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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 중인 권이부 시인의 첫 시집으로, 현재 문학과 철학공부를 병행하고 있는 시인의 사유가 깊이 배여 있는 시들이 중심을 이룬다.
시집은 크게 두 종류의 시들로 구성됐는데, 1, 2부는 주로 신학과 철학적 사유가 바탕이 된 시이고, 3, 4부는 전통서정시로 이뤄졌다.

시인은 “이 세상은 부조리한데 인간이 부조리에서/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절망적으로 토로하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부조리한 현실에서 벗어나서 참된 자아를 찾으려는 실존적인 노력이 권 시인에게는 바로 시 쓰기와 철학공부인지도 모르겠다. 권이부 시인은 그런 정신적인 궤적과 몸부림은 다음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죽을 고비를 겨우 넘었다고 생각이 들면
현재를 세우면서 더 현재를 세우는 일을
잊지 말아야한다
말할 수 없는 미학이 들어온 세계는
나는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마감되는 것은 아니다
-「석탑의 미」 부분

심연 자리까지도 타인에게 요구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것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바뀌는
네가 서 있는 위치를 봐야 한다

나는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방황하는 것이다
-「몸」 일부

인용시 가운데 “죽을 고비를 겨우 넘었다고 생각이 들면/현재를 세우면서 더 현재를 세우는 일을/ 잊지 말아야한다”는 다짐은 죽을 힘을 다 해서 공부하는 시적 자아의 결연한 의지가 잘 나타나 있고,“나는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방황하는 것이다”는 구절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사는 자는 언제나 방황하고 불안해한다고 괴테도 자신의 「파우스트」에서 말 한 바 있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쉽게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삶을 살지는 못 한다. 권 시인은 이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문학이나 철학 둘 다 언어의 예술이다. 그러나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만족할만한 수준까지 할 수 없다는 언어의 한계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게 문학과 철학의 숙명이다. 권 시인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언어 너머로 가기 위해서는/언어를 이해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라든가 “하나의 언어로/온 세상을 밝혀 준 너/너는 너를 열고 있다”라고 언어의 문제를 제기하고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제1부
013 이방인 -까뮈에게
015 시간의 과정
016 노마디즘
017 시니시즘
01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푸르스트에게
020 존재물음
021 무위
022 변신
024 하늘의 침묵
025 그리움
026 마음의 정원
027 나무 앞에서
028 석탑의 미
029 심연
030 물의 도
031 물의 생
032 몸
033 바람의 집
034 기억
035 길
036 존재 사이에서

제2부
039 가난한 용기
040 고독
041 진심
042 방외인
043 만남
044 간 고등어
045 지도
046 캄캄 밤
047 소쩍새
048 돌
049 오직 하나
050 만년설
051 자본주의 광고
052 안부
053 에코
054 참 좋다
055 동행
056 혼자 앞에서
057 우포 산책
058 알파 오메가
059 낯익은 낯설다

제3부
063 가을한 가을
064 단풍
065 바람만이 안다
066 바람이 속삭임
067 분서
068 갈대의 가을
069 물과 흙
070 달창지 길
071 성선 물
072 풀
073 현대의 언어
074 바람이 분다
075 인연
076 별
077 참
078 풀잎 말리다
079 중세시대
080 용문사 삼층석탐
081 돌담길
082 돌담길 2
083 관계

제4부
087 행복의 조건
088 아기
089 가을 이야기
090 가을 정원
091 둘 사이에서
092 짜장면
093 춘추전국시대
094 시간
095 몸살감기
096 소
097 사랑에게
098 어느 다툼
099 나
100 정직
101 행복
102 들꽃
103 일몰
104 존재의 이유
105 존재의 빛
106 연꽃
107 해설｜김용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