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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작가의 세 번째 신간, 《바니타스 : 꽃》

"사람은 누구나 영원함을 갈구하고 쫓아간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 속에서, 찬란히 피어난 꽃을 통해 담은 찰나의 아름다움.

사진집 《바니타스 : 꽃》을 소개합니다.

꽃의 영원함을 모은 조각집 《바니타스 : 꽃》은, 회화의 전통적 개념인 바니타스 정물화를 사진으로 재해석한 시도를 담아냅니다. 전작 《빛의 실루엣 : 영원의 정원》에서 일본의 풍경만을 담았다면, 이번 바니타스 꽃에서는 작가의 방에서 소재로서 관찰한 꽃의다양한 표정과 모습에 대해, 정물화로써 접근합니다. 방 안에서 영원할 것만 같은 생명력을 찰나에 뿜어내는 꽃들은, 그렇기에 더욱 영원한 모순적 아름다움을 지닙니다.

은은한 분홍빛에 푸른 글씨로 새겨진 산문은 작가의 일기이기도 하며, 과거를 되돌아보기 위한 글 작업을 위해 쌓아둔 글감을 엮었습니다. 죽음과 삶의 간극을 인식하는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덧없음과 허무함,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 글들로, 과거의 기억과 생명의 조각을 모아 바니타스 작품집을 완성합니다.

회화 작업을 할 때 어느 순간부터 꽃시장에서 꽃을 샀다. 직접 관찰해야만 그리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바니타스 화는 17세기 무렵, 흑사병과 전쟁으로 인해 탄생한 정물화의 한 장르이지만, 메멘토 모리부터 바니타스적 개념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언제나 영원함을 갈구하면서 유한한 인생에 대해 고찰하고, 희노애락을 느끼며 그것을 처절히, 그림으로 그렸으나 그곳엔 정제한 에센스만 남기는 것이었다. 그런 무거운 것들을 고뇌하며 꽃을 관찰했을 때. 내가 생활하는 작업실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잠시 바깥을 다녀와 방 안에 들어섰을 때. 내가 없어도 꽃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생명력을 내뿜어 향기가 가득해서 미약하기도, 진하기도 한 그 향을 꽃이 살아있는 며칠동안 맡았던 것이다.

갸냘프면서도 동시에 매우 강하고,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지만 꽃만은 계속해서 피고 지고, 다시 태어나는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내가 항상 도달하고 싶었던, 죽어야만 갈 수 있는 천국에 대한 조그마한 조각을 발견한 것만 같다는 것.
《빛의 실루엣》 화집을 시작하면서, 앞으로 새로운 책을 만들 때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제작 방식을 택해야겠다 생각했고, 이번엔 네덜란드에서 공수한 북클로스로 하드커버를 씌운 양장본을 제작하게 되었다.
린넨 천은 화가인 나의 뿌리이자 바탕이다.
전작 《빛의 실루엣》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선명한 잉크의 색감을 표현했다면, 이번 《바니타스》에서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물먹은 투명감있는 수채화같은 표면이 완성되었다. 사라진 것들의 모습을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생각한다.
가장 오래되고 튼튼한 제본 방식인 양장에, 그림자만으로 표현되는 타이틀, 그리고 산문의 일부분을 표지에 담았다. 새로운 도전들로 가득한 이 책은, 소품집이면서 가장 튼튼하고 견고한 새로운 시도와 가장 앤티크함을 느낄 수 있는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또 하나의 꽃의 조각이 완성된 것이다.

산문과 사진

꽃을 샀다.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선 직접 관찰해야 했다. 깊은 시간 동안 탐구해야 했다. 절화 도매시장에
가서 한 아름 사 오고, 또 사 오고. 방 안에 거대한 통을 여러 개 놓아두고, 생화 그대로를 관찰했다. 점점
요령이 생겨, 여러 움직임을 표현하며 꽃꽂이했다. 배운 적은 없지만, 그냥 하는 거다.
꽃은 봉오리로 와서 내 방에서 며칠 동안 만개한 뒤, 죽는다. 향기가 가득하다. 생명력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꽃은 날 바라보고 있다.
말라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여겼다. 점점 수분이 빠져나가 마르는 모습. 그리고 줄기의 새 눈에서 다시 새싹이
돋는다. 꽃이 죽어가며 새 생명은 태어난다. 이 꽃은 죽지만 다른 꽃은 피어난다. 그리고 끝없이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나고 죽는다.
자연은 언제나 영원하다.
…
예민함이 나를 갉아먹는 시기가 있었다.
예민함이 나를 상하게 했었다.
예민함이 나를 해하는 때가 있었다.
예민함을 견디지 못해 내가 다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