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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울지 않는 밤 : 김이설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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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그래도 나는 다음 계절을 기다리기로 했다.”
부서지고 조각나고 위태로운 마음……
인생의 존엄과 가치를 잃은 모두에게 바치는 투명한 언어들

일상에 균열이 생겼을 때 만들어지는 인간의 내밀한 감정을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내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해온 김이설의 네번째 소설집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김이설은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소설집 세 권과 경장편소설 네 권을 펴내며 황순원신진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문단에서 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정말 쓰고 싶은 소설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에 관한 이야기”라는 이번 책의 ‘작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꾸준히 사회 혹은 공동체의 그늘 아래 놓인 여성의 현실에 주목해온 작가이기도 하다.
총 열 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은 전작들의 골조를 지키되 다양한 연령층의 화자를 배치해 더 폭넓고 내밀한 사회적 문제로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성격도 나이도 다른 주인공들은 저마다 갈등과 이별을 겪고 상대방의 외도, 성폭력 등에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나쁜 감정에서 탈피할 수 없는 환경에 갇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진다. 작가는 이들을 감싸 안는 대신 첩첩산중의 현실로 내몰아 악착같이 살아가도록 이끈다. 이처럼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불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열 가지 의지를 담은 소설집으로, 여성이란 이름으로 순탄치 않은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삶의 새로운 방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의 소설들마다 사연과 그 맥락이 다양하지만, 모두 어떤 갈림길에 서 있거나 이행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들의 녹록지 않은 상황과 그 속에서의 안간힘이야말로 ‘삶’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김미정(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끝을 알 수 있다면 시작하지 않을 일이 얼마나 많을까.”
지켜야 하는 것 vs 자립해야 하는 것
가족이라는 불안한 인연

“고작 제사 때문에 헤어지자는 거야?”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너여서 헤어지자는 걸 남편은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생전 본 적도 없는 남편의 조상을 위해, 심지어 저희들도 본 적 없는 존재를 먹이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산 사람들이 다 먹지도 못할 만큼 많은 음식을 꾸역꾸역 해대는 일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집안의 새 식구라는 나를 너희 집 대소사에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짓인지도 수긍하지 않았다. (「축문祝文」)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태어날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결속된다. 최초로 인연을 맺게 되는 관계의 시작점이면서 법적으로도 효력이 발생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가족이 지옥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의 중심축이자 각 사건들의 출발선이다.
「가족의 일생」에서 정균은 하루에 배달을 50건은 채워야 네 식구에게 밥을 먹일 수 있는 배달 라이더이다. 그는 은주가 동거남의 아이를 가진 것을 알고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와 가족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가출하던 “은주는 돌아오지 않았”고 정균에게 남겨진 것은 여섯 살이 된 아이뿐이다. 「환기의 계절」에서 ‘나’는 외도하는 남편이 이혼까지 요구하자 자신이 어렸을 때 집을 나간 아버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 아버지가 병들고 늙은 몸으로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 이해하고 받아주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깨져버린 자신의 가정을 돌아보게 된다. 「긴 하루」에서 하나밖에 없는 딸 혜서와 사는 유순은 하루 종일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자신처럼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유순은 딸의 이성 교제를 반대하지만 혜서는 이 말을 달고 살더니 정말 집을 나가버린다. “이러니 내가 집을 나가고 싶지!”
「모면」에서 소영은 형부의 외도로 점점 무너져가는 언니의 모습을 바라봄과 동시에 유년 시절 함께 살던 이모와 아버지의 부적절한 관계를 목격했던 것을 떠올린다. 「치유정원에서」는 식목원에서 상주하며 아르바이트하는 ‘나’와 석우의 동거 생활을 그린다. ‘나’는 동생의 자살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터라 석우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결국 석우마저 떠나버리자 ‘나’는 “모든 것을 잃은 기분”에 휩싸인다. 「반 뗀 라 지?」의 두연은 베트남에서 시집 온 엄마와 한국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모네 집에 얹혀살며 고모의 아들 지혁에게 지속적인 학대와 성폭행을 당한다. 두연은 이를 힘들게 고모와 고모부에게 고백하지만 2차 가해자를 당할 뿐이다. “네 몸 하나 간수 못 하고서 어디서 귀한 아들 잡아먹을 소리를 해대는 거야!”
“감정은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늘 관계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김미정 문학평론가 해설). 태어나 보니 가족이 된 집단에 생긴 균열은 자의에 의해 얻어진 것도 아니면서 주인공들을(혹은 우리를) 옥죈다. 불편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작가는 더욱 불편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다. 어쨌든 우리는 가족을 비롯한 무리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고 가족 내 폭력과 착취가 이 사회에 팽배해 있으므로.


“여기는 끝이 아니었다. 아직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었다.”
어지러운 현실에서 온전히 살아남으려는 다짐들

세상으로부터 부정당한 기분, 나만 외톨이가 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아이를 생각하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며 나는 매일 밤 다짐했다. 어떻게든 살아갈 거라고. 엄마를 닮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처럼 살 거라고. 아이의 손을 잡으면 아이는 잠결에도 잡은 내 손을 꼭 쥐었다. (「환기의 계절」)

희망이 없는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희망의 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결심이 필요하다. 단단히 마음먹은 뒤 행동하더라도 이탈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하지만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버텨야 하고, 좀더 나은 쪽으로 갈 만한 선택을 해야 한다.
「내일의 징후」의 배경은 환란을 예고하듯 장마철이다. 헤어진 연인 관계인 성은과 소혜-아픈 엄마와 가난한 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윤주-방 안에서 청춘을 무기력하게 흘려보내는 태현과 이를 답답해하는 엄마 상희의 에피소드가 교차된다. 마음이 눅눅한 이들에게 장마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기다리는 사람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는 성은의 엄마 조언과 포기했던 꿈인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려 미술 도구를 구매하는 윤주의 모습에서 그 끝을 조금은 기대해보게 된다. 「계절이 바뀌는 곳」의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버섯 농사를 하고 있다. 손 많이 가고 돈 안 되는 버섯 농사를 하면서 아픈 동생 시연을 돌보기는 버겁기만 하다. 같은 동네에서 버섯 농장을 운영하며 안정적으로 정착한 민수와 결혼을 생각해보지만 민수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럼에도 앞으로 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지를 떠올리는데 모두 지금의 ‘나’보다 숨통 트이는 방향들이다.
「그래도 되는 사이」에는 엄마와 현재 엄마의 세번째 남성, 유경 그리고 그의 연인 성운이 등장한다. 넷은 엄마의 집에 모여 담소를 나누다가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다. 엄마의 세번째 남성은 엄마의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혼인신고를 하려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고, 성운은 결혼과 책임이란 단어를 내세우며 본인의 진심을 고백한다. 하지만 유경은 이렇게 말하며 거절한다. “부모 자식도 20년 정도 살면 헤어져. 그런데 남남이 어떻게 7, 80년을 같이 살아. 그것도 한집에서.” 둘의 끝은 정해져 있지만 오랜 동거 끝에 명확해진 각자의 다짐을 응원하는, “그래도 되는 사이”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빠져나갈 희망, 즉 구원을 이 소설집에서 단번에 찾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 가지의 서사에 담긴 다짐들은 우리의 삶에도 새로운 결심의 계기를 건넨다. 그리고 작가는 “오전 내내 비가 오고 오후에 바짝 갠 하늘을 보여주더니, 해 질 녘이 되자 수평선 부근부터 붉은색으로 변해가”(「내일의 징후」)듯 삶의 풍경도 자꾸만 변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니 더는 혼자 울지 말고 김이설의 작품 세계로 가기 위해 “이제 정말 서둘러야 한다”(「반 뗀 라 지?」).

추천사


두번째 단편집 『오늘처럼 고요히』 이후, 6년간 발표한 단편들 중에서 『잃어버린 이름에게』에 실은 작품들과 「갑사에서 울다」라는 단편을 제외한 열 편을 추렸다.
열 편의 소설을 모으는 동안 글을 못 쓰던 시절이 있었다. 아프기도 했다. 이제껏 믿었던 세계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그동안 써온 내 소설을 부정하는 일도 겪었다. 생각해보면 소설가라면 한 번쯤 겪어야 하는 마땅한 통과의례였다. 그 고비를 넘기면서 지어온 소설들이니 각별하나,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의혹 없이 내 소설을 읽어와준 손정혜와 윤규미, 허물 많은 소설을 보듬어준 김미정 선생님, 세번째 단편집으로 묶일 수 있도록 애써준 문학과지성사와 이주이 편집자, 무엇보다도 김이설의 소설을 기다려준 독자분들에게 가장 큰 감사를 드린다. 기다리는 글을 쓰는 일. 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정말 쓰고 싶은 소설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에 관한 이야기. 그런 소설을 내놓을 때까지, 써보겠다. 여하튼 쓰겠다.

2023년 3월
김이설

목차

모면
내일의 징후
축문祝文
환기의 계절
치유정원에서
계절이 바뀌는 곳
반 뗀 라 지?
가족의 일생
긴 하루
그래도 되는 사이

해설 | 계절이 계절에게 · 김미정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남편이 내 팔을 잡아떼면서 다시 옷가지를 추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남편에게 소리쳤다.
“나갈 거면 차 키고 지갑이고 다 놓고 가! 지금 입은 옷 그대로 나가! 아니, 팬티 한 장도 남김없이 다 내놓고 맨몸뚱이만 나가라고!”
나의 어깃장이 무의미한 고함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았다. 남편은 이미 이 집에서, 나에게서 떠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떤 예고나 증후도 없이 그냥 헤어지자고 하면 헤어져야 하는가. 관계라는 것이 일방적인 통보 한마디로 중단될 수 있는가. 결혼 생활이라는 것이, 이 가정에서 저 가정으로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것인가. 「환기의 계절」

이별의 이유를 모르는 것보다 이별의 기억을 안고 사는 것이 더 괴롭다는 걸 나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석우가 떠난 이유보다 석우가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힘들었다. 석우 없는 일상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몰라 허둥댔다. 그러나 결국 석우 없이도 거뜬히 살아가야 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치유정원에서」

두연은 지은을 빤히 쳐다봤다. 이제 와서 이렇게 내쫓길 순 없다. 하지만 그냥 있을 수도 없었다. 두연은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바라던 돈이었다. 이 돈이면 아이를 지울 수도, 노래방에서 원 없이 노래를 부를 수도, 심지어 엄마의 나라로 갈 수도 있었다. 여기를 떠나 고모와 서병식, 서지혁이 없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서울로 올라가 노래 학원에 다닐 수도 있고, 그러면 정말 가수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를 위해서 가란 말이야.” 「반 뗀 라 지?」

“네가 지금 불행으로 가는 게 뻔한데. 그냥 가게 둬, 그럼?”
“왜 내가 엄마와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불행했다고 나도 불행할 것 같아?”
그 말에 유순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혜서만큼은 평범하게 살았으면 했다. 남들처럼만 살았으면 했다. 배운 만큼 써먹고, 번 만큼 쓰면서 살아가길 바랐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인생의 복판으로 들어가는 걸 말리고 싶었다. 허락받지 못한 결합의 끝이 어떤 것인지 몰랐으면 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말은 제멋대로 쏟아져 나왔다. 「긴 하루」

정균은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배시시 웃던 예령이의 첫 미소를 기억했다. 처음 아빠-라고 입을 뗀 순간도, 자기를 향해 첫걸음을 떼던 모습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현관문을 열고 예령아- 하고 부르면 어디에 있든 다다다다 달려 나와 정균의 품에 쏙 안기는 예령이의 숨소리를 기억하는 이상, 예령이는 정균의 아이였다. 그 비릿한 어린것의 냄새를 기억하는 한 진심이었다. 「가족의 일생」

저자소개

김이설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75

1975 충남 예산 출생으로,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열세 살' 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 '나쁜 피'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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