 살아가며 천수를 누렸다. 그는 우리 사회로부터 마땅한 처벌을 받은 적도 없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친 적도 없다. 수십 년간 진상규명과 사죄를 외쳤던 5·18 유족들의 고통과 절망이 무색하게, 그는 2021년 11월 23일 자신의 집에서 평화로이 눈을 감았다.

우리는 왜 전두환을 무릎 꿇리지 못했는가? 그가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국가적·사회적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피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전두환을 둘러싼 해설과 논평은 넘치도록 많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내놓은 적이 없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전두환의 생애와 대한민국 현대정치사·경제사·사회사·문화사를 그 근원으로부터 상호 연관시켜 철저하게 들여다봐야 하고, 그의 여러 악행을 가능케 했던 개인적 기질과 당대의 정치 환경, 시대적인 맥락을 총체적으로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병설 서울대 교수가 이 책에 부친 말처럼, “전두환을 읽어내는 일은 한국을 읽어내는 일”이라는 문제의식에 입각해 전두환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깊고 치밀하게 복원하는 중층적이고 입체적인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다섯 편의 장편소설과 세 편의 인문 에세이를 출간했던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정아은은, 이 책을 통해 바로 그 작업을 완수했다. 정아은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서 전두환이란 인물의 태생부터 죽음까지를, 그의 집권 전후의 시간을, 나아가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의 여생을 지금껏 나온 그 어떤 문헌보다도 철저히 복원한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전두환을 악마처럼 몰아붙이는 작업이 아니고, 영웅으로 미화하는 작업도 아니다. 대신 전두환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치열하게 규명하고, 그의 영광과 모순, 몰락, 그리고 그 인물을 탄생시킨 ‘악(惡)의 기원’을 대한민국의 현대사라는 지평 위에서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전기적인 작업이다.

정아은은 왜 이 작업을 시작했고, 이 작업을 끝마쳤는가? 그는 책에 그 이유를 적어두었다.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악’은 물리적 생명력이 끊어진 뒤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미래에도 영향력을 이어갈 것이기에. 피와 눈물을 흘릴 줄 알았고, 자신의 가까운 사람과는 진한 사랑을 나눌 수 있던 유형의 악인(惡人) 전두환의 면모를 우린 이제라도 똑바로 인식해야 하기에. 전두환이라는 악인을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기억하고 감당해야 하는지 묻는 일은, 그의 사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본격적으로 성찰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출판사 서평

‘그는 어떻게 악인惡人이 되었고, 악인으로 죽었는가’
우리가 전두환을 단죄하지 못한 진정한 이유를 묻다

대한민국 현대정치사 · 경제사 · 문화사의
다양하고 중층적인 스펙트럼으로,
전두환의 삶과 죽음을 생생하게 추적하다

“전두환을 읽어내는 일은 곧 대한민국을 읽어내는 일이다.”
어느 문제적 개인의 시간과 이 땅의 집단적 정치 시간을 하나로 이어내다

2021년 11월 23일, 대한민국 11·12대 대통령 전두환이 세상을 떠났다. 1931년에 태어난 그의 구십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전두환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뒤, 광주의 학살을 딛고 1980년 8월부터 1988년 2월까지 7년 반 동안 집권했다. 퇴임 후 쫓기듯 2년간 백담사에 머물렀고(1988년 11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2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1995년 12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김영삼 정권의 과거사 청산 정책에 따라 본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김대중 정권에 의해 특별 사면된 후, 그는 자신의 연희동 자택에서 자유롭고 윤택하게 노후를 보내며 천수를 누렸다. 국민의 절대 다수는 그가 정당히 단죄받아야 한다고 외쳤으나, 그는 4개 필지, 3개 건물로 이루어진 약 500평 규모의 집에서 한쪽 벽면 전체를 취임식 때 했던 연설문으로 뒤덮은 채 죽을 때까지 제 무고함을 강변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전두환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광주의 유족들과 전두환 집권기 숱한 인권 탄압의 피해자들은 그가 정당하게 단죄받지 않고 죽었다는 사실에 여전히 몸서리치고 있다. 2023년 초 우리에게 얼굴을 드러낸 그의 손주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학살자라고 지칭하며 만인 앞에서 고통의 신음을 흘리는 중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전두환을 옹호하고 그의 죄 없음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수십 년째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1980년대와 5공화국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정서는 많은 이들 사이에서 더욱 짙게 공유되는 중이다. 그들은 전두환 집권기가 ‘단군 이래의 최대 호황’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그래도 전두환 때가 먹고 살기는 좋았지.”라는 말로 미묘한 심정을 드러낸다. 유튜브와 SNS에서는 ‘전땅크’, ‘엔젤 두환’ 등의 닉네임을 쓰며 전두환의 1980년대를 낭만적으로 찬양하거나 희구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전두환을 “진짜 애국자”, “진정한 경제 대통령”, “강하고 유능한 군인 대통령” 등으로 묘사하며 예찬한다.
요컨대, 전두환은 우리 사회를 선 긋는 하나의 정치적인 리트머스가 되어버렸다. 모두가 입에 올리지만, 아무도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대부분 전두환이 ‘나쁜놈’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아무도 그의 악행이 어떤 개인적·사회적 특질로부터 연유했으며, 그가 왜 그렇게까지 문제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는지를 그 뿌리부터 추적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자. 우리는 전두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그는 도대체 어째서 사죄하지 않고 이 나라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는가? 대한민국은 왜 그를 끝끝내 무릎 꿇게 하지 못했는가? 이 답을 찾는 과정은 결코 가볍고 단순하지 않다. 전두환의 개인적 일대기를 입체적인 시각과 역사적인 안목, 대한민국의 시대적 맥락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퇴임 이후 그가 맞이한 33년의 생애’를 심층적으로 길어 올리려는 지성과 의지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섯 편의 장편소설과 세 편의 인문 에세이를 출간하고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인 정아은이 이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통해 바로 그 작업을 완수했다. 수많은 문헌을 섭렵하고, 여러 인사들과의 수많은 인터뷰 및 당대의 시대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적인 성찰을 거친 뒤, 정아은은 몇 년간의 작업을 거쳐 비로소 그 작업을 끝마쳤다.


전두환을 악마 혹은 영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규명하다
12·12와 광주를 거쳐, 1980년대의 모순과 격정을 연출했던 그의 여정

정아은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서 전두환이 왜 악인이 되었고, 악인으로 살았으며, 악인으로 죽을 수 있었는지를 파고든다. 정아은의 이 책은 전두환을 악마처럼 몰아붙이는 작업이 아니고, 영웅으로 미화하는 작업도 아니다. 대신 그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치열하게 규명하고, 그의 영광과 모순, 몰락, 그리고 전두환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악(惡)의 기원’을 대한민국의 현대사라는 지평 위에서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전기적인 작업이다. 전두환의 퇴임 이후 33년의 생애, 그와 대한민국이 맺었던 관계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던 시기에 전두환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만나 이 땅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전두환이 끝내 무릎 꿇지 않은 이유를 알기 위해선 전두환의 개인적인 기질을 똑바로 들여다봐야 하고, 악인을 잉태하고 권력 꼭대기까지 밀어 올렸던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의 맥락을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 정아은은 이를 위해 전두환의 개인사적 시간과 한국의 집단적 정치 시간의 맥락을 총괄적으로 되짚어간다.
책의 1부 ‘영광(1931-1980)’에서 저자는 전두환이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50년이라는 시간을 심층적으로 추적한다. 즉, 전두환의 기질적인 씨앗이 싹튼 그의 성장기에서부터 1979년의 12·12 쿠데타, 1980년 5월의 광주를 거쳐 그가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로 집권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다. 정아은은 그가 남긴 회고록과 다양한 문헌을 통해 그의 성장 과정을 되짚고, 상승을 향한 끈질긴 집념이 이뤄낸 강렬한 드라마를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전두환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각오로 군 경력의 승승장구를 거친 뒤 박정희가 암살되기 7개월 전, 49세의 나이로 보안사령관에 파격 임명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식민과 분단, 전쟁이란 토양 위에서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뚝심의 계보를 정통으로 잇는 후계자라는 사실이다. 정아은은 전두환이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였던 이승만-박정희와 어떠한 일관성을 갖고 있었으며, 동시에 두 전임자들과 어떤 면에서 달랐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85명의 군인이 3,700만 대한민국을 접수했던” 1979년 12월 12일의 밤을, 그가 어떻게 광주의 비극을 딛고 권좌에 올랐는지를 철저하게 복원한다. 전두환이 ‘정보’를 다루고, 미국과의 관계를 저울질하며, 법을 짓밟고 국민을 학살할 수 있었던 대내외적 기제를 망라하며, 그의 행보에서 무신경한 낙천성의 끔찍함, 그의 무반성을 가능케 만든 ‘특별한 가벼움’을 길어 올린다.
이 책의 2부 ‘모순(1981-1987)’은 그렇듯 아무런 정통성도 없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전두환의 1980년대가 얼마나 논쟁적이고도 아이러니한 시간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정아은은 말한다. 1980년대는 대단히 문제적인 시기였으며, 온갖 모순으로 점철된 격정의 시절이었다고. 1979년의 12·12 쿠데타 이후 1987년 6월항쟁에 이르는 기간은, 전두환이라는 무법자가 노골적인 폭력을 통해서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점차 기정사실화되었던 시기이자 정통성 없는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먹고사는 문제’에 사활을 걸었던 시기였다.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고문을 받고 있던 고통의 시간이었고, 역대 어느 정권보다 적나라한 부정부패로 얼룩진 시간이었으며, ‘한 명 대 사천만 명의 대결’이라 불릴 수 있을 어두컴컴한 시간이었으면서도, 동시에 전두환이 김재익이라는 걸출한 인재를 내세워 경제 분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뤄내며 이 땅에 물질적 풍요를 불러온 시기이기도 했다. 전두환은 분명 핵심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았던 용인술을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1980년대 5공화국의 성과들은 그가 퇴임 뒤에도 자신의 ‘공(功)’을 소리높여 외치는 근거가 되어주었다. 그러므로 정아은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1980년대라는 모순적인 상황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대한민국이 왜 그의 퇴임 후에도 전두환을 끝끝내 무릎 꿇리지 못했는지를 추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전두환의 관계를 깊고 치밀하게 성찰하다
우리 공동체에 남은 상흔을 치유하는 첫걸음을 떼기 위하여

전두환은 분단과 전쟁 이후 거대한 공백과도 같았던 대한민국의 시공간에서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드는 전임자들의 전통을 착실히 따라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자기 정통성의 부재를 만회하기 위해 이 땅에 부분적인 자유와 물질적 풍요의 기반을 선사했고, 그때 싹튼 개인주의와 감각적 자유는 1990년대 대한민국에서 절정을 맞는다. 책의 3부 ‘몰락(1988-2021)’은 이제 그가 대통령직을 내려놓은 이후부터 2021년 죽음을 맞이한 날까지의 여정을 고찰한다. 전두환이 권력에서 물러난 뒤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에 올랐고,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투신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었다. 노태우는 자신과 하나의 뿌리를 가졌던 전두환을 냉정하게 뿌리쳤고, 김영삼은 그를 감옥 안으로 집어넣었고, 김대중은 그를 감옥 바깥으로 풀어주었다. 1989년 12월의 5공 청문회로 일약 이 나라의 스타가 되었던 노무현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전두환과 극단적으로 다른 방식을 취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박정희의 후계자 박근혜는 전두환의 부정 축재 재산을 몰수했지만, 그 또한 전두환을 향한 사적 복수의 자장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전두환은 권좌에서 내려온 뒤 백담사와 감옥 안에서 각각 2년의 시간을 보낸 것을 제외하면 수영장과 스크린골프장과 널찍한 정원이 딸린 광활한 저택에 머물며 자유롭게 살았다. 다시 한번 질문해보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 대한민국은 왜 퇴임한 학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는가? 드물게 이루어졌던 처벌은 왜 그렇게 단편적이고 자의적이었는가? 정아은은 이 3부에서 전두환이란 인물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들, 즉 노태우와 김영삼,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박근혜의 개인적·사회적·역사적·정치적 동역학을 추적한다. 정아은은 전두환을 향한 우리 사회의 단죄와 용서가 시스템과 법치가 아니라 (정치적 진영을 떠나) 최고 결정권자의 사적 동기로 가해졌다는 사실을 직시하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직선제’ 그 이후로 도약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정아은의 표현처럼, 전두환은 이미 우리 사회의 뼈아픈 ‘대자아’가 되어버렸다. 전두환은 우리가 지나온 한 세기를 보여주는 인물, ‘시층이 겹겹이 쌓인 한반도의 20세기를 보여주는 절단면 같은 인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퇴임 후 33년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은 대한민국의 가장 첨예하고 취약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저자는 3부에서 바로 그 작업에 천착한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의 마지막 4부 ‘악의 기원’은 1부에서 3부까지 고찰해 온 화두, 즉 전두환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집권할 수 있었고, 단죄받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었으며, 결국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깊은 상흔과 족쇄가 무엇인지를 총체적으로 되짚는 장이다. 저자는 쓰고 있다. 전두환이 퇴임 뒤에라도 반성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면, 그는 그의 가족과 측근들이 그렇게도 부르짖는 ‘정당한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최고 등급의 결정권을 가진 이의 인격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며, 헌법상 최고 통치권자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그는 그가 속한 사회의 공기와 만나며 서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두환이 어떤 죄과를 갖고 있고 어떤 악행을 저질렀든, 1980년대는 뛰어난 관료들이 정책을 잘 펴고 전두환이 이들에게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어 경제가 순항을 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그런데 전두환은 제 원죄에 대해 전면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공’에 해당하는 사항을 인정받게 될 수 없었으며, 그가 자신의 죄를 부정할 때마다 그의 정체성은 ‘살인자’로 귀결되고 그때마다 세상은 그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특히 4부에서 전두환에 대한 찬양과 낭만화 현상을 살피는 저자의 지성적인 스펙트럼은 빛을 발한다. 강원택과 임혁백, 이제민과 최병천 등 뛰어난 정치경제학자들의 분석과 알렉시스 드 토크빌, 토머스 홉스 등의 이론을 바탕으로, 저자는 1980년대의 독재자를 향한 퇴보적인 선망이 대한민국이 1990년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후 국민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지, 그래서 사람들이 과거 개발연대 시절의 ‘강력한 국가’를 얼마나 그리워하며 또한 1980년대의 공동체적인 소속감과 유대감을 얼마나 희구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반증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정아은에 따르면, 전두환과 같은 극단적인 악의 돌연변이가 이 땅에서 다시 득세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정아은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의 4부 마지막 챕터에서 그런 인물의 재등장을 막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선(線)’, 법치주의와 사회적 규준을 정착시켜 가는지에 달려 있음을 논증한다. 우리가 지금 전두환의 직계 후손이 살아오는 내내 혹독한 죄책감에 시달려 왔음을 지금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악을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후과와 그 상흔은 이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오래도록 고통스럽게 얽어매고 있다. 그래서 정아은은 말한다. 전두환을 읽어내는 일은 한국을 읽어내는 일이고, 자신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국민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전두환이라는 악인(惡人), 전두환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넘어설 때에만 우리는 선과 악, 말과 행동, 과거와 미래, 현실과 이상을 제대로 가늠하며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것, 부정적인 것의 맞물림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작업”
지금 우리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읽어야 할 이유

‘국민을 살상하고 불법적으로 집권한 전두환이 어떻게 7년 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권좌에서 내려온 뒤에도 제대로 된 단죄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까?’ 한 마디로 말해서,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바로 이 논쟁적인 화두에 관한 기나긴 탐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세상을 떠난 전두환에 관해서는 그간 다양한 저술이 출간된 바 있지만, 아직 우리 출판계에서 엄밀한 고증과 비평적 관점에서 집필된 그의 평전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의 개인적 일대기를 입체적인 시각과 역사적 안목,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깊이 있게 파악하고 ‘퇴임 이후 33년의 생애’의 의미를 치열하게 바라보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전두환에 관한 기존의 저술들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목적 혹은 진영의 논리에 기대어있거나, 주로 그를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첨예하고 비극적인 사건, 예컨대 12·12 사태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특정 사안에 깊이 천착해왔다. 즉, 전두환과 그의 집권기는 아직껏 한국 현대정치사의 일부분 정도로만 다뤄졌던 게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우리나라의 중견 소설가이자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인 정아은이 전두환과 당시 시대에 관한 핵심적인 문헌들을 바탕으로 쓴 첫 전기적인 르포, 한국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100여 권의 참고문헌과 200여 개에 달하는 이 책의 세심한 주석은 저자가 전두환과 대한민국의 한국의 현대정치사에 관하여 얼마나 깊은 공력을 쏟고 오랜 탐구를 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철저한 문헌적 고증에 더하여 대한민국 현대사와 이 땅의 독재자들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 어느 문제적 개인이 보여주었던 인간성의 심연과 대한민국의 지난 한 세기를 지배했던 사회적·문화적 습속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고찰이 이번 원고를 이끌어나간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단순히 과거의 자료 및 문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육군사관학교를 예편한 여러 인물과의 꼼꼼한 인터뷰 등 정아은의 이번 원고엔 전두환의 궤적과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다방면의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1975년에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정아은은 자신이 사춘기를 맞기 전 전두환의 1980년대를 길게 통과했고, 공기 중에 비밀과 불안이 가득했던 시공간에서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왔다고 말한다. 그는 원고에서 조부의 형제 중 한 명이 남로당의 인사였기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들이 겪었던 연좌제의 흔적을 언급하기도 한다. 정아은은 이러한 호기심과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자신이 성인이 된 후 사회와 국가, 권력과 정치와 역사에 관한 고민과 탐구로 이어졌다고 밝힌다. 그 오랜 고민은 결국 “대한민국의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들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작업”(라종일)이라 평가받은 이 400페이지의 책으로 꽃피우게 됐다. 정아은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2021년 11월 23일 세상을 떠난 어느 문제적 인물의 삶과 그를 끝내 단죄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근원적 모순을 풀어가는 치열한 여정이며, 이는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전두환을 대면하고, 그의 시대를 지성적으로 성찰하며, 그가 남긴 깊은 상흔을 극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추천사

정인관(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정아은은 이 책에서 전두환이라는 개인과 20세기 한국의 사회적·역사적 조건이 만나 어떻게 현대사의 비극을 만들어냈는지, 그 맞물림이 오늘날 우리 삶과 공동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기록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는 전두환을 지나간 역사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바라보는 작업이 왜 중요하고 우리 사회에 간절히 요구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정병설(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전두환을 읽어내는 일은 한국을 읽어내는 일이다.” 저자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국 정치사를 복원했다. 이승만부터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의 성격을 분석했고, 그것을 정치 환경과 연결해 정치사적 인과 관계의 흐름을 밝혀 서술했다. 이 책을 읽으면 과거와 오늘의 대통령은 물론 내일의 이상적 대통령까지 보인다. 미래 한국의 민주주의로 가는 도중에 이 책은 꼭 거쳐가야 하는 환승역이다.

임혁배(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민주화 이후 전두환에 대한 ‘전환기적 정의(transitional justice) 세우기’가 왜 실패했는가를 전두환의 개인사적 시간과 한국의 집단적 정치 시간의 맥락에서 추적하고 있는 뛰어난 저술이다. ‘특별한 가벼움’이라는, 전두환의 개인성에 대한 저자의 개념화는 주목할 만하다. 바로 그 특질이 전두환으로 하여금 죄의식 없이 학살을 저지르게 하고, 사과와 사죄 없이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게끔 만든 근본적인 원인임이 분명하기에.

라종일(전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동국대 석좌교수)
대한민국은 2차대전 이후 이른바 ‘신생독립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달성했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면, 자랑스러운 성취와 함께 부끄러운 국면들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할 수밖에 없다. 군사 정변이나 권위주의 정부가 그런 예 중의 하나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 어느 특정한 인물의 기질이 이 땅의 현대사와 만나 어떠한 변화를 잉태할 수 있었는지를 심도 있게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들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파악하는 데 이 책만큼 중요한 작업은 없으리라.

목차

프롤로그


1부 영광 (1931-1980)

1장 |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2장 | 49세의 보안사령관
3장 | 상승을 향한 필사적인 몸부림: 성장 과정
4장 | 적극적이고 붙임성 좋은 육사 생도
5장 | 반란의 날, 1979년 12월 12일
6장 | 원죄의 성립을 자축하던 날
7장 | 광주를 딛고 권좌에 앉다
8장 | 전두환의 특별한 가벼움

BRIDGE 1
12·12의 밤, 전두환이 넘어야 했던 3인


2부 모순 (1981-1987)

1장 | 1980년대는 어떤 시절이었는가
2장 | 한 명 대 사천만 명의 대결
3장 | 대한민국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4장 | 인재들을 팔과 다리로 삼아
5장 | 정통성 없는 대통령의 속마음
6장 | 좋은 남편, 잔인한 학살자
7장 | 안 되는 일을 되게 했던 시절의 끝

BRIDGE 2
두려움과 사랑

3부 몰락 (1988-2021)

1장 | 네 살 손녀를 안고….
2장 | 가장 무서운 적, 노태우
3장 | 몰락의 휴지기
4장 | 단죄의 날, 그리고 김영삼
5장 | 수감 생활
6장 | 대한민국 현대사의 극과 극, 전두환 VS 김대중
7장 | 대한민국 현대사의 극과 극, 전두환 VS 노무현
8장 | 박정희의 딸이 날린 철퇴
9장 | 한 번도 자기 자신과 만나지 못했던 사내의 말년

BRIDGE 3
독재자의 배우자로 산다는 것


4부 악의 기원

1장 | 역사의 제단에 놓인 제물
2장 | 영광이 사라진 시대
3장 | 누가 왜 그를 그리워하는가
4장 | 살아있는 자의 천형(天刑)
5장 | 선이 지켜지는 사회


에필로그


참고문헌

본문중에서

전두환은 1988년에 퇴임해 2021년에 사망했다. 최고 권력자 자리에 8년 남짓 앉았다 내려온 뒤 ‘전임 대통령’으로 33년을 산 셈이다. 그 기간 동안 전두환은 반드시 해야 했던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그가 해야 했던 유일한 일을. 두루뭉술하게 유감 표명을 한 적은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 봐도 속죄로 보기 힘든 것이었다. 진정한 속죄는 자신이 한 잘못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는 잘못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제 과오에 대한 책임을 북에 돌리거나, ‘용공 세력’에게 뒤집어씌우며 결백을 주장했다. 말년에 썼던 회고록에서 광주에서의 학살을 용공세력에 대한 ‘국가보위 행위’로 미화했다가 소송을 당한 것은 전두환이 잘못을 인정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 「프롤로그」 중에서

퇴임한 전두환이 걸었던 길은 그런 독재자들 중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장기 집권은커녕 반대 세력의 잦은 시위에 시달리다가 임기를 겨우 채우고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왔고, 퇴임 뒤 대한민국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으며, 일반 시민의 상태로 33년을 국내에서 살았다. 퇴임 8년 뒤에 단죄되어 감옥에 들어간 적이 있지만, 2년 만에 풀려나왔고, 그 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죽 감옥이 아닌 바깥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4개 필지, 3개 건물로 이루어진 총 1,652㎡(약 500평) 규모의 집에 살며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았고, 간간이 ‘전직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초청받아 ‘조국의 미래’, ‘국가의 안위’ 운운했으며, 측근들과 골프를 치고 고급식당을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91세 되던 해, 지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승만에게서 박정희로, 박정희에게서 전두환에게로 이어지는 파격과 객기, 예외성의 정상화 과정은 그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차트와 같았다. 식민과 분단, 전쟁이라는 토양이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기적을 요구하고 지도자에게 그 기적을 추동하도록 사회적 압력이 가해지는 과정에서, 본말이 전도되어 본래의 기적이 갖는 효용과 의미를 허물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 이후 지도자들 사이에 치명적이고 묵직한 덩어리가 전해지는 과정은 그 덩어리가 본래의 존재 의미를 잃고 타락한 사욕에만 전적으로 봉사하게 되는 점강법적인 루트를 밟았다.
- 「제1부 1장 |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중에서

종말을 코앞에 둔 절대권력자에 의해 중요한 장기 말로 발탁된 것은 우연에 속하는 일이었지만, 보안사령부를 지키며 권한을 키워나가고 결정적인 순간에 중요한 자리를 꿰찰 수 있도록 ‘준비된 태세’를 유지한 것은 전두환이라는 개인의 노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실오라기 같은 기회만 있어도 맹렬하게 임해 지위 상승 가능성을 극대화하며 살아온 전두환은, 대통령 유고라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을 때 엄청난 기세로 덤벼들어 그 기회를 낚아챘고, 이후 한국의 현대사에서 발생할 수 있었던 모든 경우의 수를 소거하며 제 야심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 「제1부 2장 | 49세의 보안사령관」 중에서

육사 생도 시절, 참모장의 집에 무작정 찾아가던 시절의 전두환의 모습은 악이나 추함과는 거리가 멀다. 개인적 친분이 있지 않은 참모장의 집에 불쑥 찾아가는 청년 전두환은 얼마나 젊고 구김살 없는가! 그 시절까지만 해도 전두환은 제게 내장된 특성들을 자연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장점과 단점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전두환만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람도 없으리라.
- 「제1부 4장 | 적극적이고 붙임성 좋은 육사 생도」 중에서
최규하에게는, 12월 12일부터 12월 13일 새벽까지의 그 몇 시간이, 전두환에게 적대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날 이후 최규하는 서서히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형식상의 대통령 자리에 앉아 전두환이 내미는 서류들에 이전보다 훨씬 우호적인 태도로 결재했고, 주위 사람들이 사임을 권유해도 뿌리친 채 대통령직을 유지했다. 5공화국 기간에는 전두환이 제공한 각종 의전을 받아들이며 ‘평화로운 정권 이양’의 모양새를 연출하는 주요 장식품으로 기능했다. 훗날 전두환 관련 재판들에 증인 출석요구를 받고도 일절 답하지 않았고, 역사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결연히 거부한 채 안락한 노후를 유지하다가 12·12의 진실을 무덤까지 가지고 갔다.
- 「제1부 5장 | 반란의 날, 1979년 12월 12일」 중에서

전두환은 철저히 ‘지금’, ‘여기’, ‘나’에 머물며 소탈하게 웃거나, 호쾌하게 농담하거나, 시원시원하게 살아 있는 인간의 육신에 위해를 가하라는 명을 내렸다. 전두환에게 ‘과거의 자신’은 타인과 다름없었다. 과거의 자신이 광주에 대해 무슨 말을 했든 어떻게 행동했든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저 ‘현재의 나’가 무사히 살아남아 안녕을 누릴 수 있다면 그는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광주를 피상적으로, 철저히 자기 위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응한 것은 그런 그의 근본적인 기질, 즉 ‘현재, 여기, 나’만 보고 사고하는 특성, 자신과 관련 없는 타인에게 완벽하게 둔감할 수 있는 그의 탁월한 능력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 「제1부 7장 | 광주를 딛고 권좌에 앉다」 중에서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전두환은 1980년 11대 대통령 취임 이후 모두 18차례 광주를 찾은 것으로 나타난다. 전두환은 임기 동안 매년 1~4차례 광주를 찾았다. 삼청교육대와 학원안정법 제정 기도, 건대 항쟁 과잉 진압은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증언과 문서가 수없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양쪽 모두 사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두환은 재임 당시 광주에 나름대로 (비본질적이고 즉흥적인 방식이었지만) 신경을 썼고, 동시에 삼청교육대와 같은 무도한 일 또한 끊임없이 시도했던 것이다.
- 「제1부 8장 | 전두환의 특별한 가벼움」 중에서

집권 기간 동안 전두환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경제발전’이었다. 보안사령관 시절부터 경제 전문가인 박봉환을 가정교사로 초빙해 따로 경제를 공부했던 전두환은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경제 동향 파악에 심혈을 기울였고, 지역 시찰을 할 때, 기자회견을 할 때, 기업 총수와 환담할 때 환율과 금리에 대한 토론을 벌이며 물가안정과 외채상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제2부 1장 | 1980년대는 어떤 시절이었는가」 중에서

전두환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국가의 정규군이 국민에게 총을 쏘아 대량으로 학살하거나, 언론을 통폐합한 뒤 일일이 보도지침을 내리거나, 특정 재벌을 대통령 마음대로 해체해버리거나, 특정 분야의 유력인사(주로 재벌에 해당하는)가 대통령과 독대해 직접 뇌물을 상납하는 일은 없었다. 대통령의 가족과 처가 쪽 친인척들이 대거로 공직에 진출해 천문학적인 돈을 거두어들이는 일도 없었다. 18년 동안 집권하며 ‘독재자’로 불렸던 박정희의 집권기에도 이런 수위의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사회적 윤리의 한계선 혹은 하한선이라 불릴 수 있는 이러한 관례들은 5공화국 동안 일거에, 혹은 단계적으로 서서히 붕괴했던 것이다.
- 「제2부 2장 | 한 명 대 사천만 명의 대결」 중에서

5공화국 시기에도 수출주도와 정부의 계획경제라는 외형은 유지되었다. 때로는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렸던 서열 7위의 대기업을 하루아침에 해체해버리는 등 시장경제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지점에 선 일들이 버젓이 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일각에서는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직접 개입해 가격을 통제하거나, 행정 규제에 의해 수입을 억제해 시장의 가격 선정 기능을 왜곡시키는 정책이 근절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 「제2부 3장 | 대한민국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중에서

안정화 시책의 대표주자였던 김재익이 5공 정권에서 활약했던 시기는 국보위 경제과학 분과위원장으로 일했던 1980년 6월부터 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희생당한 1983년 10월까지, 3년 4개월에 불과하다. 3년 4개월 동안 전두환이 김재익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였던 것도 아니었고, 김재익 사망 후에는 정권을 보위하기 위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올리는 정책으로 돌아섰다가 안정화로 돌아오는 등 갈팡질팡하며 남은 임기를 보냈다. 특히 금융실명제 같은 제도는 정권 자체의 불법적이고 부패한 성격 때문에 끝내 실현하지 못했다.
- 「제2부 4장 | 인재들을 팔과 다리로 삼아」 중에서

명목상 국가 수반이었지만 전두환은 상대국의 수반에게, 특히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국가의 수반들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였다. 미국 대통령의 경우, 전두환과 정상회담을 하거나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펴려 할 때면, 거센 비난과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국민을 살상하고 대통령이 되었다는 내력 때문에, 미 행정부가 내린 결정에 대한 허가권을 쥔 미 국회에서 흔쾌히 예산을 내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 「제2부 5장 | 정통성 없는 대통령의 속마음」 중에서

그러나 전두환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누군가 접근해오길 기다리기보다 먼저 나서서 호감을 표하고 손을 내미는 편이었다. 백담사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분노하고 서운해했으면서도 노태우에게 만나자고 먼저 연락을 했고, 재임 당시 그토록 제거하려고 노력했던 ‘용공분자’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자신을 ‘전임 대통령’ 자격으로 초대했을 때 반색하며 청와대로 달려갔다.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김영삼의 부고를 들었을 때도 장례식장에 가서 조의를 표했다.
- 「제2부 6장 | 좋은 남편, 잔인한 학살자」 중에서

이러한 그의 야망은 일부분 실현됐지만, 대부분 수포로 돌아갔다. 평생 동지이자 친구인 노태우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노태우 정부의 검찰은 전두환 일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은 6공화국은 국가원로자문회의의 권한과 규모를 대폭 축소했으며, 노태우는 측근을 보내 전두환에게 외국으로 나가 있으라고 종용했다. 물러난 무인 대통령은 상왕처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광주 특위와 5공 비리 청문회에 불려나가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김영삼 정부 시기에는 감옥에 수감되어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 「제2부 7장 | 안 되는 일을 되게 했던 시절의 끝」 중에서

그러니 전두환의 퇴임 이후에 펼쳐진 상황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주춧돌을 놓았지만 나머지 영역들은 애매하게 기득권과 관례의 영역에 고스란히 놓인 채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무정형의 상태, 박정희 사후 상황과 비교하면 ‘절반의 제헌 상황’이라 정의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 상황의 한가운데에 시뻘겋게 도사리고 있는 것이 내란을 일으켜 최고 권력자 자리를 꿰찬 ‘전임 대통령’의 처리 문제였으며,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그 문제에 대해 당면한 정치적 상황에 의해 즉흥적으로 대처하며 30여 년의 세월을 흘려 보내다가, 그 전임 대통령이 자유로운 상태로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장면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 「제3부 1장 | 네 살 손녀를 안고….」 중에서

이제 노태우의 내면에는 새로운 자아상이 생겨났다.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 국민의 부름으로 국가 수반이 되어 정정당당하게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대통령. 노태우의 가슴엔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아상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혈통에 근거해 나라를 통치할 권위를 얻었던 왕조 체제가 이제 역사책에만 존재하게 된 시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선명하게 새겨진 법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사회에서, 국민에게 선출된 대통령보다 더 정당한 지도자는 없었다.
- 「제3부 2장 | 가장 무서운 적, 노태우」 중에서

그 자신이 전임자와 한배에서 나온 형제였기에, 쿠데타라는 DNA를 공유한 혈친이었기에, 전임자인 전두환을 베는 것은 노태우 자신의 목을 베는 것과 다름없었다. 막상 전두환이 강원도의 산골짝으로 들어가 눈앞에 보이지 않고 여소야대 상황에서 우위를 점한 야당들이 5공 비리에 대해 포화를 퍼붓기 시작하자, 노태우는 외딴 절로 추방된 인물과 자신이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 「제3부 3장 | 몰락의 휴지기」 중에서

그러나 김영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부르짖으며 두 전임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내게 된 제1 계기가 김영삼 자신의 선거자금 문제로 쏠리는 관심을 분산시키겠다는 의도에 있었다는 건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었지만, 김영삼에게 그것은 조금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죄인들을 단죄하고 그들이 빼돌린 검은 돈을 회수한다는 너무나 정당한 명분을 내세워 국면을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제 아무도 김영삼이 선거자금으로 쓴 천문학적인 돈의 출처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그런데 굳이 그 문제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누군가 다시 그 문제를 들고 일어난다면, 그때 가서 국면 전환용으로 뭔가를 또 하면 될 일이었다.
- 「제3부 4장 | 단죄의 날, 그리고 김영삼」 중에서

전두환을 이루는 또 하나의 핵심 특성은 수감 생활의 후반부에 흘러나온다. 재판이 끝난 뒤 수감 생활에 적응해 나가면서, 그는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잃은 적이 없었던, 그를 이루는 것 중 가장 강력하고 뛰어난 특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그것은 근면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근면함이었다.
- 「제3부 5장 | 수감 생활」 중에서

전두환과 김대중은 우리 현대사의 상반된 경향을 보여주는 양극단의 인물이다. 왕조시대에서 곧장 식민지 시대로, 식민지 시대에서 곧장 분단국 시대로 들어서야 했던 대한민국에서 전두환은 왕조시대의 잔재인 권위주의를 온몸으로 체현했던 인물이고, 김대중은 외국에서 갑작스럽게 이식된 민주주의 이념을 한국에 정착시키기 위해 인생을 걸어 투쟁한 인물이다. 전자가 무력, 물질, 승자 우선, 편법, 전근대를 상징한다면, 후자는 지성, 인권, 근대, 평화를 상징한다.
- 「제3부 6장 | 대한민국 현대사의 극과 극, 전두환 VS 김대중」 중에서

만일 ‘한국 정치판’이라는 게임을 설계한 프로그래머가 있다면, 그는 전두환이라는 플레이어를 고안할 때부터 노무현이라는 플레이어의 밑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전두환과 노무현은 양극단을 데칼코마니의 대칭으로 뽑아낸 것처럼 정확하게 반대되는 인물들이었다.
- 「제3부 7장 | 대한민국 현대사의 극과 극, 전두환 VS 노무현」 중에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병으로 사망함으로써, 내면에 남아 있었을 전두환의 선량한 자아들도 함께 사망했다. 언제 공격당할지 몰라 겁에 질렸던 여린 자아, 자신이 저질렀던 일의 실체를 짚어보고 싶었던 지성적인 자아, 그때는 그렇게 해도 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큰 잘못이었다고 인정하고 사죄하고 싶은 자아, 화통하게 무릎 꿇고 사과한 뒤 용서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자아들도(나는 전두환의 내면에도 그런 게, 극소량이나마,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을 떠났다. 한 번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씨앗인 상태로 91살 무인의 신체에 잠재해 있다가, 고스란히 생명력을 잃었다.
- 「제3부 9장 | 한 번도 자기 자신과 만나지 못했던 사내의 말년」 중에서

반성 없이 살다 간 전두환의 33년이 남긴 후과는 그러나, 후손에게만 돌아간 것이 아니다. 임기를 무사히 마친 전두환이 반성하지 않은 채 삼십여 년을 살다 갔기에, 국가 공동체 곳곳에 그의 흔적이 강력하게 남았다. 그의 흔적은 구성원 각자가 했을 잘못을 덮어서 보이지 않게 만드는 거대한 검은 천이 되었다. 범죄자가 받아 마땅한 죄과를 받았다면 걷혀서 사라졌을 검은 천이 사회 전체에 묵직하게 드리워져, 신군부에 가담했던 이들이 여전히 누리고 있는 물질적·사회적 혜택을 찾아내고 회수하게 못하게 만든 것은 물론, 반대편에서도 부작용을 만들어냈다.
- 「제4부 1장 | 역사의 제단에 놓인 제물」 중에서

이러한 역사를 훑어보면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전두환이라는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그 인물로 대표되는 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가 ‘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던 때. 강하고 유능하고 모범적인 지도자상이 국민의 내면에 심기고 통용될 수 있었던 때. 국민들의 마음속에 열심히 일하는 내가 ‘대한민국’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뚜렷이 있었던 때.
- 「제4부 2장 | 영광이 사라진 시대」 중에서

전두환 집권기였던 80년대, 사람들

저자소개

정아은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75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모던하트》,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공저 《젠더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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