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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한국인들의 대부분에게는 너무나 먼 ‘검은’ 대륙이다. 그곳에 50여 개의 나라가 있다지만, 나라 이름을 들어본들 대부분 대략의 위치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곳이다. 간혹 TV나 뉴스, 혹은 구호단체의 광고를 통해 마주치게 되는 아프리카의 기아ㆍ내전ㆍ질병ㆍ난민의 이미지는 그저 인류애에 의해 촉발된 동정심을 자극할 뿐, 그들의 삶에 대해 더 깊이,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물론 반대의 시각도 있다. 아프리카는 상대적 ‘저개발’ 상태로 인해 역설적으로 기회의 땅, 가능성의 땅이라 평가된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아프리카의 광대한 자연은 소위 ‘문명화’된 세계에 지쳐 있는 타지인의 환상을 자극한다. 더군다나 그 밑에는 막대한 자원이 묻혀 있지 않은가? 이 모든 이유로 인해 아프리카는 점점 더 세계의 시선을 끈다. 옛 식민 종주국들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과 같은 신흥 강대국이 아프리카에 투자를 늘리고 협력을 강화하며 지정학적 헤게모니를 추구하고 있다는 소식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비참을 강조할 때든 가능성을 부각할 때든, 아프리카는 그동안 항상 타자로서만 존재해 왔다. 아프리카는 언제나 약탈이든 도움이든 하나의 ‘대상’이었다. 여기에 아프리카의 주체적인 목소리는 거의 들려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기존의 막연한 인식처럼 단일한 국가나 문화권이 아니라 그 넓이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간직한 대륙이다. 아프리카는 수 많은 문화들의 용광로이다. ‘문화’란 넓은 의미로 사람들의 삶과 경험 속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을 뜻한다. 문화는 삶의 구성원들이 내는 주체적인 목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의 관점에서 보아야 현재 아프리카의 모습, 과거의 전통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주어진 조건을 창조적으로 변용해 가는 아프리카인들의 역량, 즉 아프리카의 역동성이 드러나게 된다. 경희대학교 아프리카연구센터가 ‘트랜스아프리카’라는 대주제 아래 현대 아프리카 문화의 역동성과 주체성에 주목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아프리카의 주체성을 가늠한다는 것은 아프리카를 외따로 고립된 예외적 사례로 국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교류와 생성 속에서 아프리카의 현실을 관찰해야 한다. 현대 아프리카 문화는 세계 다른 지역으로부터 받은 복잡한 영향 없이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영향은 언제나 아프리카인들에게 고유한 맥락 속에서 굴절된 형태로, 그들에 의해 소화된 형태로 작용한다. 또한, 그 반대의 흐름도 존재한다. 아프리카가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만큼 아프리카가 세계에 끼치는 영향이 있다는 뜻이다. ‘트랜스아프리카’의 의미가 그것이다. ‘초월’, ‘횡단’, ‘이행’, ‘변화’ 등 다양한 의미를 포괄하는 접두어 ‘트랜스’는 곧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함축하는 키워드다.
2009년에 개소한 경희대학교 아프리카연구센터가 아프리카 문화연구를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적잖은 성과가 축적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과가 연구자의 전유물에 머무르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애초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앞으로 아프리카와의 만남을 확대해갈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상황, 특히 미래 세대의 상황에서 촉발된 것인 만큼, 학술적 성과 역시 학계라는 틀을 넘어 젊은 학생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향유할 수 있는 지식으로 소통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의식이다. 그러니 새로이 시작되는 총서의 제목 ‘트랜스아프리카’는 위에 열거된 ‘트랜스’의 모든 의미에 더하여 또 하나의 ‘가로지름’을, 학계와 사회 사이의 가로지름을 함축하는 셈이다. 총서 첫 번째 책의 제목이 『횡단하는 아프리카』가 된 연유도 다르지 않다.

제1부에는 문화, 그중에서도 일상적인 문화의 측면에서 아프리카를 연구하는 세 편의 글이 수록되었다. 윤유석과 손정훈은 서아프리카에서 널리 사용되는 옷감 왁스를 소재로 삼아 한편으로는 이 ‘수입품’이 아프리카 문화를 대표하는 기호로 자리 잡은 역사를 추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왁스의 다양한 패턴에 붙은 이름들이 왁스를 입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사회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 알아본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아프리카 문화의 혼종적 주체성을 증명하는 또 다른 사례가 바로 언어다. 김민채는 ‘사회언어학’이라는 관점을 빌려, 식민지 시기 코트디부아르에 들어온 프랑스어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토착화되고 나아가 프랑스 ‘본토’에서 볼 수 없는 숱한 변이형을 낳았다는 점을 분석한다. 이 프랑스어는 단순한 식민지의 유산이 아닌, 코트디부아르 사회의 고유한 산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술을 주제로 삼은 제2부의 첫 글에서도 유사한 인상을 받게 된다. 박재연은 ‘디지털화’라는 전지구적 상황에 대한 아프리카 예술가들의 대응 방식에 관심을 보이며, 특히 식민지의 어두운 기억을 창조적으로 전복하는 디지털 콜라주 작품들의 의의를 강조한다. 다음 글에서 기존의 정치적 전통을 벗어나 청년ㆍ여성을 중심에 놓는 두 편의 영화 『투키 부키』(1973)와 『애틀란틱스』(2019)로부터 이선우가 읽어내는 것도 수십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끊임없이 이어지는 예술적 비판의 흐름이며, 이 흐름 속에서 영화 예술은 아프리카의 현재적 욕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르로 자리매김한다.
제2부의 두 글이 미술과 영화를 주제로 삼는다면, 제3부의 관심사는 문학, 그중에서도 프랑스어권 문학이다. 제3부를 여는 오정숙의 글은 마리즈 콩데의 작품을 ‘트랜스’의 글쓰기로 독해하면서, 카리브해의 프랑스 영토 과들루프 출신으로서 프랑스를 거쳐 아프리카를 마주하게 된 이 흑인 여성작가의 작품으로부터 문화적 혼종(트랜스컬쳐)과 정체성의 변모(트랜스아이덴티티)를 추적한다. 알랭 마방쿠를 다룬 다음 두 편의 글에서도 유사한 질문을 확인할 수 있다. 콩고 출신의 프랑스어 작가로서 오랫동안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콜레주드프랑스의 교수를 역임하기도 한 마방쿠의 독특한 이력은 그의 작품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의 첫 소설 『파랑-하양-빨강』(1998)은 콩고 출신으로서 프랑스를 동경했던 한 청년의 디아스포라 경험을 들려주며, 이로부터 유치정은 포스트식민의 세계에서 아프리카인이 어떻게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도출한다. 그로부터 몇 해 뒤에 쓰인 또 다른 대표작 『깨진 잔』(2005)의 경우, 한 술집을 배경으로 삼아 펼쳐지는 온갖 인간군상의 에피소드들은 마방쿠 문학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김용현이 분석해 내듯 이 문학적 실험 밑에는 여전히 아프리카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있다.
앞의 세 부가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마지막 제4부에 실린 글 두 편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를 낳은 역사적 뿌리를 알아본다. 최일성은 국경을 넘어서는 연대의 희망으로 시작되었던 범아프리카주의가 비민주적이고 강압적인 권위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파헤치며, 홍명희는 카메룬의 사례를 통해 19~20세기의 식민지 경험이 아프리카에 남긴 상처를 진단한다. 이렇게 어두운 과거를 들추어내는 것은 물론 아프리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순진한 이상화를 넘어서 보다 총체적인 이해를 갖출 때 아프리카와 진정한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이는 『횡단하는 아프리카』에 실린 열 편의 글 모두를 가로지르는 전제이기도 하다.
여기 수록된 글들은 이미 다양한 학술지에 실린 여러 논문 가운데 더 많은 독자와 나누고 싶은 몇 편을 고른 것이다. 본래의 문제의식과 학문적 엄격함을 유지하면서도 가독성을 높인다는 두 가지 요구사항을 기꺼이 수용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번거로운 수정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던 필자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한국인들의 대부분에게는 너무나 먼 ‘검은’ 대륙이다. 그곳에 50여 개의 나라가 있다지만, 나라 이름을 들어본들 대부분 대략의 위치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곳이다. 간혹 TV나 뉴스, 혹은 구호단체의 광고를 통해 마주치게 되는 아프리카의 기아ㆍ내전ㆍ질병ㆍ난민의 이미지는 그저 인류애에 의해 촉발된 동정심을 자극할 뿐, 그들의 삶에 대해 더 깊이,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물론 반대의 시각도 있다. 아프리카는 상대적 ‘저개발’ 상태로 인해 역설적으로 기회의 땅, 가능성의 땅이라 평가된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아프리카의 광대한 자연은 소위 ‘문명화’된 세계에 지쳐 있는 타지인의 환상을 자극한다. 더군다나 그 밑에는 막대한 자원이 묻혀 있지 않은가? 이 모든 이유로 인해 아프리카는 점점 더 세계의 시선을 끈다. 옛 식민 종주국들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과 같은 신흥 강대국이 아프리카에 투자를 늘리고 협력을 강화하며 지정학적 헤게모니를 추구하고 있다는 소식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비참을 강조할 때든 가능성을 부각할 때든, 아프리카는 그동안 항상 타자로서만 존재해 왔다. 아프리카는 언제나 약탈이든 도움이든 하나의 ‘대상’이었다. 여기에 아프리카의 주체적인 목소리는 거의 들려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기존의 막연한 인식처럼 단일한 국가나 문화권이 아니라 그 넓이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간직한 대륙이다. 아프리카는 수 많은 문화들의 용광로이다. ‘문화’란 넓은 의미로 사람들의 삶과 경험 속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을 뜻한다. 문화는 삶의 구성원들이 내는 주체적인 목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의 관점에서 보아야 현재 아프리카의 모습, 과거의 전통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주어진 조건을 창조적으로 변용해 가는 아프리카인들의 역량, 즉 아프리카의 역동성이 드러나게 된다. 경희대학교 아프리카연구센터가 ‘트랜스아프리카’라는 대주제 아래 현대 아프리카 문화의 역동성과 주체성에 주목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아프리카의 주체성을 가늠한다는 것은 아프리카를 외따로 고립된 예외적 사례로 국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교류와 생성 속에서 아프리카의 현실을 관찰해야 한다. 현대 아프리카 문화는 세계 다른 지역으로부터 받은 복잡한 영향 없이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영향은 언제나 아프리카인들에게 고유한 맥락 속에서 굴절된 형태로, 그들에 의해 소화된 형태로 작용한다. 또한, 그 반대의 흐름도 존재한다. 아프리카가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만큼 아프리카가 세계에 끼치는 영향이 있다는 뜻이다. ‘트랜스아프리카’의 의미가 그것이다. ‘초월’, ‘횡단’, ‘이행’, ‘변화’ 등 다양한 의미를 포괄하는 접두어 ‘트랜스’는 곧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함축하는 키워드다.
2009년에 개소한 경희대학교 아프리카연구센터가 아프리카 문화연구를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적잖은 성과가 축적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과가 연구자의 전유물에 머무르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애초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앞으로 아프리카와의 만남을 확대해갈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상황, 특히 미래 세대의 상황에서 촉발된 것인 만큼, 학술적 성과 역시 학계라는 틀을 넘어 젊은 학생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향유할 수 있는 지식으로 소통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의식이다. 그러니 새로이 시작되는 총서의 제목 ‘트랜스아프리카’는 위에 열거된 ‘트랜스’의 모든 의미에 더하여 또 하나의 ‘가로지름’을, 학계와 사회 사이의 가로지름을 함축하는 셈이다. 총서 첫 번째 책의 제목이 『횡단하는 아프리카』가 된 연유도 다르지 않다.

제1부에는 문화, 그중에서도 일상적인 문화의 측면에서 아프리카를 연구하는 세 편의 글이 수록되었다. 윤유석과 손정훈은 서아프리카에서 널리 사용되는 옷감 왁스를 소재로 삼아 한편으로는 이 ‘수입품’이 아프리카 문화를 대표하는 기호로 자리 잡은 역사를 추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왁스의 다양한 패턴에 붙은 이름들이 왁스를 입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사회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 알아본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아프리카 문화의 혼종적 주체성을 증명하는 또 다른 사례가 바로 언어다. 김민채는 ‘사회언어학’이라는 관점을 빌려, 식민지 시기 코트디부아르에 들어온 프랑스어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토착화되고 나아가 프랑스 ‘본토’에서 볼 수 없는 숱한 변이형을 낳았다는 점을 분석한다. 이 프랑스어는 단순한 식민지의 유산이 아닌, 코트디부아르 사회의 고유한 산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술을 주제로 삼은 제2부의 첫 글에서도 유사한 인상을 받게 된다. 박재연은 ‘디지털화’라는 전지구적 상황에 대한 아프리카 예술가들의 대응 방식에 관심을 보이며, 특히 식민지의 어두운 기억을 창조적으로 전복하는 디지털 콜라주 작품들의 의의를 강조한다. 다음 글에서 기존의 정치적 전통을 벗어나 청년ㆍ여성을 중심에 놓는 두 편의 영화 『투키 부키』(1973)와 『애틀란틱스』(2019)로부터 이선우가 읽어내는 것도 수십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끊임없이 이어지는 예술적 비판의 흐름이며, 이 흐름 속에서 영화 예술은 아프리카의 현재적 욕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르로 자리매김한다.
제2부의 두 글이 미술과 영화를 주제로 삼는다면, 제3부의 관심사는 문학, 그중에서도 프랑스어권 문학이다. 제3부를 여는 오정숙의 글은 마리즈 콩데의 작품을 ‘트랜스’의 글쓰기로 독해하면서, 카리브해의 프랑스 영토 과들루프 출신으로서 프랑스를 거쳐 아프리카를 마주하게 된 이 흑인 여성작가의 작품으로부터 문화적 혼종(트랜스컬쳐)과 정체성의 변모(트랜스아이덴티티)를 추적한다. 알랭 마방쿠를 다룬 다음 두 편의 글에서도 유사한 질문을 확인할 수 있다. 콩고 출신의 프랑스어 작가로서 오랫동안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콜레주드프랑스의 교수를 역임하기도 한 마방쿠의 독특한 이력은 그의 작품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의 첫 소설 『파랑-하양-빨강』(1998)은 콩고 출신으로서 프랑스를 동경했던 한 청년의 디아스포라 경험을 들려주며, 이로부터 유치정은 포스트식민의 세계에서 아프리카인이 어떻게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도출한다. 그로부터 몇 해 뒤에 쓰인 또 다른 대표작 『깨진 잔』(2005)의 경우, 한 술집을 배경으로 삼아 펼쳐지는 온갖 인간군상의 에피소드들은 마방쿠 문학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김용현이 분석해 내듯 이 문학적 실험 밑에는 여전히 아프리카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있다.
앞의 세 부가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마지막 제4부에 실린 글 두 편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를 낳은 역사적 뿌리를 알아본다. 최일성은 국경을 넘어서는 연대의 희망으로 시작되었던 범아프리카주의가 비민주적이고 강압적인 권위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파헤치며, 홍명희는 카메룬의 사례를 통해 19~20세기의 식민지 경험이 아프리카에 남긴 상처를 진단한다. 이렇게 어두운 과거를 들추어내는 것은 물론 아프리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순진한 이상화를 넘어서 보다 총체적인 이해를 갖출 때 아프리카와 진정한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이는 『횡단하는 아프리카』에 실린 열 편의 글 모두를 가로지르는 전제이기도 하다.
여기 수록된 글들은 이미 다양한 학술지에 실린 여러 논문 가운데 더 많은 독자와 나누고 싶은 몇 편을 고른 것이다. 본래의 문제의식과 학문적 엄격함을 유지하면서도 가독성을 높인다는 두 가지 요구사항을 기꺼이 수용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번거로운 수정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던 필자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제1부 문화 1

윤유석
아프리카 왁스가 된 유럽의 프린트 직물 3

손정훈
말하는 옷감, 서아프리카 왁스 27

김민채
코트디부아르로 간 프랑스어 51

제2부 예술 69

박재연
과거와 현재의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드는 미래
: 동시대 아프리카 디지털 콜라주 71

이선우
스크린에 펼쳐진 아프리카의 욕망 92

제3부 문학 125

오정숙
과들루프의 여성,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다 127

유치정
콩고 청년은 왜 프랑스로 갔는가 153

김용현
콩고 어느 술집 이야기 174

제4부 역사 197

최일성
범아프리카주의,
사해동포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길을 잃다 199

홍명희
암바조니아, 두 카메룬의 비극 226

아프리카 왁스가 된 유럽의 프린트 직물

세계에 알려진 아프리카 왁스의 이면

국내 패션 브랜드인 에트리카 Ethrica, 세리그라피 Serigraphie, 쎄쥬씨 Ces jours-ci 는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에스닉풍으로 의류, 가방, 쿠션커버, 파우치 백, 헤어밴드 등을 제작해 판매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패션 산업뿐 아니라 “서아프리카 텍스타일을 활용한 가방 디자인 개발 연구”, “에스닉 스타일을 응용한 아트 메이크업 작품에 관한 연구” 등과 같은 제품 개발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패션 시장에서도 아풍은 에스닉 패션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2005년~2010년 밀라노ㆍ파리 컬렉션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풍의 작품은 전체 에스닉 패션 중 35%를 차지하였고 전 시즌에 걸쳐 빠짐없이 등장하였다.
국내외 패션문화시장에서 아프리카풍의 이미지 구현을 위해 사용하는 소재 중 하나가 왁스 프린트이다. 왁스 프린트는 섬유공장에서 생산된 원단의 한 종류로, 흔히 밀랍(蜜蠟,？beeswax)으로 알려진 천연 혹은 합성 왁스를 이용해 천의 일부가 염료에 스며들지 않게 하는 방염방식으로 원단 양면을 여러 가지 색깔과 문양으로 염색한 날염직물이다. 19~20세기 유럽에서 생산되어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등 아프리카인들이 주로 착용하면서 아프리카의 인상과 이미지를 상징하는 아프리카 직물, 혹은 아프리카적인 직물이 되었고 20세기 중후반부터는 아프리카 현지와 중국, 인도 등에서 많이 생산되어 아프리카 대륙은 물론 디아스포라 아프리카인들이나 에스닉 풍을 소비하는 코스모폴리탄 소비자들의 아프리카 문화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만 주로 유통되고 소비되던 왁스 프린트가 전 세계 패션시장과 문화시장에서 소비되면서 왁스 프린트가 아프리카를 표현하는 문화적인 상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왁스 프린트가 공장에서 처음 생산되던 19~20세기 당시 섬유공장의 대부분은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등 유럽에 소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왁스를 사용한 날염 방식이 유럽의 전통 직물 제작법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원래 왁스 프린트는 면직물에 양면을 염색한 것이지만 당시 유럽은 모직물, 견직물, 린넨 등을 전통적으로 생산해보고 있었다. 면직물에 염색하는 방식은 대항해시대 동인도회사를 통해 아시아의 문물을 자국과 아프리카로 무역을 하던 유럽인들이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면직물 염색법을 따라 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아프리카 왁스로 알려진 왁스 프린트는 인도와 인도네시아 면직물의 염색법을 차용해 유럽의 섬유회사들이 인쇄기로 프린트한 직물이 서아프리카에 유입되어 중앙아프리카와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확산된 다국적 문화의 소산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왁스 프린트 wax print”를 검색하면 “아프리카 왁스 프린트”, “아프리카 왁스”, “아프리카 패턴”, “앙카라 왁스” 등과 같은 검색 결과가 나올 만큼 아프리카의 문화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원과 생산지가 아프리카가 아닌 직물이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직물이 되었을까? 공장에서 생산하는 왁스 프린트를 처음 만든 것은 유럽인이고 아프리카인들은 소비만 했는데 아프리카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왁스의 정의와 정체성 논란

지금도 서아프리카에서는 왁스 프린트를 착용한 아프리카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림 1]은 필자가 2022년 방문한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와 인근 소도시의 거리에서 촬영한 왁스 프린트를 착용한 여성과 남성의 모습이다. 왼쪽 사진의 여성처럼 같은 원단의 천으로 머리에 두건을 둘러 세트로 착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생산지가 표기된 원단 양옆의 하얀 테두리를 재단하지 않고 그대로 보이게 하면서 착용하는 특징이 있다. 남성의 경우 왁스 패턴을 조각보처럼 이어 붙여 상의로 착용한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아프리카인들이 주로 착용하고 있기 때문이지, 왁스 프린트는 해외는 물론 아프리카 대륙 안에서도 아프리카를 표현하는 관광 상품이나 전시물에 사용될 정도로 아프리카의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왁스’라 불리는 왁스 프린트가 아프리카 직물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좀 더 복잡한 이해가 필요하다. 왁스 프린트의 기원, 제작, 소비 지역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생산된 왁스 프린트의 기원은 인도네시아 자바의 바틱 batik이다. 일반적으로 바틱은 방염으로 문양을 표현하는 염색 기법이나 방염으로 문양을 표현한 천을 말하는데, 특히 양면에 정교한 문양과 색깔을 입히는 인도네시아 자바의 바틱이 대표적인 생산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전통 자바 바틱은 문양을 직접 손으로 그리거나 문양이 새겨진 금속판을 도장처럼 찍어 문양을 표현한 후 천연 밀랍인 비즈 왁스 bees-wax를 방염 재료로 사용해 여러 번에 걸쳐 방염 작업을 하면서 특정한 색을 면직물의 앞뒤 양면에 염색해 만들어진다. 인도네시아 장인들의 손으로 만들어지던 전통 수제 바틱이 유럽인들의 발명품인 직물인쇄기에서 대량 생산된 것이 왁스 프린트이고, 이것이 서아프리카에 유입되어 아프리카의 복식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아프리카 왁스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정의하면, 아프리카 왁스는 인도네시아 전통 직물인 자바 바틱 방식과 유럽의 직물인쇄 기술로 생산되어 아프리카에서 소비된 양면 날염직물이다. 복잡하게 뒤엉킨 문화적 정체성으로 인해 왁스 프린트는 아프리카인들이 입고, 아프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프리카의 복식문화이고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원이나 생산지가 아프리카가 아니라는 이유로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012년 11월 14일 뉴욕타임즈는 “아프리카 직물은 네덜란드의 것이다 Africa’s Fabric is Dutch”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아프리카의 직물로 알려진 왁스 직물이 사실은 네덜란드에서 생산된 네덜란드의 것이라는 내용을 다루었다. 영국의 BBC도 2020년 6월 “왁스 프린트, 아프리카의 자랑인가 식민지 유산인가? Wax print: Africa's pride or colonial legacy?”라는 기사에서 서아프리카인들이 왁스를 아프리카의 문화유산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보여주면서 “왁스 프린트가 아프리카를 상징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왁스가 아프리카 직물인가? Is wax an African fabric?”라는 서아프리카 로메의 한 저널 기사에서도 왁스 프린트가 ‘진짜’ 아프리카 전통 직물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왁스 프린트의 주요 생산지, 즉 직물을 만들어낸 곳은 유럽이었고 아프리카는 단지 소비 시장에 불과했기 때문에 왁스 프린트가 ‘진짜’ 아프리카의 것인지, 아프리카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유럽과 미국은 물론 아프리카 내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의 시작은 아프리카에 유럽의 직물이 들어오면서부터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아프리카에 유럽의 직물이 유입되었고, 그중에서 어떤 직물이 어떻게 아프리카 왁스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갖게 되었을까?